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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 고원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산이 있다 꼭 한 번 찾아가서 물어보고 싶은 하얀 이름이 있다 오래 참아 못 불러본 그리움 하나 고독한 산정으로의 길이 끝난 곳에 죽지 않는 눈들이 사는 곳 홀로 찾아가서 한 잎씩 두 잎씩 신성한 여신의 가슴 쪽으로 띄워 보내고 싶은 아직 못 보낸 서러움 하나 세상 끝까지 맨발로 걸어가 끝내 닿아보고 싶은 희디흰 눈물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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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푸르공pureugong
그러나 나는 타보지 못했다
내가 탄 차량은 푸르공이 아니었다
타보고 싶었으나 타보지 못했다
가이드는 차량이 노후하고
승차감이 꽝이고
쉽게 피로감을 느끼기에
푸르공 지프 대신
산악도로를 장시간 달려야 하는 까닭에
푸르공보다는 승차감이 좋은
도요다와 현대와 대우 넥시아로 대체했다는 설명
그러나 나는 무척이나 실망했다
가이드 측의 말이 옳을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편하자고 여행을 떠난 게 아니다
엑조티시즘exoticism, 저 이국정취를 맛보고
낯선 풍물을 접해보려고 나는 떠난다
불편은 다음 문제고
이국취향이 먼저다
내 경우는 그렇다
pureugong -
저 동화 같은 이름
타보고 싶었다
흔들리며 나부끼며 피로하고 싶었다
파미르의 여신을 만나보는 힘든 여정에는
거칠고 힘이 센 동화가 좋다
현대차는, 도요다는 내가 아는 이름
모르는 이름에 올라앉아 종일 불편하고 싶었다
파미르, 영원의 설봉雪峰
저 크나큰 순백의 그리움을 찾아가는데
어찌 편안히 가랴
여신의 옷자락에 손을 대어보려 떠나는 길이
어떻게 마냥 고요할 수 있으랴
푸르공pureugong -
러시아제 군용차량
길이 없는 시베리아에서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용지프
연비도, 승차감도 형편없지만
힘이 세고 무식하고 수리하기가 쉬워
험한 오지를 떠도는 여행자들이 선호한다는 차량
나는 들었으되 타보지 못했다
때로는 러시아 산 푸르공의 추위도 타보고
가끔씩은 프랑스 산 시트로앵의 더위도 타보아야 한다
어찌 코리아 스타렉스의 계절에만 맡길 수 있겠는가
쉬운 여행은 쉬이 잊힌다
나는 별처럼 고요하고
풀잎처럼 흔들리고 싶다
오래 바람에 흔들릴지라도
바람 멎으면 제자리로 돌아와
비로소 고요한 몸이고 싶다
오전 일곱 시
아침 일찍 지프를 타고 서둘러 호텔을 출발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하루의 여정
두샨베에서 지프로 후잔트까지
여섯 시간의 이동거리
도중에 점심식사를 하고
후잔트에 도착하여 박물관을 둘러본 다음
후잔트에서 타지키스탄 국경지대로
한 시간 반가량 다시 이동해야 하고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두 국경을 통과한 다음
국경에서 코칸트까지 다시 한 시간 반
코칸트에서 후다야르 칸 궁전을 들러본 후에
페르가나까지 다시 두 시간 이동하는 머나먼 여정
한국인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여정
하루 종일 차량 속을 견디는 코스
휴식과 이동의 거침없는 순환과 반복
우리는 설레야 하고 피로해야 하고
흔들리며 견뎌야 한다
푸르공의 설렘도 단념한 자리
고속도로의 염원도 꺼져버린 시간
끝없는 산정으로 가는 비포장의 산악길
그러나 파미르 고원이 나를 부른다
쉬이 가는 길은 쉬이 잊혀지는 길
끝없는 고원의 길
무한의 설백雪白으로 들어가는 길
저만치 드높은 곳으로 가는 길이 하나 있어
파미르의 영혼이 나를 부른다
(이어짐)
첫댓글 중앙아시아 여행을 가기 위해선 이 좋은 글들 다 읽어보고 가야겠어요. 흥미진진한 세계의 역사와 문화들 언제 한 곳이라도 제대로 알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모래알만큼이겠지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