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성사와 요석공주

원효성사(元曉聖師)는 진평왕 39년(617년) 현재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인 압량군(押梁郡) 불지촌(佛地村)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설씨(薛氏)로서 원래 화랑의 집안이었다. 그의 증조부 설원(薛原)이 화랑도의 우두머리로서 화랑 중의 화랑인 제7세 풍월주를 지냈으나 그 뒤 가세가 기울었다. 조부는 설원의 둘째아들로 잉피공(仍皮公) 또는 적대공(赤大公)이라고 불린 사람이었고, 부친 담날(談捺)은 신라 17관등 중 제11위의 하급 관리인 내마(柰麻)였다.   출생 시 모친을 여읜 원효는 12세에는 부친마저 잃었다. 그해 629년 8월 진평왕의 명령으로 김춘추(金春秋)의 부친 김용춘(金龍春)과 김유신(金庾信)의 부친 김서현(金舒玄)이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칠 때 전사했던 것이다. 그래서 원효는 조부와 함께 살아야만 했다. 그 조부도 5년 뒤인 17세 때에는 죽고 원효는 완전히 홀몸이 되었다.   원효의 출가 시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으니 하나는 29세설이요, 다른 하나는 15～16세설이다. 전자는 <일본불교대사전>의 기록을 따른 것인데, <삼국유사>를 근거로 내세우고 있지만 <삼국유사>에 그런 내용은 없으므로 <송고승전>의 기록대로 15～16세가 맞을 것이다. 필자는 조부가 돌아간 직후인 17세 때 출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효가 17세에 출가했다면 선덕여왕 2년(633년)이다. 그해는 뒷날 원효가 주석하던 분황사가 창건되기 전 해이고, 영묘사가 창건되기 2년 전이며, 자장(慈藏)이 당에서 귀국하기 3년 전이었다. 당시 신라불교는 ‘화랑 세속5계’를 만든 원광(圓光)이 대국통(大國統)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출가한 원효는 황룡사에서 일정한 스승을 정하지 않고 당에서 전래된 수많은 불교 문헌과 사상서를 섭렵하고 줄기차게 파헤쳐 독자적으로 불교사상 이론의 체계를 세워나갔다. 원효는 어느 종파 어떤 이론에도 치우치지 않고 무엇이든 끈기 있게 깊숙이 파고들어 심오하고 오묘한 부처의 가르침을 깨우치기에 애썼다. 원효의 사상이 모든 교설에 통달하면서도 어느 한 가지에 치우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출가와 수행 역시 국사(國師)니 왕사(王師)니 대국통이니 하는 귀족적 권승(權僧)이 되려는 세속적 목적에 있지 않았다.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진덕여왕이 즉위한 지 4년째 되던 650년 원효는 34세였다. 그는 보다 넓고 새로운 지식의 바다에서 불법을 연구하기 위해 당나라 유학을 결심했다. 자신보다 8세 연하인 의상(義湘)과 함께 육로를 통해 고구려를 거쳐 요동으로 들어갔는데 고구려의 국경수비대에 붙잡혔다. 첩자로 물려 수십일 간 갇혀 조사를 받다가 가까스로 풀려난 두 사람은 신라로 돌아오고 말았다. 서라벌로 돌아온 원효는 다시 독학으로 불도를 닦는 한편 구법을 위한 행각에 나섰다. 양산 영취산으로 낭지대사(郎智大師에)게 찾아가 <법화경>을 전수받고 <초심관장(初心觀章)>과 <안신사심론(安身事心論)>을 지었으며, 고대산 경복사로 찾아가서는 보덕화상(普德和尙)에게서 대승불교인 <열반경>과 <유마경>을 깨우쳐 익혔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은 쉴 새 없이 흘렀다. 원효가 44세 때인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고, 그 이듬해에는 무열왕이 죽고 문무왕이 즉위했다. 문무왕은 계속된 전쟁으로 백성은 지칠 대로 지쳐 있고 국상중임에도 당군과 협력해 고구려 정복에 나섰다. 그때 원효는 다시 의상과 함께 두 번째 당나라 유학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망국 백제 땅을 가로질러 서해안에서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갈 계획이었다. 그들이 지금의 경기도 화성군 남양만 어느 포구에 이르러 배가 뜰 때만 기다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다 쓰러져가는 움막 안에서 밤을 보내던 그는 잠결에 갈증을 느껴 어둠 속을 더듬다가 바가지가 손에 잡히자 거기에 담긴 물을 단숨에 들이켜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눈을 떴는데 이게 웬일인가. 간밤에 그렇게 맛있게 들이킨 물바가지가 실은 사람의 해골이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오장육부가 뒤집힐 정도로 구역질이 났을 법도 한데 그는 다음 순간 이렇게 노래하며 춤추고 돌아갔다. “한 생각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면 온갖 법이 사라지도다!” 영문을 몰라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의상에게 원효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 밖에 법이 없거늘 어찌 따로 구할 것이 있으랴. 나는 당에 가지 않으리라.” 이 순간이 바로 원효가 대각오도(大覺悟道) - 크게 깨우침을 이룬 순간이었다. 원효는 의상과 헤어져 다시 서라벌로 돌아오고 말았다.   원효가 신라 십현(十賢)의 한 사람인 설총(薛聰)의 부친이요, 설총의 모친은 무열왕의 과부 딸 요석공주(瑤石公主)이다. 원효가 파계하여 설총을 낳은 것은 태종무열왕 재위 시였다. 그러니까 660년 44세 이전의 일이었다. <삼국유사>에 이렇게 나온다. 원효가 어느 날 상례를 벗어난 짓을 하며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려나.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박으리라.” 자루 없는 도끼란 여자의 옥문(玉門)을 가리킴이요, 기둥이란 자신의 ‘연장’을 가리킴인데 아무도 무슨 뜻인지 새겨듣지 못했다. 무열왕이 그 노래를 전해 듣고 말했다. “이 스님은 필시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하고 요석궁에 있는 과부 공주와 원효를 짝지어 주었다. 그래서 태기가 있어 설총을 낳았다고 한다. 파계한 원효는 그때부터 속인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를 ‘소성거사(小姓居士)’ 또는 ‘복성거사(卜姓居士)’라 일컬으며 산수와 저자 간을 정처 없이 떠돌기 시작했다. 복(卜)이란 아래 하(下) 자의 아래에 있는 것이니 자신을 한껏 낮게 여겨 세상을 살겠다는 표시였을 것이다.   그러면 설총의 어머니 요석공주는 누구인가. 태종무열왕 김춘추에게는 기록상 세 명의 부인이 나온다. 첫째부인은 보량궁주(寶良宮主)로 그 사이에서 첫딸 고타소(古陀炤)를 낳았다. 고타소는 나중에 화랑 김품석(金品釋)에게 시집갔는데, 626년 김품석이 대야성 도독으로 있을 때 백제군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둘째부인은 김유신의 둘째 누이동생인 김문희(金文姬), 나중의 문명왕후(文明王后)이다. 둘 사이에서는 나중에 문무왕이 되는 법민을 비롯해 인문, 문왕, 노단, 지경, 개지문 등 여섯 아들을 보았다. 셋째부인은 동생 문희에게 꿈을 팔고 왕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언니 보희(寶姬)이다. 보희는 결국 김춘추의 첩이 되어 지원과 개지문 두 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김춘추의 딸은 이미 죽은 고타소 외에는 기록이 없다. 그러니까 원효를 유혹하여 파계시킨 요석궁의 과부 공주, 설총의 어머니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원효는 617년 생, 김춘추는 602년 생, 김유신은 595년 생이다. 원효는 686년 서라벌 남산 혈사에서 70세를 일기로 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