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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한크랙 사랑방 스크랩 여주 강천의 뚝바위
백운식 추천 0 조회 118 07.05.15 23:26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여주 뚝바위 금잉어 낚을 수 있는 클라이머의 낙원

희망길 등반 후 하강하는 여주 에프엠산악회의 표광섭씨. 아래쪽은 남한강이다.


려시대의 학자 목은 이색은 그의 시에서 여주가 "들이 펀펀하고 산이 멀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여주에 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여주읍에서 북쪽으로 우뚝 솟아있는 양평군 용문산과 같이 꽤 높은산이 없다는 말이다. 기껏해야 이삼백미터짜리 얕으막한 산들이 여주군의 가장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여주 사람들은 산보다는 여주땅의 가슴팍을 적시며 흐르는 여강과 더 친하다.

산이 먼 강촌 여주에 강보다는 산과 바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읍내 중앙통 송강식당 지하의 여주에프엠(FM)산악회(회장 김세완) 실내암장과 손때 묻은 홀드들이 그것을 입증했다.
대략 삼십줄 전후의 회원들이 모여 92년도에 창립한 이 산학회가 실내암장을 만든 것은 '들이 펀펀하고 산이 먼' 여주에서 당연한 귀결이었다.

"여주군을 온통 헤집고 다녔어요. 산이 낮긴해도 쓸만한 자연암장 하나쯤은 나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없더군요. 무슨 바위라고 이름 붙은 곳이면 모조리 동네 어른들에게 물어 물어 찾아가 보기도 했습니다. 한 삼십미터쯤 된다고 해서 가보면 겨우 이삼미터 짜리 였어요."

춘천에서 살다가 89년에 여주로 이사온 김득영씨와 여주가 고향이며 여흥민씨인 민경우씨, 그리고 에프엠산악회 회장인 김세완씨 등이 그리도 애타게 찾아 헤매던 바위는 강촌답게 강가에 있었다.
아무리 찾아 다녀도 가까운 데서 자연암장을 발견할 수 없었던 그들에게 여주읍내에서 불과 30분 떨어진 곳에 있는 강천리 뚝바위는 그야말로 강이 그들에게 준 커다란 산물이었다.

지도에서 보면 섬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의 강천리쪽에 이백미터 남짓한 자산(紫山)이 있다. 이 자산의 남쪽 기슭에 백여미터 정도 깎아지른 벼랑으로 솟아있는 것이 바로 뚝바위다. 이름 그대로 섬강과 남한강의 두물머리에 뚝처럼 버티고 있다.

뚝바위 FM2 길을 오르고 있는 민경우씨. 오버행을 오른쪽으로 안고 넘어가는 이곳이 고빗사위다.

여주에서 뚝바위를 가려면 2차선의 옛 영동고속국도를 따라서 가다가 섬강교를 건넌후 최근 개통된 4차선 고속도로 다리 밑으로 내려가면 된다. 섬강가를 따라서 자갈밭으로 난 길을 가다보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온다.
바로 강원도 원주군 부론면 홍호리의 월봉마을 강가다. 강을 건너면 경기도 여주 강천리, 거의 수직에 가까운 벼랑이 진초록 녹음을 머리에 이고 솟아 있다. 바로 뚝바위다.
그 아래 치마폭처럼 펼쳐진 모래톱은 흡사 섬 같다. 앞은 강으로, 뒤는 절벽으로 막혀 고립되어 있으니 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주 에프엠산악회에서 개척한 강천리 뚝바위 암장 전경. 오버행과 흐르는 홀드가 많은 것이 이 암장의 특징이다. 왼쪽부터 민경우씨가 FM2, 전진택씨가 불만투성이길 마지막 오버행을 오르고 있다.

개척 가능 코스 풍부한 뚝바위

"처음 바윗길을 낼 당시에는 강천리 품무골에 차를 세워두고 이삼십분 걸려 산길을 넘어다녔어요. 그러나 하도 여러번 다니다 보니 발을 좀 적시더라도 강을 건너는 게 더 편하더군요. 물이 불어서 못 건널 때는 할 수 없지만."

김득영씨가 말하는 산길은 뚝바위 왼쪽 벼랑에 골이 진 곳으로 그냥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강천리 사람들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뚝바위 벼랑이 무너져 내린다고 했다.
십여년 전에는 천둥소리에 큰 바위가 굴러떨어졌다고 하는 걸 보면 십중팔구 낙석이 심할 게 분명했다.

아닌게 아니라 민경우씨가 코스개척 당시 오버행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가 밑에 앉아서 대기하던 다른 회원들 머리 위로 떨어질 뻔했던 위기도 있었다.
중간에 튀어나온 암벽에 떨어져 내리던 바위가 충돌하면서 두 동강이 나 방향이 바뀌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여러 사람이 죽거나 다칠 뻔한 대형 낙석이었다.
약 120미터 가량 뻗어있는 암벽에 코스를 내려던 민경우씨는 그날로 포기하고 그보다 왼쪽에 있는 이삼십미터 짜리 암벽으로 눈길을 돌려야 했다.
그렇게 해서 작년에 난 바윗길이 '빛나(5.11a)', '38세(5.11a)', 'FM1(5.11c)', 'FM2(5.12a)', '골격', '불만투성이(5.12c)'다.

볼더링을 겸할 수 있는 그보다 왼쪽의 독립된 암봉에는 민경우씨가 93년에 개척한 십여미터짜리 '희망(5.9a)' 코스가 있었다. 희망길은 등반길이 22미터에 평균 85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다.

아침 일찍 원주에서 온 전진택씨(원주 클라이밍 센터)가 첫눈 오름으로 희망길에 도전했다. 키 180센티미터에 몸무게 64킬로그램이니 그 나이의 스포츠클라이머로서는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한 체격이었다.
전씨는 키가 커서 그런지 손잡이나 발디딤 쓰는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고 발놀림도 세련돼 있었다.

"겨울에 다른 사람들 빙폭할 때 전혀 보이지 않더니 실내 암장에서 연습을 엄청 했더군요."
날렵한 주황색 타이즈 차림의 서강호씨가 전씨의 오름짓을 유심히 지켜보며 칭찬했다. 세살짜리 딸과 부인까지 함께 와서 응원하고 있으니 더 멋진 동작이 나오는 것 같았다.

원주 한우리산악회 조인순씨가 희망길 고빗사위를 오르고 잇다. 짧기는 하나 남한강 언저리에 바로 붙어 있어 물바위의 진수를 늘낄 수 있는 곳이다.

물바위 진수 만끽할 희망길

희망길의 고빗사위는 네번째와 다섯번 째 볼트 사이의 약간 튀어나온 바위다. 오버행은 아니지만 바로 위쪽에 비스듬하게 나 있는 크랙가지는 손이 닿지 않기 때문에 통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전씨가 가서 팔을 뻗으니 크랙이 쉽사리 손에 들어왔다. 다섯번째 볼트에 퀵드로를 거는 것으로 사실상 희망길은 끝이다.
마지막 여섯번째 볼트 바로 밑에는 손에 잡히는 이중의 바위턱이 있어 등반성이 별로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빛나길과 FM길, 골격, 불만투성이 등의 바윗길이 나있는 암벽 밑은 꽤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잇어 코스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는게 흠이다. 게다가 아직 암벽 위쪽의 청소가 말끔하게 끝나지 않아서 그런지 낙석이 많았다.
천둥소리에도 바위가 떨어져 내렸다는 곳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 암벽을 보면 다섯 개의 지점에 빛바랜 파란색 슬링이 나란히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게 흡사 운동선수의 목에 걸린 메달 같다.

김득영씨가 개척한 FM1길 역시 전시가 첫눈 오름을 시도했다. FM1은 등반길이 25미터에 왼쪽방향으로 비스듬히 오르는 바윗길이다. 모두 여덟개의 볼트가 있다. 첫번째 볼트는 110도 가량의 오버행 위에 있어 팔힘으로 꺾고 여기에 퀵드로를 걸어야 한다.

고빗사위는 여섯번째와 일곱번째 볼트 사이다. 120도 가량의 오버행이 가로막고 있는 부분에서 언더크랙의 측면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성패의 관건이 된다.
여기서 시간을 좀 지체하던 전씨는 레이백 동작을 취하면서 오버행을 통과해 일곱번째 퀵드로를 거는 데 성공했다. 지켜보던 가족과 일행들 사이에서 박수가 나왔다.
거기서 전씨는 여덟번째 볼트가 너무 가까이 설치돼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생략하고 마지막 아홉번째 볼트에 퀵드로를 걸었다. 마지막 볼트와 하강 피톤 사이는 오버행이긴 하지만 언더크랙이 있어서 슬링을 쉽사리 잡을 수 있다.
전씨가 FM1길을 완등하기 까지는 불과 2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열두시 경이 됐는데도 여주와 원주 합동팀은 점심 먹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빵과 과자, 딸기를 간식으로 들면서 계속 바윗길에만 몰두하는 것이었다.

모래톱 야영지의 금잉어 낚는 꿈

황해룡씨(FM산악회등반대장)가 FM1을 오를 무렵은 벌써 한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희망길쪽에서 볼더링을 하던 표광섭씨(FM산악회)가 끝내 릴낚시를 들고 강가로 뛰어갔다. 어쩌면 그가 금잉어를 낚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언더크랙을 이용해서 FM2길의 고빗사위를 통과하는 김득영씨. 바로 왼쪽의 '38세'도 그가 개척한 바윗길이다.

FM1길 왼쪽의 빛나길에는 변형루트인 '38세(5.11a)'가 있다. 개척한 김득영씨의 나이를 딴 이름이다. 등반 길이 10미터로 짧지만 우리나라 스포츠클라이밍의 1세대격인 '58년 개띠'김득영씨의 감투정신이 빛나는 바윗길이다.

맨오른쪽에 있는 5.12c의 불만투성이는 조인순씨(원주한우리산악회)가 첫눈 오름을 시도했다.
불만투성이라는 이름은 이를 개척할 당시 손잡이나 발디딤이 거의 없는 게 불만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 김세완씨( FM산악회장)의 설명이었다.

오버행의 측면, 턱진 가장자리를 손잡이로 써야 하는 첫번째와 두번째 볼트 사이부터 조인순씨의 오름짓은 균형이 깨졌다. 과연 불만투성이라는 이름답게 손잡이로 쓸만한 곳이 도통 보이지 않는 곳이다.

계속 조씨가 내려오자 딸과 함께 과자를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던 전진택씨가 오를 차비를 갖췄다.
모두 여덟개의 볼트가 설치된 이바윗길에서 고빗사위는 약 130도의 오버행이 꼬깔모자처럼 버티고 있는 세번째와 네번째 볼트 사이다. 전씨 역시 상체가 뒤로 제껴지는 상태의 이 오버행에서 몇 번 실패했다. 오버행 윗부분의 작은 언더크랙을 이용하는 것이 여기를 통과할 수 있는 비결이다.
다섯번째와 여섯번째 볼트 사이의 오버행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일곱번째 홀드 오른쪽에는 양호한 손잡이가 하나 있어 '불만투성이'를 오르는 이들의 불만을 해소해 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 바윗길은 네번째 볼트까지가 5.11b정도, 그 위 오버행부터 끝까지가 5.12c정도 된다는 것이 다 끝마치고 난 전씨의 평가였다.

FM2는 등반길이 25미터로 모두 아홉개의 볼트가 있다. 이쪽 바윗길들 가운데서 가장 큰 오버행을 통과해야 하는 다섯번째와 여섯번째 볼트가 고빗사위다. 여기서 좀 지체하던 민경우씨가 내려오고, 원주의 안강호씨가 올라갔지만 역시 고빗사위인 오버행을 꺾지 못했다.

문막의 월송암 이안길을 오르는 김득영씨.아래쪽은 서강호씨다. 작년에 원주클라이밍센터 전진택씨가 개척한 곳으로 칠팔미터짜리 짧막한 바윗길이 일곱개 있다.

이미 바윗길이 난 오른쪽으로는 길이 100미터 이상의 암벽이 버티고 있다. 바로 이 벼랑에 바윗길들이 나야 여주 뚝바위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부근의 간현 암장 못지 않게 스포츠클라이머들로 부비는 명소가 될 것이다.
식수를 구할 수 없는 게 단점으로 지적됐지만 최근들어 섬강 언저리를 따라서 이삼백미터쯤 올라간 산기슭에 샘을 확보해 그 문제도 해결됐다.
비가 와서 섬강물이 불면 배로 건너야 하는 불편함이란 품무마을에서 자산 넘어오는 고작 이삼십분의 다리품 파는 것으로 거뜬히 해결된다.

만여평 규모의 넓직하고 깨끗한 모래밭에서 야영하며 바위와 낚시를 다 즐길 수 있는 곳이란 그리 흔하지 않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방해 받지 않으면서 말이다.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나오는 몬타나 계곡만큼은 못해도 비슷한 기분을 얼마든지 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가족 단위로 왔을 때 주의할 것은 무릎까지 밖에 차지 않는 섬강과는 달리 남한강쪽 물은 갑자기 깊어진다는 점이다.

강천리 뚝바위에서 하류 쪽으로 가다보면 남한강 유원지가 있고, 여기서 더 하류의 여주 쪽에는 금모래은모래 유원지가 있다.
섬진강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가마섬 유원지도 여름철 이 지역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부근에 신륵사, 남한강유원지도

여주는 남한강 언저리의 기름진 땅과 물이 늘 넉넉해서 벼농사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그래서 "광주분원 사기 방아, 여주 이천 자채 방아"라는 민요처럼 여주군은 이천군과 함게 자채쌀의 산지로 유명하다. 이 자채쌀은 여강에서만 귀하게 잡힌다는 금잉어와 함께 조선시대에는 왕실에 바치던 진상품이었다.

「택리지」에서는 이곳을 대동강 언저리의 춘천과 더불어 나라안에서 가장 살기 좋은 강촌으로 꼽았다. 오늘날은 여주가 자연보전권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이렇다 할 산업시설이 없는 대신 무진장 있는 고령토를 원료로 도자기를 만들어내는 제조업체가 130곳이 넘는다.

만여평 넓이의뚝바위 아래 모래톱. 남한강과 섬강이 합류하는 이곳은 물과 바위를 함께 즐길 수 잇어 여름철 클라이머들의 피서지로는 최적의 장소다.

주변에 둘러볼 만한 곳으로는 영릉과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 등이 있다. 영릉은 조선 왕조에서 가장 줏대 있는 임금으로 꼽히는 세종과 효종의 무덤이다. 한자는 다르지만 두 곳 다 영릉으로 똑같이 읽어서 흔히 이릉이라고 한다.
여주읍에서는 서쪽으로 3킬로미터쯤 떨어진 능서면 왕대리에 있다.

신륵사는 여주읍에서 동쪽으로 2킬로 미터쯤 떨어진 남한강가의 북내면 천송리에 있다. 이 절에는 고려 때지은 것으로 짐작되는 벽돌탑이 있어서 흔히 '벽절'이라고도 한다.
강건너 여주읍 상리에는 신륵사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영월루가 있다.
영월루 부근의 강가에 있는 마암은 여흥민 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바위다. 본디 여주는 여흥 민씨 집안이 토박이 가문이며, 조선말기의 명성황후가 바로 여흥 민씨다. 여주읍 능현리에는 명성화후 생가가 있다.

조선왕조 말기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가지의 정치 권력은 어찌보면 명성황후를 포함한 이곳 여주 사람들이 서로 뺏고 빼앗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순종, 현종, 철종 때 권력을 거머쥐고 세도를 부렸던 안동 김씨 집안이 이곳의 토호였고, 그러한 안동 김씨 권력을 거꾸러뜨린 대원군에게서 권력을 빼앗은 이가 바로 명성황후 민씨를 비롯한 여흥 민씨 집안이다.
거기에 더해 그 민비와 민씨 집안의 세력에 도전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삼일천하에 그치고 만 개화파의 우두머리 홍영식이나 매국노로 일컬어지는 이완용 역시 여주 사람이다. 여주 사람 콧대가 센 것도 이해가 갈만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간현 암장을 놔두고 굳이 여주땅을 온통 뒤져 찾아낸 뚝바위에 줄기차게 바윗길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바로 콧대 센 여주 사람들이다.

'사람과 산' 글 김우선 기자 사진 이한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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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5.16 10:03

    첫댓글 배군식 쵝오! 언제 이러케 자세한 답사를 ! 강추 모범

  • 07.05.16 16:34

    이미 길을 내 놓았었네~ 그건 그렇고.. 인공루트는 낙석 구역하고 다른 곳이겠죠? 접근이 일반적이지 않지만, 가 볼만은 하겠네^^ 모기 없으믄 놀기엔 따봉~ㅎ

  • 07.05.16 16:49

    와우...한번 가보고 싶네요....강과 바위의 조화...딱 저의 정서에 맞는 곳...

  • 07.05.16 19:15

    니 정서의 규모상.. 소리산이 맞을거 같은데~ 아녔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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