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물든 빨간 발톱
- 발톱교정차 장난삼아 해본 것이 병원치료계기 돼
- 매니큐어 칠과는 달리 전통적, 정서적 여심(女心) 엿보여
나는 오른쪽 엄지발톱이 양쪽으로 파고들어 신경을 누르므로 아파서
고생을 하고 있다
20 여년 전에도 수년간 그러다가 저절로 완치가 된 적이 있으므로 때가 되면 나아지려니 하고 참고 지내는데 불편이 말이 아니다 평소에
나 혼자 운전할 때나 사무실에 있을 때는 스포츠샌들을 신을 수밖에
없고 체면 차려야 할 때만 차안에 있는 구두로 바꿔 신는다
주말 연속극에 같은 증세로 고통받는 이가 있는데 아픈 발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면 낫는다고 하는 것을 보고 우리 집에서는 집사람이나
아이들이 내 발톱에 봉숭아물을 들이자고 성화였다 처음에는 다분히
집사람의 장난 끼로 시작이 되었는데 내가 싫다고 하자 나를 놀리듯
아이들의 응원을 받아가며 틈 있으면 나를 조르는 것이었다
한편 춘천에 농가를 구입해 틈만 나면 내려가서 취미로 농사를 짓는
치과의사인 고교동창부부가 있는데 친구들 부부를 초대해 모두 가서
하루를 지내고 온 적이 있다
300 여평 되는 텃밭에는 고추, 상추, 가지, 고구마 등등 온갖 푸성귀와
꽈리, 봉숭아, 가죽나무까지 있었다 친구들 모두 고추도 따오고 고구마도 얻어 시골 맛을 제대로 보고 왔는데 우리 집사람은 봉숭아 꽃잎을 얻어 따왔다
집사람이 내 발을 씻어주는 서비스까지 베풀며 꼬시는 데 넘어가 나는 엄지발톱에 봉숭아 물감을 들이고야 말았다 며칠 간 풀지 않아야
곱게 물든 다기에 며칠 후 떼어보니 물감은 곱게 들었는데 발톱이 파고 들어간 피부 밑쪽에 검붉은 색 반점이 생겨 있다
분명히 전에는 없었는데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며칠 지나면 없어지겠지 생각하고 그냥 지났는데 없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집사람은 병원에 가보자고 했으나 나는 전에 겪은 경험이 있는지라 이런걸 가지고 무얼 병원씩이나 가느냐고 안 갔더니 하루는 우리 집사람이 서울대학병원에 발전문 의사가 있는데 친구에게 부탁해서 예약을 했으니 발톱을 교정할 수 있나 진찰 좀 받아보자는 것이기에 그러자고 했다 그 친구란 내 친구의 부인, 마리나 인데 옛날 교직에
있었던 마리나가 자기의 옛 제자에게 부탁해서 어려운 예약을 해 준
것이다
나는 당뇨가 있기 때문에 2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가서 검사도 받고 약을 받아먹는데 발가락 피부 색깔이 변한 것을 집사람이나 마리나는
당뇨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발가락피부가 상해 가는 것이나 아닌가
걱정되었으나 내가 태평이므로 나에게 그렇게 방정맞은 우려는 얘기
할 수가 없으니까 l마리나와 의논해서 나를 그렇게 유도한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도 걱정이 되었으므로 당뇨의사와 피부과의사에게도 각각 진단을 받아 우려되는 증세가 아님을 확인하였고 발톱도
반을 잘라내 우선적인 치료는 해서 지금은 구두도 신고 다닌다
그래서 안 것이지만 발톱도 살로 파고드는 초기에 병원에 오면 나처럼 고생할 필요도 없고 간단한 방법으로 교정도 되는데 나는 그냥 놔두었기 때문에 발톱의 조직이 반절이나 굳어지고 말라버려 잘라내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행이 나는 봉숭아물 드리는 일이 계기가 되어 의사에게 진단과 치료를 받음으로서 이 정도에서 끝난 것이 다행이었다
이제는 발가락에 대한 걱정도 없어졌기 때문에 아이들이 집에 오면
봉숭아 물든 내 오른 쪽 엄지발가락을 들여다보며 "아빠는 남자가 봉숭아물감을 다 들이고...." 하며 맘놓고 짓궂게 놀리곤 한다
우리 집사람은 원래 내 발가락에 불을 들이고 자기도 들이기로 했었는데 내 피부색갈이 변한 것 때문에 놀라 생각도 못하다가 최근에 냉장고에 보관하였던 것으로 양쪽 엄지발톱을 물들였다
지금 내 옆에서 자는데 엄지발톱만 붉게 물든 것이 장난스러워 보인다
우리 집사람은 어렸을 때 봉숭아물감을 들여본 적이 없단다 그래서
꼭 들여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친구에게 물어가며 백반도 사오고 하여 물들일 때 그렇게 좋아하며 재미있어 했다
여러 가지 색으로 맘대로 선택해서 다양하게 물들이는 매니큐어가 있지마는 우리 집사람은 봉숭아물감을 드릴 때처럼 즐거워하며 정성을
드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봉숭아물을 드리는 일은 그냥 매니큐어 칠하는 것과는 다르게 무언가 민속적이고, 정서적인 처녀시절 젊음에의
향수(鄕愁)가 어려있기 때문일까 ?
우리 집사람 나이에도 그러는 것을 보면 자기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은 영원한 여심(女心)인 것 같다 그리고 내 발톱에도 물들여주고 싶어하던 것도 같은 심리의 발로는 아닌가 시퍼 혼자 맘대로 생각하고 싫지 않은 기분에 빙그레....
- 이호영 -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물류신문】 2002년 12월 2일자 『이호영의 千字칼럼』(68) 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