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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 삼국사기의 근본적 왜곡사항(기년 및 계보) 그러나 더 확고해지는 진실
마법의활 추천 0 조회 292 23.05.13 22:3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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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5.14 02:49

    첫댓글 모든 시대의 역사가 사료를 의심해야하지만, 근대사는 기초적인 사실 자체를.검증해야하는 일은 드문 편인데 고대사는 이점에서 더 어렵군요.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 부분이 문제가 있다는건 얼핏 들었는데 잘 읽었습니다.

    다만 풍납토성의 경우에 백제 초기에도 상당히 중앙집권화된 정권의 존재를 보여주는듯 한데 어떤가요? 제가 마지막으로 들었던건 건축연대가 기원전2세기~서기 2세기 사이 정도로 판명되었다고 들어서... 2세기 중반보다는 좀 더 앞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고대사는 제가 잘 몰라서 제 기억이 틀릴수도 있구요. ㅇㅇ

  • 작성자 23.05.14 18:53

    "상당히 중앙집권화된 정권"의 지표는 성곽, 집중된 고분군, 전문기술자 집단의 집중(=토기 양식의 통일성 및 귀족 문화유형 등. 심발형 토기 고배 등) 세 가지가 나타나면 부정할 여지 없는 고대 국가라고 합니다.
    한성백제는 이와 같은 지표가 3세기 4/4분기, 삼국사기상 연대에 의하면 책계왕 때 완비되는데 "초기"라고 함은 어떤 시기를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건축연대가 기원전2세기~서기2세기라고 판명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얘기입니다.

    풍납토성은 고고학적으로 3세기 4/4분기가 "상한선"이고, 몽촌토성은 그나마 3세기 중반이 "하한선"인데 성곽만 갖고 중앙집권화된 정권 운운하긴 좀 그러하지만 여하튼 서울이 기준이면 3세기 중반이 한계입니다.

  • 작성자 23.05.14 18:52

    게다가 제가 말하는 정보는 2012년에 그간 발굴된 성과들을 갖고 논하던 성과라서 그나마도 오래된 정보인데 이 정보에서 업데이트된 건 딱히 없는 걸로 압니다.
    그나마 풍납토성 있던 자리에 3중 환호와 목책 정도는 기원전 1세기 경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이것은 동북한 옥저계 중도문화유형 주민들이 건설한 것으로서 우리가 아는 백제 지배층과는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구려계도 부여계도 아니기 때문인데다 이들은 정작 고대 국가 백제가 들어서던 무렵인 3세기에는 죄다 피지배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 23.05.15 04:18

    @마법의활 잘 읽었습니다. 제가 풍납토성의 건축연대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군요. ㅇㅇ

  • 23.05.14 04:01

    결국 구라치는것도 뭔가 기반이 되는 자료는 봐가면서 해야하네요

  • 작성자 23.05.14 19:07

    일본서기도 왜곡 패턴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문자로 쓰인 것만 파악한다는 문해 능력 없는 자들의 헛소리는 귀담아들을 여지가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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