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인연-
지난 서울대에서 근무했던 연고로 맺어진 인연들이 많다. 인연이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만 우리인연은 그리 흔치않은 특별한 인연이다. 그는 현재 지구촌 2백10개국의 세계평화와 평등, 그리고 안녕에 전념하고 있는 유엔사무총장이다.
그는 서울대정외과 학생으로 외교관을 지망하여 법대 기당교수의 국제법 제자였고 결혼주례도 기당교수가 서주었다. 외무부와 해외에서 근무하다 귀국하면, 스승이며 주례도 서주셨기에 세배를 간다. 필자의 결혼 때도 기당교수께서 주례를 서주셨기에 세배를 가면 자연히 반기문(潘基文)총장과 만나곤 하였다. 그때가 70년대 초부터니 많은 세월이다.
그리 수십 년간에 보통 인연이었지만, 그 후로 특별한 인연으로 다시 만났다. 25년 전, 1987년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위기의 6월 민주항쟁 때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은폐조작사건으로 민심수습 개각이 있었다. 기당(이한기 교수 호) 본인의 고사에도 총리로 지명되어 우리는 총리를 지근에서 보좌하게 되었다.
그는 전임총리의 의전비서관으로 외교부에서 파견 나왔고 나는 신임총리비서관으로 파견근무였다. 그는 파견기간이 만료되었지만 계속 근무하게 되었다. 총리께서 우리를 주례도 서주시고 스승과 지인으로 존경하였기에 유월 위기정국에서 기당을 허심탄회하게 사심 없이 측근에서 보좌할 수 있었다.
특히 유월항쟁이 시작된 6월10일부터 15일까지 명동성당 농성과 관련하여 대통령이 직접 공권력 투입을 명하였다. 그러나 총리는, 공권력 투입은 불가 하다는 우리의 건의를 받고 대화로 풀기로 했다. 총리가 대통령의 명령을 어긴 것이었으나 결국 공권력이 아닌 대화로 풀어 위기국면을 모면했었다.
그런 후 격화된 시위에 군이 출동하여 계엄선포 직전까지 이르렀다. 이때도 5.18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또다시 군 출동은 불가함을 건의했는데 당정합의로 건의하니 대통령이 수용하였다. 어쩌면 4.19혁명 같이 갈지도 모를 6월 위기정국에서 결국 국민에 항복이나 다름없는 6.29선언 내용을 우리는 적극 건의하였다.
총리는 안가에서 여당 대표와 만나 국민의 뜻을 강조하고 군이 나온다 해도 정국이 안정되지 못한다고 공감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없는 순간에 나는 그와 의기투합하여 기당총리를 설득 했었다. 총리는 우리의 건의가 당신의 의견과 같다며 기꺼이 받아 주시고 이를 대통령에 건의하여 실행되었다.
그런 와중에 그는 파견기간이 초과되어 외무부로 돌아가야 하기에 총리께 건의하여 외무부로 복귀하도록 결정했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헤어져서도 해가 바뀌면 서로 연하장을 주고받으며 마치 형제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었다. 주고받는 서신의 사연에서 그는 필자보다 3살 아래이기에 ‘소제 기문 올림’이라 쓰곤 하였다.
누구보다도 성실한 외교관으로 근무하여 외교부의 중추적 인물이 되었다. 당시 그동안 한승주 유엔의장의 비서실장을 직급을 낮추어 맡으면서 쌓은 경륜에 그가 유엔사무총장으로 출마했을 때에 국내외의 여론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유엔의 사명은 인류의 보편적 평등 자유평화를 모토로 하는데 60년도 더된 한반도 분단국의 후보가 과연 당선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더구나 그가 출마하기 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그룹의 CEO가 유엔한국대사로 근무한 H씨였다. 그가 사무총장후보 출마를 기정사실화 했었는데 대사전에 근무했던 그룹에서의 부정으로 그만 대사직도 사직하고 이어 사무총장후보도 접게 되었다. 그 다음에 바로 반장관이 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H대사가 출마했으면 과연 당선이 가능했을까 의문이었다.
세계의 반응이 다양했다. 분단국 출신이 과연 분쟁의 세계나라를 조정해야 하는데 적합할까. 경쟁자들 또한 만만치 않아 10여명이 넘었다. 총장후보에 대한 이론들이 많았다. 미국이 그를 과연 선택할까. 한편 그가 미국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유엔의 많은 나라들이 대체로 반기문 후보를 지지하는 편이라고 했었다.
국내의 여론 또한 다양했다. 이왕 출마를 했으니 꼭 당선되어야 한다. 한미 간에 우호적인 면이 장점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와 친교를 맺고 있어 무난하다. 그러나 언론들은, 한반도 주변 강대국이 과연 그를 찬성할까. 일본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은근히 반대하는 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는 차분하게 외통부장관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세계 각국을 방문했다. 차분히 표를 다지고 조용한 선거운동을 계속했다. 나 또한 그와 외교통상부 장관실에서 두 차례 만나 분단의 현장인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위해 꼭 반장관이 당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성원하였다.
그리고 이곳저곳 여러 언론에 칼럼을 쓰고 기고하여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고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언제 위기국면으로 전환 할지도 모르는 동북아 안정을 위해서도 필히 그가 유엔 사무총장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론도 펴면서 기고하였다.
또한 국내에서 반대의견을 제기한 재야와 진보단체들의 주장에 설득을 했다. 보다 현실적이고 대국적인 면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이해시켰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상황은 언제나 긴장이지만 더욱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여론 조성에 나섰다.
그렇다면 당시에 그의 출마변이나 그의 장점은 무엇이었을까? 이미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세계의 외교지도자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러기에 학창시절에 대표로 유엔을 방문하고 장차 그곳에서 일할 꿈을 끼웠던 반장관이다. 그러니까 그는 외교관을 지원하면서부터 착실하게 유엔의 수장 꿈을 키워왔었다.
그는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외교관으로 자질을 연마하고 능력을 인정받으며 촉망되는 외교관이란 평이었다. 미국 주재한국대사관에 총영사로 근무할 때도 외교력을 발휘하여 능력의 외교관으로 인정받아 꾸준히 발전했다. 가능한 국제무대와의 협력관계의 업무라면 스스로 나서고 일들을 무난히 해내었다.
특히 한승수 유엔총회의장의 1년간 비서실장으로 성실히 근무하면서 난제의 유엔업무 해결과 노하우를 축적해간 것이 큰 장점으로 부각되었다. 유엔회원국과의 유대관계에 힘쓰고 신뢰를 쌓아 외교가로서 신뢰와 역량을 발휘했다. 그 후 본국에 돌아와 외교부 차관보와 차관 외교수석비서관을 거쳐 마침내 외교통상부 수장이 되었다.
반장관이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출되던 날,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외부부로 찾아가 “축 반기문 장관 유엔사무총장 당선”이란 휘호를 전하고 세계평화는 물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더욱 힘써주기를 기원하였다. 분명 반총장의 당선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일조할 터였다.
지난 7월, 그가 유엔 임지로 떠난 후 1년6개월 만에 모국을 찾은 그에게 외교부를 통해 나의 저서 2권과 칼럼을 전달했다. 그와 함께 6월 항쟁 위기를 넘기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나”란 반 총장의 독백을 제목으로 중편소설을 쓴 소설집<못다 핀 꽃>과 수필집<도라산의 봄>문집을 전달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를 강조한 휘호도 같이 증정했다.
지난 8월말, 반 총장이 직접 쓴 답장이 국제우편으로 왔다. “소설집과 수필집을 받아 잘 보았고 언제나 지원 해준 성의에 감사하며 뉴욕에 오면 꼭 들려 달라”는 친절하고 정의(情誼)깊은 서신이었다. 그는 언제나 위아래로 모두에게 친화적이지만 그 바쁜 와중에 어찌 나에게까지 친필 서한을 보냈는지 모른다. 나는 그에게 오직 세계평화를 위해 건승하기를 염원했다.
그는 그동안 나에게 꼭 형이라고 대하며 보내온 정겨운 친필이 여러 통이 있다. 어쩌면 반 총장과 나와의 인연이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그리 흔치 않은 특별한 인연이란 생각한다. 만남은 오래지만 비록 짧은 기간에 서로가 최선을 다한 신뢰로 믿어 왔기에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오고 있다.
나지막한 삶을 살며 분단조국에 평화통일을 염원한 나에게 세계적인 인물이 된 반 총장과 교분을 나눠 언제나 든든하다. 뉴욕에 오면 한번 찾아 달라고 했지만 과연 그 바쁜 일정에 만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감사한 마음이다.
여느 때는 난마의 지구촌 문제에 그가 고뇌하는 모습을 보도를 보면서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러나 성심성의로 유엔의 수장 직을 수행하고 있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기도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기에 그 꿈을 반기문 사무총장 이 연임되어 재임 기간에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까지 가져본다.
나의 소망은 곧 8천만 동포들의 소원인 통일이다. 꿈에도 소원이 평화통일이라는 노래에서와 같이 동포들이 기원하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올 여름에도 고국을 잠간 방문했을 때 서울의대에서 조우하여 반 총장이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함에 신뢰하고 앞으로 4년남은 총장임기에 성공을 기원했다.
*필자 윤영전 :작가 (수필. 소설. 서예) 칼럼니스트. (사)평화연대 상임고문
첫댓글 역사의 이면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린108님,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송구영신. 언제나 건강하십시요.
인연은 우연에서 시작되어 필연에서 꽃 피는 한 떨기 홍매화같은 붉은 마음 인 것 같습니다.
시집 한 권 보내 드리고 싶은데 어디로 보내면 될련지요.
제 메일 hong1535@naver.com으로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장무상망 하겠습니다.
홍선생님, 격려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반총장과의 아름다운 인연의 결실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서광이 보일때 더욱 기쁨이라 생각합니다.
당선되지도 않을 일을 한다며 국제망신 당할까 걱정이라며 반대하시던 당시 야당 대변인 성명이 떠오릅니다.
진보단체에서도 반대한 분들이 계셨군요.
작은 나라 대한민국 출신으로써 세계평화의 지도자를 역임하시고, 재선까지 하시니 대한인으로써 영광입니다.
위대한 지도자와 함께하신 님 또한 대단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평화를 위하여, 평등과 자유를 위하여 역량을 발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석윤선생님, 정말 반총장이 유엔사무총장에 당선과 또한 재임은 우리나라의 기운이지요. 너무도 긴 지구촌 분단국이 앞으로 평화와 통일로 들어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라져가는 이념논쟁일랑 접고 6.15선언과 10.4선언을 남북정상이 선언하고 당시 6.15를 국민 90%로 지지하고 유엔도 지지했었는데 그만, 퍼주기 잃어버린 10년 등으로 격하된점에 안타깝지요. 앞으로 평가가 있겠지요. 격려 고맙습니다.
이념보다는 평화가 중요하지요. 국모를 살해하고 황제를 독살하며 강제합병하여 우리의 부모조상을 개처럼 취급하고 소처럼 부려먹고 압박한 일본도 용서하고 교류하는데, 북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민족의 앞날이 밝을텐데요 ....
윤선생님이나 반 총장님이나 두분다 위대하십니다. 한분은 세계를 위해, 한분은 한민족을 위해..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감사합니다.()
가다오네님, 저에게 과찬의 말씀입니다. 우리 8천만 동포들은 모두 이땅에 평화와 통일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회만 되면 우리의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 노래하고 있지요. 베트남에 1965년 최초 참전하여 13개월 복무하고 살아 귀국했지요. 그곳도 17도선 분단국이었는데 20년전 남북 베트남이 통일되었습니다. 저는 통일뒤 4번을 다녀왔는데 통일된 베트남의 평화로운 그들의 삶을 보면서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휴전이 아닌 완전한 베트남 남북통일, 그들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오겠지요. 평화통일의 그날이...
와! 인연이 다양하시고 다 대단하신 분들이시네요!
특히 반기문 총장님과의 특별한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전생서부터 큰 공덕을 쌓아오신 결과가 오늘의 그 특별한 인연을 만드신 것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복 중의 제일은 인연복이니까요! 멋지십니다. 하하하하!
덕산회장님께, 제가 회장님의 뜻하심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기만 합니다. 앞으로 정진하여 좋을글 쓰고 우리의 소원인 평화통일에 다가가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에 나서 이름값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저도 많이 부족하지만 정의와 평화에 다가가고 함께하는 공동선에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덕산회장님의 심오한 철학을 이해하는데도 더욱 노력하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