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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09.7.12일. 광주)
말씀/야고보 4:13-17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14)
13,14절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우리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합니다. 이사야는 다른 말로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고;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화는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드는 것은 여호와의 기운이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과 같다"(40장 6-7), 또 시편 102편 3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개 나의 사는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이렇게 안개 같고 풀 같이 헛되고 짧은 생명이라면 어떻게 살아야겠느냐는 것입니다. 단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그 짧은 인생을 소비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은 마치 천년 만년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야고보는 이런 사람들에게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고 합니다.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일 년 후를 계획세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사업을 잘 할 수 있고, 돈만 있으면 무엇이던지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이 언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질병으로 노환으로 그리고 자동차 비행기 사고로 ... 죽음이란 빈부와 남녀노소 아무런 관계가 없이 갑자기 닥칩니다. 태어 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돌아갈 때문 순서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 여운계가 폐암으로 돌아갔습니다. 노 대통령 서거에 가려져서 안 들어났는데 전원주의 말로는 너무 슬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생하며 돈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겨우 별장까지 마련하고 편히 쉴까 하였는데 모든 것은 놔두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문제는 어느 날 나에게 이런 죽음이 갑자기 준비 없이 찾아와서 세상에서의 인연을 끝내게 된다면 어덯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 많은 지식과 재물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수고하고 노력한 인생의 결과가 무엇이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 없이 죽음을 맞게 되어 죄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죽는다면 그것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 참담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들으라’합니다. 아주 중요하니 새겨들으라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그 자체가 슬픔도 두려움도 아닙니다. 주님은 죽음을 잠이라 하셨고, 계시록에서는 주 안에 죽는 자는 복 되도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죽을 준비가 되었는가 안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준비 되었으면 기쁨의 천국으로 가는 것이고, 준비 안 되었으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유명 인사들이 줄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중에 세계적인 유명한 가수가 마이클 잭슨도 50대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장례식 100만 인파, 500만 성대한 추모 예배... 세상은 요란한 사망 소식을 안타까이 전합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단 한 분 우리 주님이 그 영혼으로 맞으러 나오지 않는다면 그 끝은 비참한 죽음과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죽음은 멀리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도 짧은 인생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시킨다고 합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죽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례식에 견학을 하고, 유언을 쓰게 하고, 죽음에 임박해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게 한다고 합니다. 잘 하는 것입니다. 전도서에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 것도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되니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전 7:2).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안 하든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면 순서 없이 누구나 가야 합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원초적인 질문 같지만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답을 줍니다.
첫째,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며 살라!
미국에 윌리암 할스트(William Hallst)라는 부호가 있었습니다. 나이 60세가 되었을 때 자녀들과 친척, 친구들을 불러놓고 내 앞에서 농담이라도 절대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도 꺼내지도 말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로마 역사에 나오는 황제는 신하들이 아침에 자신을 알현할 때마다 "폐하,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라고 인사하도록 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윌리암 할스트라는 부자는 죽을 때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갔고, 로마의 황제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죽음에서 예외인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좀 더 빨리 와 좀 더 늦게 차이만 존재할 따름입니다. 결국 모두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요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느니라".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사망은 죄의 삯이고 죄는 빚입니다. 그런데 이런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먼 도시로 가서 열심히 장사하다가 죽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헛되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항상 죽음 너머를 바라보며 준비를 하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영원한 도성인 천국을 바라보았고,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지만 늘 가나안을 바라보며 임종시에는 이스라엘의 떠날 것을 말하고 자기 뼈를 위하여 명했습니다. 그 결과 현실에 매여 살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기도의 사람 모세도 시편 90편 1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화살과 같이 신속히 날아가는 삶 속에서도 죽음을 카운트 할 수 있는 지혜의 마음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곁에 있는 그림자와 같음을 인식하며 사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시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너의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1:1)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 12:7). 죽기 전에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죄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미 아담 이후 죽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안개 같다는 것은 곧 죽을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말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이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예수가 없이 죽으면 결국 쭉정이 인생이 되어 불과 유황의 못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주님께 접붙임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살고 부자 되기 전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 카페에서 제 글을 우연히 읽은 한 분이 저에게 쪽지 글을 남겼습니다. 바다 해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감동을 받으면서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고 이 분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전화 통화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요즘 세상에 너무나 악하고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이렇게 그냥 죽으면 안 되겠다는 두려운 생각이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도 다른 부서에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부산 지하철에 근무하는 분인데 하나님 말씀 들으러 무안까지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왕이면 가족들까지 다 데려 올테니 하나님 말씀을 들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분은 정말 인생의 날을 카운트 하는 지혜를 가지신 복된 분입니다. 철도 파업 때문에 다 준비하고 못 왔지만 다시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저는 하나님이 마음을 만지신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도 감명 있게 읽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분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예인들 인기 가수 권력자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둘째, 허탄한 자랑을 피하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 4:15-16)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이 러시아를 침공하려고 계획을 세울 때, 부하들이 하나같이 일어나서 나폴레옹을 막았답니다. "유럽대륙을 다 정복했는데 러시아까지 침공한다는 것은 명분이 없고 이미 가진 땅도 너무 넓습니다. 그리고 각하,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성취케 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일은 단념해 주십시오." 그때 나폴레옹이 말했답니다. "아니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성취한다." 그 후 러시아로 침공해 들어갔다가 그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허탄한 자랑이 많습니다. 위대한 기술을 자랑합니다. 높은 빌딩 짓는 것을 자랑합니다. 속력이 빠른 자동차를 자랑합니다. 돈 많은 것 자랑. 40-50평대 아파트를 자랑합니다. 학벌 자랑, 족벌 자랑...자식자랑, 마누라 자랑... 다 허탄한 것입니다. 인생이 바람 불면 날아가는 안개인데....이렇게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자랑하는 것, 그게 교만입니다. 인생은 겸손히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할 존재이지 자랑할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끔 완벽에 대한 인간의 교만을 꺾으실 때가 있습니다. 초정밀 기계도 가끔 오작동 되고, 우주선의 사고도 가끔 나고, 빌딩도 무너지고, 비행기 추락합니다. 이런 사고가 안 나면 사람은 교만해져 하나님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부족함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16절에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하였습니다. 여기의 '허탄한 자랑' 이란 '거만한 태도와 허풍'을 의미합니다. 안개와 같이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주제에 거만한 태도로 허풍을 떨면서 자랑하는 것을 악하다고 합니다. 인생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역사를 보면 인간의 부질없는 야심들은 모두 다 깨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허탄한 자랑들은 죽음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뉴스에 불운의 역대 대통령 이야기를 하면서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앞에 나와 기자회견하면서 아들문제로 사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민주 투사입니다. 그리고 한 분은 노벨평화상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제 힘과 능력으로 된다고 자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잠언 27장1절입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요즘은 정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습니다. 지혜롭다고 할수록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이제 살만하다고 생각하면 떠납니다. 세상 부귀 권세 좀 누려보려 하면 병들고 몸이 상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미련하고 우둔하고 약한 존재가 인생임을 깨닫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래야 생명의 주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삶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그것이 약해도 강하고 가난해도 부요한 길입니다. 인생의 지혜요 행복입니다.
사람들이 왜 허탄한 것을 붙들고 자랑하는지 아시나요? 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는 언니 인생 목표가 무엇인가 그래도 목포에서 이름난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이랍니다. 삶의 목표도 아니고 인생의 목표가 30평 40평 짜리 고급 아파트입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자식 자랑, 돈 자랑 ,땅 자랑을 합니다. 아이들도 덩달아서 자기가 사는 아파트 자랑합니다. 몇 동 아이, 몇 평에 사는 아이,,, 이렇게 끼리끼리 어울리고 논다고 합니다. 허탄한 자랑을 일삼는 부보 아래 허탄한 아이들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기야 자랑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어쩝니까? 저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듭니다. 하도 자랑할 것이 없으니 딸 자랑하고 싶습니다. 이쁜 딸, 열심히 노력해서 중대 병원 취업하여 중환자실에 3년 경력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들은 취업이 안 되서 야단인데 사직서를 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들으면서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정말 자랑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가 생겼습니다. 사직서를 내게 된 동기는 지금 상태로는 신앙도 엉망이고 마음도 너무 삭막하니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공부도 더하고 인격수양도 더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더 참된 것을 놓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정말 자랑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와 십자가입니다. 생명과 부활 그리고 천국!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갈6: 14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셋째,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들으라”(17)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는 '인생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생에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입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내 손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이 내게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살 때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짧은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영원을 생각하게 하시고 선한 일을 할 기회를 주십니다. 정말 인생이 미워하며 다투며 악을 자행하며 살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할 기회를 놓쳐도 안 되고 나중으로 미루어서도 안 됩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최선을 다하며, 기회가 있는 대로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17절에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솔로몬은 전도서 3장12절에서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 6:17-19절을 보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악한 시대를 이기는 길은 적극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베풀며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 선을 미루고 있다면 그 역시 악이고 죄입니다.
미국의 한 심리학 교수가 여름방학을 앞 두고 칠판에 강의 내용을 적었습니다. 『 당신이 만약 3일 후에 죽는다면 …』 그리고 우리가 만일 3일 후에 죽게 된다면 당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질문이 끝나자 학생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먼저 부모님께 전화하고, 애인이랑 여행가고, 작년에 싸워서 연락이 끊긴 친구한테 편지 쓰고 … ” 학생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떠들어댔고 고민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글쎄… 나라면, 우선 부모님과 마지막 여행을 간다. 그 다음엔 … 그 다음엔… 꼭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던 고급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는 그 동안의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일기를 쓴다.’ 그리고 20분쯤 지난 뒤 교수님이 몇몇 학생들의 대답을 듣기 시작했는데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세 가지 소망은 뜻밖에도 다들 평범했습니다. 여행을 가겠다.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 싸우고 토라진 친구와 화해하겠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하겠다. 여러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보신 제니 교수님은 칠판으로 다가가서 단 한 마디를 썼습니다. 《 Do it now !!》-
바로 지금 실천하라! 사람들은 잘 압니다. 그리고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것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말합니다. “..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 2:18)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좀 더 참을 것을, 좀 더 베풀 것을, 좀 더 재미있게 살 것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후회를 합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쓸 걸,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걸…………
요한 웨슬리(John Wesley)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오늘 밤 12시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신다면 지금부터 그 시간까지 무엇을 하실 것입니까?" 웨슬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던 대로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라고 뜻깊은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매일 매일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기에 죽음이 온다 해도 새삼스럽게 다른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죽음의 준비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선 한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자 하나요? 여기의 '선' 은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도덕적으로 옳은 것, 참된 것, 바른 것은 마땅이 행해야 할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보다 선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선의 결정체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선입니다. 그러므로 짧은 인생을 지혜롭게 가치 있게 사는 길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나로 인해서 복음이 이웃에 전파되고 옳은 데로 많은 사람들이 돌아와 생명을 얻는 역사가 일어난다면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바울은 그 기쁨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 1:18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인생은 안개같이 짧습니다. 허탄한 것을 자랑하며 헛되이 살다 죽는다면 그 또한 허망하고 비참한 일입니다. 이제는 주 안에서 주님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며 선한 일에 더욱 힘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김해영 목사
첫댓글 가끔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면 고맙다거나 감사하다고 말할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싱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답니다 예수믿으세요@ 라고....
가끔 때론..아주..자주......이런생각을 해요..진짜 돈좀 펑펑...써보고싶을때가 있어요..해외여행도 다니고 아주 좋은차그리고 집..기타등등..누리고 싶은게 많아요 실제로 어느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같은 평수끼리 놀고 작은평수에 사는사람은 사람취급도 안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있어요.정말 화나기도 하죠..그럴때 제가 이런말을 합니다..그 사람은 꼴랑..커봤자..100평 이하지.. 나는 5만평이 넘는 땅을 가졌는데..그깟 100평이 대수냐고.. 땅은 어디있는지 이야기 안했어요. 하나님나라에 있다고..
하늘, 땅, 바다, 산이 다 우리 아버지 것이고 내 것인데...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누구하고 비교하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