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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우리는 만났다. 대화는 별로 없었다. 신상에 관한 말을 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을 않아도 이해했다. 그와 나는 외로운 인간이었던 것이다. 외로움이란 공유할 수 없다. 장마철의 습기처럼 그것은 각자에게 진득진득 달라붙을 뿐이었다.
그와 늦게까지 있을 경우 언제나 전화가 왔다. 아마 그의 부인인 듯싶었다.
“아 지금 여기, 음 친구하고 술 먹고 있어, 민호하고 같이 있지. 그래 들어갈게. 뭐 불안하다고. 뭐가 불안해. 그래, 그래 알았어. 곧 끝내고 들어가지. 아 민호 말이야. 화장실 갔어. 조금 술 취한 것 같아. 그래 바꿔서 뭐해. 알았어. 빨리 들어가지.”
그리고 나를 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담배를 빼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소주잔을 기울이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창으로는 들통으로 퍼붓듯이 비가 쏟아졌다.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제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먹장구름의 어두운 하늘로 보아서는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바람이었다.
다시 머리가 아파 온다. 나는 다른 생각을 못한다. 조금 피우는 담배는 이렇듯 아픈 두통의 근본 원인일 수가 없다. 아마 이 두통은 죽어야 끝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과 의사는 심리적인 것이라 했다. 의사는 내게 규칙적으로 오라 했다.
“네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의사는 뿔테 안경의 날카로운 인상으로 저 만치 떨어져 냉정하게 고개만 끄덕인다.
“유부남이에요. 아이가 있죠. 아들이 하나 있답니다. 부인은 경제적인 능력도 있고요.”
나는 발아래를 내려다본다. 시멘트 바닥을 묵묵하게 밟고 있는 검정 단화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는 걸까. 무얼 찾아내겠다고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꺼내는 걸까. 그리고 갑자기 말한다.
“이 두통을 없앨 약 같은 것은 없을까요. 진통제 같은 것 말이에요. 심인성이라고만 하시지 말고. 마약이라도 좋겠어요. 아픔을 없앨 수만 있다면 말이에요.”
의사는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나는 지금 석고상에다 이야기하는 걸까. 압축 렌즈임이 분명할 텐데도 두껍고 어지럽게 맴을 도는 안경으로 보아 그는 고도 근시임이 분명하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그는 견고한 성채처럼 내 말을 무뚝뚝하게 무시할 것이 분명하다. 미세한 아픔을 찾기 위해 그 두꺼운 렌즈를 걸쳤음에도.
나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손바닥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내 말에 대한 비정한 무반응이 안타까워 나는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는 똑똑하죠. 부인은 별로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요. 저도 그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옆에 있고 싶어요.”
그때 왜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른다.
“아빠는 열 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죠. 아빠는 글을 잘 쓰셨어요. 제게 글짓기를 가르쳐 주기도 하셨으니까. 지금도 아빠의 글을 간직하고 있어요. 기자였다고 들었어요. 돌아가셨을 때에는 실직 상태였던 것 같아요. 80년 해직 기자였으니까요. 화원이라도 차리려고 지방에 들르는 길이었대요. 병원 응급실에서 의식을 잃고 계시다 마지막에 고개를 마구 흔들었답니다. 제가 가까이 다가서니 눈물을 마구 흘리셨죠. 말씀도 못하셨고 의식도 가물가물했어요. 어렸었지만 나는 지금도 아빠의 모습을 기억해요. 네 그래요. 얼마 전이었어요. 그가 나와 함께 있다 갑자기 연락 받고 나가는 거예요. 급히 가야 한다면서. 술집에서 돈을 계산하며 바라보니 그는 울고 있었어요.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도 없었어요. 며칠 후 전화를 해도 그는 무뚝뚝하게 끊었지요. 2주일 후 그는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죠. 술을 먹었어요. 그가 울었답니다. 동생이 죽었어. 바보 같은 놈이 죽어 버린 거야. 나는 멍하게 물을 마셨어요.”
의사는 역시 무표정하게 듣고 있다.
“내 주변에는 죽음이 널려 있었어요. 나를 양녀로 길러 준 할머니도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어느 여름 저녁 날, 회사에서 일찍 돌아와 모처럼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죠. 된장을 맛있게 끓여 콩나물 무침과 약간 쉰 듯한, 맛이 들은 김치를 얹어 밥을 먹었답니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일일 연속극이었어요. 거기에도 이북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가 등장했었죠.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자꾸 속이 안 좋다 하셨어요.
‘약 좀 사다 드려요.’
‘아냐 괜찮아, 조금 체한 거겠지.’
화장실에서 할머니는 캑캑 토하는 소리를 내셨어요. 그러나 토사물은 없고 침 같은 물만 조금 나왔을 뿐입니다. 저는 활명수와 간단한 소화제를 사 왔죠. 그것을 드시고 조금 쉬어야겠다며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자는 듯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저는 처음 알았어요. 할머니의 아들들이 다음날 왔고 저는 슬픔 속에 장례를 치러야 했어요. 그 크던 집에 대한 처리 문제를 아들 며느리가 앉아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나는 제가 나가죠. 했습니다.”
“물론 그의 동생은 잠자듯 죽은 것은 아니었어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던 거니까요.”
의사는 역시 무표정하게, 거의 눈을 감을 듯이 하고 내 이야기를 듣는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채 이야기를 듣는 그는 가끔씩 나를 향해 얼굴을 기울여 온다. 분명 그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가 자신의 집사람에게 어떻게 이야기하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와 나는 이제 별로 거리끼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그는 나와 지냈다. 그렇다 하여 그가 아내와 가정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의 아내는 그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 어쩌면 그의 아내는 상한 자존심으로 부글거리는 속을 누르며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차갑고 냉정한 남편의 온전한 귀가를 기다리며 허벅지 살을 꼬집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직장과 집을 오갔을 뿐이다. 그의 아내와 마찬가지로 그의 생활에 내가 끼어들 틈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나 역시 바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내 생활의 주체성을 그가 인정하는 것과 동일하게 그의 인생을 달리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단지 나와 외로움을 나누는 동반자이며 정기적으로 몸을 섞는 상대였던 것이다. 그렇다 하여 우리가 애정 없이 번들거리는 육체적인 부딪힘만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각자 삶의 개별성에 대한 존중 이외에는 우리는 정신적으로 거의 모든 것을 공유하였다. 그 공유감 속에는 가족에 대한 애증도 결코 예외일 수가 없었다.
동생의 죽음에 대해 그는 이야기하였다. 술집의 조명을 받은 그가 슬픔을 누르고 내 눈을 가끔씩 바라보았다. 눈물이 불빛에 반짝였다.
“동생은 불쌍하게 컸어. 무능한 아버지 탓에 동생과 나는 시골의 외갓집에 맡겨졌었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어. 겨울날 담벼락에서 햇볕을 쬐며 우리는 언제 오실 지도 모르는 어머니를 기다렸었어. 어머니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오시지 않았지. 우리는 절망을 안고 말라갔어. 세 살 어리던 동생은 내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어. 걔는 어디까지나 나를 쫓아 다녔다고. 나는 결코 그 애를 귀찮게 생각한 적이 없었어.”
그는 울고 있었다. 소주잔에 눈물을 떨어뜨리다 손으로 눈을 훔치며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학 다니던 동생이 시위를 주동할 때 나는 동생이 다니던 학교를 찾아가 멀리서 지켜보았어. 동생은 건물 난간에서 야구 방망이로 접근하는 형사를 막았던 거야. 병을 깨서 자해도 하였지. 손바닥에서 피가 철철 넘쳤어. 피말이야. 나는 멀리서 동생이 많이 다치지 않기만을 바랬지. 가슴에서 뭔가 복받쳐 오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거야. 그 순간 동생을 운동권 학생으로 만들었던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을 수 정도로 미웠어. 내 인생에서 그처럼 후회스런 순간은 없었지. 동생을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그건 최근에도 마찬가지야. 뭔가 동생은 고민하고 있었을 테지. 결혼도 유보하고 무언가 찾고 있었겠지. 동생의 그 일그러져 깨진 주검. 나는 차마 어머니께 보여 드릴 수가 없었어. 병신 같은 놈 다 사랑한다고. 가족을 그렇게 사랑한다는 새끼가 그렇게 자살을 해.”
그는 마침내 무너져 갔다. 그는 내게 다시 말했다.
“그래 사랑 좋아. 사랑이 뭔지 내가 그놈한테 보여줄 거야. 사랑은 이런 거라고. 그렇게 찌그러져서 고민하다 저 혼자 죽어 버리는 게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그놈한테 가르쳐 줄 테야.”
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울면서 이야기했다.
그의 옆자리로 고쳐 앉으며 그를 포옹하였다. 그의 어깨를 쓰다듬다 갑자기 속이 불쾌해지더니 목구멍 깊은 곳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갔다.
며칠 후 병원에서는 임신이라 했다.
동생의 죽음과 나의 임신은 전혀 난데없는 것이면서도 이미 예고된 것일 수 있었다. 격렬한 학창 시절을 보내었던 두 형제가 모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은 똑같은 의식으로 출발하여 변화된 사회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였다. 그러나 그 또한 별 차별성은 없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잠시 다른 모습만 보였을 뿐 결국 그들은 하나의 동전이었다. 내게 그들 형제가 두 인간 속에 깃들여 있는 하나의 영혼처럼 보였던 것은 그 때문이다.
임신 또한 예고된 낯선 사태였다. 그것은 우리의 사랑과 별개의 문제이면서도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의 사랑에 대해 이제 보다 분명하여져야 했다. 외로움의 공감이나 사랑의 진실 운운 따위로 현실을 얼버무릴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나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 그의 가족들에게도 내 임신은 중대한 사건일 수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사실을 알렸다. 회사 근처의 커피숍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담담하게 병원의 진단 결과를 말해 주었다. 그리고 반응을 살폈다. 담배를 피워 문 채로 그는 냉정하고 짧게 이야기했다.
“낳아.”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임신의 짧은 입덧을 회사 생활 속에서도 눈치 채이지 않게 견뎌 냈다. 임신 5개월 쯤 되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배가 아팠다. 산부인과 여의사는 엑스 선 사진을 치켜들어 보고는 짧게 말했다.
“아이를 낙태시켜야겠군요.”
그날도 흐느끼듯 비가 왔다.
오후 늦게까지 비는 결코 그치지 않았다. 나는 일을 포기하고 창 밖만을 바라보았다. 오늘 그를 만나기로 하였다. 처음 만난 때처럼 그에 대한 나의 의식은 하얀 백지다. 그는 왜 나를 만나는 것일까. 잠시의 대화와 어둠 속에서 나누는, 숨 막히는 섹스 때문일까. 벌거벗은 채 땀으로 번들거리는 몸을 부딪치며 단지 신음하기 위해 그는 나와 만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이유라 하여도 그가 포기하지 않는 한 나는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 사회가, 역사가 또 어떻게 뒤집힌다 하여도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일 것인가.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명분이 될 수 없다. 역사와 사회의 모든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사랑할 자유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의 어떠한 과학적인 변화나 진보도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할 수는 없다. 행복이란 결코 객관적으로 검증된 과학이 아니라 눈물겨운 개별적 노력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외롭고 서글픈 시간을 양적으로 가득 축적한 사람들만이 부대끼는 삶 속에 언뜻언뜻 찾아오는 즐거운 한 때의 소중함을 몸으로 깨닫는다. 그들은 귀중한 때의 매순간을 곱게 가슴에 품고 유리잔처럼 깨지기 쉬운 날들을 조심스럽게 다루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을 부숴 버리지 않는 것이 행복의 첫째 조건임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잠시 비가 가늘어지다 다시 바람을 안고 폭우가 내리쳤다. 사무실 창가에서 비라도 맞은 듯 손수건으로 얼굴과 목덜미를 닦았다.
사랑이란
하고 나는 생각했다.
때로 무책임하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두통이 다시 몰려왔다.
그의 아내는......? 그녀도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 왜......? 그를 사랑할 테니까.
그래도 나는 어쩔 수 없다. 죽은 아빠처럼 맹목적으로 그가 그립고 보고 싶을 뿐이다. 그는 내게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다. 다만 행복한 한 때를 함께할 뿐이다. 행복이 허락된 운명이 아닐지라도 좋다.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타의로 잃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즐거운 때의 한 순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누군가 장마를 짊어진 하늘처럼 번개와 천둥으로 몸부림치고 은색으로 내리꽂히는 빗줄기처럼 울부짖는다 하여도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으리라.
창가를 쉴 새 없이 두들기는 빗발이 바늘처럼 머리에 꽂혀 왔다. 또다시 두통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아이를 갖겠다고. 다음 번 그의 아이는 결코 혼자 두지 않으리라고. 언제나 내가 함께 하며 저 비를 막아 주리라고. 이제는 결코 손을 놓지 않으리라고. 빗발이 가슴을 아무리 세차게 때린다 해도.
(끝)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완결이 아닌 미완이네요. 후속편이 나오기릴 기대합니다. 건필을^^
머리 아파지네요. 저두... 잘 읽었습니다.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