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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일시 : 2004년 6월 25일(금) 19:00 ∼ 2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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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역시 특강시간입니다. 영남대 독문과의 염무웅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저서로 『한국문학의 반성』 『민중시대의 문학』『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모래 위의 시간』 등이 있습니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하셨으니까 이미 40여 년을 비평 활동을 해오신 분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60년대 말부터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에 관여하기 시작하셔서 주간을 지내셨고 70년대 말에는 창작과비평사의 사장까지도 역임하셨습니다. 지금은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맡고 계십니다. 오늘 '김남주 시 다시 읽기'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해주실 텐데요. 최근에 간행된 김남주 시선집 『꽃속에 피가 흐른다』에 수록된 시들을 중심으로 말씀해주시겠습니다. 이 시집은 염무웅 선생이 직접 엮으셨습니다. 자, 그럼 염선생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김남주 시 다시 읽기의 의미
염무웅 : 반갑습니다. 올해는 김남주 시인이 작고한 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94년 2월 13일에 세상을 떠났지요. 또, 김남주 시인이 문단에 데뷔한 때가 1974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이니까 문단 데뷔도 어느덧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마침 그 당시 1974년 무렵에 『창작과비평』의 편집 실무를 제가 책임지고 있었어요. 투박한 갱지 원고지에 씌어진 김남주의 원고를 읽고 굉장한 시인이 나타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발표를 했습니다. 김남주 시인과 그런 인연이 있는데 등단 30주년, 작고 10주년이 되는 오늘 김남주에 대해서 강연하는 것이 저 개인으로서도 적잖이 뜻 깊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의 다수는 시를 좋아하시고 김남주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김남주 시인이 어떤 시인이었는지에 대해서 선입견이랄까 어떤 주어진 관념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김남주 시인은 흔히 알고 계시듯 혁명적 시인이고 전투적인 노래를 한 강고한 시인입니다. 압제의 시대 한복판을 뚫고 가면서 자유를 노래했고 해방을 노래했던 시인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김남주가 세상을 떠나고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끝날 줄 모르던 군사독재도 사라졌고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진 셈이죠. 그와 동시에 70년대, 80년대, 90년대 초까지 김남주가 활동하던 그 기간의 뜨거웠던 열정도 동시에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은 김남주의 시대가 아닌 셈이죠. 이렇게 달라진 시대에 김남주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달라진 시대에 김남주의 시가 얼마나 살아 있는 울림을 우리에게 주는가, 10년 세월과 더불어 김남주의 시에서 흘러간 것은 무엇이고 그 10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슴 한복판을 향해 호소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따져보는 것이 되겠습니다.
김남주가 시인으로 데뷔하던 70년대는 우리 문학사, 좁게는 시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전환기였습니다. 지금은 고은. 신경림 시인이라든가 김지하 시인 이런 분들이 당연히 우리 시단의 주류로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시간을 30년 40년 전으로 거슬러가보면 오늘날 우리 시에 당연히 있어야 할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적 관심이라든가 민중들의 삶에 대한 노래를 하는 시들은 변두리에서 시의 주류에 끼지 못한 위험한 존재였고, 지금과는 시단의 판도가 상당히 달랐습니다. 물론 60년대에 김수영 시인, 신동엽 시인 같은 분들의 선구적인 업적이 있었고, 이미 60년대에 조태일. 이성부와 같은 젊은 시인들이 나왔습니다만 이들의 목소리는 60년대 시단의 주류에 파묻혀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경을 계기로 우리 사회 자체가 크게 달라졌죠. 예컨대 전태일 분신사건 같은 계기도 있습니다만, 그 무렵을 기해서 소설가 황석영씨의 『객지』가 발표된다든가 또는 신경림 시인의 시들이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고, 또 김지하와 같은 전혀 색다른 목소리를 내는 시인이 등장했죠. 가령 김지하의 『오적』과 같은 시는 문단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흔히 그 당시 용어로 참여시, 오늘날 민중시라고 이름 불리어질 수 있는 그런 시의 흐름이 70년대와 더불어 커다랗게 태동하기 시작했고 점차 우리 시의 중심부를 향해서 진입을 하게 됩니다. 생각컨대 김남주의 시들은 이러한 신경림. 김지하. 또는 그들의 선배인 김수영. 신동엽의 흐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농민이라든가 노동자 등 계급적 현실에 본격적으로 주목하는 시세계를 선보이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는 가령 일제시대 카프시의 어떤 흐름을 이어받고 복원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김남주가 과거 일제시대에 활동한 카프 시인들의 직접적 계승은 아닙니다. 그의 산문이나 시에서 임화(林和)라든가 그밖에 카프 시인들의 시를 읽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건 뭘 의미하냐면 김남주의 계급적 관점에서의 시들은 일제시대 카프시의 단순한 계승이라기보다는 자기 시대 현실과의 고투, 그 대결을 통해서 스스로 찾아낸 고유한 '김남주적 시 방법론'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김남주 시세계에 이룩된 계급적 인식의 일정한 자생적 측면을 지적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김남주는 기존의 시의 화법, 시의 수사법이라든가 내용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답습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시의 새로움을 변호하고 정당화하고자 하는 시와 산문을 씁니다.
김남주 시의 자생적 측면
시사(詩史)를 보면 전혀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쓰는 작가나 시인들은 당연히 또 어쩔 수 없이 자기 작품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가령, 서양이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기존의 시의 개념, 기존의 문학개념에 맞지 않는 그런 실험적인 문학을 개척해나갈 때는 자기 문학의 존재이유를 합리화하는 자기변론적 논의를 전개하게 마련인데 김남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김남주의 시를 보면 많지는 않지만 꽤 여러 편의 시론적인 시들이 있습니다. 가령, 「이 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라든지 「나는 나의 시가」, 또 「그들의 시를 읽고」, 「시에 대하여」등의 작품들은 모두 자기 시를 변호하고 기존의 시들에 비해서 자기 시가 갖는 독자성을 천명하는 시입니다. 그 중에서 예컨대 「시의 요람 시의 무덤」, 「다시 시에 대하여」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으로 분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의 요람 시의 무덤」이라는 작품은 자기 시의 출발점이 어디인가로부터 시작을 하죠. 첫 연만 한번 읽어보죠.
"당신은 묻습니다/ 언제부터 시를 쓰게 되었느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투쟁과 그날그날이 내 시의 요람이라고"
시를 쓰기 위해서 시를 쓴 게 아니라 투쟁이, 자유를 위한 투쟁이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든 또는 역사의 발전을 위한 투쟁이든 하루하루의 투쟁 속에서 시가 태어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죠. 그러면서 자기 시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의 너무 우악스럽다, 너무 목적의식적이다, 무슨 시가 그렇게 험악하냐는 등의 비난 섞인 질문에 대해서 자기 시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남주는 자기의 시가 투쟁이 아닐 때, 투쟁을 포기할 때, 안락의자에 가서 앉을 때 그것은 바로 자기 시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김남주는 이 시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산문이나 여러 글에서 "나는 시를 예술지상주의적인 차원에서 쓴 적이 결코 없고 그런 시를 혐오한다", "혁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 문학을 하는 것이고, 투쟁의 무기로서 시를 쓰는 것이고, 투쟁의 부산물이 시"라고 주장을 합니다. 또 「다시 시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내 시의 기반은 대지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노동, 투쟁, 이런 것들이 자기 시의 원천이라고 거듭 말합니다. 시인이나 작가들이 자기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을 말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도대체 인간의 자의식이 그 인간 전체를 실물대(實物大)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의 글이든 정치하는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든 그밖에 여기 앉아 있는 저나 여러분들이나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의식하는 것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좀더 근본적인 나라고 할 수 있는 어떤 무의식적인 부분들이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김남주가 "나는 투쟁을 위해서 시를 쓴다. 시는 투쟁의 무기일 뿐이다"라고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김남주의 시를 잘 읽어보면 상당부분 사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김남주 시의 대지는 어머니
그렇다면 김남주 시인이 자기 시의 기반은 '대지'라고 하는 대지는 일차적으로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김남주 시의 대지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어머니인 것 같습니다. 김남주는 처음 무렵부터 끝까지 20년 동안의 시작(詩作) 생활을 통해서 끊임없이 어머니를 의식하고 어머니를 찬양하며 어머니에게로 돌아가고 어머니로부터 떠납니다. 어머니와의 만남과 헤어짐, 어머니에게 의지하여 어머니를 딛고 어머니를 대지로 삼고 하늘을 향해서 별을 향해서 숨쉬는 것이 김남주의 시세계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편지 1」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김남주 시인의 잘 알려진 초창기의 시입니다. 시에서, 아버지는 아들인 내가 순사가 되거나 면서기가 되거나 혹은 판검사가 되어서 떵떵거리며 살기를 원하는데 그 아버지의 소망과는 달리 아들은 잡혀가서 감옥살이를 하죠. 이럴 때 어머니는 그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울기만 하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즉, 김남주 초기시에서의 어머니는 인고하는 존재, 참고 고통을 견디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시의 마지막 연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다시는 동구밖을 나서지 마세요/ 수수떡 옷가지 보자기에 싸들고/ 다시는 신작로가엘랑 나서지 마세요/ 끌려간 아들의 서울/ 꿈에라도 못 보시면 한시라도 못살세라/ 먼길 팍팍한 길/ 다시는 나서지 마세요/ 허기진 들판 숨가쁜 골짜기 어머니/ 시름의 바다 건너 선창가 정거장엘랑/ 다시는 나오지 마세요 어머니"
이 마지막 연에 와서는 톤이 바뀌면서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아마 이 대목을 읽은 분들이 떠올리는 또 하나의 시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시는 1940년대 후반 활동했던 유진오(兪鎭五)라는 시인입니다. 이 시인은 『창(窓)』이라는 시집을 한 권 내고나서 잡혀서 6·25 직전까지 감옥에 있다가 전쟁 발발과 더불어 총살됐습니다. 그 유진오의 「한없는 노래」라는 시가 있어요. 이 시인은 48년, 49년 무렵 전위시인으로 활동하다가 몇 번 감옥에 드나듭니다. 그때 그 어머니도 자기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서 경찰서로 감옥으로 가기 위해 동구밖을 나서는 것을 노래한 시가 「한없는 노래」라는 제목의 시로 기억됩니다. 그런 시가 있어요. 어조가 아주 흡사합니다. "시인이 되기는 바쁘지 않다. 먼저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겠다"라는 유명한 발(跋)이 담겨 있는 『창』이라는 시집에 실린 「한없는 노래」라는 시이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김남주는 유진오를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경험과 상황이 이렇게 어머니와 아들간의 연대를 만들어 내고 그 아들로 하여금 이런 시를 쓰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다음, 「편지」라는 시에서는 어머니가 인고하는 존재, 울기만 하는 존재로부터 좀더 적극적인 차원으로 무장이 됩니다. 마지막 연만 읽어보겠습니다.
"나를 결정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고/ 날 낳으신 당신이고 당신 같으신 어머니들이고/ 날 키워준 이 산하 이 하늘이니까요/ 해방된 민중이고 통일된 조국의 별이니까요"
여기에서의 어머니는 단지 울고 참고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이 산하, 이 조국, 이 민중의 대표로 떠오릅니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이 마지막 무렵에 가면 「무심」이라는 시에 등장하는 어머니로 변모합니다. 김남주 시인이 아마 10년 가까운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어머니가 한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대신 그 어머니는 10년 동안 아들을 위해서 절을 다녔는데 감옥생활을 마치고 나온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찾아갑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시인데요. 그 「무심」에서는 어머니가 부처님 같다고 묘사가 됩니다. 이것은 마지막 단계의 어머니이죠. 인고의 세월을 지나서 민중으로 고양되는, '조국의 별'의 단계를 지나서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끌어안고 모든 것을 넘어선, 최고의 지혜의 단계에 이른 부처님 같은 원만상으로 무심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그 어머니인 것이죠. 김남주의 어머니는 단지 김남주 개인의 어머니에만 그치지를 않습니다. 가령 「어머님 찬가」라는 시는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서 활동하는 어머니들, 자기 남편 혹은 아들을 감옥에 보낸 그 어머니들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고난의 길」이라는 시 역시 전태일의 어머니를 노래한 시입니다. 첫 연만 읽어보겠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낳고 아들이 어머니를 낳았습니다/ 이소선 여사가 그 어머니이고/ 전태일 열사가 그 아들입니다"
한국노동운동의 획을 그은 존재로 전태일을 우리가 다 알지만, 그 전태일을 낳은 어머니를 '전태일이 낳은 어머니'로 관계를 역전시켜놓은 시죠.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아들이 죽은 뒤에 30수년 동안 걸어온 고난의 길을 이렇게 짧은 시로 감동적으로 압축시켜놓은 시도 드물 것입니다. 또 「자식 때문에 어머니가」라는 시도 있습니다. 이 시는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을 노래한 시입니다. 아시다시피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아메리카의 국가들도 1970년대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서 박정희, 전두환 쿠데타보다도 훨씬 더 가혹하고 지독한 살인 만행이 자행된 곳입니다. 그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이 광장의 분수대에 날마다 모여서 "실종된 아들 찾아내라, 남편 찾아내라"고 데모하는 광경을 소재로 한 시죠. 대한민국의 어머니들과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의 모습 속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한없는 열정과 간절한 소망을 노래한 시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이 어머니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버지와의 강력한 연대
「아버지」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야말로 노동하는 존재이고 머슴이었죠. 머슴으로 있다가 주인집의 애꾸눈 딸한테 양식을 조금 얻어서 결혼을 하고 나와서 김남주 형제들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역시 시에 많이 나오죠. 예를 들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라는 시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시에서 보면 아버지는 그야말로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통해서 존재 이전이랄까 계층적인 상승을 꿈꾸는 아버지이죠. 이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관계는 「그 집을 생각하며」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버지는 청년시절에 머슴이었고 즉 가장 밑바닥 존재인 노동자, 농민인 셈이고 반면에 어머니의 친정인 외가는 그런대로 조그마한 지주입니다. 「그 집을 생각하면」라는 시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 고개는/ 솔밭 사이를 꼬불꼬불 기어오르는 이 고개는/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욱신욱신 삭신이 아리도록 얻어맞고/ 친정집이 그리워 오르고는 했던 고개다/ 바람꽃에 눈물 찍으며 넘고는 했던 고개다/ 어린 시절에 나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어머니를 데리러 이 고개를 넘고는 했다/ 고개 넘으면 이 고개/ 가로질러 들판 저 밑으로 개여울이 흐르고/ 이끼와 물살로 찰랑찰랑한 징검다리를 뛰어/ 물방앗간 뒷길을 돌아 바람 센 언덕 하나를 넘으면/ 팽나무와 대숲으로 울울한 외갓집이 있다/ 까닭없이 나는 어린 시절에/ 이 집 대문턱을 넘기가 무서웠다/ 터무니없이 넓은 이 집 마당이 못마땅했고/ 농사꾼 같지 않은 허여멀쑥한 이 집 사람들이 꺼려졌다/ 심지어 나는 우리집에는 없는 디딜방아가 싫었고/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때/ 외할머니가 들려주는 이런저런 당부 말씀이 역겨웠다/ 나는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총각 머슴으로 거처했다는 이 집의 행랑방을"
김남주의 개인사를 분석하는 데는 상당히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시입니다. 어린 김남주는 뚜렷한 이유 없이 저절로 외갓집에 가면 무섭고 께름칙하고 역겹고 싫은 거예요. 외갓집이, 허여멀쑥한 사람들이, 그 풍요로움이. 이건 뭡니까.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립, 고개를 사이에 둔 외갓집 동네와 우리동네 사이의 대립에서 어린 김남주는 아버지와의 연대를 선택하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이 시점에서부터 이미 김남주는 민중의 편에 서기로, 고난의 길을 걷기로, 면서기도 순사도 판검사도 되지 않기로 선택을 한 겁니다. 김남주 인생이 이미 여기에서 암시적으로는 결정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대립적 구도, 그리고 외갓집 동네와 우리집을 가르고 있는 고갯마루를 양쪽에 둔 대립적 구도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시들을 쭉 읽어보면 사실은 김남주 자신은 아버지와의 강력한 연대를 느낍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소망하는 출세를 버리죠. 그러니까 아버지와 김남주 사이에도 모순이 있는 거죠.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삶을 통해서, 그 인고의 세월을 통해서 아버지적 존재, 민중적 농민적 존재와의 합일을 통해서 시인의 출발점인 대지를 마련해준 존재로 어머니가 이전을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김남주는 이런 개인사적 과정과 학습을 통해서 전투적인 민족주의자요 진보적인 민주주의자, 혁명적인 지식인으로 확고하게 자기를 변화시킵니다. 김남주 시의 대부분의 내용들은 자기의 신념의 시적 표명이기도 합니다. 가령 「이 가을에 나는」이라는 시는 전주교도소로 이감을 가면서 이감 가는 호송차에서 밖으로 뛰어나가 자유롭게 대기를 마시고 숨쉬고 싶다는 갈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 「새가 되어」라는 시는 새처럼 자유롭게 공중을 비상하는 그 새의 자유를 갈망하죠. 그런가 하면 「투쟁과 그날 그날」 같은 시에서는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서 같이 활동했던 어느 선배를 모델로 해서 투사의 삶을 노래한 시입니다. 이건 시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시의 형식을 빌린, 혁명운동에서 지켜지고 관철되어야 할 어떤 원칙과 규율들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지요. 「한 매듭의 끝에 와서」라는 시에서는 자기가 평생 추구하는 가치로서 자유. 해방. 통일이라는 목표를 노래하기도 합니다. 압제로부터의 자유, 착취로부터의 해방, 분단과 식민지 상태로부터의 통일 등을 노래하죠.
김남주의 시를 읽어보면 특히 서구시의 영향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김남주는 스스로 하이네라든가 브레히트라든가 아라공, 네루다 같은 시인들의 시들을 직접 번역해서 시집을 내기도 했었고, 서양의 진보적인 시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 속에서 작시법(作詩法)을 배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보기에는 브레히트와 하이네의 시에서 배운 게 많은 것 같아요. 브레히트의 시에 보면 교훈시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김남주의 경우에도 교훈시 내지 교술시라고 부름직한 그런 시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가령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시는 분단의 일상화,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에까지 침투해 있는 분단현실을 지적하고 있고, 「권양에게」라는 시에서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당사자인 권양의 혁명적 용기를 높이 찬양하는 시를 쓰죠. 또한 「그랬었구나」라는 시에서는 우리나라 행형제도의 가혹성을 다른 나라들의 예를 대비해가면서 비판하고 남한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합니다. 「그랬었구나」라는 시를 한번 읽어보죠.
"아 그랬었구나/ 로마를 약탈한 민족들도/ 약탈에 저항한 사람들을 감옥에 처넣기는 했으되/ 펜과 종이는 약탈하지 않았구나 그래서/ 도에티우스 같은 이는 감옥에서/ 「철학의 위안」을 쓰게 되었구나// 아 그랬었구나/ 캄캄한 중세 암흑기에도/ 감옥에는 불이 켜 있었구나 그래서 그 밑에서/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을 쓰게 되었고/ 세르반떼스는 『돈 키호떼』를 쓰게 되었구나// 아 그랬었구나/ 전제군주 짜르체제에서도 러시아에도/ 시인에게서 펜만은 빼앗아가지 않았구나/ 소설가에게서 종이만은 빼앗아가지 않았구나/ 그래서 체르니셰프스끼 같은 이는 감옥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쓰게 되었구나// 아 그랬었구나/ 일제식민지시대에서도/ 우리 민족을 노예로 전락시키고/ 우리 말 우리 성까지 빼앗아간/ 이민족의 치하에서도/ 감옥에서 펜과 종이를 빼앗아가지 않았구나/ 그래서 단재 신채호 선생 같은 이는 여순옥에서/ 『조선상고사』를 쓰게 되었구나/ 우리 말로 우리 역사를!// 아 역사를 거꾸로 살 수 있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차라리 나는 고대 노예로 다시 태어나고 싶구나/ 차라리 나는 중세 농노로 다시 태어나고 싶구나/ 차라리 나는 일제치하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구나/ 펜도 없고 종이도 없는 자유대한에서 그 감옥에서 살기보다는"
5월문학의 최고봉 「학살 1」
이것은 참 통렬한 아이러니이죠. '자유대한'이라는 낱말이 얼마나 역설적이고 반어적입니까? 문필가에게서 펜과 종이를 빼앗은 이 기막힌 현실을 이렇게 절묘하게 노래한 시는 아주 통렬한 풍자이고 반어적인 고발이죠. 그밖에도 가령 「병사의 밤」이라든가 「조국은 하나다」라든가 하는 시들에 표현된, 미제의 식민지로 되어 있는 것 같은 이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김남주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김남주의 망설임 없는 투지가 최고조에 달하는 계기는 다름 아닌 1980년 5월 항쟁이죠. 당시 김남주는 광주 교도소에 있었습니다. 1979년 10월에 남민전 사건으로 들어가서 15년형을 받아서 감옥에 있었는데 그 이듬해의 5·18을 감옥에서 맞은 거죠. 아마 김남주는 책에서 읽고 머릿속으로 이해하던 그 모든 민중. 민족 및 남한 현실에 대한, 또는 남한과 미국의 관계에 대한 모든 관념적 이해의 물질적 실체가 광주학살과 그 항쟁의 과정 속에서 가장 극적인 형태로 드러났다고 느낀 것 같아요. 시, 소설, 논문, 어떤 증언이나 문학작품보다도 김남주의 시는 광주의 진실을 강렬하기 그지없이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대표적으로 「학살 1」같은 작품입니다. 「학살 1」은 상당히 긴 시이지만 길지 않게 느껴지고 낭송을 근사하게 해야만 제대로 들어오는 시인데요. 이 시를 잘 보면 연극처럼 4막극의 정형적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낭송을 통해서 살육의 현장을 무대 위에 시각화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광주 현장의 참혹하고 끔찍한 모습을 그대로 무대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학살 1」과 같은 작품을 무용극이라든가 낭송극이라든가 오페라 같은 쟝르로 옮겨놓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김남주의 이 시는 소설에서와 같은 디테일, 영화에서와 같은 구체성은 없지요. 그 대신 시적 압축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정서적 고양, 극단에 도달하는 어떤 정점(頂点)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학살 1」은 '오월 문학'의 최고봉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밖에도 「오월 그 날이 다시 오면」같은 시는 형식 자체가 아주 독특한 시입니다. 감옥 안에서 김남주 본인이 직접 시적 화자로 등장해서 다른 감방에 갇혀 있는 죄수들을 향해 5월 항쟁을 기념하는 연설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같은 시들에서도 섣부르게 5월 항쟁을 서정적으로 처리하는 데 대한 강력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이 시는 김수영의 시 「풀」을 의식하면서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대강 김남주 시의 역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은 아주 다른 시대가 되었습니다. '혁명적 열정'이라는 낱말 자체가 이제 우리의 귀를 자극하지 않는 것 같고 자본주의의 지배력이 우리의 일상을 장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김남주의 시대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로서는 김남주의 시를 읽을 때 여전히 커다란 감동, 그리고 어떤 떨리는 힘을 느낍니다. 김남주의 시를 읽고 가슴에 닿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든지 이런 시도 옛날에 있었나보다고 느낀다면 그런 분들하고는 참 대화하기가 어렵겠지요. 그러나 가슴을 치는 감동이 있다고 느낀다면 김남주 시의 힘과 설득력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한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서구시의 영향과 의미의 명료성
우리 근대시의 전통, 가령 1920년대의 김소월이라든가 만해 한용운, 이상화, 그 뒤를 이어 정지용, 김영랑, 또 뒤이어 서정주와 같은 우리 시의 전통에서 볼 때 김남주는 상당히 다른 시인입니다. 김남주는 우리 현대시의 전통 내부에서 자라난 시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정서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김남주 시의 내용이랄까 그의 현실적 체험들은 이 땅의 대지에서 발을 디딘 것이지만 그의 언어구사는 서구어의 화법인 것 같아요. 하이네라든가 네루다라든가 브레히트 등의 시에서 그 이미지도 많이 영향을 받았고 여러 가지 수사 문법들, 즉 강조. 대조. 또는 아이러니(irony)라든가 파라독스(paradox) 같은 복잡한 수사적 기법들을 그런 서구의 저항 시인들, 진보적인 유럽 시인들에게서 결과적으로 배웠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김남주는 곳곳에서 얘기하기를 자기는 시를 위해서 시를 쓴 게 아니다, 시의 형식적인 문제는 자기한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남주는 자기의 의사에 반해서, 자기가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능숙한 시적 기법의 소유자가 된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 바로 그는 시를 투쟁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기 위해서라도 어설프게 시적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죠. 가장 효과적으로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라도 가장 효과적인 표현의 방법들을 개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김남주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흔히 시인들은 어떤 느낌이라든가 사물을 묘사할 때 명료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암시적으로 건드리고 지나가는 수가 많죠. 일부러 어렵게 쓰려고 해서가 아니라 도대체 인간의 감각이라든가 사물이라는 것이 분명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언가 분명하게 말하는 순간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는 자의식에 사로잡히는 게 우리들이죠. 모든 시인들은 언어의 무능력을 느낍니다. 무엇이라고 말로 표현하는 순간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죠.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애매해지기도 하고 몽롱해지기도 하고 자꾸 암시를 하기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시가 불가피하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데, 김남주의 경우는 그가 목표로 하는 그 자체가 그런 시적 암시성을 극력 배제하고 가능하면 분명하게 명백하게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흔히 시들이 갖는 암시성과는 반대로 명료성을 김남주는 시에서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분명하게 자기의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나타내죠. 그런 기법들이 대조라든가 반복. 명령형. 호격 같은 독자의 주의력을 환기시키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해서 착오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즉, 시인이 의도한 바의 바로 그곳에 닿도록 의미의 명료화를 노리는 것이죠. 또 하나, 김남주의 시를 읽을 때 유의해야 할 사실은 다름 아닌 김남주의 창작 여건입니다. 김남주가 평생에 쓴 시가 대략 470여 편 남짓 될 텐데요, 그 중에서 80% 정도가 옥중시입니다. 그렇다보니까 자유롭게 시를 쓴 게 아니지 않습니까? 몰래 우유곽의 은박지 뒤에다가 못을 눌러 쓴 것도 있고, 외우고 있다가 면회 온 지금의 부인에게 받아쓰게도 했죠. 이런 방식으로 시를 썼으니까 김남주 시의 문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외적인 작품 「잿더미」
이제 마지막으로, 김남주 시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김남주에게 아주 예외적인 시 한 편을 언급하는 것으로 저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그것은 1974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8편의 다른 시들과 함께 실렸던 「잿더미」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제가 보기에는 상당히 예외적인 시입니다. 김남주의 시 대부분은 복합적인 문장입니다. 산문으로 말하면 만연체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이 「잿더미」라는 시는 아주 짧은 단문 형식으로 이어져가는 시이고, 거침없는 단정과 힘찬 질문의 반복적인 연쇄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김남주의 다른 시들에서 보기 힘든 극박한 호흡을 만들어냅니다. 지금껏 살펴본 바대로 방금 김남주의 시는 암시성보다는 의미의 명료성을 추구하고 그 명료성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시를 투쟁의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투쟁의 수단으로 쓴 시가 싸우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하는 식으로 모호하면 안되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잿더미」는 예외적으로 명료성의 원칙에서 볼 때 좀 다르죠. 그 대신에 강렬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시입니다. 우선 시작부터가 "꽃이다 피다" 이렇거든요. '꽃'과 '피'의 단어를 읽었을 때 누구나 다 이 시를 읽을 때 흩날리는 빨간 꽃을 떠올리게 되고 뿜어져 올라오는 어떤 것을 느끼게 되거든요. 이 시는 읽다가 보면 결국은 여러분도 다 아는 이집트 신화의 피닉스(phoenix), 불사조를 노래하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됩니다. 이 시의 한 대목만 읽어보겠습니다.
"그대는/ 새벽을 출발하여/ 폐허를 가로질러/ 황혼을 만나보았는가/ 황혼의 언덕에서 그대는/ 무엇을 보았는가/ 난파선의 침몰을 보았는가/ 승천하는 불기둥을 보았는가/ 침몰과 불기둥은 무엇을 닮고 있던가/ 꽃을 닮고 있던가/ 피를 닮고 있던가/ 죽음을 닮고 있던가/ 그대는/ 황혼의 언덕을 내려오다/ 폐허를 가로질러 또 하나의/ 새벽을 기다려보았는가 그때/ 동천에서 태양이 타오르자/ 서천으로 사라지는 달을 보았는가/ 죽어버린 별/ 죽으러 가는 별/ 죽음을 기다리는 별/ 그대는 달과 별의 부활을 위해/ 새벽의 언덕에서 기도를 드려보았는가"
그리고 마지막 두 연을 더 읽어보겠습니다.
"아는가 그대는/ 몸을 잉태한 겨울밤의/ 진통이 얼마나 끈질긴가를/ 그대는 아는가/ 육신이 어떻게 피를 흘리고/ 영혼이 어떻게 꽃을 키우고/ 육신과 영혼이 어떻게 만나/ 꽃과 함께 피와 함께 합창하는가를// 꽃이여 피여/ 피여 꽃이여/ 꽃 속에 피가 흐른다/ 핏속에 꽃이 보인다/ 꽃 속에 육신이 보인다/ 핏속에 영혼이 흐른다/ 꽃이다 피다/ 피다 꽃이다/ 그것이다!"
결국은 꽃과 피, 영혼과 육신, 이런 이미지들을 대조적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것의 합일이랄까 융합을 꿈꾸면서 그 융합을 통해서 태어나는 부활, 그것을 마지막에 가서 "그것이다!"라고 뭐라고 명명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마치 심연으로의 낙하 또는 돌연한 대오각성처럼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김남주의 최초의 시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시가 동시에 김남주의 생의 마지막에 닿아 있는 시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시의 성좌 중의 한 별
이시영 : 저는 세 가지 정도의 질문을 준비해왔는데요. 김남주 시에서 우리 전통적 서정시의 영향이 너무 안 느껴진다는 것은 강연에서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생략을 하고 두 가지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강연 과정에서 어느 정도 드러났습니다만, 김남주 시인이 남긴 시가 470여 편입니다. 그 중에서 골라서 시선집을 직접 엮으셨는데 그래도 최고의 성취를 보이는 시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김남주의 옥중시가 추가됨으로써 그 당시까지 현존하고 있었던 어떤 질서가 변경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시는 한국시에 굉장한 충격을 가했다고 생각됩니다. 시문학사에서 그의 독특한 위치는 대개 어느 지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지 하는 것입니다.
염무웅 : 첫번째 질문하려다 만 것에 대해서 약간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가령 우리가 김수영 시를 읽을 때에도 바로 조금 선배인 서정주라든가 정지용, 김소월이라든가 하는 서정시의 개념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하는 느낌을 가지고서 그렇기 때문에 김수영이 파격적이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김수영이 좀더 오래 살아서 폭넓은 시인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가정을 해보게 되는데요. 결국 시인이든 다른 역사적 존재라는 것이 한 가지 기여를 하는 것이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충족시키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김남주 이름으로 우리 시문학사에 각인된 하나의 시세계가 있기만 하다면 그것으로 우리 시의 영역은 확장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남주는 분명히 자기만의 세계를 이루어서 그 나름의 어떤 절정의 경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유를 들어 표현하면 한국시의 성좌 중의 하나이죠. 서로 다른 별들이 다채로운 가운데서 말입니다. 세번째 질문하고 연관이 될 수 있겠죠. 가령 만해의 「님의 침묵」은 옥중시는 아니죠. 그러나 옥중 경험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시입니다. 3년 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백담사에서 쉬면서 한겨울 정신을 바싹 차려서 쓴 시죠. 어떤 의미에서 옥중시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도 옥중 경험 또는 옥중시집이 있지만 예컨대 김지하 같은 시인이죠. 그러나 감옥 체험과 가장 깊이 결부된 시는 김남주가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여간 김남주의 시는 반역정신의 가장 티 없는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남주의 별명 중의 하나가 '물봉'입니다. 멍청하다는 이야기죠. 사람이 속으로 조금씩은 다 계산적인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김남주는 그런 게 정말 적었던 사람 같아요. 말과 생각과 행동이 거의 일치된 사람이었어요. 아주 '진국'이죠. 김남주의 저항시는 정말 저항적인 정신으로부터 나온 것 같아요. 어떤 유보, 양보 같은 것 안하고 가장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 아닌가 싶어요.
김남주 시의 최고의 성취를 보인 시를 꼽는다는 것은 쉽지가 않은데요. 「학살 1」은 김남주 자신의 시나 다른 시인의 오월 항쟁에 관한 어떤 다른 시도 덮을 수 없는 정말 좋은 시 같아요. 「잿더미」라는 시도 한 시인의 출발을 알리는 시로서 이렇게 힘차고 아름다운 시가 있겠는가 싶구요. 또 「조국은 하나다」나 「병사의 밤」이라는 시도 참 좋은 시 같아요. 어머니를 그린 시 「편지」「편지 1」 같은 시도 좋구요. 걸작들이 참 많습니다. 「투쟁과 그날 그날」같은 시도 좋은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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