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태양은 가득히> ]
이 영화는 미국의 여류 추리소설가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의 원작소설을 각색, 영화화한 1960년 프랑스 영화입니다. 당시는 프랑스의 소위 누벨 바그(‘새로운 물결’이란 뜻으로 195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새로이 일어난 영화 흐름)파들이 기세를 울리던 때였는데,(사진, 친구를 죽이고 항구로 돌아오는 알랑 드롱)
이들보다 전 세대에 속하는 명장 르네 끌레망 감독이 이 새로운 물결에 대항해서 보란 듯이 내놓은 작품이 바로 이 영화이기도 합니다.
미움과 선망, 질투, 나르시시즘 등 여러 요소가 혼합된 주인공 톰 역의 알랑 드롱은 불운하고 반항적인 젊은 세대의 암울한 이미지를 더없이 푸른 지중해의 바다와 하늘 사이에서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톰은 부호의 아들로 멋대로 자라나서 오만하고 방탕한 필립과 그의 약혼녀 마르쥬와 함께 나폴리에서 가까운 지중해의 피서지에서 감미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매료되어 놀아납니다.
필립은 톰이 식탁의 예절을 모른다고, 마르쥬와의 정사에 방해가 된다고 그를 모욕하며 달리는 요트에 매달린 보트에 톰을 실어 뜨거운 염천에 그를 팽개쳐 두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인간의 악의를 날카롭게 파헤치면서 톰의 사건 발생을 뒷받침합니다.
톰은 완전 범죄를 계획하고 필립과 마르쥬와의 사이를 이간질한 후에 둘만이 남은 배에서 필립을 죽이고 그 시체를 바다에 던져 버립니다. 범행은 달리는 요트 위에서 이루어지고(친구 친구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는 드롱)
그것을 아는 것은 오로지 태양뿐. 범죄 후 필립으로 변신한 톰은 큰돈을 잡을 궁리를 하다가 다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이렇게 범죄에 열중하는 톰의 모습은 청춘의 고독과 서글픔 속에서 그려집니다. 아름다운 드롱의 얼굴이 살의에 일그러지고, 그가 비굴한 웃음을 지을 때 그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사소함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범죄가 가지는 어두움은 그 배경을 이루는 남부 이탈리아의 밝은 하늘과 바다와 태양 한가운데서 괴이한 백주의 환상과도 같이 보이는 영화<태양은 가득히>, 이 영화의 라스트 씬에서 흐르는 테마곡은 그때까지 가슴조이는 듯 하던 긴장을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으로 바꾸어 주는 효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47세의 클레망 감독이 당시 젊은 영화감독들이 주도하여 프랑스 영화의 주요한 흐름이 된 누벨바그에 던진 도전장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치밀한 구성과 라스트의 절묘한 반전 등으로 서스펜스 영화의 묘미를 구현하여 <금지된 장난>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 영화에서 25세의 알랑 드롱은 야망을 채우기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굴절된 청춘의 한 전형을 연기함으로써 세계적인 스타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합니다.(사진, 나폴리에서 친구 애인 마르쥬와...)
지중해와 나폴리 근교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영상, 작렬하는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빗나간 욕망을 타고 흐르는 영화 음악의 거장 니노 로타의 감미로운 음악 등도 영화의 큰 매력이 되어 세계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1999년 앤터니 밍겔라가 감독하고 맷 데이먼과 기네스 팰트로가 주연을 맡아 <리플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 알랑 드롱과 그의 영화 인생 ]
뒷골목과 전쟁터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알랑 드롱에게 기회는 22살에 찾아옵니다. 친구들을 따라 칸느 영화제를 기웃거리다가, 할리우드의 저명한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의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섹시한 야생마 같았던 드롱은, 제임스 딘의 계보를 이을 만한 존재였습니다.(사진, 2007년 칸느 영화제에서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에게 시상을 하고 있는 늙은 알랑 드롱)
하지만 드롱은 파리에서 이브 알레그레 감독을 만난 뒤 미국행을 포기했고, 대신 알레그레의 영화 <여자가 개입될 때>로 데뷔합니다.
파리의 어느 나이트클럽을 배경으로 한 이 범죄 드라마에서 드롱이 맡은 역할은 살인 의뢰를 받은 청년 '조'. 그의 연기는 거칠고 신경질적이었지만, 이 영화는 한 명배우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습니다. 18살 소년이 소년원에서 탈출해 갱단에 연루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이 영화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두 명배우가 처음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알랑 드롱은 데뷔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고, 그보다 두 살 위인 장 폴 벨몽도 역시 출세작 <네멋대로 해라>에 출연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두 배우는 이후에도 여섯 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면서, 라이벌이자 영화 동료로서의 친분을 쌓아나갑니다. 드롱이 우수에 젖은 눈빛의 대명사라면, 벨몽도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미소가 전매특허인 배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주연작 <크리스틴>에서 알랑 드롱은 상대역이었던 로미 슈나이더와 불같은 사랑에 빠집니다. 로미 슈나이더는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로 15살 때부터 일찌감치 연기의 길에 들어선 스타. <크리스틴>은 영화 자체보다 세기의 로맨스 덕분에 더 유명해졌고, 이후 두 사람은 1964년까지 약혼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이후 순탄하지 못한 결혼 생활과 알코올중독, 아들의 죽음 등으로 로미 슈나이더의 삶은 꽤 굴곡이 많았습니다.(사진, 드롱과 슈나이더)
슈나이더는 1982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는데, 알랑 드롱은 그녀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추모의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당신을 위해 몇 마디의 독일어를 배웠습니다. (독일어로) 사랑해요, 내 사랑."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모호한 섹슈얼리티, 섬세한 카리스마, 선과 악의 경계에 있는 눈빛 등 알랑 드롱의 트레이드마크를 만들어준 출세작입니다. 르네 클레망 감독은 그의 아름다움을 카메라 안에 집대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듯한데,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여러 편의 영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며 친밀한 관계를 이어나갔습니다. 리메이크한 영화 <리플리>에서 새롭게 태어난 '리플리' 맷 데이먼도 묘한 매력이 있었지만, 알랑 드롱이 창조한 '절대적 아름다움'은 매력을 넘어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드롱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오마 샤리프가 맡은 '알리' 역에 거론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케줄 문제와 매번 갈색 콘택트 렌즈를 껴야 하는 고통 때문에 결국 포기했고, 대신 선택한 작품이 바로 <지하실의 멜로디>였습니다. 이 영화로 갱스터 장르의 포문을 열었으니, 알랑 드롱으로서는 큰 전환점이 된 셈입니다. 게다가 프랑스의 국민배우 장 가방과 함께 파트너로 출연하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죠. 조용하면서도 신경질적인 갱 캐릭터를 창조한 작품이라는 평입니다.
이 영화가 공개되기 2년 전, 알랑 드롱에게 치명타를 입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드롱의 보디가드가 피살되고, 드롱의 친구이자 갱인 프랑수아 마르칸토니가 살인 혐의로 기소된 것입니다.(사진, 볼사리노에서 벨몽도와...)
드롱 역시 경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범죄 연루설이 돌았으나, 이는 곧 드롱의 극중 갱스터 캐릭터에 리얼리티를 불어넣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영화 <볼사리노>에서 1930년대 마르세이유 갱스터로 출연한 드롱이 리얼하게 보였다면, 이 사건의 여파가 어느 정도 작용했음이 분명합니다. 갱으로 함께 출연한 장 폴 벨몽도와의 파트너십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갱스터 장르 영화들에서 의연하게, 멋지게 죽어가는 역을 하던 알랑 드롱은 영화 <지하실의 멜로디>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알랑 드롱이 연기한 '지노'는 은행 강도 혐의로 12년 동안의 복역을 마친 사나이. 하지만 범죄의 유혹과 사회적 편견이 결국 그를 사형수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영화의 압권은 드롱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 죽기 직전, 절망과 공포로(사진, 지하실의 멜로디에서 명우 장 가방과...)
가득한 드롱의 표정은 소름 끼칠 정도입니다. 알랑 드롱의 영화 중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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