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일기]
2020년 3월 16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 조창현 신부
<하루의 시작과 끝…>
대형 교통사고를 겪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 자매님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자신의 두 발로 병실을 나서기까지 1년이란 세월이 걸렸고, 그간 겪었던 고통은 이루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되새길수록 자매님에게 일어난 일은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구겨진 차 속에서 목숨을 건졌고, 다들 가망이 없다고들 했었는데, 자신은 자신의 두 발로 퇴원을 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은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어떤 큰 힘이 자신을 늘 떠 바치고 있었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답니다. 물론 자매님은 항상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어떤 힘이 ‘예수님이셨다.’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큰 사고를 당한 후에 자매님의 몸과 마음은 조금 불편했지만,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모든 일을 하느님 먼저….”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몸의 회복과 동시에 마음의 회복도 완전히 되는 기쁨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과 너무도 가까이 살았기에 자신들 사이에 이미 와 계셨던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러니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진 “하느님의 자애,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라는 선물을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님께서 사람들 가까이 와 계시고, 또 말씀을 해주시는데도 불구하고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고향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 24장 13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슬퍼하면서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동행하신 데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들려줄 때도 알아보지 못하였고, 비로소 빵을 떼어줄 때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에게서 사라지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몸과 마음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고운님들! 나자렛 고향 사람들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이 혹시 고운님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순간순간마다 화가 나 있고, 슬픔에 빠진 것은 아닙니까? 이제 고운님들의 몸과 마음의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본당에 주일 저녁 미사는 청년들이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미사를 봉헌합니다. 마침 그 청년 미사 중에, 주님의 기도를 손을 들고 손뼉 치면서 노래를 하는데 한 형제가 손뼉을 치지 않고서는 자기 뺨을 때리더랍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 형제를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바라보면서 슬그머니 옆자리를 피합니다. 그런데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그 형제가 손뼉을 칠 때 뺨을 때렸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뿔쌰, 자기 뺨을 치던 그 형제는 한쪽 팔이 없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미 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그 은총을 깨닫는 것, 거기에서 감사가 출발합니다. 특히, 작은 일에 감사하십시오. 오늘 눈을 뜨고 살았구나!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 즉, “원수는 물에 새겨 흘려보내서 잊어버리고, 은혜는 돌에 새겨 오랫동안 감사하며 기억하라.”라는 것입니다.
저 두레박도 ‘모든 일에 하느님이 먼저….’라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이 아픈 님들과 간호하는 님들, 그리고 고운님들의 자녀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 일기를 마무리하면서…. 하루를 “모든 일에 하느님 먼저….”로 시작하고, 감사 기도로 마무리하는 몸과 마음이 회복된 마음으로, 주님께 자비를 청하고 자비를 입을 수 있는 은총이 가득한 고운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광주대교구 조창현 클레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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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단단해지게 하는 시편(438)
♧♧ 시편 78편 1절… "내 백성아, 나의 가르침을 들어라. 내 입이 하는 말에 너희 귀를 기울여라."
아삽은 스스로 백성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 가르침을 시작합니다.‘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는 말 대신에 ‘내 백성’ ‘나의 가르침’으로 말하고 있음은 아삽이 예언자적 입장에서 자기를 보내신 하느님을 대신하여 말하여 가르침을 베풀고 있음을 나타내 줍니다.(이사야서 51장 4절. 참조) 훗날 바오로 사도도 ‘하느님의 복음’을 ‘내가 전하는 복음’이라고 말했는데(로마서 2장 16절. 참조), 이것도 마찬가지로 바오로 사도가 복음에 대한 중인의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시편 78편 2절… "내가 입을 열어 격언을, 예로부터 내려오는 금언들을 말하리라."
* 내가 입을 열어 격언을... ‘격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솰’은 ‘우화’ 혹은 ‘잠언’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시편 78편에서는 과거의 역사를 통한 현재의 사건들의 조명 내지는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 예로부터 내려오는 금언들을 말하리라... ‘금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다.’는 ‘수수께끼’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판관기 14장 12절. 참조), 또한 보관해야 할 가치가 있는 ‘감동적인 기록들’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감동적인 기록들’이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다음으로 ‘말하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바’라는 말은 ‘풍성하게 말하다.’란 뜻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결국 하느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을 위해 베풀어주신 기적과 업적들의 의미를 풀어 풍성하게 말함으로써, 이 기적과 업적들의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영원한 경고와 가르침이 되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 시편 78편 3절… 우리가 들어서 아는 것을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것을.'
이는 아삽이 백성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삽이 만들어낸 허무 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분명한 사실성에 입각한 것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신약 시대에 사도 요한도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진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와 같은 말을 한 바 있습니다.(요한 1서 1장 1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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