입덕하다
김영화
친구와 둘이서 노래방에 갔다. 모처럼 시간이 남아 젊음의 거리 부산대로 진출했다. 소문대로 시설도 좋고 최신식 기계로 음질도 맑고 풍부하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싸다. 한 시간에 만이천 원, 써비스가 두 시간이라고 친구가 귀띔해 준다.
TV조선, ‘미스 트롯’의 여파로 요즘 트롯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우연히 오디션 방송을 보다가 트롯의 매력에 빠졌다. 특히 ‘미스 트롯 진’ 송가인의 감성 짙은 목소리에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첫 소절만 들어도 사람들은 탄성을 지른다. 어쩜 그리도 맛깔스럽게 잘 부르는지. 짱짱한 실력은 기본이고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어릴 적부터 판소리를 전공한 학사 가수로써 목소리와 창법은 남다르다.
송가인의 어머니는 무당이다. 어릴 적부터 굿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고 한다. 망자의 한을 풀어 주는 진도 씻김굿, 그래서인지 그의 타고난 목소리에는 한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송가인이가 엄마가 무속인 이라는 걸 속이지 않고 밝혀서 더 예쁘다” 고 한다.
낮인데도 노래방 안이 북적거린다. 여기에도 트롯의 여파가 분다. 방마다 저마다의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송가인의 노래를 수도 없이 들었다. 자꾸 들어도 지루하지 않다. 이제 듣기는 그만, 이왕이면 나도 제대로 감정을 내어 멋지게 부르리라.
친구는 나보다 노래를 더 좋아한다. 음악 이야기만으로도 하루 종일 즐겁다. 불교합창단에서 그는 소프라노 파트장으로, 나는 알토 파트에서 십년을 같이 활동했다. 한때는 양산통도사 합창제와 서운암 들꽃축제에 긴 치맛자락 휘날리며 노래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내 인생의 봄날이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두 시간 수업을 받았다.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인연 맺은 합창단, 부처님 법문이 아로새겨진 노래를 불렀다. 저마다의 소리를 갈고 닦아, 같은 소리를 내어야 아름다운 하모니가 된다. 생소리를 내어도 안 되며 혼자서 크게 소리 질러도 안 된다. 한마디로 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도 내 생소리를 인정하기 까지 십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무조건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요즘 TV를 틀면 가슴이 답답하다. 저마다의 소리로 세상이 시끄럽다. 서로 잘났다고 소리지르며 상대편을 헐뜯는다. 남을 깎아 내려야 자신들이 올라가는 걸까. ‘정말 생소리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악을 전공한 친구가 몇 해 전 트로트를 배운다고 했다. 뽕짝이라 쉽게 생각했더니, 결코 쉬운 장르가 아니라고 한다. 오늘 들으니 노래 좋고 감정도 풍부하다. 요즘에는 아마추어 가수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세 시간 동안 열심히 불렀다. 그래도 둘이 다 지친 기색이 없다.
최근 가요계는 아이돌 전성시대로 트롯이 설 자리가 없었다. 뽕짝이라 비하되며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했다. 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쩐지 나이 들어 보이고 시대에 뒤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건방진 생각이었다. 이제는 전통가요가 눈에 보인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부른다. 철사 줄로 꽁꽁 묶인 채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간 남편, 십년이 가도 백년이가도 살아만 돌아오라고 아내는 절규한다. 전쟁의 비극과 이별의 아픔이 찐하게 전해져와 목이 메인다. 요즘 아내들은 남편에게 밥 세끼 차려 주는 것 조차 귀찮아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있을 때 잘해 후회 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망설이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