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곳은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정남진’(正南津)이라고 불리는 바닷가 시골 마을이다. 요즘은 소고기,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함께 구워 먹는 ‘장흥삼합’이라는 음식으로 ‘장흥’이라는 지명을 들어 본 사람들이 제법 있지만, 대학교 시절 ‘장흥’에서 왔다고 하면 주변 친구들이 어리둥절할 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외진 곳이었다. 비록 반 친구들의 가족이름을 모두 외울 수 있을 만큼 소규모의 시골 학교를 다녔지만, 좋은 신앙과 교육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던 부모님 덕분에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이는 가난 때문에 당시 ‘국민학교’ 졸업 이후 배움을 멈춰야 했던 본인의 아픔을 자식들에게는 대물림하지 말자는 부모님의 다짐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서인지 우리 삼남매는 일찍 철이 들었고 어쩌다 보니 현재는 고등학교 교사, 초등학교 교사, 대학교수 등 모두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
내가 항공우주공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소년 잡지에서 읽었던 ‘현무 지대지 로켓’을 개발한 과학자의 헌신적인 삶의 스토리에 감동받았고 당시 ‘민족을 위한 과학자’가 되기를 늘 기도하셨던 가족들의 바람대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로켓공학자가 되는 것을 내 삶의 소명으로 삼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중학교에 진학할 때쯤 ‘SBS’가 시골에도 보급되어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KAIST’에서 항공우주공학 분야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KAIST 항공우주공학과 진학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KAIST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과학고를 진학하는 게 유리하다고 적혀진 백과사전에 적힌 글귀를 보고 무작정 지역에 있는 과학고를 먼저 알아보게 되었고, 과학고 진학 후 그토록 원하던 KAIST 항공우주공학과에 진학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뒤를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으며 참으로 철이 없었던 철부지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들어주셨고, 모든 걸음에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분명히 보이심으로써 나의 노력으로 인한 교만한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늘 단속하셨다.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았던 학부생 시절, 동남아 지역에서 항공우주공학 전공자가 전문인 선교사로 활동하기 용이하다는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에 대해서도 고민해 본 시기가 있었으나 결국 하나님께서는 나를 현재의 자리로 인도하셨다.
나는 현재 항공우주 분야의 기술을 개발하고 학생들을 양육하는 연구자 및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 여러 항공우주 분야 중 나의 전문분야는 ‘로켓의 유도제어 알고리즘’이다. 이 분야는 해외로부터 기술도입 및 협력이 불가능하여 자체 개발이 필요하며, 국방 분야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학술적/기술적 혁신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민족을 위한 로켓공학자의 소명을 가지고 시작한 이 일이 살상용 미사일에 적용되거나 창조질서에 반하여 외계생명체를 탐구하는 ‘우주발사체’에 활용되는 등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곳에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늘 마음의 부담으로 작용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해당 기술의 발전이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처럼 힘의 균형에 의해 평화가 유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또한, 외계 행성을 관측하기 위해 쏘아 올린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관측 정보로부터 창조주의 개입 없이는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을 설명할 수 없다는 확신을 점차 갖게 되고 있다. 이렇듯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연구에 임하고 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하는 항공우주 분야 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비전과 꿈이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나의 직업과 나의 연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과연 부합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다. 최근에서야 거기에 대한 답을 제럴드 싯처(Gerald L. Sittser) 교수님이 쓴 <하나님의 뜻>(성서유니온)이라는 책에서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의 진로나 계획의 방향을 놓고 하나님의 뜻인지를 고민하게 되는데, 이러한 선택보다는 매일 매일의 순간을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의 모양대로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부합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현재 내가 이루고자 하는 비전과 꿈이다.
나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겨준 15명의 석/박사과정 학생이 있다. 교수라는 직업은 권위를 통해 학생들을 통제하고 나의 책무를 학생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쉬운 직업이다.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예수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을 섬기고 인격적으로 대하기 위한 모든 삶의 모습이 곧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삶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교수가 몸 고생을 하면 학생이 편해진다.”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즘 하나님께서 나의 역할을 직접 연구하는 연구자에서 학생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조력자로 바꾸시는 손길을 느끼고 있다. 마치 모세 시대에서 여호수아 시대로 출애굽의 소명이 전달 된 것처럼 나보다 재능 있고 뛰어난 연구 능력을 지닌 학생들을 우리 연구실에 보내주셔서 학생을 통해 연구하는 즐거움, 학생을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시키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있다. 나는 나의 연구 분야에서 하나님께서 맡겨 준 학생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섬기는 것을 새로운 나의 소명으로 생각한다.
첫댓글 매일 순간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양으로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부합된다는....
학생들을 섬기고 인격적으로 대하기 위한 모든 삶의 모습이 곧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멋진 교수님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