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경주는 신라의 유물과 유적만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경주시 북쪽 설창산에 둘러싸여 있는 150여호의 고가옥과 초가집이 보존된 씨족마을인 양동마을이 경주의 조선시대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주로 하인들이 살던 초가집이 주인집인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IMG_0016P 양동마을문화관(외관)
양동마을 입구엔 커다란 문화관이 민속마을 답지 않게 현대식건물로 지어져 있습니다. 전통민속마을과 어울리는 건물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경주 양동마을은 1984년 12월 20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마을로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종가가 500여년 동안 전통을 이어온 씨족마을입니다.
우리나라엔 6개의 전통민속마을이 있습니다만 어느 곳보다 마을의 규모, 보존상태 등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1992년엔 영국의 찰스 황태자가 이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경주 양동마을은 500년이 넘는 54채의 기와집과 고즈넉한 110여채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IMG_0019 관가정 주변
매표소에서 양동초등학교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왼쪽 언덕에 관가정이 보이고 주변에 초가집 그리고 그 아래쪽에 정충비각이 보입니다.
IMG_0020 향단 주변
관가정 우측으로는 향단 건물이 보입니다. 향단은 내부수리중인지 출입을 금하여 들어가 보질 못했습니다. 향단은 보물 제 412호로 마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에 있습니다. 기와집의 일반적 격식에서 과감히 벗어난 형식으로 원래 99칸이었으나 6.25동란으로 파손되어 현재는 56칸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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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촌위에 있는 초가집입니다. 제가 보긴엔 초가집은 벽이 황토색으로 칠해져 있는 등 현대화된 초가집으로 옛모습의 초가집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동안 너무 한옥위주의 보존으로 초가집은 거의 문화재가 없는 것 같습니다.
IMG_0030 강학당(중요민속문화재 제83호)
강학당은 여주 이씨 집안의 서당으로 고종 7년(1870)경에 세운 건물입니다. 공부하는 곳인 만큼 대문과 담장없이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었으며 앞마당에서 마을의 전경을 감상 할 수 있습니다.
IMG_0034P 심수정(중요민속문화재 제81호)
여강이씨 문중에서 세운 것으로 조선 명종 15년(1560)경에 지어졌습니다. 양동마을에는 10개의 정자가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큰 정자로 안락정과 강학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 마을의 서당역활을 했습니다. 철종때 화재로 소실되어 1917년경에 다시 건축되었습니다.
IMG_0042P 두곡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 77호)
두곡고택은 조선 영조 9년(1733)경에 지었고 두곡 이주원 선생의 호를 따 두곡고택이라하며 그 후손이 살고 있습니다. ㅁ자 모양을 하고있는 살림채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대문채가 있고 북쪽으로는 곳간채들이 겹으로 둘러싸고 있어 마을에서 규모가 매우 큰 주택에 속합니다. 안채 바로 뒤의 작은 별채는 딸을 기르기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한쪽은 곳간이고 한쪽방은 딸이 사용하던 방을 출가후에도 친정에 오면 이방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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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천을 건너 서백당으로 향하는길입니다.
IMG_0045 사호당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 74호)
조선 헌종6년(1840)에 지었으며 일반적인 ㅁ자형의 양반주택에 비해 'ㄱ'자의 안채에 'ㄱ'자의 사랑채가 잇대어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안채와 사랑채가 맞닿하 있는 부분에 곳간방이 있느데 이곳에는 문으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커다란 항아리가 있습니다. 과거 곡식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하여 독을 먼저 넣고 집을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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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051P 서백당(중요민속문화재 제23호)
서백당은 조선 세조 5년에 지은 집으로 양민공의 아들 손중돈 선생과 외손인 이언적 선생이 태어난 곳입니다. 사랑채에 걸린 서백당이라는 현판은 '참을 인자 백번을 쓰며 인내를 기른다'라는 뜻입니다. 사랑채의 뒤쪽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은 사당이며, 마당의 향나무는 500여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IMG_0062P 무첨당(보물 제411호)
서백당에서 내려와 오른쪽으로 언덕길을 넘으면 무첨당이 있습니다. 무첨당은 제사를지내는 제청의 기능이 강했으며 남성들이 독서와 휴식, 손님 접대를 하였던 큰 사랑채로 쓰였습니다.동쪽에 서있는 건물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이루어진 본채입니다. 대청의 오른쪽 벽에 걸린 좌해금서라는 편액은 흥선 대원군의 글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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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091P 관가정(보물 제442호)
관가정은 조선중기 이조판서를 지낸 손중돈이 살던 집으로 ㅁ자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은 사랑채, 나머지 는 별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안채의 동북쪽에는 사당을 배치하고 담으로 양쪽 옆면과 뒷면을 둘러막아, 집의 앞쪽ㅇ르 탁 트이게 하여 낮은 지대의 경치를 바라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관가정은 곡식이 자라는모습을 본다는 뜻으로 누마루에 올라보면 그 이름에 걸맞게 곡식이 익는 들판과 강의 모습이 넓게 펼쳐져 장관을 이룹니다. 대청이 넓은 것이 특징인데 살림집이 후대로 오면서 제사 때 필요한 공간 확보를 위해 변형된 것입니다. 본채의 뒤쪽에 사당이 있으며 대문과 담은 원래 없었으나 1981년에 담을 쌓았습니다.
IMG_0083 관가정에서 보이는 마을풍경
IMG_0093 관가정에서 보이는 마을풍경(오른쪽이 양동초등학교)
IMG_0100 정충비각(경북 문화재 자료 제261호)
정충비각은 조선 인조14년(1636) 병자호란때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순직한 손종로(1598~1636)와 그의 노비였던 억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의 명으로 세운 비각입니다.
정충각은 손종로를 기리는 것이고 오른쪽의 충노각은 노비 억부를 기리는 것입니다. 정충비각은 관가정에서 내려오는 길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IMG_0105MAP 양동마을전경
위사진은 양동마을문화관에 전시되어있는 사진으로 제가 돌아다닌 곳을 참고로 표시하였습니다.
IMG_0115P 양동마을문화관
양동마을문화관은 양동마을을 구경하고 나서 맨 마지막에 들렀습니다. 먼저보고 가도 되지만 다녀온후 보는 것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알려주어 아쉬움이 있지만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눈엔 양동마을이 보여주기 위한 마을이라 그런지 담장도 새로 칠하는 등의 문제로 세트장같은 기분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저 복원이라는 미명하에 살던 사람들 다 내쫓고 덩그러니 빈집들만 모셔두는데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 삶을 이어가고 옛 생활공간과 함께 보존하고 있으니 나름 역사를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는 마을이기도합니다.
50~60대에개는 양동마을이 본인들의 어릴적 고향과 닮은 모습을 회상시켜주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신라의 모습이 가득한 경주에 조선시대 모습이 있다는 것으로 우리의 편견을 깨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집 내부까지는 일일이 들여다 보지는 못했지만 다음 기회에 가게되면 한옥과 초가집의 내부까지도 들여다 보았으면 하는 생각입나다.
여행 TIP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34
전화 : 070-7098-3569
입장료 : 어른 4,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500원(신분증을 소지한 경주시민은 무료)
경주양도마을 위치도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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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경주는 웬만한 곳은 다보고 머리속에 기역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보니 새롭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무심코 지나갈 곳이 아닌듯 하고 한번 건축양식에 음미하로 한번 기회가 되면 들리도록 해야 겠네요...
잘보았습니다.
작년 다녀온 양동마을 기억이 새록 새록 나네요
저도 너무 이른 봄에 갔었던 기억이 있어 초록이 들때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입니다.
아늑하고 조용한게 시골 정취가 물씬 풍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