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을 강타한 집중호우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특히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사태는 참으로 답답하고 가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려 14명의 고귀한 국민의 생명이 희생됐다. 하지만 그 이후 벌어지는 모습은 여기가 정말 선진국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에 충분했다. 관련 기관들이 모두 나 몰라라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느 한곳 제외없이 허둥지둥하고 나는 잘못 없다 하고 발뺌하기에 급급하다. 관련 도 지자체장과 시 지자체장은 참사 당일 사태 발생 한시간이 지나고서야 첫 보고를 받았고 당일 오후에서야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된다는 소식이다. 모 지자체장이 언급했다는 현장에 일찍 갔어도 바뀔 것은 없다는 말에는 할 말을 잊는다.
경북 예천에서도 아까운 젊은이가 희생됐다.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던 20대 해병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숨진 장병은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수색작업을 하던 장병에게 구명조끼를 지급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해병대는 하천변 수색 인원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다만 고무보트를 타고 수상 수색을 하는 경우에는 구명조끼를 입는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만 대민 수색 지원의 경우 구명조끼 착용 여부에 대한 메뉴얼이 있는지 확인중이라는 참으로 천하태평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한가한 물놀이를 할 때도 구명조끼를 입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다. 그런데 폭우속에 급류주변을 수색하는 인원에게 구명조끼를 입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메뉴얼타령을 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는 국민이 많다.
지금 이 세상은 책임감이 참으로 결여된 것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니 도처에 책임감이 상실되어 있는 상황으로 판단된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때도 도대체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모두가 내 잘못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수백명의 인명이 희생됐는데도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차원을 넘어 도대체 이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조직이며 나라인가를 심히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냥 못된 심보의 바다와 하늘에서 내린 폭우가 모든 책임을 질 뿐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그리고 국민들은 낙담한다. 어떻게 엄청난 참사가 발생했는데 그 누구하나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느냐는 것이다.
책임감만큼 힘들고도 무서운 것이 없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바로 자신의 부모들을 생각해보라. 아이가 태어나면 일단 엄마는 초비상상황에 돌입한다. 엄마는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는다. 오로지 자식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한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기때문에 그렇다. 자식이 태어나면 부모는 무한책임을 지닌다. 아이가 아프면 밤에도 아이를 업고 동네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한다. 아버지는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책임감이다. 물론 자식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본질이지만 애정과 사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책임감이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지자체장들은 해당 국민들과 지역주민들이 선택한다. 국민들과 주민들은 자신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 판단하고 표를 던진다.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불철주야 국민과 주민들만 생각하는가. 부모가 어린 자식 생각하듯 그렇게 하는가 말이다. 할 일 다하고 간혹 그것도 선거때가 오면 동네 다니며 굽신굽신 하는 것이 전부 아닌가. 특정 지역 깃발만 꽃으면 되는 그런 지역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무슨 책임감이 있겠는가. 주민들의 안위 걱정에 잠을 못 이뤄본 적이 있는가 말이다. 공무원도 사람인데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휴일에 골프칠 수도 있지 그런 것을 지적한다며 오히려 역정을 내는 그런 지자체장도 한국에는 존재한다. 그것이 지금 한국의 책임자라는 사람들의 현주소이다.
책임감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주민들과 유권자 그리고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위치에 가기 위한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간직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다. 전쟁이 터져 북한군은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수도 서울은 안전하다며 제자리를 지키라고 방송하면서 자신은 남쪽으로 향해 도망가는 그런 지도자가 존재했던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일본군이 밀려 오는데 혼자 신의주로 도망을 가는 왕을 둔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 책임감의 결여가 낳은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무릇 조직의 책임자는 조직원들을 위해 자신의 사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자신도 인간인데 하는 그런 모습은 정말로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자신에게 맡겨진 5년 내지 4년의 세월은 그냥 군대에 갔다 생각하고 사생활은 땅에 묻어야 한다. 오로지 조직을 위해 그 구성원들을 위해 바치겠다는 각오로 살아야 한다. 그런 책임감이 싫으면 그 자리에 가지 않으면 된다. 누가 꼭 그 자리를 맡아달라고 애걸복걸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그 자리에서 정말 오로지 조직과 그 구성원을 위해 밤잠을 자지않고 최선을 다해도 쉽지 않은 것이 책임감 완수이다. 하지만 지금 이 세상은 책임감이란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책임감이 없는 세상이 잘 돌아갈 리가 없는 것 아닌가. 이번 폭우로 희생당한 많은 국민들앞에 무릎꿇고 명복을 빈다.
2023년 7월 20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