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 리코와 일본의 4강 경기를 앞두고 해설진은 이런 불필요한 멘트를 쳤다.
"푸에르토 리코는 어제까지 계속해서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투수진도 고갈이 된 상태이구요. 일단 미국을 꺾고 4강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하는 분위기예요. 반면에 일본은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하략)"
1,2회 대회에서 중남미 국가들의 메이저리거들은 국가를 대표한다는 생각도 별로 없어 보였고, 스프링캠프 때 하는 시범 경기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실제로 메이저리거가 즐비한 베네수엘라 대표팀은 올해도 여전히 그리 진지하게 보이지 않는 플레이를 펼치며 1라운드에서 광탈했다. (국가 대항전이고 상금도 꽤 걸렸는데, 아무렴 시범 경기처럼 했겠냐 하겠지만 메이저리그의 시범 경기는 25인 로스터에 드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 해의 보수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좀 느슨해보여도 진짜 연습처럼 하는 경기는 아니고, 이미 지위가 확정된 다년 계약자 선수들도 시범 경기에서 크게 부진하면 주전 자리를 안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나라 시범 경기보다는 무게감이 크다.) 그러나 올해 도미니카와 푸에르토 리코의 게임을 보면 마치 06년, 09년의 우리 나라 대표팀 같은 '결기'가 느껴졌다.
사실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로 이렇다 할 산업도 없고 올림픽 같은 데서 메달 한 번 따기 힘든 도미니카 출신 선수들이 '우리가 제일 잘하는 야구로 세계를 한 번 제패해 보자! 빠세!' 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무엇이 이미 미국의 자치령이며 미국의 '주'가 되고 싶어하는 푸에르토 리코 출신의 미국 리그 야구 선수들의 동기를 불러 일으켰는지는 미스테리다. 또한, 미국 못지 않게 메이저리그 올스타급의 라인업과 투수진을 갖춘 도미니카가 무패 가도를 달리며 4강까지 올라온 것은 "아, 저런 선수들이 진지하게 덤비면 솔직히 어떤 팀이 와도 이기기 어렵지..." 하고 수긍이 되지만, 카를로스 벨트란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한국 대표팀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이는 푸에르토 리코의 라인업으로 4강에 올라온 것은 의아했다. (솔직히 말해서, 미-일전 진검 승부가 보고 싶었는데 프리즌 브레이크의 페르난도 수크레 친구인 낙도 촌놈들 때문에 성사되지 않은 것에 약간 부아가 나기도 했다.)
여하간에 일본이 치밀한 조직력과 대만전과 같은 기민한 작전으로 운빨과 분위기 타고 올라온 애들에게 야구를 한 수 가르치겠지? 하는 짐작으로 보기 시작한 경기는 정말 의외의 방향으로 흘렀고, 그 중심엔 푸에르토 리코의 포수 야디어 몰리나가 있었다. 빅리그를 일삼아 보지 않아서 미국에 유명한 포수 3형제가 있다는 얘기만 얼핏 들었던 나였기에 푸에르토 리코 촌놈들 운운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었지만, 막상 그 플레이를 직접 보니 그 존재감은 마치 산왕공고의 신현철과 같았다.
야구에서 포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얼빠를 살짝 벗어난 수준만 되도 다들 두말 할 나위없이 중요하다고들 인정하지만, 오히려 야구를 깊게 보는 덕후 수준으로 갈수록 '포수'의 중요성이 과장되어 있다고 말하는 경향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엑셀놀이를 좋아하는 세이버 매트릭션 계열로 갈수록 포수의 '인사이드 웍'은 사실상 실체가 없으며, 조금 극단적으로 좋은 포수란 결국 좋은 투수의 공을 받아주는 사람이라는 식으로까지 표현되기도 한다. 포수의 능력을 나타내는 통계 중에 그나마 객관적이라는 도루 저지율 조차도, 사실상 투수의 퀵모션과 로케이션 및 구속이 일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도루 저지율이 높다는 것이 꼭 포수의 능력이라고 볼 수 없다는 얘기도 있고, 종합적으로 포수가 투수의 공 스피드를 늘려줄 수도 없고, 다른 야수들의 수비 능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가 없는데, 실제적으로 안타성 타구를 아웃 카운트로 바꾸는 유격수나 중견수의 수비에 비해 더 중요한 게 과연 있느냐 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해묵은 입방아에 대해 오늘 푸에르토 리코의 몰리나는 '좋은 포수가 팀의 전력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어떤 것인지 교과서적으로 전세계 야구팬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고 본다. 오늘 푸에르토 리코의 선발은 작년 SK에서 뛰다가 부상 등으로 재계약에 실패한 '마리오 산티아고' 였다. 물론 마리오는 좋은 공을 가진 투수였고, 부상 전에 팀에서 에이스급 활약을 하며 마운드를 지키긴 했지만 그렇다고 탈 KBO급 이었던 '니퍼트' 나 '나이트' 정도의 임팩트는 없었고, 한국 리그보다 한 수위의 일본 리그에서 정예 선수들을 모아 만든 일본 타선을 그렇게 철저하게 봉쇄할 선수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몰리나는 마리오가 갖고 있는 구질을 늘려주지도, 투심의 스피드를 올려주지도 못하지만 언제 투심을 던질지 슬라이더를 던질 지를 지시했고, 심판의 존을 아주 이른 시간에 파악하여 선구안이 좋은 일본 타자들에게 혼란을 일으켰다. 가위를 내라는 데 바위를 내버리는 투수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가위를 내라면 가위를 낼 수 있는 수준만 되는 투수라면 61구를 던지며 일본 대표팀을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위대한 포수의 역할임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사족을 좀 달자면, 가위바위보에 잘하고 말고가 어디있느냐 역시 운빨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평소에 '남자는 주먹' 이라고 생각하고 가위바위보만 하면 무의식적으로 주먹부터 내는 사람을 잘 관찰했다가 보를 낸다면 그건 운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매의 눈으로 가위를 낼 때와 바위를 낼 때의 미묘한 표정과 자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면 승률을 매우 높일 수가 있고, 그것은 행동과학이지 미신이나 복권 같은 게 아니다. 타자가 노리던 공의 의표를 찔러 정타를 맞추지 못하게 하는 인사이드 웍은 기록에는 그냥 유격수 땅볼로만 기록되겠지만, 실은 투수가 공을 글러브에 넣고 손을 모았을 때,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 공의 승부는 50% 정도는 결정되어 있는 셈이다.
사실 여기까지 였으면 몰리나가 위대하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호투하던 마리오가 갑작스런 팔꿈치 통증으로 주자 2루 상황에서 급 강판된 후에, 그리고 앙헬의 무리한 수비로 주자 3루에 두고 아베를 상대하게 된 상황에서 명포수의 진가는 제대로 드러났다. 푸에르토 리코는 1회에 부담감 때문인지 조금 흔들리는 마에다를 공략해서 1점을 뽑은 후에 2, 3회 계속되는 추가 득점 찬스를 무리한 작전과 병살로 날려 먹었고, 보통 그런 게임은 경기 후반부에 선발이 내려가고 나서 불펜을 두드려서 뒤집는 것이 일본같이 조직력과 투수진 뎁스가 좋은 팀의 특징이기 때문에(실제로 대만전도 그랬고) 마리오의 급 강판이나 앙헬의 무리한 수비 등의 빈틈이 나타났을 때 놓치지 않고 최소한 동점을 가져가면서 경기 흐름을 잡아올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몰리나는 위기 상황에서 몸도 다 못 풀고 올라온 호세 토레의 제구 안되는 패대기성 공들을 안정적으로 잡아내며 투수의 멘탈을 안정시켰고, 2사 3루에서 일본 최고 타자인 아베를 별로 좋지도 않아 보이는 변화구로 헛스윙 유도하며 살얼음 리드를 지켜내는 빅리그 골든글러브 5회 수상자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2사 후에 무리한 수비로 주자를 3루까지 보낸 중견수 앙헬이 상황이 종료된 후 덕아웃에서 '몰리나 형' 한테 "아, 형, 아까 그게요... 제가 잡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의 표정으로 얘기하고 "괜찮아, 임마... 앞으로도 형 믿고 자신있게 해..." 의 톤으로 어깨 두드리는 몰리나가 잡혔을 때 '아 이 경기 일본이 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몰리나가 일본의 반격을 막아내는 사이 알렉스 리오스의 뜬금포가 터지면서 게임은 일본에게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물론 8회말 우치카와의 본헤드 플레이가 결정적이기는 했고, 야구 결과론은 참 쓸데 없는 얘기지만, 8회말 3-0이 아니라 일본도 그 때 점수를 내서 3-1 혹은 3-2 였다면 찬스에서 일본 선수들이 여유가 좀 더 있었을테고 대만전처럼 역전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했다고 보기 때문에 몰리나가 제구가 조금 처지는 푸에르토 리코의 젊은 투수들을 이끌어 위기마다 팀을 구해낸 것이 사실상 승부를 사전에 가르고 있었다고 본다.
내일은 이번 대회 최고의 이변을 일으키고 있는네덜란드가 전승 우승에 도전하는 도미니카를 맞아, 한국과 쿠바를 연이어 봉쇄하며 결과가 우연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것을 입증한 에이스 마크웰을 투입하여 게임을 할 예정인데 과연 도미니카의 1000억 타선에게도 그 실력이 통하려는가 싶기는 하다. 하지만 오늘 경기를 보니 도미니카가 결승을 염두에 두고 투수를 아끼려고 한다거나 우리처럼 조금 상대를 얕본다거나 하면 생각보다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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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의 역할은 작게 보는 사람들은 그냥 투수가 던져주는 공을 받는 사람...제가 생각하는 포수는 팀전체를 리딩하는 포지션이라고 생각됩니다...기본적으로 뭐 투수는 포수가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겠지만요...농구에서 포인트 가드가 팀을 리딩하듯 야구에서는 포수가 그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됩니다...그래서 신인인 한승택선수가 주전으로 첫해부터 뛰는것이 어려워 보이기도 하고..한편으로는 첫해부터 경험 삼아 3~4년 뒤에는 대표선수급이 되기를 기대하여 봅니다...그리고 예전에 올림픽에서 강민호처럼 포수가 지분을 못 이겨서 글러브 집어던지고 이런거는 안했으면 좋겠습니다..ㅋ
글이 좀 어렵군요
어려운 단어는 마니있는데 무슨이야긴지는 계속 들여다봐야 이해가 갈듯말듯한...
읽다가 포기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