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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논평 ** 화요논평 (2007년 12월 11일) 고통에 대하여
ahjabie 추천 0 조회 482 07.12.14 17:28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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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2.15 01:08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윤리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공리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ahjabie님과 '멀지 않아서' '저에게는' 다행이군요.

  • 작성자 07.12.15 15:45

    한살림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만, 공리주의에 대해 저와 님의 생각이 만들어내는 공명이 저에게 역시 다행이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이겠습니까? ^^ 저희의 생각이 여기에 머무르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이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닌 것은 저희가- 아마도 '따로 또 같이'- 갈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글은 <악트>에 기고한- 일종의 '서론'격으로 쓰여진- 글에 이어지는 '본문'에 입성하는 몇 가지 출입구 중 하나입니다. 그런 시작의 발걸음으로 올해 저에게 주어진 마지막 화요논평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제게 숨길 수 없는 기쁨입니다...

  • 07.12.15 16:12

    글 잘 읽었습니다. 어떤 글은 읽다보면, 다른 생각은 전혀 못하고 쓰는이의 생각에만 동조되어 따라가는 글이 있는데, 위 글도 제게는 그렇네요. 읽는 지금으로는요.^^비교될 수 없는 걸 고통이란 이름으로 같이 비교되는 사태를 조우하게 하는 걸 시작으로, 고통없는 상태인 쾌락을 향해가는 공리주의, 피해자로서 우리, 공동체(밖)으로 시선을 이끌고 간 아자비 님 사유 잘 읽었습니다.

  • 07.12.15 22:26

    잘 읽었습니다. 질문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로티는 공동체의 외연이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 작성자 07.12.16 01:28

    폭주기관차/ 발자크의 단편 <사라진느>를 미세하게 쪼개 놓았던 <S/Z>에서 바르트는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것(le texte lisible/readerly text)"과 "쓸 수 있는 것(le texte scriptible/writerly text)"의 두 가지 종류로 나눈 적이 있습니다. 후에 <카메라 루시다>에서 스투디움(studium)/푼크툼(punctum)의 대립으로 다시 등장하는 이 짝패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관례적인 독해/논리의 계열(series)과는 다른 궤적을 만들어내는가 아닌가의 여부가 그 중 하나입니다. "다른 생각은 전혀 못하고 쓰는 이의 생각에만 동조되어 따라가는 글"로 묘사된 저의 글은 그렇다면 그 둘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요?

  • 작성자 07.12.16 01:44

    바르트의 대립을 '열린 것'과 '닫힌 것'이라는- 제임슨의 냉소적인 표현을 빌면- 서방의 자유민주사회와 동구의 전체주의사회라는 냉전시대적인 대립으로 이해한다면 제 글은 "파시즘적인 것"에 가까운 것으로 "고발"되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빠가 도대체 뭐라고 했길래 말썽꾸러기 훈이가 아빠말을 저렇게 잘 듣게 된 것일까요라는 삼성광고의 "열린" 질문이 잘 보여주듯 다양한 가능성이 "독점"적으로 전경화되는 이 시대란 사실 버젼업된 "읽을 수 있는 텍스트"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란 이래도좋고 저래도 좋은 "아이러니"가 아니라 단호한 결정이 촉구하는 "상황" 속에서만 나오는 것이니까요.

  • 작성자 07.12.16 01:51

    (아, 혹시나하는 기우에서 덧붙이면, 폭주님께서 저보고 "파시스트다!"라고 그러셨다는 게 아니라, 덕분에 이런 생각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정도입니다 ^^) 김상현님/ 일대일 관계(?) 속에서는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짧게 대답드리면 그렇습니다. 특히 미국의 외연이 그렇지요. 원래 어디에서 태어났건 원칙적으로는 누구든 미국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미국 때문에 고통받고 있소"라는 말에 로티가 할 수 있는 대답도 그것입니다. "이민오세요." 다시 말해 "미국인이 되세요." 모든 공동체의 외연은 이론적으로 확대될 수 있고 또 그러는 게 좋지만, 제가 지적한 공동체들 사이의 역학 속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 작성자 07.12.16 01:59

    역할을 "필요악"으로 보는 로티의 입장에서 볼 때 "실용주의적"으로 외연의 확장을 권장할만한 공동체란 결국, 미국 뿐인 것이지요. 미국이 싫다면 할 수 없지만, 좋게 말할 때, 그 밖에 있는 것보다는 그 안에 들어오는 게 당신에게도 "실용주의적"일 것이라는 게 로티의 "철학"이 함축하는 메시지입니다...(물론 한국의 "로티주의자들"이 제공하는 "읽을 수 있는" 소개글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 07.12.16 19:35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다만 로티정도의 철학자에게 그토록 명백해 보이는 이론적 결함이 있다는 게 잘 이해되지는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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