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기념관 강당을 가득 메운 토론회 청중들. 자리가 모자라 옆 강의실에서 방송을 통해 보는 청중들도 많았다. ⓒkonas.net | |
1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평동 4.19혁명기념관 강당에서는 교과서 포럼과 4.19관련단체들이 지난 30일 '4.19는 학생운동, 5.16은 혁명'이라는 단어때문에 생겼던 일을 화해하는 의미의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교과서 포럼의 박효종 서울대 교수, 전상인 서울대 교수, 이명희 공주대 교수, 강규형 명지대 교수 등 교과서 포럼 회원들과 4.19혁명공로자회의 이대우 부산대 교수, 강재식 4.19민주혁명회 회장, 이기택 4.19혁명공로자회 고문과 4.19관련 단체 회원들이 참석했다. 발제는 전상인 교수와 이대우 교수가 맡았다.
'4.19혁명 역사관 재확립을 위한 학술토론회'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원점은 5.18광주가 아니라 60년 4.19"라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했다. 또한 최근의 좌경화에 따른 역사왜곡과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대한 도전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4.19의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이어나갈 것을 결의했다.
첫 발제자인 이대우 부산대 교수는 4.19가 왜 혁명이었는지, 그 당시의 시민혁명이 경제발전과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주로 설명했다. 이 교수는 교과서 포럼의 시안에 대해서도 "지금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는 구국의 선진화 세력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라며 "좌편향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역편향으로 만든다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4.19는 학생운동을 넘어 그들의 부모인 농민들,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을 대리한 시민혁명이었다"며 "앞으로는 4.19를 갖고 논란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발제자와 사회자의 모습. 왼쪽부터 4.19혁명공로자회의 이대우 부산대 교수, 사회를 맡은 교과서 포럼 상임공동대표 박효종 서울대 교수, 교과서 포럼 운영위원장인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konas.net | |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전상인 교수는 현재 '민주세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4.19정신을 계승하지 않는 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 교수는 "군사정부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이상하게 4.19는 5.18에 비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며 "언제부턴가 한국 민주주의의 시작이 1960년 4.19에서 1980년 5.18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이에 대해 "1980년의 광주는 역사적으로 평지에서 돌출한 것이 아니라 4.19로 상징되는 민주주의 정신의 분출이었다"며 "'광주 민주화운동'의 궁극적인 모태로서 4.19혁명이 차지하는 역사적 중요성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며 민주주의 원점에 대한 최근의 잘못된 시각을 지적했다. 그는 또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전후해 사회전반적으로 5.18은 뜨고 4.19가 지는 건 5.18이 현재의 집권세력을 배출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전 교수는 "이른바 진보와 개혁을 표방하는 이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를 불안하게 만들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위협하는 경우조차 없지 않다"며 "그들은 아마도 4.19의 의미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듯 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5.16에 대해서도 "5.16이 군을 동원해 정권을 교체했다는 점에서 쿠데타는 맞다"면서도 "그러나 4.19이후 몇 달만에 급조된 쿠데타가 아니라 50년대 말부터 분위기가 있었다"며 군대생활을 통해 국민들에게 근대적 생활양식을 알려주고 전쟁을 통해 엘리트 집단으로 거듭난 당시 한국군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했다. 전 교수는 "당시 4.19이후의 사회 분위기가 5.16을 일으킬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군부는 쿠데타 자체가 아니라 집권한 군부가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졌다는 점과 국민들이 이를 수용했다는 점"이라며 5.16도 분명히 업적이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전 교수는 교과서 포럼과 4.19관련 단체들간의 충돌이 일어난 원인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민주주의라고 하면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알고 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여러가지 민주주의 중 하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자유라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때문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개인의 자유를 도입하게 한 4.19의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에 대해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우리 사회에는 광범위한 권력이동현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주도하는 것은 체제부정적 사회운동과 문화혁명"이라고 분석하고 "지금 이들은 4.19가 지향했던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하려는 게 아니라 민중민주주의 또는 대중영합형 포퓰리즘"이라며 4.19정신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자유 대신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가장한 親김정일주의, 혹은 집단주의가 기승을 부린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특히 개혁과 평등이라는 명목 하에 시장경제질서에 도전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버렸고 참여와 여론,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사상과 표현, 학문의 자유를 유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초안도 아닌, 의견수렴을 위한 시안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4.19관련 단체 회원들이 대부분인 청중들에게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는 권력을 쟁취한 세력들의 책임도 있지만 그동안 4.19정신을 제대로 계승하고 지키지 못한 보수세력에게도 책임이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원칙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이 오늘날의 위기를 자초했다"고 지적하고 "우리 현대사를 사건 별로 볼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공과 과를 함께 보는 역사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전상인 교수의 주장에 4.19관련 단체 회원들도 대부분 공감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토론자로 나선 유광진 동국대 사회교육원장은 "나라를 위해 애쓰는 젊고 유능한 교수들이 오해라고 해명했고 여러분들이 그것을 받아들인 게 다행"이라며 "여기 계신 선배님들께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젊은 교수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줘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교과서 포럼에 대한 격려를 부탁했다. 유광진 원장은 "이번 사태를 보면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며 "10년 이상 진행된 좌경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중에 혹시나 지나친 우경화가 판을 치면 어쩌나 걱정된다"며 "이제 좌파 세력들도 과거사 왜곡은 끝내고 대한민국을 음해하려는 행동을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서 포럼의 이명희 교수는 "지난 번의 일에 대해서는 저희가 정말 반성해야 한다"며 4.19관련단체 회원들에게 사과했다. 이 교수는 "지금 근현대사 역사 교과서들은 특정 이념에 편향되어 있다. 그 때문에 사회와 국회에서도 논란이 있었고 저희 교과서 포럼 같은 단체도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해명하며 "저희 교과서 포럼은 통일독일의 사례처럼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기준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도 "지난 30일 문제가 된 부분은 다양한 의견을 단순히 취합한 것인데 저희 포럼의 미숙한 운영으로 여러분들께 누를 끼쳤다"며 4.19단체 회원들에게 사과했다. 강 교수는 "이번 문제를 보면 혁명에 대한 개념정의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4.19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혁명이 맞다"며 "저희 시안에서 말한 혁명은 볼셰비키 혁명이나 프랑스 혁명과 같은 사회계급의 대립과 투쟁이라는 좁은 의미의 혁명을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그는 "최근 문제가 되는 건 4.19를 민중민주주의적, 또는 계급혁명의 대리전이나 親김일성 운동의 시발점으로 해석하려는 경우"라며 "이런 주장에 대항하기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토론회는 이광국 4.19민주혁명회 부회장의 결의문 낭독으로 막을 내렸다. 이날 토론회는 젊은 교과서 포럼 교수들의 사과를 4.19관련단체 회원들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일부 취재진은 5.18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수군거리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4.19가 대한민국 민주화에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으며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고양시켰다는 것, 4.19단체 회원들은 좌파의 친북적 경향과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