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브리서 11:4 / 아벨과 믿음의 삶
히브리서 11장 4절에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본문은 세 개의 점진적인 관점들로 나누어진다.
1) 더 나은 제사를 드리는 일,
2) 의롭다하심을 얻는 일,
3)죽었으나 오히려 말하는 일을 하도록 그를 이끌었다.
히브리서 11장의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창세기 4장으로 돌아가서 가인과 아벨의 기사를 연구해야만 한다.
4장 1절은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고 말한다.
”가인”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카나」(Qana)에서 나온 것으로 ”얻다”라는 뜻이다.
즉,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얻음」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가 된다.
2-4절에는 1절에 연이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우리는 이곳 창세기 4장 3-4절에서 이 구절은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1. 예배를 위한 정해진 장소가 있었다
가인과 아벨이 모두 자기들의 제물을 ”여호와께 가져왔다”(개역 한글성경에는 「드렸다」로 표기됨 -역자 주)는 사실은 여호와께서 어떤 장소를 정하셨으므로 그들이 제물을 그 곳까지, 가져와야만 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즉, 이곳이 하나님과 만나도록 정해진 곳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하나님께서 인간을 에덴 동산에서 추방하셨지만, 그분께선 그들이 다시 돌아와 그분을 경배할 수 있도록 시은좌(施恩座)를 마련하셨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2. 예배를 위한 정해진 시간이 있었다
창세기 4장 3절은 ”세월이 지난 후에...”로 되어 있다. 이 구절을 히브리어 원문에 입각하여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날들의 마지막에”를 뜻하는 것이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어떤 지정된 시간의 마지막이 제사를 드리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속죄를 위해 특별한 날을 가르쳐 주셨던 것 같다.
3. 예배를 드리는 정해진 방법이 있었다
하나님께는 제사에 의해서만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아담과 하와의 자녀들은 제사에 정해진 장소와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그들이 제사의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가정을 믿고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면,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리는 것에 관하여 어떠한 내용도 전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Ⅱ. 하나님께서 세우신 규례에 대한 반응
1. 아벨의 반응 - 순종하는 믿음
히브리서 11장 4절은 아벨이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로마서 10장 17절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라고 말한다.
사람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벨이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듣고서 그것을 믿고 순종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에게 자신은 제사를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벨은 믿었고 하나님께서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행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였다.
가인의 농작물 제사가 무엇이 잘못이었는가?
하나님께 온갖 종류의 과실들과 채소류, 그리고 곡물을 드리는 것이 사실상 잘못된 점은 전혀 없다. 레위기 19장 24절은 ”제 사년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에 드려 찬송할 것이며”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농작물 제사를 받으시는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첫번째로 드려지지는 않았다!
피의 제사가 항상 맨먼저 드려져야만 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기 전에 먼저 자기의 죄를 씻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물론, 피없는 소제(素祭)도 있었지만 죄를 씻기 위해서는 피의 제사가 먼저 드려져야만 했다. 아벨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행했을 때, 그는 자신의 순종을 드러낸 것이며 자신의 죄악됨을 인정했던 것이다.
가인은 불순종했으며,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4절은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라고 말씀한다.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였으므로 더 나은 것이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피의 제사를 지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았다면 아벨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아벨이 우연히 올바른 제사를 드렸던 것이라면, 무슨 권리로 그가 의롭다 일컬어질 수 있었겠는가?
만일 아벨은 자신이 양 치는 자였으므로 양을 가져왔고 가인은 토마토 재배하는 자이었기에 토마토를 가져왔다면, 무슨 독단적인 근거에서 하나님이 ”아벨아, 너는 의로운 자로다! 그러나 가인아, 너는 그렇지 못하도다!”라고 말씀하셨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마치 ”나는 양은 좋아하지만, 토마토는 나에게 맞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아벨의 제사가 열납되었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그것에 순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 가인의 반응 - 불순종의 행위
가인도 아벨이 가지고 있었던 것과 동일한 모든 공통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가져왔다.
그는 자기 부모의 행습을 따라, 자기 자신의 방식대로 행했다.
가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자기 자신의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경작해 왔던 모든 농작물들을 거두어 모아, 그것들을 하나님께 가져와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이것들이 대단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규례에 대한 가인의 응답은 그를 시종 거짓 종교의 조상으로 증거되도록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거짓 종교란 하나님이 규정하신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 오려고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했다.
거짓종교는 ”아니다, 다른 길이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래서 선하게 될 수도 있다.
만일 내가 충분한 만큼의 선행을 쌓게 된다면 나는 궁극적 선(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가인은 이러한 모든 주장들의 조상이 되었다.
하나님께선 ”내가 말한 대로 그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가인은 ”아닙니다. 나는 내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거짓 종교란 이러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모든 것들의 조상이 되었다. 거짓 종교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잠언 16장 25절은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가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위하여 지시하신 것을 가져옴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고안한 계획에 의해 스스로의 공로를 가지고 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선 그를 거부하셨고 그는 여호와의 면전에서 쫓겨나 놋 땅(유리하는 것 혹은 방황하는 것을 의미함)에 거하며, 자녀들을 낳고 최초로 성(城)을 쌓았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사단의 통치하로 떨어져 버린 세상의 제도가 탄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인은 자기 길로 가기로 정했고 하나님의 면전에서 떠났다(4:16).
가인이 불쌍하다고 유감을 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열납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이 원하셨던 바를 알았지만,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만 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것은 임의로 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지시하신 뜻에 대한 순종에 기초한다.
문제는 가인의 무지함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가 제멋대로 행하려고 하는 죄에 있었다. 아벨은 의로왔으나, 가인은 그렇지 못했다.
이것은 요한일서 3장 11-12절에 의해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말한다.
당신은 의롭다 하시는 것이 하나님 편에서 임의로 하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불순종하는 것이 악(惡)이며 순종하는 것이 곧 의(義)이다.
하나님이 언제 제사에 대해 가르치셨을까?
제사에 관한 가르침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창세기 3장 21절에 나타났다는 몇 가지 암시가 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하는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행동이 제사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던 사실에는 네 가지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 죄인들은 가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 그것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질 수 없었다 - 그들은 이미 자기들을 위하여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릴 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아니다. 너희의 가릴 것은 내가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께선 자신이 직접 그것을 주셔야만(입히셔야만) 했다.
- 그것은 죽음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었다 - 즉, 짐승이 죽어야만 했다.
이와 같이 매우 한정된 방법이지만, 이것이 죄를 가리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의 중요성에 관하여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Ⅲ. 하나님께서 세우신 규례에 대한 인식
1. 믿음 생활의 근거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제로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데 가인은 자신을 믿었으며, 잘못된 것을 믿었다.
히브리서 9장 22절은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나는 당신이 무엇을 믿든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표준이 있기 때문이다.
레위기 17장 11절은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계시, 그것이 표준이다.
이것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요 절대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속이 좁으십니까?”라고 말한다.
물론 나도 소위 넓은 마음이 되어 거짓들을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누구를 도울 수 있단 말인가!
절대 변치 않는 하나님의 표준이 엄연히 있다.
우리가 믿음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2. 믿음 생활의 시작
믿음 생활은 죄를 위한 제사를 시작하도록 한다.
당신이 죄인이며, 죽을 수밖에 없으며, 그분의 용서가 필요하며, 그분이 계시하신 뜻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누구나 하나님 앞으로 나아온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던 유일한 길은, 그가 나아올 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면서 그리스도라는 규정된 제사를 통하여 오는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편협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이것이 진리이기에 말하고 있을 뿐이다!
Ⅰ. 아벨의 믿음의 증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감추인 어떤 면모 때문에 그를 높이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아, 나는 너를 더 좋아한다. 너희 두사람을 달아 보니 네가 더 낫다”라거나 혹은 ”아벨아, 나는 네가 걷는 길을 좋아하며 네가 네 자신을 절제하는 방법도 좋아한다. 그러나 가인아, 나는 네가 싫다. 너는 정말이지 우습게도 절둑거리며 걷는구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선 너무나 피상적이셔서 사람의 외양에만 관심을 가지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문에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았다고 지시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모두 죄인이었다. 아벨이 의롭다함을 얻은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에게 하도록 명령하신 것을 했다는 것이며, 가인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사실상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즉,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선한 자인가에, 혹은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나은 자인가 아닌가에도 있지 않다.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방법대로 그분께로 가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의 전부이다!
아벨은 가인과 마찬가지로 죄인이었으나, 그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다. 그 까닭에 믿음으로 그는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선 그를 열납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게 하며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게 하는 것은 순종하는 믿음이다. 참된 믿음이란 항상 순종하는 믿음임을 알아야 한다.
Ⅲ. 가인의 불의함에 대한 증거
1. 분노함(창 4:5)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인정도 받지 못하자 몹시 격노했다. 5절은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여”라고 말한다. 종교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자에겐 무시당하는 것보다 더 큰 모욕은 없다.
2. 하나님의 은혜를 포기함(창 4:6-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의 특징을 보여 주는, 하나님께서 가인을 향하여 가시는 것을 본다. 7절은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한다. 사실 하나님께선 ”보아라 가인아,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다. 만일 네가 다시 돌아와 바르게 행하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바른 제사를 드리면 너도 네 동생과 같이 열납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네가 이와 같이 아니하면 죄가, 웅크리고 있는 맹수가 너를 죽이려고 뛰어오르려 하는 것같이 네 문에서 기다릴 것이다. 너는 반드시 죄를 물리쳐야만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은혜롭게도 하나님께선 가인에게 돌아올 것을 제안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방식대로 처결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3. 살인을 함(창4: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기에 인류 역사상 최초의 죽음이 있다. 나타난 대화로 보아서는 아벨은 그것을 전혀 예기치 못하고 있었다. 가인은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처음부터 살인한 자”로 언급된 사단에게 굴복하였다.
4. 거짓말함(창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은 하나님께 거짓말하고 자신이 행한 일을 부인할 뿐아니라 빈정대기까지 했다.
5. 회개가 없음(창 4:10-15)
10-12절에서 가인은 문책당하게 되고, 유죄로 판결되며, 저주를 받아, 자기 동생의 살인에 대한 벌을 받게 된다. 그러자 13절에서 가인은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말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하나님, 나는 이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이거야말로 하나님께서 너무하시는 겁니다”라고 대꾸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겼다.
죄인들이 얼마나 자신들을 동정하며 그것으로 하나님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가는 항상 흥미로운 것이다.
14절에서 가인은 계속하여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가인은 슬퍼하기는 했지만 회개하지는 않았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는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죽은 사람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아벨이 누구에게 말했을까?
Ⅰ. 하나님께
창세기 4장 10절은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말한다. 가인은 그가 자기 동생의 목소리를 그치게 하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피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는 무엇을 호소했을까? 그것은 복수였다(계 6:9-10참조).
Ⅱ. 가인에게
창세기 4장 11절은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라고 말한다. 가인이 딛고 선 모든 흙은 자기 동생의 피를 생각나게 하는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황무지와 잡초들 그리고 먼지들, 이 모든 것이 가인의 생(生)을 통하여 그가 죽인 동생이 부르짖으며 ... 그를 고발하고 있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Ⅲ. 모든 인류에게
아벨은 모든 인류에게 다음 세 가지 요지(要旨)의 설교를 한다.
- 인간은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행위로가 아니다.
- 인간은 자기 이성(理性)을 따라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표준을 지켜야만 하며 그것에 순종해야 한다.
- 하나님의 표준에 순종치 않는 자의 죄는 철저히 응징된다.
아벨은 ”...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 10:38)고 하는, 시대를 초월한 설교를 하는 설교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