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현실에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표팀이 대만과의 국제전 상대전적이 앞서지만, 그래도 5점을 접어주고 시작하는 게임에서 이기는 건 어렵죠. 특히 대만은 역대 최고 전력, 우리는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은 상황에서 말입니다.
결국 5점에 대한 부담이 독이 됐는지, 타자들은 찬스에서 큰 스윙으로 일관했고, 영리한 주루 플레이로 유명한 정근우도 주자를 모아야 될 상황에서 2번이나 무리하게 달리다 주루사를 당하는 등 어려운 경기 끝에 신승을 거뒀습니다. 아시다시피, 결과는 1라운드 탈락이고요.
2라운드에 올라가지 못한 것은 투수운용 실패와 타자들의 컨디션 난조입니다. 바꿔 말하면, 약하다던 투수들은 비교적 잘 했지만 올라온 순서가 이상했고 강하다던 타자들은 에이스급도 아닌 투수들에게 너무 쉽게 무너졌습니다.
일단 투수 문제부터 짚어 봅시다.
국가대표 야구팀이 좋은 성적을 올렸던 빅게임, 그러니까 시드니 / WBC / 베이징을 되돌아보면, '드림팀'의 전력은 [투수력과 수비력 극강 & 득점권에서의 집중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타선이 폭발해 대량득점으로 이기는 게임은 없고 수비 위주의 게임으로 대등하게 몰고가다 결정적인 찬스에서 점수를 짜내 이기는 패턴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큰 게임일수록 공격보다 수비력에서 전력차가 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포스트시즌이 타격전 대신 투수전이나 수비력 대결로 펼쳐지는 것 처럼 말입니다.
WBC와 베이징의 주력 투수진에서 류현진-김광현-봉중근이 빠졌습니다. 최초 선발된 김진우와 이용찬도 부상을 이유로 불참했고요. 일단 투수력이 굉장히 약화된 상태로 대만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불행의 시작입니다. 아시안게임에 그렇게 이를 악물고 출전했던 추신수가 결국 불참한 것도 악재라면 악재고요. 개인의 상황이야 이해가 가지만 그래서 결국 외야 한자리를 전준우가 차지하게 됐죠. (이 자리도 김강민이나 박용택이 들어가는게 맞다고 보지만 말입니다)
류중일 감독의 투수기용을 두고 비판이 많았는데, 저는 [타이밍]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투수교체가 빠르냐 늦었냐는 팬들보다 덕아웃이 더 잘 판단하기 마련이니까요. 교체의 결과가 나빴다면 그것은 타이밍 문제가 아니라 [선택한 투수]의 문제일 확률이 높습니다.
노경은을 불펜에서 키워보려고 두산이 그렇게 애를 썼는데 매번 실패하고 작년에야 겨우 선발에 안착했습니다. 두산을 좋아하는 팬들은, 노경은이 중간계투로 등판하면 꼭 분식회계를 하고 마지막 타자를 삼진 잡는다는 것을 뻔히 압니다. 그게 불펜 노경은의 패턴입니다. 심지어 두산의 투수코치 정명원이 대표팀 양상문 코치에게 "(노경은이) 계투로는 심적 부담을 가진 선수니까 중용해야 된다면 선발로 쓰는게 좋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용설명서를 알려준 셈인데 양상문 코치는 '구위가 좋아서 선발이 아깝다'며 노경은을 전천후로 세웠죠. 전체적인 성적은 나쁘지 않으나 두 번의 추가 실점은 결국 대표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번 대표팀에는 역대급 불펜진이 있었습니다. 박희수-정대현-오승환 라인입니다. 특히 박희수와 오승환은 17타자 중에 9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볼넷 없이 안타를 딱 한개만 맞았습니다. 1.1이닝을 역시 무안타 1삼진으로 막은 정대현을 더하면 7이닝 1안타 10삼진이라는 초특급 불펜이 나온단 말입니다. 승패가 물릴 경우 해당팀간의 득실차로 순위가 갈린다면 네덜란드에게 뒤질때 필승 3인방을 더 빨리 내보냈어야 됩니다. 결과론 아니냐는 반론도 있겠지만, 이번 대회의 룰을 감안하면 그게 맞습니다.
(류중일 감독을 변호하자면, 2라운드 및 결승라운드 진출을 염두에 둔 상태라 초반부터 투수들 힘을 빼는 게 좀 두려웠을 수 있습니다. 팬들도 '에이, 설마~' 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그 선택이 대만전을 어렵게 만들었죠)
송승준이 잘 던졌고, 장원준도 안타는 맞았으나 점수는 적게 내줬습니다. 윤석민도 수비들의 몰락 속에 그 정도면 잘 버텼습니다. 선발들이 제 몫을 했다는 겁니다. 여기에 박희수-정대현-오승환은 난공불락이었고요. 그런데 네덜란드전에 적잖은 점수를 내줬다면 그 책임의 33%는 수비수, 33%는 마운드의 투수, 그리고 나머지 33+1%는 그 선수를 고른 스태프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그것보다 더 충격은 타자들의 컨디션입니다. 국제대회가 아무리 투수와 수비의 싸움이라지만 네덜란드전과 대만전 초반 타자(야수)들의 모습은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야구가 원래 투수력과 수비력이 상수고 타선이 변수인 것은 알지만, 이번 대회 내내 찬스를 기대보다 못 살렸죠. 공인구 문제인지 잘 맞은 타구가 멀리 안 뻗는데도 계속 퍼올리고 그러다 보니 찬스에선 자꾸 짧은플라이가 나왔죠.
모르긴 해도, 모든 문제는 네덜란드를 얕본데서 시작됐을 겁니다. 선취점과 추가점을 뺏겼을 때도 금방 따라갈 거라고 봤는데 중반 이후에도 계속 밀리니까 당황하다 멘붕이 왔고 부랴부랴 호주전에 정신을 차렸지만 5점 접고 시작하는 대만전에 심리적으로 쫓기니까 큰 스윙으로 일관하다 결국 다득점에 실패한거죠. 컨디션 안 좋은 강민호 대신 진갑용을 써보면 어땠을까 싶고 공격이든 수비든 전준우보다 이진영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은 들지만, 사실 그 차이가 경기를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타선이 전체적으로 말렸으니까요.
1루수가 3명이고 3루수가 없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사실 결승라운드까지 염두에 뒀으면 BIG3 중 한명을 빼긴 힘들었을겁니다. 3루도 금강불괴 최정에 유사시 강정호가 들어오면 큰 문제는 없고요. 김상수의 쓰임새가 애매한데 어차피 2루는 정근우가 풀타임 뛰었을거고, 그 자리에 안치홍이 대신 들어왔대도 어차피 "대주자가 김상수냐 안치홍이냐"의 문제지 전력을 크게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정성훈이나 박석민을 최정과 반반씩 (혹은 벤치에 두고) 돌려 쓰느니, 차라리 타격왕 김태균을 조커로 쓰는게 더 파괴력 있다고 판단했겠죠. 관점의 차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중심타선 칠만한 선수가 하위타선에 있으니 공격력이 강하겠다 싶었는데, 하위타선에 가서 그런지 방망이도 하위스러워진 게 문제죠.
9구단-10구단 이슈와 더불어 야구 인기에 한번 더 불을 지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쉽게 날아갔습니다. 내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한대도 명예회복이 되진 않을거고, 2016 올림픽엔 야구가 없으니 당분간 설욕의 기회는 없겠네요. 아쉽지만, 탈락 후유증 없이 페넌트레이스가 후끈 달아오르기 바랍니다.
첫댓글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선수들이 마음 편하게 플레이 할 수 있는 안정감을 주지 못한 감독 이하 코칭스텝의 불안한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좋게 보일수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는 모습이지만, 경기 내내, 시종일관 좌불안석의 코칭스텝을 보며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TV를 통해 보는 저도 그랬는데 가까이 있는 선수들은 오죽이나 했을까요. 물론 결과론이죠. 그런 코칭스텝이어도 결과가 좋았다면? 하지만 선수들을 조금 더 편안하게 해줬다면...단기전에서 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떨쳐버릴수가 없어요. 어쨋든 대표팀 수고 많았습니다!
1번선발님 글 잘 읽었습니다. 3월을 기대했는데 너무 빨리 끝나버렸네요.
잘 읽었습니다. 네덜란드전 노경은을 내리는 타이밍에 대해서는 갠적으로 불만이 많았지만, 이외에도 타자들 컨디션 문제와 네덜란드의 예상밖의 실력, 운 등이 결국 1차예선 탈락이라는 결과를 낳은 듯 하네여. 참고로 2016년은 올림픽이 열리는 해입니다.ㅎㅎ
야구가 올림픽에서 제외되었기에 없다고 하신거 같네요~~ 08년 베이징이 마지막이라서요...^^
네 월드컵이 아니고 올림픽.
저희 회사가 올해 프로야구 메인 스폰하기로 했는데 야구 열기가 식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ㅜㅜ
세븐 요구르트 회사 다니시나봐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