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논문을 써달라고 전화가 왔다.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자기를 아무개 교회 집사라고 먼저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내가 목사라는 점과 자신이 교회 집사라는 연결 고리로 거부할 수 없는 청탁을 하려는 것이다. 짧은 대화 중에도 그녀는 논문을 쓸 만한 학문적 소양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학위가 필요한 것은 그녀가 하는 교육 관련 사업에서 가는 곳마다 박사 학위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껏해야 초중학생 글쓰기 수업 정도인데도 말이다.
내년 봄까지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제 반 년밖에 안 남았단다. 그런데 논문 초고는커녕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무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그녀는 깜깜했다. 심지어 지도교수가 추천해 주었다는 참고도서 목록은 교수가 설정해 준 논문 테마와 전혀 맞지도 않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잠잠히 듣고 있다가 어느 대학이냐고 물었다. 대통령 영부인이 유지 논문을 쓰신 바로 그 대학이었다. 갑자기 피로가 확 밀려왔다.
그녀의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자기가 쓴 논문을 봐달라는 것도 아니고 아예 논문을 대필해 달라는 이 요청이 너무 불쾌했지만 그녀를 배려해서 참고 들어주었는데 결국 그 대학이 그 대학이라는 데서 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그 대학만 그럴까? 한국 사회의 지적 풍토가 이런 저급한 수준에서 스펙을 위해 학위를 돈으로 거래하고 있다. 심지어 교회에서 목사를 청빙할 때조차 학위를 보는 경향이 다반사다. 목사에게 중요한 것이 인격의 성숙도나 목회철학, 목회적 비전이 아니라 학위가 더 중요시된다면 그러면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 역시 가짜 신앙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스펙을 쌓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의 보따리를 거머쥐는 것을 신앙의 목적으로 하는 것이 유지논문과 무엇이 다른가. 교회에서 횡행하는 신앙 간증이라는 것들, 특히 오륜교회가 해마다 수능 시즌에 맞추어 행하는 다니엘기도회에서 쏟아지는 간증들은 유지논문의 변형된 교회 버전이 아니고 무엇인가. 내가 어찌어찌하여 하나님께 이런저런 일로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셨다는 내용의 간증들은 대부분 내가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해졌는가를 스펙으로 내세우는 유지논문의 교회 버전이다.
대학들이 코흘리개 애들 수준의 대필 논문으로 유지박사를 양산하듯이 교회들도 유사한 형태로 하나님께 받은 스펙을 자랑하는, 가짜 산앙 권하는 집단이 되고 말았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내가 현세적으로 얼마나 많은 스펙을 쌓고 그 결과로 이익을 얻었는가를 셈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그렇게 가르치며 가짜 신앙을 유도한다. 가짜 복을 권하는 것이다. 교회가 가짜 권하는 집단이 되고 말았다.
이런 행태는 정치에서도 나타난다. 입만 열면 국가를 위하는 척하고 공정과 상식을 말하지만 결국 국가보다 자신의 이익을, 공정과 상식보다 부정과 편법을 통해 자기 이해를 추구하는 정치 집단이 있다. 또 이들을 종교적 관념으로 이해하며 선거 때마다 묻지마 투표를 하여 국가와 사회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보수 세력이 있다. 이들은 모두 가짜 보수다. 나라를 팔아먹더라도 자기 이익만을 우선하는 자들이 무슨 보수인가. 보수의 가치도 모르는 가짜들이다.
우리시대는 분열증적이다. 이 집단 분열증의 발원지는 학문과 지성을 오염시킨 대학들, 그리고 가짜 신앙을 권하는 교회들, 그리고 보수정치의 메카인 TK다. 그래서 난 박사가 아니다. 그래서 난 개독교인이 아니다. 그래서 난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는 반드시 생산지를 확인한다. 어제도 마늘을 사러 마트에 갔다가 생산지가 대구라서 구매를 포기했다. 이것이 가짜 권하는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이다.
첫댓글 가짜가 많은 세상과
가짜 신앙을 권하는 교회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