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율동성당의 건축사적 의의
둔율동성당은 1954년 7월 17일 성당신축을 계획하고 225평에 현 군산 본당 성전 신축에 따른 부지공사에 착수 하였고, 1955년 3월 24일 성당신축허가를 받고 성전 건축을 시작하였다.
성당 건축을 위한 벽돌은 장항제련소에서 개발한 슬러시벽돌과 내화벽돌이 이용되었으며, 슬러시 벽돌의 강도는 너무 강했고 겉면이 날카로와 벽돌을 나르던 신자들이 손을 많이 다쳤다.
1955년 8월 17일 김현배 교구장 집전으로 성전 축복식 및 낙성식이 있었다. 성전은 연건평 145평(건평 126평), 종각높이 92척(약 28미터), 외장은 내화벽돌조였으며 성전 바닥은 나무마루로 준공하였었다.
성전안의 좌우측과 후미의 2층지지를 위한 기둥이 있었으며 제대를 신자석 보다 가로길이를 작게 하고 그 크기를 2층지지를 위한 기둥과 일직선상에 있게 건축하는 등 바실리카양식을 일부 응용하였으며, 성전 외관은 고딕양식에 따른 창문, 종탑부 창호, 장미창, 성전입구, 종탑을 설치하여 서양 성전 건축양식 중 고딕양식에 충실하였다.
이렇게 건축된 군산성당은 한국전쟁 이후 군산에 설립된 최초의 대형 건물로 1955년 12월에 완공된 군산 구암교회 보다 빠르다.(구암교회당 규모도 군산 본당의 1/2수준 약 70여평) 또한 한국전쟁 이후 호남지역에 준공된 최초의 성당으로 호남의 서북부지역을 대표하는 성당으로 자리하였다.
군산 본당의 성전은 한국의 천주교 성전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군산본당의 성전은 위에서 언급한 전통적인 교회 건축양식 중 고딕양식을 기반으로 바실리카양식을 접목하였으며, 제대위치를 남쪽으로 향하게 건축하였다.
서울 명동성당, 전주 전동성당 등과 같이 제대위치가 남쪽을 향해 있고 출입문이 북쪽을 향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에 행하던 미사의 방식이 사제가 신자를 뒤에 두고 벽을 향해 미사를 집전하던 전통의 방식에 따라 사제가 남쪽을 바라보고 미사를 집전하는 방식을 따랐다.
이는 중세 유럽(특히 이탈리아 및 프랑스)에서 미사전례 시 사제가 예루살렘방향인 남쪽을 향해 미사를 집전하던 전통이 있었으며, 명동성당과 전동성당 그리고 군산성당 등이 전통에 따랐다.
다만 명동성당과 전동성당 등은 남쪽을 향하면서 제대의 채광을 위해 스테인-글라스로 창을 내었으나 군산성당은 외벽에는 창을 두었으나 제대와 외벽사이에 제의실이 위치하고 있어 성당 내부에서는 성당 뒤편의 스테인-글라스를 통하여 채광을 받을 수 없다. 이유는 전기의 공급으로 자연채광이 절대적이지 않았다는 현실적인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 성전의 경우 지붕을 2중으로 건축하여 신자석 채광을 받으려고 하였고 성전 제대부근 좌우를 건축하여 제대의 사제에게 채광을 주려 하였다.
그러나 전기보급 이후인 1955년에는 굳이 공사비가 많이 드는 2중 지붕을 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기존의 전통적인 건축방식에서 벋어나 일체형 사각방식으로 건축하였던 것이다. 대신 창을 길게 하여 고딕양식을 살리면서 스테인-글라스로 창에 설치하여 경건하고 성스러움을 살린 것이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전주중앙 성당 성전건축양식에 응용되었고 이후 한국의 여러 성당건축양식에 응용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군산성당은 한국의 성당건축사 입장에서 본다면 전통적 양식을 기반으로 현대적 건축양식을 절충한 건축양식이며, 이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 내 천주교 발전에 따른 도시형 성당건축에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