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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모든 것] (25) 제대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주님의 거룩한 식탁
나처음: 성당에 가면 신자들이 여기저기에 예를 표하는 걸 봐요. 십자가, 성상, 제대, 감실을 향해 경건하게 절을 하는 걸 보면 저절로 저 자신도 성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심장처럼 성당에서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장소는 어디인가요?
조언해: 성당의 심장은 바로 ‘제대’이지. 성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한 주제대. 그곳이 바로 성당에서 가장 거룩하고 중심이 되는 자리야.
라파엘 신부: 고마워! 언해. 제대는 신앙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인 미사 곧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란다. 교회가 그리스도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제대 없이 그리스도를 말할 수 없단다. 우리가 정말 잘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성당 안에 제대가 설치돼 있는 게 아니라, 제대를 보존하기 위해 성당이 지어졌다는 사실이야. 또 한 가지 우리가 상기해야 할 것이 있단다. 전례는 세상의 시간을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으로 변화시킨다는 거야. 바로 그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는 것이지. 그래서 지상에서 드리는 미사를 ‘하늘나라의 전례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지. 하느님의 내려오심과 인간의 올라감이 교차하고 일치하는 곳이 바로 ‘제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
나처음: 저는 사제와 신자를 구분하는 경계인 줄 알았어요.
라파엘 신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성전이 ‘지성소’와 ‘성소’로 구분되듯이 성당도 크게 ‘제단’과 ‘회중석’으로 나뉘어요. 제단은 사제들의 전례 공간으로 회중석과 구별되게 몇 개의 단으로 높여 놓은 자리를 말해. 그 제단 가운데에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 놓은 식탁 같은 것을 바로 ‘제대’라고 해. 사제는 이 제대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자신을 봉헌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념하고 재현하지. 그래서 제대를 ‘주님의 식탁’ ‘거룩한 식탁’이라고 하지.
제대는 또 주님께서 영원한 사제직을 거행하시는 천상 제대일뿐 아니라, ‘바위’(1코린 10,4)요 ‘살아 있는 돌’(1베드 2,4)이시며 ‘모퉁잇돌’(에페 2,20)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단다. 그래서 신자들은 미사를 봉헌하지 않을 때에도 제대 앞에서는 깊은 절을 하며 주님께 흠숭의 예를 갖춘단다.
조언해: 교리교사 교육을 받을 때 전례를 가르치던 신부님께서는 제대를 ‘영혼의 성소’라고 표현하셨어요.
라파엘 신부: 참 좋은 말이구나. 제대(Altare)는 라틴말 ‘드높은’(altus)에서 유래한 말이야. 풀이를 하면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드높은 자리라 할 수 있겠지.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것 중 가장 고귀한 것은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이야. 자기 위에 하느님을 받들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섬기고 헌신할 능력을 갖춘 게 바로 인간이란다. 제대는 가장 깊고 고귀하고 심오한 하느님의 섬김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내 주는 표상이지.
나처음: 제대도 미사 양식처럼 많은 변천이 있었겠네요.
라파엘 신부: 초대 교회 때는 박해자들을 피해 신자 가정에서 성찬 예식을 거행했다고 예전에 설명했었지. 그때는 당연히 주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사용하셨던 것처럼 나무로 된 가정용 식탁을 사용했겠지. 요즘도 나무 제대를 사용하는 성당이 많이 있단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식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지상에 드디어 교회가 세워지게 되지. 당시 건축자재 대부분이 돌이어서 제대도 돌로 꾸며졌지. 이동식 나무 제대가 고정식 돌 제대로 바뀌면서 식탁 중심의 성찬례가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제대 중심의 제사로 변하게 되었단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통해 전례를 개혁했는데, 제대와 관련해서는 제대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바람직하고, 회중 전체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집중할 수 있도록 성당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하며, 새 성당을 지을 때 제대는 하나만 세워야 한다고 결정했지.
나처음: 제대를 성당 동편에 두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조언해: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빛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이지.
라파엘 신부: 초대 교회 때부터 동쪽을 향해 기도하는 게 전통이 되었지. 언해의 말처럼 동쪽은 예루살렘 성전을 대체하며 태양은 그리스도를 상징해요. “세상 모든 민족들이 가슴을 치면서,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태 24,30; 묵시 1,7 참조)는 주님의 말씀에 희망을 품은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마중하고,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우리 모두가 함께 들어가는 것을 체험하였단다. 그래서 교회는 동쪽을 향해 제대를 설치해 성당을 지었지.
나처음: 고대인들은 몰라도 현대인들에게 이런 설명이 먹힐까요? 하느님께서 어디에나 두루 계시는 분이신데 기도와 전례 장소가 특정 방향에 얽매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라파엘 신부: 좋은 지적이구나. 하느님께서 온 우주를 아우르시고 우리와 더 내밀하게 계신다는 보편적 시각을 갖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해. 그러나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교회의 전례는 우리에게 모습을 보이시는 하느님을 향해야 한다는 점이야.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지상의 시간과 공간 속에 현존하셨듯이 전례 역시 그와 같아야 한다는 거야. 곧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그리스도께 부합해야 한다는 거지. 이것을 교회 용어로 ‘성사’라고 표현할 수 있어.
나처음: 제대에 하얀 제대포를 까는 이유도 설명해 주세요.
조언해: 교리 시간에 주님의 ‘수의’를 상징한다고 들었어요.
라파엘 신부: 제대에 관해 궁금한 것이 참 많구나. 제대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했지. 제대를 축성할 때 성유를 바르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에 앞서 도유를 받으시어 “기름 부음 받은 이”라고 불리시기 때문이야.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성령의 도유로 성자를 대사제로 세우시고,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그 몸을 제대로 삼고 그 목숨을 제물로 삼아 희생 제사를 바치게 하셨지.
제대포로 제대를 덮는 것은 그리스도교 제대가 ‘성찬례의 제대’이며 ‘주님의 식탁’임을 나타내기 위함이야. 제대를 중심으로 마주한 사제와 신자들은 임무는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같은 행위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제사를 드리고 주님의 만찬을 나누지. 그래서 교회는 제대를 희생 제사가 이루어지는 친교의 식탁으로 마련하고 성대하게 장식한단다. 그리하여 제대는 모든 신자가 거룩한 천상 양식, 곧 희생되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려고 기꺼이 모여있는 주님의 식탁을 드러내지. 제대가 그리스도를 상징하니 언해가 말한 것처럼 제대포가 수의를 상징하는 것이라 해도 틀린 것은 아니라고 봐.
제대가 드러내는 의미보다 우리가 중시해야 할 것은 성당의 심장인 제대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깊은 곳에 있는 내적 성전과 일치를 이루는 일이야. 그럴 때 제대가 영혼의 성소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전례 탐구 생활 (33) 보편 지향 기도
신앙 고백이 끝나면 우리는 보편 지향 기도에서 온 교회의 필요와 전 세계의 구원을 위한 우리의 청원을 드립니다. 신자들은 그들 자신과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그들이 세례 때 받은 사제직을 수행합니다. 이 때문에 ‘신자들의 기도’라고도 불리는 이 기도는 미사의 가장 오래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155년, 순교자 성 유스티노는 로마 황제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미사 중에 무엇을 하는지 설명하는 서신 형식의 글을 썼는데, 성경 독서와 강론 다음에 이어지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다음에는 모두 함께 일어나 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삶과 행동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계명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이 되어 영원한 구원을 얻도록, 우리 자신과 …… 다른 사람들과, 또 그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든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대신 간청하고 탄원하는 기도의 일종인 ‘전구’(轉求)는 고대 유다인 회당의 예배에서 볼 수 있는 기도 형태로, 초대 교회도 이를 이어 받았습니다. 헤로데가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자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고, 그날 밤 천사가 나타나 그를 사슬에서 풀어주었습니다(사도 12,1-7), 성 바오로는 제자 티모테오에게 가르침을 줄 때 모든 사람을 위하여 전구를 드리라고 말합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우리가 아주 신심 깊고 품위 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1-4). 바오로도 자신이 세운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였고(1테살 1,2-3), 그들에게도 자신의 활동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2코린 1,11). 신약 성경이 이렇듯 강력하게 전구 기도를 권고하고 있는 만큼, 그리스도교 초창기부터 보편 지향 기도가 공식적으로 미사 안에 둥지를 튼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미사 전례가 성직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신자들의 기도는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복원되었습니다.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 사제가 되게” 하셨고(묵시 1,5-6 참조), 서품된 사제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전체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1베드 2.9)이기 때문에, 신자들이 세례 때 받은 사제직을 정당하게 수행할 수 있는 길이 더 넓게 열리기를 바랐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자들의 기도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옛 전통은 신자들의 기도를 드리기 전에 예비 신자들을 성당에서 나가게 하여,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서로가 일치를 이루는 이 기도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 특별한 은총임을 드러내었습니다.
보편 지향 기도로 말씀 전례가 끝납니다. 미사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은 성경을 통해 선포되고, 강론을 통해 해설되며, 신경을 통해 요약되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말씀으로 양육된 신자들은 이제 교회와 세상의 필요를 위한 기도로 응답합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필리 2,4) 주는 보편적인 정신을 지니도록 단련시키고, 다른 모든 이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성찬 전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줍니다.
[미사의 모든 것] (24) 예물 준비
제대 위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될 예물을 차리다
조언해: 지난 주일 교무금을 내러 본당 사무실에 들렀는데 한 자매가 수능 100일 미사 예물을 했는데 자녀가 시험을 못봤다며 신부님이 영험(?)하지 못하고 능력이 없는 거 아니냐며 사무장님께 마구 따지고 있었어요. 사무실에 있던 모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돈만 내면 하느님의 축복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라파엘 신부: 내가 이야기 하나를 들려줄게. 어느 날 악마들이 지옥에서 회의를 열었단다. 사탄의 우두머리 루시퍼가 한숨을 쉬며 말했지. “어떻게 해야 교회를 세상에서 없앨 수 있을까? 박해하고 이간질을 하게 해 여러 교파로 갈라서게 해도 번창하니 도리가 없네!”라고. 이 말을 들은 사탄들도 모두 허공만 쳐다보며 한숨만 내쉬는데 끝자리 구석에 앉은 꼬마 악마가 손을 들고 말했지. “루시퍼! 아무 걱정 마세요. 교회가 잘되도록 도와주세요. 박해도 없고 신자 수도 늘게 해 주고, 큰 성당도 짓도록 도와주세요.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교회에 많은 돈을 주세요. 돈만 주면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저절로 망할 거예요.” 악마들은 모두 무릎을 치며 한마음이 되어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단다. 이처럼 돈이 무서운 거란다.
나처음: 그런데 얼마만큼 내야 헌금을 제대로 바쳤다고 할 수 있나요.
라파엘 신부: 네가 지금 가진 걸 다 바쳐야 한다면 그렇게 할래? 많은 이들이 미사 예물, 즉 봉헌금의 의미에 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오해도 많고, 또 다른 이들에게 나쁜 표양을 주는 것 같아 안타까워. 초대 교회 때부터 미사를 거행할 때 신자들은 예물을 정성껏 준비해 하느님의 거룩한 식탁에 봉헌했단다. 당시 신자들은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빵과 포도주, 우유, 꿀, 그 밖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가져왔지. 그러면 사제는 이중 얼마를 떼어 미사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교회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사용했단다. 이처럼 예물 봉헌은 첫째,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둘째, 사제의 생활과 교회 운영 그리고 사목과 자선 활동을 돕는다는 이중의 의미가 있어요.
나처음: 미사 예물의 뜻이 이렇다면 봉헌금 액수만큼 하느님 은총을 받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네요.
라파엘 신부: 미사 예물의 액수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그릇된 거란다. 미사가 공동체의 예배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미사 지향을 둔 그 미사가 마치 자기 것인 양 착각한다면 어리석은 일이지. 사제와 교회를 위해, 특히 전 세계 가난한 교회의 사제와 이웃을 위해 미사 예물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 각자가 성의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겠지.
조언해: 좀 전에 초대 교회에선 미사 예물을 빵과 포도주 등 현물로 봉헌했다고 하셨는데 언제부터, 또 왜 헌금으로 대치되었나요?
라파엘 신부: 미사의 예물 준비 예식은 주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당신 손에 드셨던 빵과 포도주, 그리고 물을 제대로 가져가는 행위에서 발전한 것이란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인정하고 박해를 종식하면서 지상에 교회가 세워지고 신자 수가 급속히 늘어났어요. 이에 따라 미사의 예물이 많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예물을 봉헌하는 행렬도 길어졌지. 그래서 긴 봉헌 행렬 동안 가만히 있기보다 예물 봉헌에 알맞은 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어요. 11세기 이후 상공업의 발달로 화폐 통용이 일반화되면서 봉헌 예물도 현물에서 헌금으로 바뀌었지.
조언해: 일반적으로 미사 해설자들이 ‘봉헌 예식’이라고 하는데 ‘예물 준비’는 좀 생소해요.
라파엘 신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 이전에는 미사의 제사 의미를 강조해 예물 준비가 오로지 ‘제물 봉헌’ 예식으로 인식해 봉헌 예식이라고 불러왔단다. 하지만 교회가 미사 중에 봉헌하는 본 예물은 교우들이 바치는 빵과 포도주, 헌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며, 이 예물은 감사 기도 중에 십자가의 제물로 축성돼 봉헌된단다. 그래서 오늘날 전례는 ‘봉헌 예식’이라 하지 않고 성탄 식탁을 차리고 예물을 준비하는 본래 의미로 되돌려 ‘예물 준비’라고 한단다. 그렇다고 예물 봉헌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냐. 교우들이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고, 헌금함으로써 분명 자신을 봉헌한다는 정성과 마음을 표시하기 때문이야.
나처음: 예물 준비가 성찬 전례의 독립된 예식이라면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라파엘 신부: 좋은 질문이구나. 예물 준비 예식은 제대 준비, 예물 봉헌, 제대 차림, 예물 준비 기도, 정화 예절로 구성돼 있단다. 먼저 성찬 전례의 중심이며 주님의 식탁인 제대를 준비해. 성체포와 성작 수건, 미사 경본을 제대에 펼쳐 놓아요. 그런 다음 예물 봉헌이 이어지지. 사제와 부제는 빵과 포도주, 물을 제대로 옮겨 놓는단다. 이때 예물인 빵과 포도주, 물은 신자들이 가져오도록 권장하지. 신자들이 전례 때 쓸 빵과 포도주, 물을 옛날처럼 자기 집에서 가져오지 않더라도 이 예식의 가치와 영적인 뜻을 그대로 살리기 위함이란다.
예물 봉헌 행렬이 이어지는 동안 사제는 정해진 기도문을 바치며 빵과 포도주를 제대 위에 차려 놓아요. 그런 다음 사제는 빵이 담긴 성반을 두 손으로 제대 위에 조금 높게 받쳐 들고 조용히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라고 예물 준비 기도를 바친단다. 이어 사제는 성작에 포도주를 붓고 물을 조금 따르면서 속으로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다음 성작을 조금 높이 받쳐 들고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포도로 가꾸어 얻은 이 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해. 이 기도는 모두 유다인의 음식 축복 기도에 성찬의 의미를 더해 만든 축복 기도란다.
제대 차림과 예물 준비 기도를 바친 후 사제는 허리를 굽히고 “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오늘 저희가 바치는 이 제사를 너그러이 받아들이소서”라며 간청한 후 정화 예절을 이어가. 먼저 사제는 제대 위에 놓은 예물을 분향하고 그다음에 십자가와 제대에도 분향하지. 분향은 교회의 예물과 기도가 향이 타오르는 것과 같이 하느님 앞에 올라가는 것을 표현해. 이어서 부제나 다른 봉사자는 사제와 그리고 교우들에게 분향해요.
그다음에 사제는 제대 옆에서 손을 씻으며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라며 내적 정화를 바라는 열망을 기도를 바친단다. 이어 사제는 제대 한가운데에 서서 교우들을 바라보며 팔을 벌려 “형제 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이 제사를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꺼이 받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라고 요청하면 교우들은 일어서서 “사제의 손으로 바치는 이 제사가 주님의 이름으로 찬미와 영광이 되고 저희와 온 교회에는 도움이 되게 하소서”라며 응답하지. 예물 준비 예식은 이렇게 진행된단다.
[미사의 모든 것] (23) 성찬 전례
빵과 포도주 형상으로 오신 그리스도, 참양식으로 나누다
나처음: 미사는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두 부분으로 이뤄진다셨는데 성찬 전례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조언해: 그건 교리교사인 내가 설명해줄게. 성찬 전례는 △ 예물 준비 △ 예물 기도 △ 감사 기도 △ 영성체 예식으로 구성돼 있어. 성찬 전례를 시작하는 예물 준비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될 예물, 즉 빵과 포도주를 제대에 가져다 놓는 예식을 말해. 사제가 예물을 준비하는 동안 미사에 참여한 이들은 헌금이나 준비한 다른 예물을 봉헌하지. 예물 준비가 다 되었으면 사제는 신자들을 초대해 함께 예물 기도를 바쳐. 그런 후 성찬 예식의 정점이고 미사의 중심인 감사 기도가 시작되지. 이 기도는 감사와 축성 기도로 이뤄져 있어. 사제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 전체에 대해 찬양을 드리는 감사송을 바치고, 신자들은 “거룩하시다”로 환호해. 그런 다음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만찬 때에 몸소 제정하신 성체성사를 거행하지. 이어 사제는 그리스도께 받은 교회의 명령을 이해하며 사제들과 성인들을 기억하는 기념제를 지내고, 성체성사를 통해 모든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해 미사를 봉헌한다고 전구하며 영광송을 바친단다.
그런 다음 사제는 바로 빵을 나누는 예식인 영성체 예식을 이끌어. 주님의 기도를 다 함께 하고, 평화의 인사를 나눈 후 주님의 성체를 영하지.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이 마련돼 나누는 전체 예식을 성찬 전례라고 해.
라파엘 신부: 언해가 정말 설명을 잘해주었구나. 성찬 전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체성사란다. 성찬 전례는 마지막 만찬 때에 주님께서 빵과 잔을 들고 하신 말씀과 행위를 반복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성찬 전례는 마지막 만찬의 형식과 절차에 따라 구성돼 있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빵과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쪼개시고, 빵과 잔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받아 먹어라. 받아 마셔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의 잔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고 말씀하셨지.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 말씀과 행동에 맞추어 성찬 전례의 거행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어. 주님께서 손에 드셨던 빵과 포도주와 물을 제대에 가져놓고(예물 준비), 하느님의 모든 구원 업적에 대해 감사를 드리며 축성을 하지. 이때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고(감사 기도), 사도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손에서 받아먹고 마셨듯이, 신자들은 하나의 빵에서 주님의 몸을 받아먹고 하나의 잔에서 주님의 피를 마시지(빵 나눔과 영성체). 이렇게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참양식으로 나누는 것이 성찬 전례의 핵심이란다.
조언해: 그런데 말씀 전례의 미사 독서는 매일 내용이 바뀌는데 성찬 전례 예식은 항상 그대로 인가요.
라파엘 신부: 좋은 질문이구나. 말씀 전례의 미사 독서는 늘 바뀌지, 특히 말씀 전례의 핵심인 복음은 그날 미사의 주제가 되기에 항상 새로운 것이지. 하지만 성찬 전례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재현하고 기념하는 것이므로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마지막 날까지 항상 그대로 반복돼요.
하지만 정말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단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는 주님의 명령은 우리에게 당신 선물에 응답하고 그 선물을 성사로 표현하라는 당부이시지. 주님의 완전한 선물을 기념하는 것은 단순히 주님의 마지막 만찬을 반복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찬례 자체, 곧 그리스도교 예배의 근본적인 새로움 자체에 있단다. 이것은 주님께서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를 당신에게로 이끄시어 하나 되게 하시는 것이란다. 따라서 성찬 전례는 사제가 주님의 마지막 만찬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념’하고 ‘현존’하게 하는 것임을 꼭 알아야 해.
조언해: 과거에는 성찬 전례가 거행되면 세례받지 않은 이들은 모두 성당에서 나가야 했다고 들었어요.
라파엘 신부: 그랬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전까지는 성찬 전례를 ‘신자들의 미사’ ‘봉헌 미사’라고 했지. 언해 말처럼 세례받지 않은 이들은 모두 성당에서 나가고 오직 세례받은 신자만 남은 가운데 성찬 전례가 거행되었기 때문이란다. ‘봉헌 미사’라는 말은 성찬 전례가 교우들의 예물 봉헌으로 시작하고, 감사 기도에서 참된 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 봉헌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 그런데 봉헌 미사라는 말은 성찬 전례의 의미나 내용을 반영하지만, 그 특성을 전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하는 표현이란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한 전례 개혁 이후 교회는 ‘성찬 전례’ ‘감사 전례’라고 부르고 있단다. 교회는 전례 중에 빵과 포도주잔을 들고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 업적을 기념하면서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성령과 함께 교회를 성부께 봉헌하기 때문이야.
나처음: 초기 그리스도교를 인육을 먹는 종교라고 박해한 이유가 성체성사에 관한 오해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라파엘 신부: 엄청난 오해였지. 음식은 생명의 자양분이지. 우리의 몸이 음식과 결합돼 있듯이 우리 각자도 자신의 생명으로서 하느님과 하나로 결합해야 한단다.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분을 먹고 마시고 삼켜서 양식으로 채우는 것이지.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5-57)고 말씀하셨지. 하느님의 살을 먹고, 하느님의 피를 마시고 살아 계신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받아들인다는 이 엄청난 일이 바로 성찬 전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야.
나처음: 그런데 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빵과 포도주로 표현되나요?
라파엘 신부: 빵은 양식이지.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실속있는 양식이지. 그만큼 빵은 참된 것이지. 그래서 빵의 형상으로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위해 산 양식이 되어 주시는 거야.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우리는 하나인 빵을 쪼개 나누어 먹습니다. 이 빵이 우리에게 불사의 영약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바라셨지.
포도주는 음료이지. 물처럼 목을 축여주기만 하는 음료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지.(집회 31,28 참조) 이처럼 포도주는 목을 축여줄뿐더러 기쁨과 만족, 풍요를 안겨주지. 저명한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술은 모든 것을 시원하고 밝게 승화시켜 주는 맑은 아름다움이고 향기이며 생기”라고 예찬했단다. 이런 포도주(술)의 형상을 취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당신의 신성한 피를 주셔. 그것은 단지 음료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이 넘쳐흐르는 몫으로 주신 것이란다. 그래서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그리스도의 피는 나를 취하게 하소서!”라고 자주 기도했지.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신심이 돈독했던 아녜스 성녀는 “나는 그의 입에서 꿀과 젖을 빨았고 그의 피는 나의 볼을 곱게 물들였다”고 했지.
이처럼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빵과 술로 우리의 참된 양식이 되어 주신 분이셔. 우리는 이제 그분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거야. 과르디니 신부는 “빵은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함을 말하며, 술은 과감과 세상이 모르는 기쁨, 향기와 아름다움, 탁 트인 마음과 무진한 베풂을 말한다. 술은 또한 삶과 가짐과 줌의 희열을 뜻한다”고 성체성사를 풀이하셨단다.
나처음: 주님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신 의미가 이렇게 심오한지 이제야 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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