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상 모든 자동차와 똑같이 취급할 수 없는 독특한 선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차, 실내 공간을 보아도 하나 하나의 장비에 미적 감각과 기능이 담긴 차, 바로 이것이 영국 재규어 의 차다. 고전미가 흐르면서도 현대적인 기술을 가득 담은 재규어는 영국의 전통을 미묘하 게 살리면서 계승해 영국 귀족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계급제도 속에서 이 차를 소유함으로 써 나도 상류계급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히게 하는 차, 재규어는 딴 나라 사람 들한테까지도 그렇게 동일시된다.
고급 스포츠 설룬의 영역 개척하고 1935년 발표한 SS재규어 큰인기
물론 이와 맥을 같이하는 롤즈로이스가 있지만 이 차는 제왕의 차 같은 인상이어서 같은 고급 설룬이면서도 어떤 위화감을 준다. 재규어는 영국이 낳은 지고(至高)의 고급 스포츠 설 룬이라는 새로운 영역도 개척해 놓았다. 한때는 스포츠카 부문에서 이태리의 페라리, 독일의 포르쉐 그리고 영국의 재규어라는 삼대(三大) 산맥을 이룬 적도 있다.
재규어를 말할 때는 이 회사의 창설자인 윌리엄 라이온즈경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22 년 사이드카의 차체를 만드는 작은 공장으로 자동차일을 시작했다. 모터사이클 선수로 이름 을 날리던 그때의 나이는 20세였다.
그가 설계한 사이드카는 가볍고 멋이 있어 사업은 곧바로 번창했다. 그는 아름다운 선과 면에 대한 천부적인 소질과 함께 경영자로서의 탁월한 소질도 갖고 있었다. 이때 이미 그는 스타일링에 대한 중요성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자동차업계에 진입하는 첫걸음으로 는 당시 영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차였던 오스틴 세븐에 아주 멋들어진 차체를 얹어 싸게 제공할 것을 계획했다. 이렇게 해서 오스틴 스왈로가 탄생했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차를 값싸게 만들 생각으로 엔진과 차대는 직접 만들지 않고 스탠다드사에 하청을 주었다. 싸게 차대를 만들어 그것에다 스마트한 차체를 얹어 완성차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SS1은 31년의 런던모터쇼에 전시되자마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 다. SS1은 높이가 130cm밖에 안 되는 2인승차로 긴 엔진부와 거주부분과의 비율이 1:1이었 다. 아무리 보아도 당시의 최고급차 벤틀리같이 생겼지만 값은 벤틀리의 1천 파운드에 비해 불과 310파운드밖에 되지 않아 선풍적으로 팔렸다.
35년에는 사이드 밸브의 2.5ℓ 엔진을 오버헤드 밸브(OHV)로 개조해 새로운 차대에 얹었 다. 이 아름다운 설룬을 SS재규어라 이름지어 그해 가을에 등장시켰다. 이것도 벤틀리 값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대중들은 열광했다. 36년에는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SS100을 내놓고 처음으로 시속 100마일(160km) 기록을 깼다. 값은 여전히 395파운드였다.
2차대전 후에 회사이름을 재규어로 바꾸었다. SS100을 대체하는, 너무나도 유명한 XK120 이 등장한 것이 1948년이다. 라이온즈 스스로가 디자인한 미끄러지는 듯한 선으로 장식된 차체에다 DOHC 6기통 엔진을 얹은 이 차는 그때까지의 영국차 개념을 하루 아침에 바꾸어 놓은 역사적인 모델이다. 50년에 열린 런던모터쇼의 인기도 재규어가 독점했다. XK120은 140, 150으로 진화하면서 미국에 대량 수출되었다.
재규어사의 눈부신 발전은 국제 레이스 특히 르망 24시간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1951 년 XK120이 우승을 거머쥐었을 때 재규어와 영국의 이름은 충천했다. 35년에 라곤다가 우 승한 이래로 16년만에 그 영광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재규어는 이후 53, 55, 57년에도 우승 해 영국의 사기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라이온즈는 1970년까지 재직하면서 XJ시리즈까지 모든 모델의 스타일링에 관여했다. 이후 회사경영이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그가 85년에 83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재규어사는 영국 의 기간산업 중 하나로 꾸준히 발전해 왔다. 또 그는 영국 전통미를 살리는 자신의 독특한 디자인이 그대로 지켜져 재규어사가 세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는 것을 확인하면서 눈을 감았으니 참으로 보람있는 일생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영국왕실은 그에게 `경` (Sir)이란 기사칭호까지 내려 마음 편히 승천하게 해준다.
나도 재규어를 좋아한다. 자동차에 경험을 쌓은 사람이라면 벤츠나 BMW 다음에 으레 재규어로 관심이 옮아간다. 빈틈없는 벤츠, 고성능의 BMW를 맛본 다음에는 기품 있는 여유 를 과시할 수 있는 재규어차로 낙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멋을 아는 사람의 차인 재규어를 나도 한 번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다.
재규어 설룬 중 스포츠 모델인 XK시리즈는 앞서 열거한대로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나 이 차보다 약간 작은 형태로 XK 분위기를 가진 차가 일반 보급형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 1955년에 등장시킨 것이 MKⅠ(마크Ⅰ)이다. 2.4ℓ 엔진을 얹은 이 차는 특히 미국인들에게 대환영을 받았는데 최고시속 193km를 자랑했다.
이어서 59년에 나온 MKⅡ(마크Ⅱ)는 2.4ℓ, 3.4ℓ 엔진을 얹은 차로 드디어 최고시속 201km를 돌파했고 0 →시속 100마일(160km) 가속을 25.1초에 주파하는 위세를 보였다. 특 히 스포츠 세단이면서도 고전미가 흐르는 전체적인 차체 모양과 독특한 앞 그릴, 4개의 둥 근 라이트가 인상적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이 차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 영국에는 이와 똑같은 레플리카를 만드는 회사가 있고 일본에서도 미쓰오까(光岡)사가 이 전통을 이은 차 를 만들고 있을 정도다.
재규어 마크Ⅱ는 1963년 10월 3.8ℓ 엔진을 얹은 S타입으로 발전해 라이벌차인 벤츠 300E, BMW 5시리즈와 여러 경주에서 성능을 겨루는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S타입은 특히 코너링이 우수했다. 그 이후 재규어는 어찌된 셈인지 이 차의 생산을 중단했다. 그러다가 그 야말로 모든 것을 쇄신해 완전히 변신한 S타입으로 1998년 10월 영국 버밍엄 모터쇼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지난해 일본으로 건너가 MKⅡ와 비슷한 차를 만드는 미쓰오카사를 방문, 그 회사의 차를 타보고 자동차생활에 시승기를 실었다. 그러나 그 차는 외형만 MKⅡ와 닮았을 뿐 엔진은 닛산 것이어서 어디까지나 레플리카였다.
강력한 이미지, 3.0 236마력 엔진 얹어 사이드 미러, 실제 거리감각과 차이 커
오늘 드디어 완전히 변모한 진짜 S타입을 시승할 기회를 얻었다. 이 차는 6월에 처음으로 시판되는 명실공히 새로운 첫 번째의 재규어 S타입이다.
`으와!`
내 눈앞에 나타난 실물은 옛 MKⅡ에 비하면 크기도 커졌고 너무나도 박력있다. 특히 앞 그릴과 4개 헤드라이트 디자인의 참신함에 그야말로 소스라치게 놀랬다. 벤츠 E시리즈와 비교해도 재규어의 팔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력한 이미지를 준다. 뒷면의 테일램 프 디자인도 멋있다. 외모를 보니 당장 어디로인가 뛰쳐나갈 것 같은 인상이다. 내 입에서는 감탄사만 연달아 나왔다.
`으와! 굉장하구먼!`
오늘 내가 타는 S타입은 V6 3.0ℓ DOHC 236마력 엔진을 얹은 모델이다. 최대토크는 4천 500rpm에서 28.7kg·m가 나온다. 무게가 1.66톤이니 무난하고 길이가 4천861mm이니 꽤나 긴 편이다. 최고시속은 235km다.
이들 수치를 경쟁상대인 벤츠, BMW와 비교해 보자. 벤츠 E320은 출력 224마력, 최대토 크 31.5kg·m, 길이 4천795mm, 무게 1.58톤, 최고시속 238km고, BMW 530 투어링은 출력 184마력, 최대토크 39.0kg·m, 길이 4천805mm, 무게 1.76톤, 최고시속 222km다. 재규어 S타 입은 성능상으로는 BMW 530보다 우수하고 벤츠 E320과는 막상막하다. 그러나 길이가 벤 츠보다 70mm나 길어 스타일면에서 여유가 있다.
차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우선 딱딱한 좌석이 인상적이다. 벤츠 좌석이 딱딱하다는 평이 있지만, 이 차는 벤츠 것보다 더 딱딱하다. 특히 등받이가 단단하다. 딱딱하고 연한 것 중 어느 편이 좋은가는 타는 사람의 취향에 따르겠지만 나는 딱딱한 것이 좋다.
차 내부 디자인이 아주 간편하게 정돈되어 있어 호감이 간다. 일본차처럼 너무 지저분하 게 부대시설을 늘어놓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특히 눈앞의 계기판은 간단하게 필요한 것만 갖춰 운전자가 속도를 즐기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다.
변속 기어장치는 5단 AT로 P, R, N, D까지는 직선으로 끌어내리고 다시 2, 3, 4단은 U자 로 비틀어 올리게 되어 있어 특이하다. 보면 볼수록 실내 디자인이 우아하고 세련되었다. 중 후함보다는 속도감을 더해주는 날렵한 인상을 준다.
자, 출발이다. 미끄러지듯이 나간다. 스티어링 휠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찰싹` 손에 잡히는 듯하다. 올림픽도로로 나섰다. 아주 복잡한 교통사정이지만 이리저리 차들 사이를 드 나드는 쾌감이 제법이다. 가볍고 힘차다. 접지감각과 직진성도 재규어가 자랑하는 그대로 다.
그런데 한 가지 당황스러운 점이 있었다. 룸미러에 비치는, 뒤나 옆에 따라붙는 차들과의 거리감각이 사이드 미러로 보이는 감각과는 너무나도 큰 차이를 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이드 미러로 느끼는 딴 차와의 거리감각이 실제보다 훨씬 멀리 느껴진다.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는 사이드 미러만 믿고 딴 차를 추월하려고 밀고 들어가다 추돌하기 쉬울 것 같다. 이렇게도 훌륭한 재규어가 사소한 미러감각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 아쉽다.
고속주행 진동 없고 안정감 뛰어나 고속 코너링에도 안정된 자세 유지자유로에 들어섰다. 방음장치가 매우 우수해 시속 140km 정도로 달려도 시속 100km 이 하로 달리는 기분이다. 차의 진동도 없다. 가속페달을 더 깊이 밟으니 시속 180km가 순식간 에 나온다. 그래도 차체는 안정된 자세를 유지해 운전하는데 불안감을 주지 않는다.
한 가지 더 불만이 있다면 추월을 위한 가속에서 시속 180km 이상의 속력을 낼 때는 엔 진이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약간 주춤거리다 힘을 내는 이른바 덕킹(Ducking) 현상이 있다는 점이다. 최고출력 236마력을 6천800rpm이라는 아주 높은 엔진회전수에 맞추어 놓았 기 때문에, 전력으로 달리려면 6천800rpm까지 끌어올리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 으로 풀이된다. 자유로의 교통량이 많아 시속 190km 이상은 내지 못했지만 가속페달을 밟 은 내 발바닥은 여유가 있어서 최고시속 235km이라는 숫자에 납득이 간다.
이 차는 브레이크가 최고다. 발에 닫는 감각과 차가 멈춰지는 감각의 밸런스가 너무나도 절묘하게 잡혀 있다. 브레이크가 예민하면 초보운전자에게는 아주 불편하지만 재규어의 브 레이크는 그들이 항상 말하는 것처럼 `실크로 된 물건`을 다루는 기분이다.
코너링은 브레이크와 함께 최고로 평가받을 만하다. 시속 80km로 꽤 급한 코너링을 해보 았지만 차체는 안정된 모습 그대로다. 서스펜션이 탄탄해 불안감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 산 을 오르내리는 꼬불길 운전에 가장 안전한 차가 되겠다. 나는 이 차 같이 코너링이 우수한 차를 보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차만의 또다른 특색은 좌석의 크기다. 길이가 길어 넙적다리 전체를 잘 받쳐주기 때문 에 피로가 덜어지고 고속운전 때의 안정감이 더해진다. 특히 뒷좌석이 그렇기 때문에 이 차 는 운전자가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세단일 뿐 아니라 사장족들이 운전기 사를 앞에 두고 뒤에 앉아 인생을 즐기는 데도 남다른 즐거움을 줄 것이다.
물론 안전운전을 위한 에어백, ABS 등은 다 갖추었고 천장에는 선루프까지 달려 있다. 또 한가지 지적하자면 안전벨트가 너무 딱딱하게 가슴을 조여맨다. 여기에도 약간의 배려나 조정이 필요하다. 스포츠 세단의 정점을 차지하는 21세기형의 재규어 S타입을 한국에서도 탈 수 있게 된 점을 나는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이 차는 진정한 멋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없이 좋은 반려자가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