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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설정, 국제법 배치 - 북한에 강요하는건 잘못” | |
‘1975년 미 외교문서’ 키신저 전 미 국무 발언 공개 ‘블룸버그’ 통신 보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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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기자 손원제 기자 | |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포함한 미국 관리들이 30여년 전 "북방한계선(NLL)이 국제법에 어긋난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당시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는 1975년 2월 외교전문을 통해 “엔엘엘은 일방적으로 설정됐고 북한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공해의 경계선을 일방적으로 설정하는 한 이는 확실히 국제법에 배치된다”고 밝혔다. 이 전문은 <블룸버그> 통신이 비밀이 해제된 미 정부의 기밀문서들을 입수해 밝힌 것이다.
키신저의 전문보다 2년 앞선 1973년 12월18일 당시 주한 미국대사이던 프랜시스 언더힐이 워싱턴에 보낸 또다른 외교전문에서도 “분쟁지역(엔엘엘)에서 사건이 일어날 경우 한국과 미국은 다른 국가들의 눈에 ‘잘못된 것’으로 비칠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또 통신은 그해 12월22일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공동으로 주한 미국대사관에 보낸 메시지에도 "북한에 엔엘엘을 강요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적혀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통신은 과거와 달리 현재 미국 정부는 엔엘엘 고수 방침을 내비치는 분위기라며, “엔엘엘은 재협상 대상이 아니다”라는 조너선 위딩턴 한미연합사 대변인의 최근 이메일 성명을 전했다.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 체결 직후인 1953년 8월30일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당시 해군력이 우위에 있던 남한이 북한을 공격해 정전체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설정했으며, 1970년대 들어 북한이 엔엘엘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한 뒤부터 남북간에 주요한 긴장 요인이 되어 왔다.
남북은 1991년 고위급회담에서 기본합의서를 작성하며 엔엘엘을 대체할 해상경계선 획정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만, 남한은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는 남북기본합의서 불가침 부속합의서 10조에 따라, 남한이 50년 넘게 실효적으로 관할해온 엔엘엘이 사실상의 해상 군사분계선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1999년 9월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해, 엔엘엘 무효화를 주장했다.
엔엘엘을 둘러싼 두차례 서해교전(연평해전)을 거쳐, 남북은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에서 엔엘엘 해역을 평화의 바다로 만들기 위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을 도출했다. 그러나 양쪽 군부의 이견으로 공동어로구역 설정에 합의하지 못한 상황에서 2008년 정권교체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은 전면 중단됐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손원제 기자
크리스토퍼 히친스 저
/안철흥 역 | 아침이슬 2001년 11월
헨리 키신저, 그는 지독히 운이 좋은 미국의 정치인이었다. 선거에 한 번 나가본 일도 없이 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과 국무장관이라는 요직을 맡았고, 임기 중에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현재는 투자자문회사 '키신저 어소시에이츠'를 세워 다국적기업을 자문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그의 국제적인 행보는 결코 가뿐한 일이 아닐 것이다.
2년 전,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가 영국에서 체포된 이후 키신저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이어서 피노체트 범죄와 관련한 여러 재판에 증인으로 서라는 압력을 받아야 했다. 특히 그의 해외 비밀공작을 담은 기밀문서가 대부분 30년이라는 기밀 보호기한을 넘기고 있어, 베일에 싸여 있던 그의 또 다른 얼굴이 전세계에 공개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진보적 정치평론가 히친스가 올해 초에 펴낸 이 책은 키신저를 법정에 세우기 위한 공개적인 '기소장'이다. 저자는 검사 같은 치밀함으로 키신저가 국제법과 미국의 국내법을 위반하며 저지른 범죄들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저자가 소개한 키신저의 범죄 목록은 인도차이나 전쟁, 방글라데시의 대량학살, 산티아고와 니코시아와 워싱턴에서 벌어진 계획적인 암살활동, 동티모르의 학살 등이다. 저자는 미국이 해외에서 벌인 이와 같은 범죄에 키신저가 깊숙이 관련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미국은 이제 그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테러 뒤에 숨은 속사정을 알고 싶다면, 전쟁범죄자로 낙인찍힌 한 사람에 대한 통렬한 고발을 읽어볼 일이다. 한 사람의 야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인권과 정의가 어떻게 무시되는지 똑똑히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크리스토퍼 히친스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미국 대학교수인 그는 1980년대 초부터 『더 네이션 The Nation』에 '마이너러티 리포트'를 쓰고 있다. 지은책으로 <역사의 포로 Hostage to History>, <엘긴 마블스 The Elgin Marbles>, <논쟁을 위하여 For the Sake of Arguement>, <전도사의 입장 The Missionary Position>, <승인되지 않은 법률 Unaknowledged Legislation> 등이 있다. 1992년 래넌 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으며, 현재 뉴욕 뉴스쿨 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번역 : 안철흥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월간 『말』기자를 거쳐 현재 『시사저널』기자로 재직 중이다.
옮긴이의 글 : 미국의 책사 키신저의 두 얼굴
머리글 : 키신저를 위한 기소장
0. 뚜껑 열린 판도라 상자
1. 1968년의 비밀
2. 인도차이나
3. 인도차이나에서 저지른 범죄
4. 방글라데시
5. 칠레
6. 칠레 그 이후
7. 키프로스
8. 동티모르
9. 워싱턴의 음모
10. 키신저 어소시에이츠
11. 법과 정의
부록1. 향기로운 파편
부록2. 데메트라코풀로스 편지
찾아보기
"K[키신저]가 들어오고 나서 베트남의 상황과 내년에 제시할 P[닉슨]의 거대한 평화 계획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훗날 K는 자기는 P의 평화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내게 말했다. K는 내년에 군대를 철수시키는 일은 1972년 선거 이전에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대신 K는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병력을 철수시키다가1972년 가을에 완전히 병력을 철수시켜 나쁜 결과가 일어나더라도 시기상 너무 늦어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지지했다."
--- p. 60
"여러분은 국익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미국이 인도네시아에 무기를
판매하건 말건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얻을 것도 없고, 리베이트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조국에 어떻게 봉사할 것인지 생각할 의무가
있습니다. 외교관은 자신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교관은 미국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지 외교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 pp. 189 ~ 190
저자의 말
현재 우리는 국가 범죄에 대한 '치외 법권'을 옹호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키신저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러한 결정적 변화를 눈치채왔다. 런던에서 열린 피노체트 재판의 판결, 스페인 치안판사의 눈부신 활동, 헤이그 국제제판소 판결은 국가 이성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저질러진 범죄들이 더 이상 면죄부를 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제 어떤 법원에서도 키신저를 법정으로 소환하기 위한 영장을 발부하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키신저가 이를 회피할 명분도 없다. 법률적 증거들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정식으로 구속력을 인정하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있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키신저를 기소하지 못한다면 정의에 대한 이중 삼중의 공격에 직면할 것이다. 첫째, 어떤 초거대 권력도 법을 초월할 수 없다는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원칙이 침해당할 것이다. 둘째, 전쟁범죄나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어떤 패전국이나 제3세계 독재자들도 법정에 세울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중대한 문제를 정치적 논란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며 누구는 기소하고 누구는 기소하지 않는다는 의문 또한 당연히 제기될 것이다.
키신저의 공범들 가운데 많은 수가 현재 감옥에 갇혀 있거나 재판 계류 중에 있다. 키신저 혼자서만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정말로 역겨운 일이다. 우리가 그처럼 역겨운 상황을 방치한다면, 법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한 거미줄과 같다는 고대 철학자 아나카르시스의 주장을 옹호하는 수치스러운 꼴밖에 안 된다. 이제 유명 무명의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법의 심판을 가할 때가 되었다.
전쟁과 테러 뒤에 숨은 미국 외교의 본질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종전으로 치닫고 있다.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에는 미국의 주도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것이다. 미국은 과연 세계 평화를 위한 21세기 첫 '업적'을 쌓고 있는 것일까. 미국을 비롯한 서방 동맹국들은 선(善)이고, 아프가니스탄과 오사마 빈 라덴은 악(惡)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의 외교 전략이 21세기에도 20세기와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착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저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본질적으로 이 점이다.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미국의 대학교수인 그는 기밀 해제된 자료에 입각하여 미국의 외교 전략에서 세계 선린이나 평화는 수사(修辭)일 뿐, 미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이 기획되고 실행된다는 점을 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미국의 외교 전략 정점에 서 있던 인물이 헨리 키신저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키신저를 지목하는 이유는 각별하다. 미국의 역대 정치인 가운데 공직에 재직할 때나 공직에서 퇴임한 후에 키신저만큼 인구에 회자된 정치인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공직에 있을 때 미국의 '20세기 최고의 외교 전략가'로 불릴 만큼 미국의 외교사에서 굵직굵직한 문제에 깊이 간여했다.
키신저가 미국 외교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것은 1968년 12월 닉슨 대통령에 의해 국가안보 보좌관에 임명되면서부터. 그는 이후 국가안보협의회 의장과 국무장관 등을 역임하면서 닉슨 행정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부상했다. 특히 그는 소련과 미국의 긴장완화정책, 즉 '데탕트'(detente)를 추진했고,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성사시켰다.
또한 1972년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개선시켰는데, 이것은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이래 중국에 대한 미국 최초의 공식 접촉이었다. 그는 또한 베트남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 유지에 애쓴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당시 공동수상자였던 북베트남 측 평화협상대표 르 둑 토는 수상을 거절했다).
이런 프로필은 평화의 전도사로서의 키신저의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그러나 히친스는 이 프로필 속에 숨어 있는 키신저의 범죄 행위에 주목하고 있다. 즉 미국이 1970년대 초반 세계 각지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와 대량 학살, 암살, 납치 등에 키신저가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고 키신저를 전쟁범죄자로 간주한다.(아래의 글 참조) 히친스는 이 책을 키신저 재판에 제출될 '기소장'이라고 잘라 말한다.
"키신저를 기소하지 못한다면 어떤 초거대 권력도 법을 초월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원칙이 침해당할 것이며, 전쟁범죄나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어떤 제3세계 독재자도 법정에 세울 수 없을 것이다. 키신저 혼자서만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정말로 역겨운 일이다. 우리가 그처럼 역겨운 상황을 방치한다면, 법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한 거미줄과 같다는 고대 철학자 아나카르시스의 주장을 옹호하는 수치스러운 꼴밖에 안 된다. 이제 유명 무명의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법의 심판을 가할 때가 되었다."
이 책에서 히친스가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다른 하나는 미국의 전쟁범죄로 무참하게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해당 국가 국민들의 인권 문제다. 각 사례들에서 민간인 사망자수를 나열하면서 그 의미를 전하려는 히친스의 노력은 치열하다 못해 지독하다.
히친스는 이 책을 통해 키신저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일이 미국 외교의 패권을 막는 디딤돌이 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세게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키신저, 당신을 전범으로 고발한다
1969년부터 8년간 닉슨의 안보보좌관, 그리고 닉슨과 포드의 국무장관을 연임한 학자 출신 유태인 정도로 알려져 있는 헨리 키신저는 퇴임 후에는 세계적 다국적기업들과 현지 정권을 중매하는 국제적 고급 거간꾼으로 변신했다.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이 키신저가 사실은 수많은 제3세계인과 미군을 희생시킨 더러운 외교적 거래와 국제적 개입의 주범임을 폭로한 책이 『키신저 재판』이다. 따라서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인도차이나와 남미의 칠레 등에서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전쟁과 독재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키신저라는 전범의 죄상에 대한 고발장이다. 물론 닉슨이 68년의 선거에서 민주당의 험프리를 이기기 위해서 당시 진행중이던 월맹과의 파리평화회담을 막후에서 훼방한 사실, 또 1973년 아옌데 대통령의 사회주의 정권을 붕괴시킨 칠레 군부의 쿠데타를 CIA가 사주했다는 사실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외교 비판서의 주인공인 추상적 "미국" 대신 일찌감치 회고록을 펴낸 키신저 개인이 주연이라는 점에서, 또 지금까지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1975년 인도네시아 정부의 동티모르 침공과 키신저의 연계(8장)를 밝힌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미국자본가들의 추악상에 대한 도덕주의적 비난에서 유래한 "폭로꾼(muckraker)"의 전통이 키신저를 지금이라도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논점을 지배하는 듯 하다. 그 때문인지 19세기 미국의 "폭로꾼"들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반성 대신 자본가의 도덕만을 강조했던 것처럼 이 책은 미국의 냉전외교 자체에 대한 인식을 우회한 채로 단순히 부도덕한 개인의 책임만 부각시킨다. 그래서 독자는 키신저의 죄상에 분노하게 되지만 그 분노는 전체와 부분을 맞바꾼 분노다.
작금의 아프간 사태에서 보듯이 도덕과 이익의 간극이 가장 큰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정의와 이익은 동시에 얻을 수 없다. 지난 반세기 미국외교의 부정적인 측면만 볼 때는 키신저의 책임도 결국 전체 속의 부분이며 흐름 속의 한 매듭일 뿐이다. 특히 미국시민이 이 책의 주독자라는 사실과 연관되는 것인데, 키신저 개인의 사악성을 부각하는 것은 냉전시대 미국외교의 본질에 대한 내부적 비판이나 반성을 미리 흡수 차단하는 방수막 기능을 한다. 이것이 폭로의 함정이다.
저자는 키신저와 쿠르트인족과의 거래 및 배신, 앙골라 내전, 중미지역에서의 반공 게릴라 지원 음모 등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키신저의 다른 죄상도 예비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그러나 모노드라마식 구성, 전체와 부분의 상호 침투에 대한 정제된 관찰이 없는 폭로의 역설은 레퍼토리의 확대로 해결될 수는 없다. 어쨌든 어떤 거물도 세월 앞에서는 벌거벗을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이 번역서를 통해 다시 얻는다면 이 또한 미국식 도덕주의일까?
--- 조선일보 책마을 01/12/8 권용립 (경성대 정외과 교수)
美외교의 '추악한 국가이기주의'
최근 미국 외교정책의 본질을 파헤친 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이 분분한 가운데 사태의 본질을 알고 싶어하는 대중의 지적 요구에 맞춰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판한 책이 속속 선보이고 있는 것. 『키신저 재판』은 세계 평화라는 미명 아래 추진되는 미국의 외교전략은 모두 미국의 국가이익만 위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헨리 앨프리드 키신저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라”는 선명한 주장을 담고 있는 이 책은 키신저를 통해 미국 외교의 추악한 본질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대부분 알려진 내용이긴 하지만 책은 헨리 키신저라는 한 개인을 집중공격하기 위한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고 있다.
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과 국무장관이라는 요직을 맡아 미국의 외교를 좌지우지했던 키신저는 ‘20세기 최고의 외교전략가’로 불리며, 임기중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사나이. 지난 99년에 체포된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 관련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라는 압력에 시달린다는 점 때문에 괴롭긴 하겠지만 최근에도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각종 매체에 글을 쓰고 있으며, 기업 경영자와 학자, 정책 결정자들로부터 한번에 2만5000달러씩 받고 자문을 해주기도 한다 .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현재 뉴욕의 뉴스쿨대학 교양학부 교수로 있는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키신저는 명백한 전쟁범죄자”라고 주장한다. 그는 『키신저 재판』이 “키신저가 미국의 국내법과 국제법을 위반한 사례를 모은 것”이라며 “키신저의 공범들 중 많은 수가 감옥에 갇혀 있거나 재판 계류중인데 키신저 혼자만 벌을 받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역겨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최근 공개된 해외 비밀 공작을 담은 기밀문서, 미국 정부 요인들의 회고록과 인터뷰 기록 등을 샅샅이 검토해 키신저의 범죄 목록을 제시한다. 히친스에 따르면 키신저는 베트남 평화협상을 4년이나 지연시켜 수많은 미국 군인과 베트남 민중의 목숨을 잃게 했다. 또한 칠레에서 좌익 후보 아옌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쿠데타 음모를 지원, 극우파를 매수해 슈나이더 장군을 암살했고,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피노체트와 밀월 관계를 지속하며 칠레 반정부 지도자 오를란도 레텔리에르도 살해했다는 것. 이밖에도 키신저는 방글라데시(당시 동파키스탄)의 대량학살, 키프로스에서 벌어진 암살,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 학살에도 직접 개입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결국 미국이 60년대 말∼70년대 초반 세계 각지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와 학살, 암살과 납치 등에는 모두 키신저가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무참하게 숨져간 희생자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강조하며 “미국의 법원이 자기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키신저에게 희생당한 피해자와 생존자들이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을 희생시켜가며 정의를 힘겹게 추구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문화일보 북리뷰 01/12/7 정희정 기자
키신저가 저지른 범죄
닉슨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 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역임한 미국의 외교전략가 헨리 키신저는 세계평화 유지에 기여한 공로로 197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국무장관 재직시 키신저는 소련과 미국의 긴장완화정책(데탕트)을 추진했으며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또 1972년에는 세계적인 화제를 뿌린 닉슨의 중국 방문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관계를 개선시켰는데, 이는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이래 중국에 대한 미국 최초의 공식 접촉이었다. 그는 또 베트남 분쟁을 해결하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평화 유지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북베트남측 평화협상 대표였던 레 둑 토와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이런 경력은 '평화의 전도사'로서의 키신저의 이미지를 강화시켰으며 지금도 많은 이들의 뇌리엔 키신저가 세계평화를 위해 힘쓴 미국의 명외교전략가였다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중 한 사람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그의 저서 「키신저 재판(원제 The Trial of Henry Kissinger)」(아침이슬)에서 이같은 경력과 이미지 뒤에 숨어 있는 키신저의 본모습을 충격적으로 고발한다. 히친스는 기밀해제된 미국의 외교문서,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의 국제재판 기록등을 근거로 키신저가 미국이 1970년대 초반 세계 각지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와대량학살, 암살, 납치 등에 깊숙이 연루돼 있으며 사실상 그같은 범죄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의 외교전략에서 '세계선린'이나 '평화'는 수사(修辭)일 뿐 미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이 기획되고 실행됐다는 점을 폭로하면서 그 중심에는항상 키신저가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100만명 가까운 민간인이 몰살한 인도차이나 전쟁과 1971년초 최초의 민주 선거가 실시된 방글라데시(당시 동파키스탄)에서 일어난 군의 학살극,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칠레 극우파의 슈나이더 장군 암살, 1974년의 키프로스 내전, 1975년부터 수개월간 진행된 동티모르 대학살 등을 들 수 있다. 키신저는 당시 미국의 해외 정치 공작을 총괄하는 조직인 '위원회 40'의 의장이었으며 이는 기밀 문서 뿐 아니라 키신저의 회고록에도 자주 등장한다.
히친스는 키신저가 미국의 외교 이익을 위해서라면 테러와 암살, 전쟁마저도 불사하지 않았던 명백한 전범(戰犯)이며 이 책은 키신저 재판에 제출된 '기소장'이 될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키신저를 기소하지 못한다면 어떤 초거대 권력도 법을 초월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원칙이 침해당할 것이며, 전쟁범죄나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어떤 제3세계 독재자도 법정에 세울 수 없을 것이다. 키신저 혼자서만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정말로 역겨운 일이다. 우리가 그처럼 역겨운 상황을 방치한다면 법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한 거미줄과 같다는 고대 철학자 아나카르시스의 주장을 옹호하는 수치스러운 꼴밖에 안된다' 영국 출신으로 현재 뉴욕 뉴스쿨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중인 히친스는 최근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놓고 노엄 촘스키와 논쟁을 벌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 연합뉴스 01/11/30 정열 기자
키신저 재판
도서에 대한 평가 : 책내용 책상태
키신저. 그는 누구인가. 키신저는 1969년 닉슨이 대통령이 되던 해에 대통령 보좌관을 겸해서 국가 안전 보장회의 사무 국장으로 취임했던 사람이다.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이 기소된 후, 작가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다음 기소자로 미국의 전 국무 장관 헨리 키신저를 꼽았다.
그런데 키신저란 사람은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평화 주의적인 사람이다. 닉슨의 중국 방문, 구소련과 미국의 긴장 완화 정책 등을 성사시킨 그가 왜 앞에서 말한 두 명의 기소자들을 이어야만 하는가.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의문이 조금씩 풀렸다. 이 책은 비단 키신저 하나만을 꾸짖는 내용이 아니다. 키신저 게이트, 나아가 미국 전체...
--- 2001/12/09 (ulssigoo) < ulssigoo 님이 쓰신 서평 검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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