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궁정동의 총소리
1회. 누가 박정희를 죽였나
탕, 탕.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40분 청와대 정문 앞 궁정동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박정희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총소리였다. 박정희 철권통치 18년의 마감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화의 출발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1979년 10·26 직후 궁정동 안가 만찬장 모습. 십장생 병풍 앞 등받이가 박정희 대통령 자리. 맞은 편 방석 왼쪽이 김재규 정보부장, 오른쪽이 김계원 비서실장 자리. 왼쪽 끝 술병이 놓인 곳이 차지철 자리. 술상 오른쪽 핏자국이 남아 있다. 중앙포토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과 이에 따른 혼돈 상황에서 섣불리 서울의 봄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봄은 오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군부, 흔히 말하는 ‘신군부’의 시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신군부의 리더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아들로 통했다. 10·26은 12·12와 5·18로 이어지는 비극의 신호탄이었다.
누가 박정희를 죽였나?
사건 장소는 궁정동 안가(안전가옥)다. 지금은 분수대 옆 무궁화동산 자리. 궁정동 안가는 중앙정보부(현재의 국가정보원)가 관리하는 비밀 장소다. 술을 좋아하는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들과 저녁 술판을 벌이는 곳이다. 술자리 정규 멤버는 박정희 외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좌우에 두 명의 여성이 추가된다. 그때마다 달라야 했다. 이 날의 경우 가수 심수봉과 모델 신재순이었다. 사건 직전 심수봉은 ‘그때 그 사람’을 불렀다.
범인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다. 김재규는 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차지철 경호실장을 먼저 쏘아 오른팔에 관통상을 입혔다. 이를 본 박정희 대통령이 “뭐하는 짓이야”라고 소리 지르자 김재규는 박정희의 가슴을 쐈다. 폐를 관통하는 치명상을 입은 박정희는 술상 위에 고꾸라졌다. 심수봉이 부축하며 “각하 괜찮으십니까”라고 묻자 “난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김재규는 권총이 격발 불량으로 고장나자 바깥으로 나가 부하에게 다른 권총을 받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새 화장실로 도망쳤던 차지철이 방 밖으로 도망치려 나오다가 김재규와 마주쳤다. 차지철은 항상 권총을 차고 다녔다. 궁정동 술자리에도 권총을 차고 왔지만 얼마전부터 총을 두고 왔다. 차지철은 사방 탁자를 들고 맞서다가 복부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차지철은 이후 김재규 부하의 확인사살을 받고 절명했다.
김재규는 피를 쏟으면서도 의식이 남아 있던 박정희의 뒷머리를 근접 겨냥해 확인사살했다. 이 때 김재규의 흰색 셔츠에 피가 튀었다. 박정희 시신이 경복궁 옆 국군서울지구병원(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했을 때 군의관이 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은 머리의 총상 때문이었다.
1979년 10·26 당시 박정희 대통령 암살범 김재규 정보부장이 현장검증에서 앞쪽 박정희(대역)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김재규 왼쪽은 김계원.
김재규의 사전 지시에 따라 중앙정보부 직원들은 대기 중이던 경호실 직원들을 모두 사살했다. 그 와중에 네 발의 총탄을 맞고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경호원 박상범은 이후 김영삼 정부 경호실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