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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없는 다문화사회 [인권위 발간 '인권']
우리들의 대한민국!
2007/07/30 14:31 |
“
혼혈인가족, 국제결혼가족, 결혼이민자가족, 이주민가족, 다문화가족…. 국제결혼을 통해 구성된 가족을 뜻하는 표현들이다. 여덟 쌍 중 한 쌍꼴로 외국인과의 결혼이 급증하고 있다. 2005년 기준, 총 혼인 건수의 13.6%에 달한다. 농촌은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남성이 40%나 된다. 정부가 올 들어 공문서에 ‘혼혈인’이라는 표현을 ‘다문화결혼자녀’로 변경하고, 또 교과서에서 한국을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로 설명된 부분을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구성된 국가’로 바꾼 것은 이런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다.
소외된 남성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는 주말마다 남편들을 상대로 베트남어 교육을 실시한다. 같은 시간 그들의 아내, 이주여성들은 상담을 받고 있었고, 모처럼 친구들과의 모국어 수다에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지난달 16일, 수업을 마친 남편들을 만났다. 이들은 할 말이 많았다. 특히 언론보도에 불만이 많았다.
“인터뷰하면 꼭 고충을 묻는다. 언어, 나이, 문화적 차이 뻔하지 않나. 하지만 특별히 이주여성이기 때문에 그럴까? 결혼이란 게 다 그런 정도의 차이를 갖고 시작하는 것 아닌가. 돈 때문에 선진국에 팔려왔다는 시각이 오히려 우리를 더 어렵게 만든다.”
결혼한 지 1년, 생후 1개월 된 딸이 있는 권아무개(39) 씨의 말이다. 결혼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밤에 자고 있는데 뭔가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 아내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울고 있더라.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행복하다, 좋다’라고 말하더라. 평소 그런 표현을 잘 안 쓰는데….” 얼마 전 베트남에 있는 처남에게 얼마 안 되는 돈을 부쳐준 뒤였다. 권씨는 “운전면허라도 따서 자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결혼비용이 약 1000만원 든다. 사실 한국 여성과 결혼하면 이보다 더 들지 않나. 이걸 꼭 돈 주고 데려온 것이라고 볼 수 있나. 중매결혼은 문제가 안 되는데 왜 국제결혼은 이상하게 보나. 같은 거 아닌가.”
결혼한 지 4년 된 이아무개(46) 씨의 말이다. 이번이 두 번째 결혼인 이씨는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2명과 재혼해서 낳은 딸, 그렇게 다섯 식구의 가장이다. 이씨는 한국여성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애 둘 딸린 남자에게 누가 시집을 오겠나.”라고 되물었다. 이씨는 “한국 남자들도 문제가 많다. 평등한 성 인식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고, 여자 나라의 문화와 언어도 배워야 한다.”며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혼 3년차인 김아무개(40) 씨는 말을 좀 더듬었다. 그는 “선을 40~50번쯤 봤다. 다들 내가 말을 더듬으니까 싫어하는 거 아니겠냐.”고 말한다. 그러다가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19세의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아이 하나를 낳았다. 김씨는 “처음엔 성격이 불같은 어머니와 한국말을 모르는 아내 사이에 고부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아내와 대화하기 위해 늘 베트남어 사전을 끼고 다닌다는 김씨는 “아이가 크면 왕따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부산에 코시안 대안학교가 있다고 하는데 거길 보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결혼 2년차인 박아무개(34)씨는 “행복하지만 어려움은 많다.”고 말한다. “갈 데가 없으니 늘 나만 쳐다보고 있는 아내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은행에 가거나 세금을 내러 갈 때도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직장이 있으니…. 관공서에 외국인 도우미가 있으면 좋겠다. 또 아이가 태어나면 돈이 많이 들 텐데 맞벌이가 불가능하다. 외국여성이 할 수 있는 건 모두 3D업종이고 공장에서 기숙하면서 일해야 하는 식이다. 위험해서 보낼 수 없다.”
이주여성과의 결혼을 선택하는 남성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중하층에 속한다. 또 신체적 장애를 가졌거나 장남으로 가족부양 책임을 지고 있거나 재혼, 고령, 질병 등 한마디로 한국의 결혼시장에서 외면당한 이들이다. 이들은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이 넘는 비용을 중개업체에 내고 외국으로 나간다. 3, 4일간 그 나라에 머물면서 여자들을 여럿 보고 낙점하는 절차를 밟는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의 출신국은 중국(66.2%), 베트남(18.7%), 일본(4.0%), 필리핀(3.2%)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네팔, 몽고, 태국,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중개업체를 통한 결혼은 불법이다. 사실상 성매매다. 베트남과 필리핀에서도 매매혼은 100% 불법이다. 최근 들어 한국 정부와 해당 국가의 NGO들이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중개업체가 다리 구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우리나라 지자체에서는 몇 억원씩 예산을 편성해 농촌 총각들에게 결혼지원금을 주고 있는데 이 중 상당한 액수가 중개업체로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을 선택한 여성들
아시아 여성들이 한국으로 오는 이유는 뭘까? 사람이 아닌 ‘상황’을 선택한 결과다. 생존의 문제. 현지의 가난한 가족에게 한 달에 100~200달러라도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온다. 한국이 잘사는 나라라는 일종의 ‘코리안 드림’ 심리도 깔려 있다. 한류 드라마나 통일교를 통한 정보가 이들의 환상에 일조한다.
전라도는 인구 대비 국제결혼가정 자녀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 활동이 잘 이뤄지고 있는 전북 장수를 찾았다. 장수 재래시장에서 만난 한 베트남 여성(26)은 임신 중이었다. 대뜸 던진 “행복하냐”는 질문에 “예, 행복해요. 신랑이 좋은 사람이에요.”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생선 좌판을 벌이고 있던 한 할머니는 베트남 여성을 며느리로 두고 있었다. “말을 못 알아먹는 것 빼고는 불편할 게 없다.”고 말한다. 말이 안 통할 경우엔 “(말) 안 해버리면 되지.”라고 간단하게 답한다. 이 할머니는 아들을 장가 보내기 위해 1100만원을 농협에서 대출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매달 50만원씩 갚아 나가고 있다. 며느리 이름을 묻자 “리베베”라고 또렷이 발음했다.
장수터미널에서 만난 미르나(필리핀, 33) 씨는 “어렵다”는 말부터 꺼내더니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시어머니, 시누이사이에서 겪는 고충을 털어놨다. 미르나 씨는 얼마 전 시댁에서 분가했다. 가출 끝에 어렵게 얻어낸 독립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남편은 돈을 버는 족족 시어머니에게 갖다주고 있다며 “마더 컴플렉스”라고 단정했다. 때문에 두 아이(4세, 2세)의 양육비와 생활비는 자신이 초등학교 원어민 보조교사로 영어를 가르치면서 받는 월 65만원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미르나 씨는 “커뮤니케이션(소통)과 머니(돈)”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남편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슬립(sleep), 워크(work), 잇(eat)”이라는 세 단어로 표현했다. 자고, 일하고 먹기만 한다는 얘기다. 자신이 일주일 동안 가출했을 때, 남편은 경찰에 아내의 이름조차 정확히 말하지 못하더라며 울먹였다.
문화적 차이도 크다. 필리핀 여성들은 진취적이다. 축제도 좋아하고 노래와 춤에 익숙하다. 한 필리핀 여성은 밭일을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시어머니에게 욕을 먹고 남편에게 쥐어박혔다고 한다. 일이 힘들어 죽겠는데 한가롭게 노래나 부르고 있다면서.
출신국별로 적응의 조건과 속도는 다르다. 필리핀 여성들은 영어권에 있었기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수월하지만 베트남 여성들의 경우 언어 문제가 심각하다. 장수군에서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이현선 소장은 “말이 곧 인권”이라고 말한다.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최소한의 자기방어조차 할 수 없는 경우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가족의 배려와 지원이 있다면 적응이 훨씬 쉽지만 대개의 농촌 가정은 그렇지 못하다.
이현선 소장은 ‘찾아가는 서비스’를 고안해냈다. 시간이 없어서, 길을 몰라, 차비가 없어서 교육받으러 나오지 못하는 여성들을 직접 찾아서 한 시간씩, 일주일에 세 번, 한국어교육을 한다. 자원봉사자를 따라 카르멘(베트남.41) 씨의 집에 찾아가 봤다. 남편 유동혁(47) 씨도 마침 집에 있었다. 유씨는 자활노동을 나간다. 건축 ‘노가다’ 일이다.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해 매달 70만원을 벌고 있다. 이 돈으로 부모와 아이 둘, 모두 여섯 식구가 먹고 산다. 카르멘 씨는 남편이 술 먹는 게 제일 싫다. 유씨도 그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일을 끝내면 너무 힘들다.”고 술을 먹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댔다. 결혼하고 7년째가 됐지만 변변한 나들이 한번 못 갔다. 유씨는 그래도 장모가 돌아가신 뒤 아내를 고향에 보내면서 700만원을 대출받아 처가에 부쳐준 걸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있다.
저항을 포기한 아이들
남자에게 이주여성은 ‘성적 해방구’다. 기본이 스무 살 연하인 어린 여성, 성적으로 억눌려 있던 소외 남성. 혈혈단신 이주여성은 절대적 존재로 군림하는 남편의 욕망을 거부하기 힘들다. 농촌에 거주하는 이주여성의 자녀는 기본이 두세 명이다. ‘통일교’를 매개로 국제결혼을 한 경우엔 네다섯 명이 보통이다.
지원센터의 황양희(교육문화팀장) 씨는 결혼이민자들의 2세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곧 크게 닥칠 일”이라고 못박았다. 기자 또한 취재하면서 아이들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부모야 어떤 이유든 ‘선택’의 결과라지만 아이들은 그야말로 ‘무고’했다.
아들을 낳은 펑엠(베트남.21) 씨의 집 대문엔 아직 빨간 고추가 매달려 있었다. 첫아이를 출산한 지 1년도 안 되었지만 펑엠은 벌써 둘째아이를 가졌다. 이현선 소장은 “아이가 말을 시작하기 전에 엄마가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의 말문은 엄마를 통해 트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꼭 베트남어를 가르치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이 소장은 ‘삼중언어교육’을 강조한다. 아버지 나라 언어인 한국어, 어머니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모국어, 사회적 왕따를 극복할 수 있는 영어.
“2, 3세 아이들은 한국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한다. 한국어는 이주여성에겐 제2언어지만 자녀들에겐 모국어인 셈인데 ‘어머니의 혀’라는 모국어의 수혜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가 급하면 따귀부터 때리니 어떤 아이는 한국어를 따귀 맞을 때 하는 표현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4, 5세가 되면 극도로 조용하거나 지나치게 활달해 폭력적인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다른 또래 집단과 다름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 때문이다. 취학아동의 경우 학습 진행이 늦어지고 눈에 띄게 소극적으로 변한다.”
이 소장은 국제결혼 자녀들의 언어교육이 제대로 안되면 “빈곤 ▶ 국제결혼 ▶ 자녀교육의 어려움 ▶ 이등 국민의 등장, 그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초창기 결혼이민자 세대의 경우 자녀들이 중학교 입학을 앞둔 경우가 많다. 다문화가족 자녀들이 가진 문제가 사회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할 시점이다. 황양희 씨는 “네오노라의 아들 민수가 걱정”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민수가 이제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면서 아이에게 닥칠 어려움을 예단했다.
아직 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는 초등학생을 겨우 수용하는 상태다. 부산의 아시아공동체학교에는 모두 26명의 ‘코시안’이 다니고 있다. 학교가 생긴 지 1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학생을 많이 받을 수 없는 처지다. 언어도, 나이도, 문화도 각양각색인 아이들은 거의 일대일 수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생 한 명당 교사 한 명이 있어야 하는데 재정이 시원치 않다. 등록금은 받지 않는다. 대부분 저소득층이라 학비를 낼 형편도 안 된다.
이 학교에선 무엇보다 미술, 독서, 상담 등을 통해 심리치료를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튀기 새끼야.”라는 놀림을 듣는 건 다반사. 무시로 돌멩이가 날아오고 물건을 빼앗기고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이다. 이 학교의 이사이자 학부모이기도 한 박효석 씨는 “아이들이 부당한 일을 당해도 저항을 안 한다.”고 말한다. 놀려도 참고 때려도 가만 있고 돈을 달래도 줘버리고 만다. 저항해봤자 달라질 게 없다는 체념이다. 과잉행동장애와 주의력 결핍, 도벽도 일반적인 특징이다.
대안학교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도 적나라하다. 한 교사가 들려준 얘기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종이에 손과 손톱을 그리라고 했단다. 짝궁끼리 서로의 손톱을 오려주는 치료수업이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손톱을 너무 길고 뾰족하게 그린 나머지 이걸 잘라주어야 하는 옆의 아이도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더라고 한다. 손톱 모양도 제대로 그리지 못할 만큼 마음의 병이 깊어진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에겐 돌 하나가 더 얹어져 있다. 가난도 차별인데 남과 다르다고 또 차별을 당하니….” 박효석 씨는 아시아공동체학교의 1년 성과를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으로 꼽았다.
펄벅재단에 따르면, 한국에서 태어나는 모든 신생아의 15%는 국제결혼으로 태어나며 이 숫자는 2020년까지 2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부양하게 될 아이들인 것이다. 이들이 만들어낼 ‘무지개 국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 박형숙 님은 인터넷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고 있다.
최근 지방자치 단체가 추진 중인 ‘농어촌 총각 장가 보내기’ 사업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농어촌 노총각을 구제한다는 명분보다 무리한 추진으로 부작용이 크다는 평가가 다수였다. 과연 ‘농어촌 총각 장가 보내기 프로젝트’는 누구를 위한 이벤트일까?
2006년 여름, 베트남의 어느 가난한 처녀는 ‘한국으로 시집가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혼인중개업소를 알아봤다. 베트남에서는 매매혼이 불법임을 알지만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부모형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다. ‘한국 남자들은 여자를 때린다, 이혼해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서웠지만,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때 처녀의 눈에 번쩍 띄는 광고가 있었으니, 대한민국 정부에서 신부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라에서 보장하는 중매업이니만큼 착하고 성실한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
2007년 봄, 전남 해남으로 시집온 베트남여성 A(23)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조씨와 이혼소송을 진행중이다. 그는 현재 임신한 상태다. A씨는 “처음부터 남편의 정신이 이상했다. 화를 자주 내고 약도 많이 먹었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역시 정신지체인 한국 남성과 결혼한 필리핀 신부 B(26)씨는 구타까지 일삼는 남편을 피해 도망치듯 고국으로 돌아갔다. B씨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은 상처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A씨와 B씨의 결혼을 주선하고 성사시킨 곳은 다름 아닌 시청과 군청이다. 최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예산까지 편성해서 추진하고 있는 ‘농어촌 총각 장가 보내기’ 사업이 또 다른 A씨와 B씨를 만들고 있다.
지난 6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 11층 배움터에서 ‘농어민 국제결혼 비용지원 사업,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제결혼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난해부터 경쟁적으로 ‘농촌총각 장가 보내기 지원사업’ 조례를 제정했다. 이번 토론회는 지자체의 조례 집행과정에서 결혼대행업체의 부조리한 횡포와 인신매매성 거래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지원 조례’는 한국 여성이 기피하는 자리를 아시아 여성으로 대치하려는 인종 차별적인 인권 침해”라며 국가적인 윤리의식의 부재를 비판했다. 한 대표는 또한 “외국인 신부를 맞이하는 가정이 대부분 빈곤층이라서 또 다른 사회적 문제점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지자체가 주먹구구식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자기들의 치적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농촌 총각 장가 보내기’ 정책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례로 관련 예산을 농수산개발비나 사회개발비에 포함시킨 지자체가 상당수였다. 또한 국제결혼 비용을 지원하는 지자체의 약 93%가 이주민 가정의 생활안정보다 결혼비용 자체에 예산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기준으로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에 가장 많은 예산을 투여한 지자체는 전남 해남이다. 해남군의회 김종분 의원은 좀 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해남은 특정 업체에 결혼대행업을 위탁했는데, 이 업체가 신랑측으로부터 별도의 사례비를 받아 문제가 발생했다.” 는 게 김의원의 전언이다. 김 의원에 따르면 신랑들은 대행업체가 신부를 보내주지 않을까봐 추가로 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농어촌 총각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여자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업체가 요구하는 대로 다 주는 거죠. 또 경제적 능력이 없다 보니 베트남 신부와 결혼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언론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꺼립니다. 그래서 피해사례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거죠.”
토론자로 나선 김현미 교수(연세대 사회학과)는 지난 15년간 국제결혼과 관련한 정부의 모순적 태도를 비판했다. 정부가 표면상으로 지자체 중심의 행정주도형 결혼을 장려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국제결혼을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주변부 남성과 여성의 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제결혼을 중심 의제로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덕 중개업자만 양산했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총체적인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한국염 대표는 “정말로 지자체가 농촌가정의 행복을 원한다면 농촌총각 장가 보내기 지원 조례 같은 허술한 것을 만들기보다 2006년 행자부가 마련한 ‘거주 외국인 지원 표준 조례안’이나 국회에 계류 중인 ‘다문화가족지원법’과 ‘이주민가족지원법’ 등을 지원하는 편이 낫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종분 의원은 이주민 자녀에 대한 교육지원을 늘리고 100% 무상 언어학습이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주민 여성이 언어를 가장 어려워하는 점을 고려해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 한국어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은 달라도 마음은 같았다.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민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대한민국 여성이다. 우리의 인권이 소중하듯 그들의 인권도 소중하다.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낯선 땅에 오게된 그들이 한국사회에 빠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절실한 요즘이다.
★ 송지윤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팀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 사람과 결혼해 한국으로 이주하면 한국인 새댁이 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한국인 여성이 중국인과 결혼해 중국에서 살면 중국 새댁이 되고 싶어지는가?
한국 사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다민족.다문화 사회를 맞고 있다. 정부가 한국이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은 아무래도 최근 급증하고 있는 국제결혼, 특히 중국 및 동남아시아 등지의 여성과 한국인 남성과의 결혼 증가율인 것 같다.
정부 보고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우리 사회 국제결혼 비율은 10% 이상 증가했으며, 특히 2003년 이후 해마다 1만 건 이상 늘어나면서 그 증가 추세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결혼한 8쌍 중 2쌍이, 특히 농어촌에서는 10쌍 중 4쌍이 국제결혼이었다. 다문화 사회와 다문화 가족 지원 등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어느덧 ‘다문화 가족’은 ‘국제결혼 가족’을 의미하기에 이르고 있다.
언뜻 보기에 국경을 넘어선 인적 물적 자원의 교류 및 세계화의 물결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국제결혼의 급증, 특히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 여성과의 결혼 급증은 인적 물적 교류에 따른 단순 증가와는 차원이 다르다. 외국 여성들은 국제결혼 중개업자를 통해 극도로 상업화된 결혼 절차를 거쳐 한국으로 유입된다.
다문화 가족의 중요한 구성인자인 결혼이주여성 중 많은 수가 ‘ooo 아가씨와 결혼 하세요’ 또는 ‘후불제’ 등 인권침해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광고와 경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체류자격을 불문하고 한국에 사실상 거주하는 외국인(국적 취득자 포함)은 약 56만 명으로, 국제결혼이주자 및 그 자녀가 약 9만 명(16.9%), 외국인 노동자 약 26만 명(47.6%), 나머지는 유학생?주재원 및 외교관 등(35.6%)이 차지하고 있다. 즉,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결혼이주자를 제외하고도 47만 명이나 된다. 이 시점에서 한국 국민의 배우자라는 지극히 자국민 중심주의적인 사고방식 안에서 차별적으로 다문화주의 혹은 다문화 가족지원 논의가 이루어지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또한 현재 다문화 가족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인 결혼이주자 지원사업이 과연 다문화적인 틀거리 안에서 여성들의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을 존중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 이주여성에게 고국에 친정어머니가 있는데도 한국에서 친정어머니를 두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주 여성들이 한국인 친정어머니를 갖는 것이 한국인 시어머니를 갖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좀 과장되게 애기하면 둘 다 외국인 어머니일 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인 내가 파키스탄인과 결혼했다고 하자. 파키스탄 정부가 파키스탄인 여성과 모녀지간으로 결연을 해준다면, 한국인인 나는 친정어머니라는 말에서 오는 파키스탄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파키스탄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잊고 파키스탄인 친정어머니의 방문을 환영할까?
몇 달 전 정부 부처에 다음과 같은 홍보물이 게시된 적이 있다.
“하루빨리 한국인 새댁이 되고 싶으시다고요, 결혼이민자 가족지원센터와 찾아가는 서비스가 함께합니다.” (2007년 5월 7일 여성가족부 보도자료)
한국 사람과 결혼해 한국으로 이주하면 한국인 새댁이 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한국인 여성이 중국인과 결혼해 중국에서 살면 중국 새댁이 되고 싶어지는가? 그것도 아니면 중국 새댁이 되고 싶어 해야만 한다고 이 홍보물은 얘기하고 싶은 것인지 궁금하다. 일급 호텔 등을 빌려 결혼이민자를 불러놓고 노래자랑, 한국생활 소감발표 등의 행사를 개최하고 ‘다문화 사회를 위한 결혼이주자 한국 정착 지원사업’이라고 칭하는 프로그램들이 진정 한국의 다문화 사회를 고민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이제라도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가능한 다문화 사회의 의미를 살펴보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 빛깔만 좋은 다문화 사회를 강조할 일이 아니다. 타 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고 내용도 담보되지 않은 정책을 쏟아놓기보다 거주 외국인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외국인이 한국 국민과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제도와 법을 개선하고, 이들이 불이익을 보거나 차별받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선이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2006년) 결혼이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서비스는 한국어 교육(39.7%), 취업교육?훈련(15.2%), 컴퓨터.정보화 교육(13.9%) 등이다. 이는 결혼이주자뿐만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한국에 이주한 외국인들에게도 절실한 지원 사업들이다. 한국어 교육을 제외하면 한국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사회적 지원이다.
또 다른 조사에서 여성 결혼이민자들은 교육 등 사회통합서비스를 받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가족의 허락과 지원(28.9%), 참석 편리한 시간 (25.5%), 자녀 돌봐주기(22.7%) 등을 꼽았다(국정브리핑).
아무리 좋은 지원사업이라도 결혼이주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조사 결과가 말해주는 것처럼 결혼이주자들이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가족의 이해와 양해가 아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 입국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을 지급하고 이후에도 작업장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조사했더라면, 아마도 ‘고용주의 허락’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것이다. 외국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인권침해적인 절차를 근절하고 외국인과 공생하기 위한 합리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김재원 님은 국제이주민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다문화 사회, 다문화 가정을 위한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모두가 다문화주의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이주민의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한 노력엔 소홀한 것 같다.
최근 여성농민회 회원들의 고민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농촌지역 국제결혼 비율이 40%를 선회하면서 여성농민회에서는 국제결혼으로 이주해온 외국인 여성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일지 여부를 논의 중이라고 했다. 여성농민회 정관이나 회칙에 이주여성이 회원이 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정부부처와 지자체가 앞 다투어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요즘 추세에 비추어 때늦은 고민이 아닌가 싶었으나,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여성농민회 회원들의 고민이 바로 일상생활에서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이주여성을 여성농민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문제는 법이나 제도를 넘어, 온 마음으로 이주민을 나의 ‘이웃사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은 삶의 터전에서 이주민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성찰하며 한발씩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반면, 정책 생산자들은 ‘출산율 제고, 고령화 사회 대비, 농어촌 지역의 인구 유입’ 등 눈앞의 국익을 위해 ‘이주민 통합’ 정책을 급속히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한가운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다문화가족지원법’(이하 ‘다문화가족법’), ‘이주민가족의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이주민가족법’), ‘혼혈인가족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혼혈인가족법’)과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해 7월 17일부터 효력이 발생한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이하 ‘재한외국인법’) 등이 있다.
법 적용 대상 측면에서 재한외국인법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자로서 대한민국에 거주할 목적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자”로 포괄 규정하고 있다. 반면 다문화가족법, 이주민가족법, 혼혈인가족법 등은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해 가족을 이루고 있는 외국인 또는 귀화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여기서 다문화가족법처럼 ‘이주민과 한국인이 결합된 가족’을 중심으로 지원 대상을 설정할 경우, 국제결혼 가정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부부와 그 사이에 태어난 아동, 외국인 유학생과 그 동반가족, 무국적 외국인과 그 가족 등이 빠지게 된다. 이같이 한국인과 ‘가정’을 구성한 이들에게만 정착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은 국적과 혈통에 기반 한 차별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재한외국인법과 다문화가족법이 ‘합법적’ 체류 자격의 외국인만을 법 적용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는 반면, 이주민가족법안의 법 적용 대상은 ‘합법적’ 체류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원 대상에서 ‘불법’ 체류 외국인을 배제하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흐름에도 역행하는 반인권적인 정책이다. 즉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 하더라도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과 같은 피해를 본 경우 노동사무소 진정과 국내 사법절차를 통한 법적 구제가 가능토록 한 조치, 미등록 이주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우 형사고소를 통해 피해 구제를 가능토록 한 조치 등과 같이 미등록 이주자에 대한 권리보호의 범위를 확대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불법 체류 외국인 배제는 부모가 미등록자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태어나자마자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아이들을 원천적으로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문제점까지 갖고 있다.
정책시행 담당기관과 관련해 다문화가족법안, 이주민가족법안, 혼혈인가족법안 등은 ‘여성가족부장관’을 주무장관으로 하여, 다문화가족 내지 이주민가족에 대한 정책을 현재 시행 중인 가족정책의 일부로 보는 듯하다. 반면 재한외국인법은 ‘법무부장관’을 주무 부서로 하여, 다문화가족 정책을 이민 정책의 일부로 포함시켜 현재 추진 중인 ‘이민청’ 업무로 배치하려는 듯하다.
지난 4월 27일 재한외국인법이 통과됨으로써 일단 법무부가 다문화가족 지원 업무에 대해 우선권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현재 발의되어 있는 다문화가족법안, 이주민가족법안, 혼혈인가족법안에 대해 그 지원 목적과 내용이 재한외국인법과 중첩된다는 이유로 국회 통과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가 다문화가족 지원 업무를 담당한다는 점에 대해 상당수 인권단체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주자에 대한 ‘단속’과 ‘통제’를 주 업무로 삼아왔던 ‘출입국’이 ‘이민청’으로 옷을 갈아입는다고 해서 그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단속’과 ‘통제’에 머물렀던 과거와 결별하고 ‘인권’적 관점에 기반을 둔 ‘지원 서비스’를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믿기엔, 그동안 보여준 출입국과 보호소의 행태가 너무나도 반인권적이었다.
최근 정부 부처와 지방정부가 저마다 ‘다문화 사회’를 이야기하고 ‘다문화 가정’을 위한 정책을 양산하고 있지만, 도대체 다문화주의가 무엇인지, 다문화 사회를 위한 다문화 가정 지원 정책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주민들이 부대끼고 있는 현실에서 문제 해결은 위한 정책을 입안하지 않고, 한국사회로의 일방적인 정착과 통합만 강요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이럴 바엔 애초에 ‘다문화 사회’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않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굳이 그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의미를 제대로 알고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 소라미 님은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