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성령이 맺게 하시는 열매들5-자비의 열매
요즘 현대인들은 내가 누구를 도와주어야 하는가보다는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사람을 사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는 그 사람이 하나님께 얼마나 쓸모있느냐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형편이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를 보시고 그들을 도우십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강도만난 자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는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긴데다가 입고 있던 옷을 빼앗겼고, 거기다가 강도에게 두르려 맞아서 거의 죽다시피하여 버려졌습니다. 그는 움직일수도 없었고,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제사장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신음하며 의식이 잃어가도 있었지만 그를 본 제사장은 멀찌감치 돌아서 자기 길을 갔습니다. 다음에는 레위인이 지나갔는데 그 역시도 이 사람을 보더니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 사람의 살 소망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중에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어쩌면 제사장도 자기를 외면했고, 레위인도 자기를 외면했는데 자기들이 원수처럼 여겼고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이 자기를 돕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발견한 사마리아 사람은 이 사람에게 달려와 상처를 기름과 포도주를 발라 소독하고 약간의 응급조치를 취한 후에 자기 나귀에 싣고 가장 가까운 여관으로 가서 방에 눕히고 여관주인과 함께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살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는 그곳을 떠나면서 환자의 숙박비와 치료비를 내주었고, 거기에 치료비와 숙박비가 더 들면 자기가 돌아올 때 추가로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셔 누가 이웃이냐고 물었던 율법사에게 “네 생각에는 이 세사람 중에 누가 이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율법사는 에수님께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강도만난 사람을 지나쳤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자비롭지 못한 사람들이었던 반면에 사마리아인 만큼은 자비로운 사람이었음을 행동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사람 마음 속에 있는 진정한 자비는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강도를 만난 자처럼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도와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직접 다가가서 돕는 경우는 드뭅니다. 특히 정치가들 역시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한 정책들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서 말을 들어보고 삶을 나누며 그들에게 진정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을 만나보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은 말만하는 그런 정치가들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자비를 베푸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진 돈은 없으셨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없는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며 다가서게 되어 있습니다.
물없는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이 찾는 것은 물입니다. 그래서 물을 많이 준비해서 가지만 물이 다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을 만큼 온 몸이 갈급해 있습니다. 그때 만난 누군가가 자신에게 물을 건넨다면 그는 자신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에게 감사하며 그 물을 마실 것입니다. 그가 자기 생명을 구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사람들에게 들린 귀신을 내쫓아 주시고 온갖 약한 것들을 고쳐주시니까 그 소문이 유대땅 여기저기에 퍼졌고 그 소문을 들은 온갖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 그리고 약한 자들이 예수님의 자비를 얻고자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모든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외면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고치신 예수님은 단 헌번도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로인해 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조차 예수님께 다가와 자기 병을 고쳐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요구를 한번도 묵살하신 적이 없이 다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가져야할 자비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자비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령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으시는 하나님이신 것처럼 또한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열매입니다.
이 성령의 열매들은 기록상 순서대로 놓았을 뿐아지 사실은 한꺼번에 맺히는 열매입니다. 과일로 말하면 아홉가지 맛을 한꺼번에 내는 그런 과일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는 앞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하고 뒤에 있는 것이 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다 똑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홉가지 열매가 자연스럽게 맺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께서 여러분의 육체를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선한 행실, 또는 선한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그 어떤 법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중 하나라도 금지할 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오늘 본문 말씀인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갖게 되는 변화가 일어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뭐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출애굽기 34장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고 소개합니까?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맨 첫 번째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감격하며 놀라게 됩니다. 자신 같이 약하고 보잘것없은 죄인을 아무 거리낌없이 사랑으로 대하시며 자비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은 죄악의 도시인 소돔성에 살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죄인들로 인해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롯은 거기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어려움은 당해도 육체적으로는 도시의 풍요와 향락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롯의 아내와 딸들 역시 그런 육체적으로 풍요롭고 친구들도 사귈수 있고 도시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그곳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소돔성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반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너무나 극에 달해서 이제는 다른 도시와 성들을 타락시키는 원흉이 될 정도였기에 결국 하나님은 이 성을 멸망시키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것도 다른 나라를 통해 멸망시키시지 않고 스스로 멸망시키려고 하셨던 이유는 다른 나라의 손에 이 도시들을 맡기게 되면 소돔과 고모라가 섬겼던 우상이나 생활방식, 그리고 온갖 악한 행위들이 다른 나라에 들아가게 되고, 결국은 그들 나라가 소돔과 싸워서 승리는 할지라도 영적으로는 멸망을 자기들에게 끌어들이는 원인이 되고, 또다른 나라들까지도 타락하게 만드는 악성 바리러스와 같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불로 멸망시키시고 이 성들을 청결하게 하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이고, 보이지 않는 병균이고 간에 모든 것을 다 태우심으로 죄악의 요소, 전염병의 요소, 온갖 악행의 요소들이 하나도 남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롯과 롯의 가족들에게는 기회를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천사가 소돔성을 방문했을 때 성문 앞에 있던 롯은 이 두 청년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소돔성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하지 않수 없었기 때문에 이 두 청년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로인해 그날 밤에 롯의 집에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일어났지만 그 설명은 생략하고 이제 잠깐 뒤에는 유황불이 하늘로부터 떨어져 소돔과 고모라 성이 완전히 불에 타게 될 때가 임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천사는 롯과 롯의 가족들로 하여금 빨리 이곳을 떠나라고 재촉을 했습니다. 하지만 롯의 가족들에게는 가져가고 싶은 패물들과 재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리며 지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두 청년의 모습으로 온 천사들은 롯의 가족들의 손을 잡아 강한 힘으로 성밖으로 이끌어 냈습니다. 가면서 뒤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던 간에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롯의 가족들을 이끌고 나갔는데 하늘에서 불이 성 안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성에서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롯의 아내는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 보았습니다. 뒤에 있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산으로 피하면서도 뒤에 있는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이 롯을 구해준 이유에 대하여 성경 창세기 19장 16절은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분이 아니고 공의롭기만 하셨다면 롯과 롯의 가족들은 모두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니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신지라 그들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롯의 가족들에게 그 큰 자비를 베푸신 이유에 대하여 창세기 19장 29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하나님이 롯을 생각하신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생각하셨던 것은 자신이 친구같이 여기셨던 아브라함이 롯을 잃고 마음 아파할 것을 생각하셔서 롯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여러분들 역시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덕분입니다. 디도서 3장 3-7절은 이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의 3절을 보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실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을 믿기 전의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하나님 편에서볼 때 우리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았고, 마귀와 사람들의 거짓말에 속았고, 여러 가지 세상이 주는 행락에 종노릇했고, 악독과 투기를 일삼았고 가증스러웠고, 피차 미워하면서 살았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비와 사람사랑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이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다시 말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하나님은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시면서까지 자신의 자비와 여러분들을 향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불쌍해서였습니다. 왜 그렇게 여러분들이 불쌍합니까? 성령이 아니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나 사두개인들이 왜 그렇게 엇나갔습니까? 그들이 성경을 몰라서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늘 성경을 읽고 실천하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잘 해보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자기 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 천주교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갔습니까? 성경을 몰라서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많이 읽었지만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라 자기의 힘으로 경건할려고 애를 썼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왜 성경을 그렇게 읽으면서 영적으로 타락합니까? 하나님의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주시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아니면 그 누구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진리도 명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나약하고 사탄에게 휘둘리기 쉬운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를 믿게 하심으로 인해 여러분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더니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이제는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의 크기입니다. 그냥 겨우 구원해주신 것이 아니라 아들의 죽음을 시작으로 은혜를 베푸시기 시작하셔서 자신의 자비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인해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로인해 이제는 하늘나라의 상속자들이 되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초 우주적이면서도 이 세상의 죄인들을 향한 구원을 계획하시고 구원을 실행하시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성령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가 만나주시고 그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복음을 통해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모든 사람들에게 싸잡아서 주시는 구원이 아니라 일대일의 관계적인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맺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진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성령으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으로 인해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비와 은혜를 베푸신 이유에 대하여 에베소서 2장 7절을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지극히 풍성한지를 가급적이면 과거의 세대와 현재의 세대와 미래에 다가오는 모든 세대에 나타내 증거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증거를 듣고 자신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께 나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자비를 구원받아 자신의 자녀로 삼은 성도들을 통하여 이 세상에 보여주심으로써 자신이 자비로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계실 때에 자신에게 오는 모든 사람들을 다 받아들이시면서 그들을 구원하셨듯이 지금도 복음을 듣고 회개하면서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나오는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하십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시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아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증거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자연스럽게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2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셔서 자신이 구원하실 형제들과 같이 되신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시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자녀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아버지의 아들답게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6장 36절입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성령의 열매인 자비의 열매를 맺는 자비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나타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비를 베푸는 삶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분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자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돕는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면서 지나갈 수 있지만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열며, 또다른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는 그런 삶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사람들이 알아주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여러분 안에서 가르쳐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열매를 맺는 삶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여러분들을 통해 어떤 사람에게 어떤 자비를 베풀기를 원하시는지 여쭈어보시는 기도를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그들을 어떻게 섬기면서 자비를 베풀어야 하나요?“허고 진지하게 여쭈어보시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할지를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자비의 영이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이 시대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으로써, 또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되어 영육간에 불쌍한 지경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자비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