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15. 창조절 셋째주일, 한가위 감사 주일
예배 시편 / 시편 12편 1-7절
찬송 / 278장 · 사랑하는 주님 앞에
성서 / 시편 22편 23-24절, 고린도전서 12장 14-22절
말씀 /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
그뿐만 아니라, 몸의 지체 가운데서 비교적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고린도전서 12장 22절)
김윤식 목사
오늘은 한가위 감사주일입니다. 추석이 되면 햇곡식을 거두고, 땀과 수고가 열매에 이르기까지 섭리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성묘를 하며 조상의 은덕을 기립니다. 무엇보다 부모 형제 친지가 함께 그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고, 함께 맛있는 명절 음식도 나누지요. 그런데 뉴스를 보니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운 추석이 될 거라고 합니다. 연휴 내내 한낮에는 30도가 넘고, 열대야에, 비도 자주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먼 곳에서 형성된 태풍의 영향 때문이랍니다. 그래도 추석 당일 밤엔 대체로 훤하게 뜬 보름달을 구름 사이로 볼 수 있다고 하니, 둥근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따듯한 추석, 무엇보다 온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명절을 지내시길 바랍니다.
추석이 되도록 날이 계속 더우니 땀도 많이 흘리게 되고 체력도 떨어집니다. 식사를 하고 나면 졸리고, 밤잠도 제대로 못자니 몸의 면역도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어려움은 더욱 크겠지요. 이렇게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면역이 무너진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리를 하게 되면, 우리 몸은 면역이 무너진 신호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어떤 기관이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나요? 바로, 우리 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입니다. 목이 약한 사람은 목이 칼칼하고, 눈이 약한 사람은 눈이 충혈 되고, 입술이 약한 사람은 입술이 트기도 하고, 잇병이 자주 나는 분들도 있습니다. 허리가 약한 사람은 허리부터 아플 테고, 다리가 약한 분들은 다리가 먼저 아파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처럼 우리 몸의 약한 부분들은 쓸모없는 것일까요? 아니겠지요. 이렇게 약한 몸의 부분들은 우리에게 면역이 무너진 신호를 미리 줄 뿐 만아니라,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다른 부분들을 대신해서, 어쩌면 대표해서 아파주는 곳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주변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치, 경제 사회 모두 몸의 면역체계와 비슷해 보입니다. 정치가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지면, 사회가 흔들리면, 의료체계가 무너지면 누가 가장 먼저 고통에 노출될까요? 바로 가장 작고 약한 사람들이지요. 약한 이들의 고통은 우리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겠지요. 그리고 약한 이들이 우리 사회 전체를 대신해서, 대표해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국가를 위해서는 힘없는 국민들은 마땅히 희생해야하고, 군대의 병사들은 소모품에 불과하니 마땅히 희생해야하고, 응급환자들이 제 때에 치료를 못 받는 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도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가짜뉴스라고 오히려 호통을 치지요. 이러한 만행을 우리 몸에 비유하자면, 머리가 중요하니까 나머지 기관은 희생해야하고, 약한 부위는 쓸모가 없으니까 마치 소모품처럼 잘라버리겠다는 무지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생각보다 꽤 뿌리가 깊은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도의 계급제도는 사람들을 4가지 계급으로 나누지요. 머리에서 나온 사람들, 가슴에서 나온 사람들, 배에서 나온 사람들, 발에서 나온 사람으로 계급을 나눕니다. 그리고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배설물에서 나온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말 그대로 짐승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생각 때문에 인도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소만큼도 못한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 말씀의 배경인 로마사회도 크게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로마 사회에서 도시나 국가를 몸에 비유하는 일은 흔한 생각이었습니다. 몸에 대한 비유는 대부분 평민들의 반항을 잠재우고 상류층에 복종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지요. “팔과 다리가 일하지 않으면 몸 전체가 굶어죽고 만다”, 그리고 “몸의 노폐물은 가장 쓸모없는 기관에 모인다”, 심지어 “그 쓸모없는 기관은 질병만을 만들어내는 고약한 기관이라는 것”을 선전했지요. 그러니까 쓸모없는 약한 기관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은 덜 중요하니 쉽게 자를 수 있어야한다는 이러한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21세기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받아 읽은 신약 말씀에서, 바울은 이 몸의 비유를 조금은 다르게 뒤집어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더욱 요긴하고, 그 한 지체가 아프면 모든 지체가 아파하기 때문에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지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지체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아픈 이들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야 말로 바울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이자, 우리가 마땅히 따라가야 할 생명의 길이라는 것이지요. 가장 보잘 것 없는 지체를 아름답게 여기는 것, 가장 작은 지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작은 아픔도 함께 아파하는 것은 가장 큰 사랑의 실천이자, 더욱 큰 은사이자, 그리스도이신 주님과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작고 약한 지체를 소중히 여기고, 더욱 사랑하는 믿음과 신앙이 깊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얼마 전,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 친구 목사님에게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더위 때문에 시골 목회가 정말 어렵답니다. 농사일이 생업이니 권사님들이 밭에서 일을 하셔야 하는데, 밭에서 일을 하시고 나면 병이 나셔서 큰일이랍니다. 여름을 간신히 지난다 싶었는데, 여름이 지나고 나니 연세가 지긋한 권사님들이 모두 요양원과 요양병원으로 입원을 하셨다네요.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시던 권사님들의 부재로 텅 빈 예배당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보아도 도무지 답이 없답니다. 이처럼 기후 위기는 힘 있는 이들보다 약한 이들에게, 도시보다 시골에,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찾아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친구의 전화를 듣고 기도를 드리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사회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가장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약한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물음과 기도입니다. 나의 친구 중에 가장 약해보이는 친구는 누구일까? 그리고 이 땅 가운데 약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는 질문과 기도였지요. 저는 기도를 드리며, 어쩌면 우리 신앙인들에게, 우리 주변의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상태를,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알려주는 가장 중요하고도, 필요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 가정에서도 가장 약한 이가 평안해야 가정이 평안합니다. 우리의 이웃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우리의 교회도, 우리의 사회도 가장 약하고 부족한 이들이 아름답고 귀중하게 여겨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 땅의 역사도 가장 약한 부분, 가장 아픈 사람들이 평안할 때, 모두가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약한 이들이 병원을 찾지 못해 죽는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병들고 무너지고 있다는 정말로 중요한 신호가 아닐까요? 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픈 이들이 고통당하는 곳, 이 땅의 역사에서 가장 작게 여겨지는 곳, 가장 아프지만 쓸모없게 여겨지는 곳, 가장 아픈 그곳이야말로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곳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기후 위기에 그대로 노출된 약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 주시고,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명절이 더욱 외로운 이들에게 평안과 위로로 함께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가정과 이웃과 오늘 우리의 교회에도 함께해 주셔서,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과 같이 작은 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바라기는 이번 명절이 모자람이 없이 가득 찬 보름달처럼, 구성원 모두가, 우리 가운데 작고 연약한 이들까지 모두 함께 행복하고 건강한 명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