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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8.18. 주일축복예배 설교문【예수님과의 동행】- 관계2
제목: 선택은 운명이다. Election is a breathed his last.
본문: 마태복음4장18~22절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르니라 21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르니라. 18And Jesus, walking by the sea of Galilee, saw two brethren, Simon called Peter, and Andrew his brother, casting a net into the sea: for they were fishers. 19And he saith unto them, Follow me, and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20And they straightway left their nets, and followed him. 21And going on from thence, he saw other two brethren, James the son of Zebedee, and John his brother, in a ship with Zebedee their father, mending their nets; and he called them. 22And they immediately left the ship and their father, and followed him.
마가복음1장16~20절
16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가니라. 16Now as he walked by the sea of Galilee, he saw Simon and Andrew his brother casting a net into the sea: for they were fishers. 17And Jesus said unto them, Come ye after me, and I will make you to become fishers of men. 18And straightway they forsook their nets, and followed him. 19And when he had gone a little farther thence, he saw James the son of Zebedee, and John his brother, who also were in the ship mending their nets. 20And straightway he called them: and they left their father Zebedee in the ship with the hired servants, and went after him.
누가복음5장1~11절
1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예수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님이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르니라. 1And it came to pass, that, as the people pressed upon him to hear the word of God, he stood by the lake of Gennesaret, 2And saw two ships standing by the lake: but the fishermen were gone out of them, and were washing their nets. 3And he entered into one of the ships, which was Simon's, and prayed him that he would thrust out a little from the land. And he sat down, and taught the people out of the ship. 4Now when he had left speaking, he said unto Simon, Launch out into the deep, and let down your nets for a draught. 5And Simon answering said unto him, Master, we have toiled all the night, and have taken nothing: nevertheless at thy word I will let down the net. 6And when they had this done, they inclosed a great multitude of fishes: and their net brake. 7And they beckoned unto their partners, which were in the other ship, that they should come and help them. And they came, and filled both the ships, so that they began to sink. 8When Simon Peter saw it, he fell down at Jesus' knees, saying, Depart from me; for I am a sinful man, O Lord. 9For he was astonished, and all that were with him, at the draught of the fishes which they had taken: 10And so was also James, and John, the sons of Zebedee, which were partners with Simon. And Jesus said unto Simon, Fear not; from henceforth thou shalt catch men. 11And when they had brought their ships to land, they forsook all, and followed him.
찬양: 212장(통 347장) – 겸손히 주를 섬길 때,
213장(통 348장) – 나의 생명드리니,
214장(통 349장) – 나 주의 도움 받고자,
215장(통 354장) – 내 죄 속해 주신 주께,
216장(통 356장) – 성자의 귀한 몸.
할렐루야!!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은총이 교회 공동체여러분과 교회 공동체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교회 공동체여러분의 사업과 가정 위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 주일축복예배는 네 번째 말씀으로 ‘관계’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람은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집니다. 잘못된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되면 평생 후회합니다. 사는 맛도 멋도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되면 매일같이 감사하고 사는 것이 매력이고 흥분됩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할 사람이 있고, 스쳐지나가는 정도의 관계를 맺을 사람이 있습니다.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과는 자신의 인생을 말하고 깊이 있게 삶을 나눕니다. 자신에 대해 세밀하게 터놓고 행과 불행의 모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별로 가깝지 않은 관계의 사람과는 그렇게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만나도 할 얘기가 없습니다. 만나기는 만나는데 오고가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또한 관계의 기회를 잡고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누구나 옵니다. 그런데 그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는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보다 자신에게 득인가 실인가를 생각하다 지나가버리는 것입니다. 아직 가치체계가 분명하게 세워져있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지든지 없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사람을 얻는 것은 축복입니다. 성도여러분이 누구이든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좋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정말 중요한 관계의 사람입니까?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교회 공동체여러분의 운명을 말해주는 평가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깊은 관계가 아니라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시 시작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실패하는 사람은 돈을 벌지 못해서 실패하거나 승진하지 못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없어서 실패합니다. 좋은 관계, 깊은 관계,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으면 그는 어느 경우도 실패할 수 없습니다. 실패했더라도 실패는 그에게 오히려 더 좋고 깊은 관계를 맺도록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의 복입니다. 나의 가까운 사람에서부터 멀리 있는 사람까지 관계의 창으로 다시 바라보고 관계 인생관을 정립할 수 있기를 기도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안생활이란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종요행위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무엇인가 사람이 살아가는데 불안하고 허전하고 의지할 것이 있어야할 것 같아서 많은 신들 중에 하나님이라는 신을 찾고 그분을 승배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까? 기독교의 신앙생활은 종교행위religion가 아닙니다. 죽은 재물이나 향을 피워 신을 부르는 종교행위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신앙생활이란 관계행위relation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관계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예를 들어 에덴동산에 첫 사람인 아담을 만드시면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원하셨던 것은 제사를 지내고 경배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2: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n help meet for him.고 했습니다. 23절에는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Adam said, 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고 아담에게 하나님이 첫 번째 주신 선물이 바로 하와창3:20절에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Adam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와의 관계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거니시는 하나님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the LORD God walking in the garden in the cool of the day: and Adam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God amongst the trees of the garden.창3:8절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그에게 하와와 관계를 맺게 하시고, 그리고 그들과 함께 또 관계를 맺어 에덴동산에서 삼각관계로 지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8절 후반부의 말씀입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dam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God amongst the trees of the garden. 아담과 하와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피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기 전단계인 도피단계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죄가 무서운 것이 바로 이런 결과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고 결국 서로의 관계를 깨뜨리는 파괴자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부터 사람을 멀어지도록 만들기 위해 끈질기게 유혹하는 이간자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점점 죄의 타락에 빠지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고창3:12절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결국 하나님과의 동행관계를 끝맺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So he drove out the man; and he placed at the east of the garden of Eden Cherubims, and a flaming sword which turned every way,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fe.창3:24절.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보여주신 것이 관계입니다. 마태복음26:28절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For this is my blood of the new testament, which is shed for many for the remission of sins. 예수님은 제자들과 새로운 언약관계를 맺으시면서 서로 예수님의 피와 몸을 나눔으로 하나 되었다는 것을 기념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도 제자들과 서로 깊은 관계의 삶을 사셨지만 마지막 만찬에서도 언약의 관계를 깊이 맺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의 교회 공동체들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중심적으로 말한 것이 관계입니다.
로마서12:4~5절 4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4For as we have many members in one body, and all members have not the same office: 5So we, being many, are one body in Christ, and every one members one of another.
고린도전서12:25절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That there should be no schism in the body; but that the members should have the same care one for another.
갈라디아서6:2절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Bear ye one another's burdens, and so fulfil the law of Christ.
에베소서2:21절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In whom all the building fitly framed together groweth unto an holy temple in the Lord:
데살로니가전서4:9절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But as touching brotherly love ye need not that I write unto you: for ye yourselves are taught of God to love one another.
서로 지체관계, 서로 돌보는 관계, 서로 짐을 지는 관계. 서로 연결되는 관계, 서로 사랑하는 관계 등, 무려 250회 이상을 교회와 교회 공동체는 ‘관계공동체’로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관계를 누구와 어떻게 맺으라는 것입니까? 관계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관계가 무엇입니까? 관계의 출발과 끝은 예수님입니다. 교회와 교회 공동체와의 관계보다 먼저 예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면 사람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교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문제들의 원인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교회가 친교와 교제와 만남의 공동체라는 것을 사람관계나 사회적 관계 개념으로 받아들여서 재미있게 소통하고 친밀하게 연결되는 것만을 우선시하게 될 때, 결국 문제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연결의 통로가 되고, 관계의 통로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 될 때, 사람의 관계도 하나가 되고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사라집니다. 교회 공동체와의 관계가 오래 동안 지속되며 좋은 관계들로 유지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예수님과 좋은 관계가 필연적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관계를 맺는 것입니까? 예배에 참석하고 주의 만찬을 기념하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까? 물론 예수님과 동행하고 함께하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말씀보고 하는 것이 관계를 높여주고 관계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면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3가지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과 관계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깊이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2가지가 있습니다. 지식적 앎과 실재적 앎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알려고 시도할 때, 단답형 질문과 대답으로 일괄되었습니다.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그분의 부모는 누구인가? 요셉과 마리아, 몇 년간 공생애 사역을 하셨는가? 3년 6개월, 주로 어디에서 사역하셨는가? 갈릴리 등등. 이런 것을 알아야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재적 앎이라고 합니다. 실재적으로 안다는 것은 예수님 존재자체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3:8절에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 Yea doubtless, and I coqnt all things but loss for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my Lord: for whom I 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and do count them but dung, that I may win Christ,고 했을 때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학문적 뿐만 아니라 총체적으로 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얻은 것의 비중과 아는 것의 비중, 둘 모두를 통해 성숙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Till we all come in the unity of the faith, and of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unto a perfect man, unto the measure of the stature of the fulness of Christ:엡4:13 사도 베드로는 또한 베드로후서3:18절에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But grow in grace, and in the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To him be glory both now and for ever. Amen.라고 구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 대한 성장이 필요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예수님에 대해 깊이 아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친밀할 수 있고 아는 만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3:18~19절을 보겠습니다. 18능히 모든 교회 공동체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8May be able to comprehend with all saints what is the breadth, and length, and depth, and height; 19And to know the love of Christ, which passeth knowledge, that ye might be filled with all the fulness of God.예를 들어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안다고 할 때,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높고, 깊은가를 알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를 스스로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면 진정한 사랑을 알 수 없기에 예수님을 믿어도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는 마음도 없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면 그 사랑 안에서 살게 됩니다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예수님과 관계한다는 것은 그를 깊이 있고 자세하게 아는 것으로, 이 세상에 왜 오셨으며, 나를 위하여 그분은 무엇을 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금도 일하고 계신지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불이 타오릅니다. 열정이 붙습니다. 꺼지지 않는 열망을 갖습니다. 그분을 위하여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지금보다 더 알기 원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싶다고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너무 틀에 박힌 예수님을 대하다가 않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새롭게 아는 것에 대해 무관심해하고 목말라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결단해야 합니다. 전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알고 그분의 임재와 그분의 정신과 삶을 깨달아 알게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과 관계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제자로 부르실 때 무엇이 핵심입니까? 본문은 예수님이 사도 베드로와 사도 안드레, 사도 야고보 와 사도 요한을 제자로 부르신 내용입니다. 제자란 누구인가를
간단하게 정의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19절에 나를 따라오라, Follow me,20절에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르니라, Abandons net and follows Jesus,22절에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르니라. Soon abandons ship and father and follows Jesus.라고 했습니다. 제자를 부르실 때 가장 중심 되는 말씀이 따른다follow 말씀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전부로 여겨왔던 것 그물, 배,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버리는 것left입니다. 버린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과 함께 했던 것들과 이별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 사도 안드레, 사도 야고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따르라고 부를 때 즉시 버리고 따름으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관계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따르라고 부르셨을 때 따르지 않아 축복을 잃은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복음9:57~62절입니다. 57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이르시되 죽은 사람들로 자기의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님이여 내가 주님을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57And it came to pass, that, as they went in the way, a certain man said unto him, Lord, I will follow thee whithersoever thou goest. 58And Jesus said unto him, Foxes have holes, and birds of the air have nests; but the Son of man hath not where to lay his head. 59And he said unto another, Follow me. But he said, Lord, suffer me first to go and bury my father. 60Jesus said unto him, Let the dead bury their dead: but go thou and preach the kingdom of God. 61And another also said, Lord, I will follow thee; but let me first go bid them farewell, which are at home at my house. 62And Jesus said unto him, No man, having put his hand to the plough, and looking back, is fit for the kingdom of God.
이 사람은 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관계의 축복을 잃게 되었습니까? 61절입니다. 주님여 내가 주님을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And another also said, Lord, I will follow thee; but let me first go bid them farewell, which are at home at my house. 교회 공동체여러분이 생각할 때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먼저라는 우선순위입니다. 제자가 될 뻔했던 사람의 우선순위는 먼저 내 가족입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 사도 안드레, 사도 야고보, 사도 요한은 먼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할 때 무엇을 버리고 의지할 것이 무엇인지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따르겠다고 말은 하지만하고 싶은 의지 아직도 버려할 것을 붙잡고 있는 것 버리고 싶지 않은 욕구 때문에 제자가 될 수 있는 축복을 놓쳤습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은 일평생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이 진정한 제자입니다. 자신의 생각, 느낌, 의지, 욕구, 자존심, 가족, 명성, 영향력, 본능, 행복을 예수님에게 복종시키고 따를 때 예수님과 관계를 맺으며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타협이 아니고 절대적 순종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시스템이나 규칙이 아닙니다. 따른다follow는 것은 예수님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그분에게 맞추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 예수님과 관계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성도들이 관계한다는 것은 단순히 대화하고 배우고 나누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는 것이 주목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우리 교회 공동체들 사이에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선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관계에 대한 방향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의도는 예수님에게 도움을 입고, 유익이나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하는 일들이 잘되기 위한 것보다는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본받을 것과 본받지 말아야할 것을 구분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해 말하길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식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23:3,27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27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3All therefore whatsoever they bid you observe, that observe and do; but do not ye after their works: for they say, and do not. 27Woe un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e are like unto whited sepulchres, which indeed appear beautiful outward, but are within full of dead men's bones, and of all uncleanness.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살려면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11: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of me; for I am meek and lowly in heart: and ye shall find rest unto your souls.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마음이 온유하거나 겸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마21:5절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Tell ye the daughter of Sion, Behold, thy King cometh unto thee, meek, and sitting upon an ass, and a colt the foal of an ass.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는 목적은 예수님을 닮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예수님으로 자신을 재건축하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은 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내가 원하는 색깔, 분위기, 가구, 장식을 선택하여 내가 살 집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집을 짓기 위하여 리모델링(remodeling)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실 집을 짓기 위하여 나의 집을 헐고 재건축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집을 짓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예수님이 살기 위한 집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내 욕망과 생각과 체질을 예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다윗 왕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23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23Search me, O God, and know my heart: try me, and know my thoughts: 24And see if there be any wicked way in me, and lead me in the way everlasting.시139:23~24. 다윗 왕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믿음을 맞추거나 하나님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은 예수님에게 집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그대로 본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성품, 관점, 생각, 태도, 삶의 스타일, 감정의 반응, 자아, 돈, 친구, 성공, 이성, 즐거움, 쾌락들이 예수님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추방시키며 예수님께서 계셔야할 자라에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동행하고 깊은 관계를 맺으려면 궤도이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회 공동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6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님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님을 본받은 사람이 되었으니 7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사람의 본이 되었느니라. 6And ye became followers of us, and of the Lord, having received the word in much affliction, with joy of the Holy Ghost. 7So that ye were ensamples to all that believe in Macedonia and Achaia.살전1:6~7. 그리고 고린도 교회의 교회 공동체들에게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라. Be ye followers of me, even as I also am of Christ.고전11:1.고 예수님을 본받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창세기에서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 총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셉 총리는 정부관료 보디발의 집에서 전 재산을 관리하는 책임자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매일 끈질기게 그를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 총리는 그 여인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셉 총리가 했던 말이 이렇습니다. 창세기39:8~9절입니다. 8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8But he refused, and said unto his master's wife, Behold, my master wotteth not what is with me in the house, and he hath committed all that he hath to my hand; 9There is none greater in this house than I; neither hath he kept back any thing from me but thee, because thou art his wife: how then can I do this great wickedness, and sin against God?
요셉 총리는 단 한마디로 말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찌. I how.라는 고백입니다. 요셉 총리는 여인과의 관계능력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능력을 크게 보고, 당신 때문에 나는 하나님과의 소중한 관계를 무너뜨리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자와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랑을 깨뜨릴 수 없었습니다. 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요셉 총리는 단호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 선택이 요셉 총리의 운명을 결정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예수님만을 선택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선택은 오직 하나만을 위한 유일한 선택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첫째, 예수님을 깊이 아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는 목적은 예수님을 닮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예수님으로 자신을 재건축하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은 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내가 원하는 색깔, 분위기, 가구, 장식을 선택하여 내가 살 집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집을 짓기 위하여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실 집을 짓기 위하여 나의 집을 헐고 재건축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집을 짓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예수님이 살기 위한 집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내 욕망과 생각과 체질을 예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친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바로 오늘 이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통해 주님께서 이루신 기도의 역사를 교회 공동체여러분들도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1. 힘을 다하여 기도하라.
2. 애를 써서 기도하라.
3. 더 간절하게 기도하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 공동체가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깊이 아는 것과, 따르는 것과, 닮는 것이라는 것이므로, 부르심의 기회를 응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어 나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이 나의 주님과 구세주와 그리스도님을 전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기를 구세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침기도: 지금은 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우리교회 공동체가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깊이 아는 것과, 따르는 것과, 닮는 것이라는 것이므로, 부르심의 기회를 응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어 나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변화되어 예수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과 구세주요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전파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구세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시기를 구세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교회를 위한 기도
1. ‘예수님이 주님과 그리스도이다’는 절대적 신앙 고백을 가지고 전도하게 하소서.
2. 목사님의 복음증거에 능력을 주시고 온 교회 공동체가 전도자가 되게 하소서.
3. 모든 교회 공동체가 전도의 명령과 사명을 받아 새 생명을 낳게 하소서.
4. 내 주변에 복음이 필요한 관심대상자를 찾아내어 만나게 하소서.
5. 관심대상자를 지속적으로 섬김으로 복음의 영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6. 최선을 다해 11월19일에 예배에 참석하여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2배 부흥 전도축제 5대 헌장 첫 째 (명령)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둘 째 (사명) 전도의 사명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서 상급 받는다. 셋 째 (구원) 사람들이 날마다 구원받는 교회가 되게 한다. 넷 째 (헌신) 전도를 위해 서로 기도하고 힘을 주고 격려하고 헌금한다. 다섯째 (희생) 2배부흥 전도축제를 위하여 생명 걸고 전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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