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크시고 높으신 분이시고, 모든 주권(主權)을 가지신 분이야. 그 누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겠어. 너도 마찬가지야.” 이것이 욥기 25장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욥을 향한 빌닷의 세 번째 충고입니다. 친구들이 욥에게 “네가 당하는 고난과 고통은 하나님 앞에 범죄했기에 생긴 것이기에 회개하고 돌이켜야 다시 하나님께서 너를 회복시킬 수 있다”라고 말할 때, 욥은 한결같이 나는 하나님 앞에 이런 고통과 고난을 받을 만큼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런 욥에게 도대체 감히 누가 모든 주권과 위엄을 가지신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의롭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꾸짖으며, 욥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말할 수 없다고 책망합니다. 25:6에서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라고 말하는 것은 욥을 빗댄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빌닷의 이야기도 원론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모두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빌닷을 비롯한 욥의 친구들은 계속해서 한 가지를 간과(看過)하고 있습니다. 욥이 고난과 고통을 겪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욥의 친구라고 한다면 평상시 욥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욥이 이런 고난을 겪고 있을 때 함께 마음 아파하면서 하나님께 “하나님, 제가 욥의 삶을 보아왔기에 잘 아는데, 욥은 이런 고난을 당할 잘못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욥이 당하는 고난을 거둬주십시오”라고 간구해야 옳았습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처참하고 혹독한 고난을 보면서 ‘아마 욥이 우리가 모르는 죄악을 저질렀나 보구나’라고 생각하며 욥에게 회개를 촉구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제가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만, 하나님은 욥을 정직하고 의롭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욥기 1장과 2장에 분명히 언급되었습니다. 즉 욥이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은 욥의 죄악이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앞뒤도 재지 않고, “네가 고난을 겪고 있으니, 그건 분명히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야”라고 단정 짓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입니다. 자칫 한 사람을 나락(奈落)으로 몰아갈 수 있는 태도입니다. 보다 더 진지하고 신중하게 욥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고, 욥의 친구라면 욥이 당하는 고난을 함께 아파하며 하나님께 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더 필요했습니다.
저도 살아가면서 경험한 일들 중에는 제게 억울한 오해가 생겼을 때 저를 가까이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떠도는 풍문(風聞)을 듣고 갑자기 제게 싸늘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차라리 대놓고 “이런 소문이 돌고 있던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기라고 하면 좋겠는데, 그저 “네가 그런 사람이었어?”라는 태도를 보이면 참 마음이 서운하고 아팠습니다. 때론 그 풍문을 전하는 이들보다 저와 더 오랜 세월 알고 있었던 관계였는데도 그런 태도를 보이면 배신감 같은 것도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내가 아는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런 소문이 들리는 것이냐”고 물어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아마 욥도 그러한 억울한 마음과 한 편으로는 배신감이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이 떠돌아도 “나는 일단 너를 믿어. 네가 그럴 리가 없지”라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진짜 친구가 아닐까요?
그래서 26장에서는 욥이 다시 한탄합니다. 26:2~4은 빌닷의 충고에 대해 약간 비아냥거리듯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생각해서 그런 충고를 하는거야? 참 대단한 충고구나. 도대체 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빌닷을 비롯한 친구들의 충고와 조언은 욥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고통당하는 친구를 돕는다며 하는 말이 그것뿐이냐고 되묻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26:5~14은 욥이 하나님에 대해 묘사하는 내용입니다. 빌닷이 욥에게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신 높으신 분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욥의 대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은 이 세상뿐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계와 스올(지옥)까지도 모두 통찰(洞察)하시며 주관하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온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그 모든 것들을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사탄까지도(오늘 본문에서는 라합, 뱀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스리시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욥은 빌닷이 말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더 깊이 잘 알고 있음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모든 만물을 주관하실 뿐 아니라, 이 세상과 보이지 않는 영(靈)의 세계까지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몰라서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고난에 대해 하나님 앞에 억울함을 토로(吐露)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 본다면 하나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오히려 하나님 앞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욥기에서 나오는 욥의 친구들과 욥의 대화를 통해 반복해서 나오는 교훈이지만, 다른 사람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에 대해 너무 쉽게,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심사숙고(深思熟考)해야 합니다. 흑백논리에 의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攝理)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단순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원리에 대입(代入)해서는 안 되는 일들도 많습니다. 그러한 고통과 고난의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 진지하고도 신중하게 물으며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고난과 고통을 겪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만 봐서는 안 되고, 그 일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지도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가지고 쉽게 판단하는 것은 큰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고, 한 번 더 깊이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통찰력(洞察力)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판단하고 정죄하기보다는 먼저 함께 아파하고, 다독거리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내 주변에 내가 돌아보아야 할 그러한 이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참된 위로와 격려로 함께 하면 어떨까요?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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