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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중요성
<본문말씀>
벧전1:23-2:2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쉬운성경-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새 생명은 죽어 없어질 것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 결코 죽지 않는 것으로부터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시 태어난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에 의한 것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과 거짓을 버리십시오. 위선자가 되지 말고, 시기하며 험담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이 모든 것을 없애십시오. 갓난 아기가 젖을 찾듯이 순결한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나고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Then you'll grow up mature and whole in God)
1. 들어가는 말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습니다. 그가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누구나 감동을 받습니다. 가슴 깊이 느껴지는 사랑의 장면을 보았을 때 가슴에 찡한 감동을 받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최선의 모습으로 성장한 경우를 볼 때 누구나 감동을 받습니다. 가령 박지성의 경우에는 축구선수로서, 박세리는 골퍼로서, 박찬호는 야구선수로서 세계무대의 최정상에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감동을 받게 됩니다. 비록 정상은 아니더라도 장애인으로서 자신의 최선의 모습을 볼 때 감동이 됩니다. 심한 자폐증 환자이었던 배형진은 자신의 많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마라토너로서 최선의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말아톤>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진한 감동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심각한 자폐증상을 극복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어려움을 최선을 다해 극복하는 그 모습이 CF의 주인공으로 각광받기도 하였습니다. 성장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감동을 주게 됩니다.
자연의 성장도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기쁨을 가져옵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나고,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맺는 그 모습은 아름다운 결실의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 이 모든 현상과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의 주어진 생애동안 끊임없이 성장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생명을 얻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새 생명은 죽어 없어질 것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 결코 죽지 않는 것으로부터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시 태어난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다시 태어난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새 생명이 우리 안에 잉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라고도 하며, 구원받았다고 하며, 또한 중생(거듭남)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특징은 자라야 합니다. 자라갈 때, 아름답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게 되며 본인에게는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합니다. 행복은 내가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성숙한 인격의 열매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의 여러 영역에서(인격적인 면, 신앙의 영역, 지식과 신체적인 면, 사회적인 면, 여러 영역 등)성장하고자 하는데 초점을 두십시오. 그러면 결과적으로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를 명령하고 계십니다.
*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 엡4:13-1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 엡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을 더 잘 알아 가는 일에 자라가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여 주신 것과 약속하신 복이 얼마나 풍성하고 놀라운 것인 가를 깨달아 가는 일에 성장하기를 원하시며,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어떠하신 지를 알아가기를 원하신다-쉬운 성경)
2. 성장의 중요성
(1)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풍성하게 자라서 열매맺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태어난 7개월 밖에 되지 않은 하경(권대윤 형제 둘째 딸)이가 “아!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참으로 만족하고 즐겁고 은혜가 넘치고,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고 능력이 대단하고 위대한지를 감탄하며 표현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장하여야 합니다. 성장의 결과로 먼 훗날 부모님께서 자기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어, 이렇게 행복한 인생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신 것에 대해 감사와 은혜의 마음을 전할 것입니다. 성장하는 삶은 인생의 질을 풍성하게 합니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삶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게 된다. 성장하는 삶은 삶의 질을 높여줍니다.(Upgrade your better life!)
인생이라고 모두가 같은 삶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지옥 같은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이 있고, 또한 날마다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복된 인생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영적 성장과 성숙의 차이에서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면 갈수록 우리의 삶은 기쁨이 풍성한 삶을 살아갑니다.(요15:11)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면 갈수록 우리의 삶은 능력이 넘치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빌4:13)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면 갈수록 우리의 삶은 평안이 넘치는 삶을 경험합니다.(요14:27)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면 갈수록 우리의 삶은 소망이 넘치는 삶을 경험합니다.(히6:11)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면 갈수록 우리의 삶은 감사가 넘치고, 은혜가 넘치고, 사랑이 넘치고, 용서가 넘치고, 모든 것이 넘치는 풍성한 삶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모든 충만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잘 알고 경험하느냐에 따라 삶의 풍성함은 비례합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골2:9-10)
예수 그리스도안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은혜와 좋은 속성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며 닮아 가는 삶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속지 말기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6-17)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모든 선한 행위와 완전한 선물들은 빛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위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림자처럼 변하는 일이 없으십니다-아가페 쉬운 성경)
엡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을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분을 닮아 가는 삶에 성장하며 성숙하여야 합니다.
(2)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삶은 전쟁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사탄과의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왔기 때문에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26:18)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며 넘어지게 하고 실패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들고, 마침내는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전략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탄의 궁극적인 목표와 전략은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고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doubt)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분리하게(divide)만듭니다. 분리하게 되면 낙심하게(discourage)되고, 영적 침체에(depress) 빠지게 됩니다. 결과로 지금까지 세워 놓은 영적 삶의 여러 영역들은 파괴되며(destroy), 우리의 관심과 목표를 다른데 돌리도록(distract)하여, 영적인 죽음에 이르도록 합니다.(deaden) 믿음의 경주에서 실패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최후의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믿음의 성장과 성숙이 있어야 합니다.
군대에서 평상시 부지런히 훈련을 받은 사람은 전투에 투입되면 승리하게 됩니다. 제가 R.O.T.C 훈련 때 항상 교관으로부터 들은 교훈은 ‘평상시훈련에서 흘린 땀방울은 전쟁에서는 생명을 보호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경건의 훈련에 부지런한 성도들은 영적 전쟁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며, 영적 생명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3-14)
어린아이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요동이 심하며, 유혹을 잘 받게 되어 때론 유괴를 당하여 생명을 잃게 되기도 하며, 판단력이 약하고, 쉽게 넘어지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할 때 사람의 궤술(간사하게 속이는 술책), 가령 이단, 사이비, 잘못된 교리의 간교한 술책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또한 성장할 때 간사한 유혹들-친구를 통한 유혹, 하나님을 대적하는 책들이나, 이성적인 유혹, 음란한 것들을 통한 유혹-에서 올바른 영적 판단력 가운데 피할 수 있습니다. 성장할 때 또한 세상의 풍조-세상 분위기, 철학사조, 세상적인 가치관, 유행 등-에서 요동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믿음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게 하는 끊임없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삶의 간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장하고 성숙 할 때 영적 청년이 되고 영적 아비가 되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적 아비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도울 수 있는 성숙된 지식과 인격을 갖춘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사람을 말합니다. 즉 성숙한 그리스도인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게 됩니다.(엡4:11-13)
성장과 성숙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 가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일생동안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이며, 일생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신분입니다. 자녀는 성장되어야 하고, 제자는 평생동안 배우는 사람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이 말씀에서 “내게 배우라” 라는 말은 희랍어의 ‘마데테 아포 에무’ 즉 ‘내 제자가 되어라’는 의미입니다. ‘마데테’ 라는 말은 <마데테스, mathetes-제자>라는 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제자라는 말이 269회 언급되어 있습니다. 성장한다는 말은 제자로 따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 지속적으로 주님을 배우며 본받고, 닮아가며, 궁극적으로 주님같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자도의 목표는 Christlikeness(주님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2007년 11월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신 세계적인 복음주의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Dallas Willard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의 최대과제는 제자도의 회복이라고 주창하셨습니다. 참으로 가장 긴급하고 핵심적인 일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위기는 바로 제자도의 실종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Dallas Willard(달라스 윌라드)의 정곡을 찌르는 제자도의 회복은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에 있어서 참으로 중대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중대한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제자 삼는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며, 제자 삼는 사역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합니다.
눅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학생이 선생보다 더 나을 수 없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선생과 같아질 것이다)
제자의 목표는 선생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과 같아지려는 열망, 즉 우리의 선생이신 예수님과 같아지려는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아들의 형상,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도록 부르심을 입으셨습니다.(롬8:29) 그 아들의 형상은 바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의 빛을 우리는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 우리 마음에 복음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것을 쉬운 성경에서는 “이렇게 할 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사람으로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함에 이른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사람으로서 성숙한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의 제자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분처럼 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그분이 나라면 어떻게 사셨을까 하는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릭 워렌(Rick Warren)목사는 그의 저서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가운데 한가지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지음 받았고, 그래서 우리의 목적은 제자도를 통해 성숙하게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지음 받았고, 그래서 우리의 목적은 제자도(Discipleship)를 통해 성숙하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은 인격이야말로 주님께 가장 귀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1848년 10월 2일, 젊은 장로교 목사 로버트 맥셰인((Robert Murray M'Cheyne)은 독일로 선교 훈련을 떠나는 친구 다니엘 에드워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Daniel Edwards!
당신은 하나님의 검(劍), 하나님의 도구임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의 그릇으로 선택받은 당신을 신뢰합니다. 대개는 도구가 얼마 만큼 순결하고 완전한지에 따라 성공 여부가 좌우됩니다. 예수님을 꼭 빼닮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더 큰 재능은 없습니다. 순전한 사역자는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린 엄청난 병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배우는 삶에 일생동안 성장하며 성숙하여 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3. 효과적인 성장을 위한 제안
벧전2:1-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1) 성장에 방해되는 것을 과감하게 버리십시오.
효과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장에 방해되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려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모든 옛 성품, 옛 습관의 옛 사람의 행위들을 과감하게 버릴 때 우리는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를 명하고 있습니다.
창조적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와의 온전한 단절이 필요합니다. 잘 성장하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었습니다. 새로운 관계가 잘 발전되기 위해서는 잘못된 옛날의 관계를 청산해야 합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 가운데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이혼하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이유는 새로운 신랑과 신부가 혼인관계를 맺고 신혼여행까지 갔었는데, 여전히 옛 애인을 잊지 못해 신혼여행지에서 아내 몰래, 또한 남편 몰래 전화하다가 들통이 나서 부부싸움 끝에 그만 헤어지자고 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호텔에까지 따라오도록 하여 잠시 틈을 내어 만나다가 들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한심한 사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로운 결혼의 관계를 맺었으면 과거의 관계를 깨끗하게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이전 일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후5:17)고 선언하였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묻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주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먼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것을 명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때는 결코 더 좋은 미래를 위해 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더 좋은 삶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잘못된 과거와의 온전한 단절을 선언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눅3:8)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행26:20)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에서 온전히 돌아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들에 요구되어지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말합니다. 거룩한 삶의 열매일 수 있으며,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나타나는 빛의 열매일 수도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 하심을 따라 우리의 삶 가운데 맺어진 성령의 열매, 즉 인격의 열매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을 통하여 나타나는 인격의 변화와 결과로 나타나는 사역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The 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이라고 하는 불후의 명작 ‘기독교 강해’라고 하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간단하게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십자가 앞에서 계속적으로 자기를 부정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부정적인 생활은 십자가 앞에서 욕심도 버리고 질투도 버리고 시기도 버리고 절망도 버리고 명예욕도 버리고 다 버리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버려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합니다. 어디까지 버렸느냐 하는 것이 그의 경건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또 한가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순례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순례자는 어떤 삶입니까? 그것은 나그네의 삶을 말합니다. 그는 언제나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궁극적으로 종착지가 아닙니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하나의 pilgrim, 순례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집이 있다고 내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있다고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이 땅은 내가 머물 곳이 아닙니다. 다 버리고 다 떠나야 합니다. 하나의 순례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뜻에 합당하지 못한 것들을 버리는 일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2) 성장에 대한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사모하라>는 의미는 “지칠 줄 모르는 욕구”를 말합니다. 성경 주경가 Bengel은 “갓난 아이는 사모하는 것 밖에는 할 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칠 줄 모르는 욕구를 가지고 주님을 알아 가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E.M Gray는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분모’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일했다는 것입니다. 정열적으로 일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일 자체를 즐기고 정열을 쏟았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운이 따랐다(lucky)고 하였으며, 인간관계가 좋았고(결코 비방이나, 비판을 하지 않고 인간관계가 원만함), 그리고 근본적인 것, 즉 소중한 것을 먼저 하였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우선순위 가운데 행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최고의 선생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닮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열망을 가지고 성장하는 일에 사모함과 즐거움을 누리며 따라 갑시다.
(3) 집중해야 합니다.(Concentration)
Napoleon Hill 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Lifestyle’을 조사하여 본 결과, 첫째가 ‘선택과 집중’이었다고 합니다. 우선순위(Priority)를 분명하게 결정하고, 결정된 우선순위에 따라 집중했을 때 성공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음이 긍정적인 안목(긍정의 힘)을 가졌고, 작은 일에 성취감을 느끼며 행복하며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종종 언급하였습니다. 인생을 망치는 3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Do nothing) 다음은 중요하지 않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입니다.(Do wrong things) 또한 일을 하기는 하되 너무 여러 가지 일에 분산하여 하는 것입니다.(Do many things) 우리의 인생은 제한적입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능력도 제한적이며, 자원도 제한적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일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가지 일에 집중한 사람들입니다. 성공시대에 나오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한가지가 그 일에 전문가나 그 일이 성취될 때까지 오로지 한가지 일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일에 분주하며 성과 없는 생애를 보낼 것이 아니라 한가지 일에 집중하여 전문가가 되어 그 분야에서 기여하는 생애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도 우리에게 동일한 말씀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엣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고 싶은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부르심에 합당한 일을 하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제자로 따르는 일에 집중해야 하며 제자 삼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일꾼이 부족한 이 세대에 일꾼을 길러 내는 일에 우리는 정통한 전문가가 되어야 하며 집중해야 합니다. 그 결과로 우리의 삶과 사역에 추수할 일꾼들의 열매가 세계 열방 가운데서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느헤미야와 그의 백성들이 마음 들여 수고한 결과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은 52 만에 완성되었습니다.(느4:6) 그전에 어떤 사람도 이룰 수 없었던 일이 그 짧은 시간에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은 마음들인 집중과 한가지 일에 오로지 한 결과입니다.
성숙은 집중과 지속성(Concentration & Consistency)의 결과로 이루어진 열매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에 건너가 눈물과 고난의 세월을 보낸 후 오늘의 성공이 있기까지 최선의 노력과 고난을 감당했던 박찬호 선수의 말이 항상 기억이 납니다.“최고는 장담할 수 없어도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은 장담할 수 있다.” 참으로 귀한 교훈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가 아니라 최고가 되기 위한 최선의 노력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선교에 대하여 공부할 때 기숙하였던 학교의 모토가 마음에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The Best is yet To Be”-최선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불러주신 부르심에 집중과 지속성을 가지고 최선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할 것입니다.
(4) 보이지 않는 내면의 삶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7)
보이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삶에 시간과 노력을 부지런히 투자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내리는 삶은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은밀한 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외부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먼저 아래로 뿌리를 깊이 있게 내려 영양분을 공급받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외적인 변화와 가시적인 성장에 초점을 둘 때 우리는 결코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인격의 변화는 내면적인 성숙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삶의 깊이를 더하여야 합니다.
중국의 어떤 농부가 대나무를 심고 기다렸습니다. 첫해에 아무것도 돋아나지 않았습니다. 둘째 해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셋째 해에도 마찬가지고, 넷째 해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섯째 해가 되었을 때에야 대나무의 싹이 지면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단 죽순이 돋아 오르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한자가 자랐습니다. 그리고는 불과 6주만에 15m 이상이나 자랐습니다. 농부가 심은 대나무는 중국 동부에서 자라는 ‘모소’ 라는 품종의 대나무입니다. ‘모소’는 싹을 틔우기 전에 뿌리가 수십 m까지 뻗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나무는 일단 땅 속 줄기에서 싹이 돋아나면 뿌리에서 보내주는 영양분을 공급받아 순식간에 자라게 됩니다. 4년이라는 기간은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이와 같이 대나무는 위로 자라기 전에 아래로 먼저 자랍니다. 먼저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의 힘을 바탕으로 삼아 위로 성장할 줄 아는 대나무 같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Martin Luther, William Carey, Hudson Tailor 등 주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성취하였던 분들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면의 깊은 뿌리를 내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끊임없는 자양분을 공급받아 날마다 새 힘을 얻고 그 능력으로 주님의 사명을 크게 이루었던 것입니다.
제가 평소에 존경하였던 대구 제일교회 이상근 목사님은 항상 새벽 3시에 기상하여 기도와 묵상가운데 약 33년의 기간 동안 정성을 들여 신약과 구약, 그리고 외경까지 주해서를 완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목회자들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주석서로 정평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묵상이 큰 업적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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