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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세 상태에 있을 때의 우리는 말하자면 벽화의 밑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일단 육체에 깃들이면 그리려고 했던 걸작에 착수한다. 하루하루 전체적인 구상을 세밀한 부분까지 마무리하기 위해서 벽에 달라붙어 일을 계속한다. 그래서 마침내는(죽을 때 또는 초의식을 통해) 벽에서 물러나 예술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삶과 삶 사이로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세운 목표에 대해 얼마만큼 충실했는가 알 수 있게 된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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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을 받아들이는 것과 진정한 영혼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자아 탐구에 대한 격려가 부족하다. 교조주의(敎條主義: 특정한 교의나 사상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현실을 무시하고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태도.)에 중독된 서양 문명에 의해서 인류의 영적 요소는 무시되고 심지어 경멸당하기 까지 했다. 플라톤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종교계 및 철학계의 성인․ 현자들이 모두 윤회전생을 신봉하고 있고,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의 사상과 행동의 역사 속에서 윤회 전생사상은 유달리 눈에 띄는 존재임이 드러난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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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와 불교의 가르침으로 인해 10억을 넘는 아시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삶과 죽음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이 사람들의 바람은 사심 없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진리를 탐구함으로써 하루 속히 윤회의 속박과 순환에서 해탈 또는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인간이 대체로 그렇게는 행동하지 못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카르마가 부과한 일에 쫓기고 이 세상의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함으로써, 육체에서 육체로의 정화여행은 반드시 고통스럽고 지지부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2만5천여 년 사이에 550차례 환생했다는 석가도,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이 인간을 윤회라는 단조롭고 발전 없는 제자리걸음 속에 묶어두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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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라는 말은 원래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끌어낸다.”라는 뜻이다. 플라톤은 그 ‘아담네시스 상기설’로 이러한 생각을 부연하여 “간단히 습득된 지식은 영원한 자기가 과거세에 이미 가지고 있던 지식이기 때문에 생각해 내는 것도 간단하다.”고 말하고 있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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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은 꼭 그 인생에서 개발된 것으로 제한하기 보다는 어쩌면 과거세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신동의 존재는 분명히 이 문제에 강력한 상황 증거를 제공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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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은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널리 받아 들여졌고 그 중에서도 아우구스 티누스를 제외하고 교부들 가운데 가장 탁월했다고 평가된 인물인 오리게네스가 환생을 믿고 있었던 것은 유명하다. 그노시스파의 복음서《피스티스 소피아》에는 “영혼은 이 세상 하나의 신체에서 다른 신체로 잇달아 흘러 들어간다.”는 예수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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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교화와 종속을 목적으로 새로이 국가와 손을 잡게 된 교회는 환생을 믿는 사람들에게서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윤회전생을 믿는 그리스도 교도들은 스스로의 마음속에 확고한 지주를 갖고 있어 속박된 사고방식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교회와 국가에 예속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천국의 행복을 미끼로 유인해도 넘어가지 않고, 지옥의 불로 태운다고 위협해도 굴복하지 않았던 그들은 결국 이단자로 낙인 찍혔다(이단자라는 말은 원래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 이상의 나쁜 뜻은 지니지 않았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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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윤회사상이 뿌리 뽑힌 것은 교회에서 펼친 공포와 살육의 조직운동이 효과를 발휘하게 된 13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그 등불은 꺼지지 않고 연금술사와 장미 십자단 등의 밀교 집단에 의해 오늘날까지 비밀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계몽시대에는 유럽의 일류 지식인들 상당수가 불공평하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인생이 몇 번씩 환생함으로 인해 공정하고 의미와 목적을 지니게 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였다. 볼테르는 “결국 한번 태어나는 것이 놀랍지 않은 것처럼, 두 번 태어난다 해도 놀랄 일은 못된다.”고 쓰고 있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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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 예언자 에드거 케이시는 윤회사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은 아님을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1년 동안 그는 2,500여건의 ‘삶’을 읽어내어 많은 사람들의 과거세를 투시했다. 현재 걸려있는 질병과 약점의 원인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과거세에 한 행위 때문이거나, 했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케이시는 알아냈다. 이 때문에 그는 유전이라는 종래의 개념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가운데 어느 쪽의 성질을 더 많이 이어 받았나요?”하고 물으면 케이시는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 “대부분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어 받은 것이고, 가족에게서 받은 것은 없다! 가족이란 영원히 흘러가는 강에 지나지 않는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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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도 DNA에는 한 번의 인생의 기억조차 만족스럽게 암호화될 수 없으며, 하물며 몇 차례의 인생이 기억될 수는 없는 것이다. 검토된 증거들을 통해, 성장하기 위해서는 환생을 반복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경험에서 배울 수 있고 또 배움으로써 스스로가 지닌 엄청난 잠재력을 실현 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 단 한 차례의 삶으로 모든 것을 배울 수는 결코 없다. 삶과 죽음에 관한 세계적 연구가인 엘리자베스 퀴벌러 로스 박사는 “한 차례의 삶만으로 우리의 운명을 완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쓰고 있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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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튼」박사의 사례 연구를 읽으면, 우리가 끊임없이 중간세와 이 세상으로 번갈아 환생을 반복하며 내적인 자기 성장을 목표로 계속하여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의 체험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다양한 신체를 가지고 환생함으로써만이 우리들은 여러 갈래의 관점을 배울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전쟁과 질병, 범죄, 풍요, 모성, 유폐, 명성, 죄의식, 굶주림, 환멸 등 갖가지 인생이 있는데, 이러한 많은 인생에 의해 지식을 넓히고 지혜와 동정심과 그 밖의 많은 것을 몸에 익힐 수 있다. 이들은 우리를 이 세상으로의 환생이라는 견인력을 초월한 고양된 상태에 도달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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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완성에 이르기까지는 ‘기나긴 세월’이라는 말 한 마디로는 부족할 정도로 영겁의 시간이 필요하다. 환생을 반복함으로써 끊임없이 인생의 장면을 전환하고 새로운 것을 계속 흡수해 가지 않으면 그러한 긴 여행을 견뎌내지 못한다. 이 세상 생활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근시안 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 욕망과 육체적 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거의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죽는 순간에 육체의 속박을 벗어나 다음 환생에 대비하여 쉬고, 검토하고, 더욱 깊이 배우기 위해 가장 멀리까지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다시 되찾는다. 그래서 다가올 삶의 목표가 결정되면 극심한 시련이 기다리는 지상으로 다시 한 번 뛰어들게 된다. 그곳은 거기에서의 행위로써 다음 운명이 결정되어 지는 곳이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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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이 우주라는 학교에서 배운다고 생각해 보라. 거기서 우리는 여러 차례의 삶이라는 교육과정을 거치며 차례차례 수업을 받는 것이다. 우리 하나하나는 학생이자 선생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를 통해 자기가 어떤 코스를 밟아 배울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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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윤회는 그대의 마음, 열반 또한 그대의 마음, 온갖 기쁨, 고통, 미혹도 마음과 떨어져 있지 않나니, 당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 이것이 생성 바르도를 위한 마음의 수행이로다.
-《티벳 사자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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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의 굴레
인간의 욕망이 바로 그의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의 욕망이 바로 그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지가 곧 그의 행위이며, 그의 행위가 곧 그가 받게 될 결과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간은 그가 집착하는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죽은 다음에 그는, 그가 한 행위들의 미묘한 인상을 마음에 지니고서 다음 세상으로 간다. 그리고 그의 행위들의 수확을 그곳에서 거둔 다음에, 그는 이 행위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 이와 같이 욕망을 가진 자는 환생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티벳 사자의 서(브리하다라냐카 우파니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