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의 여행
이 영 희
그날 상수리나무 언덕을 지나가지만 않았던들, 산비둘기는 별을 사랑하는 엉 뚱한 고역을 치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까운 산불처럼 저녁놀이 진하게 타오를 무렵이었옵니다. 산비둘기는 맘껏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상수리나무 가지 끝에서 잠시 날개를 접었읍니다. 해질녘이면 하늘이 저같이 가슴 설레게 화려해지는 까닭이 새삼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상수리나무엔 방금 작온 풋열매가 조롱조롱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비둘기는 새로운 먹이를 찾아내는 데 있어 항상 부지런하고 다부진 면이었으니까요.
그때 산비둘기는 상수리나무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 내려오는 한 마리의 눈부신 새를 보았읍니다. 깊은 바닷빛 몸매와 은빛 날개를 지닌 아름다운 새, 낯선 새였읍니다. 그 새는 산비둘기를 오랜 친구처럼 정답게 대했읍니다. 먹이가 많 이 있는 곳도 가르쳐주었읍니다. 순하고 알뜰한 산비물기가 그 새를 사랑하게 된 것온 오히려 당연한 듯싶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곧 떠나고 말았읍니다. 산비둘기에겐 아름다운 새로만 보였던 그 는, 실은 하늘에서 밤을 지켜야 할 별이었던 것입니다.
산비둘기의 작은 가슴은 온통 불에 덴 것같이 얼얼하였읍니다. 행여나 하여 저녁마다 기다리기에 이제는 자주빛 날개도 지쳤읍니다. 돌아다니기보다 더 힘 드는 것이 기다리는 일입니다.
산비둘기는, 반쯤 노여움을 닮은 그리움으로 더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읍니다. 별을 찾으러 나선 것입니다. 산비들기의 어려운 하늘여행은 시작되었읍니다.
날개가 뻐근해지도록 높이높이 날아오른 하늘가에서 하얀 구름마차를 만났읍니다. 구름은 산비둘기를 싣고 멀리멀리 달리던 끝에 자갈이 깔린 동네 어귀에 서 내려주었읍니다.
“저 자갈동네에 가서 찾아보렴. 하늘에서는 별을 돌이라고 부르니까!”
구름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천둥처럼 남기고 가버렸읍니다. 자갈밭은 눈이 아물아물하도록 넓었읍니다. 갑충벌레와 같이 검푸른 돌들이 포르르 무수하게도 빛을 토하고 있었읍니다.
산비둘기는, 자갈밭 위를 돌며 고개가 휘도록 굽어살폈으나 헛일이었읍니다.
만약 사랑하는 별이 그 사이에 끼어 있기만 했다면------ 돌맹이가 아니라 설령 모래알이나 먼지가 되어 있다 할지라도 단번에 짚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산비둘기는 이번엔 바람버스를 탔읍니다. 바람은 한동안 모질게도 달리더니 어느 동구 밖에서 내려주고 윙윙 외쳤읍니다.
“저, 저 향기로운 동네로 가보라구. 하늘에선 향기를 별이라 부르고 있거든!”
동네는 빈터 같았으나, 날아갈수록 갖가지 향기가 색동무늬처럼 이랑져왔읍니다. 훈훈한 젖향기, 싱그러운 귤감향기 다발진 하얀 꽃향기, 가랑잎을 모아 호젓이 태우는 향기------ 향기의 물결 속에서 산비둘기는 갑자기 날개를 멈추었읍니다.
아, 이 향기가 분명합니다.
솜사탕 태우듯 씁쓰름 달고, 양지바른 언덕비탈의 무더기 풀내처럼 숨막힐 것 같으면서도, 깊은 겨울밤 펑펑 쏟아져 쌓이는 눈길속을 걸어온 사람에게서 풍기는 신선하고 매운 듯한 그 향기. 사랑하는 별의 향기,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향기가 된 별이었읍니다.
그러나 향기는 잡을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읍니다. 다만 향기 속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향기롭다는 사실을 애틋하게 깨달을 뿐입니다.
그 후 산비둘기는 어떻게 됐느냐구요?
알콜에 채워진 생물표본모양, 향기속에 둥둥 떠 있다가 그만 녹아 없어졌는지 자취를 거두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구름마차의 차몰이꾼이 되어 별생각은 깡그리 잊은 채 신나게 하늘을 달리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고, 땅으로 되돌아와 다른 비둘기랑 저 뒷산 상수리나무에서 아기 비둘기를 기르며 오손도손 살고 있다는 말도 있읍니다. 이따금 아주 이따금, 옛날의 하늘여행을 아득히 생각하면서,
“구우------ 우연히 왔다가 자리를 내고 가버리는 것이 사랑이야, 구구구.”
저녁놀은 오늘도 사랑이 지나간 자리처럼 아픈 빛깔로 타오르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