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새해에 바란다.
이순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늙는다는 것을 의식한다. 아무리 겉을 꾸미고 피부 단련을 시키고 운동을 해도 늙음을 멈출 수 없다. 늙는 것이 두려운 사람도 늙어가는 자신을 마주 볼 용기가 없는 사람도 타인을 보면서 나이를 의식한다. 타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거부할 수 없는 순리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젊은이들이 넘치는 도시와 달리 시골은 노인의 세계다. 엊그제까지 인사를 하던 이웃도 하룻밤 새 유명을 달리하는 곳이 농촌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새해라는 의미를 새기지 않고 넘긴다. 이루고 싶은 일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가 작별의 날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노인을 모실 때는 몰랐던 부분을 요즘 들어 자주 의식한다. 두 어른이 아흔 중반을 넘어설 때까지 며느리 자리에서 허덕였던 나였기에 두 노인의 부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거리에서 중절모를 쓴 깡마른 노인을 보면 시아버님 같다. 중절모 아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구부정한 어깨, 느릿한 걸음새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착각을 일으킨다.
노인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 책임과 의무를 다한 시절을 살아 왔는가. 자문한다. ‘너도 늙어봐라.’ 친정엄마 생각도 자주 한다. 그때는 젊어서 늙음의 의미를 몰랐다. 촌부로 사는 일도 시부모님 모시는 일도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일도 힘에 부쳐 허덕일 때였다. 친정엄마까지 나를 필요로 하는 바람에 ‘힘들어. 힘들어 죽겠어. 엄마라도 나 좀 도와주면 안 돼? 언니를 부르든가. 올케를 부르던가.’하면서 화풀이를 했었다. 늙은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 아무래도 내가 운전을 배워야겠어.”
제 사전에는 운전 면허증 없다는 딸이 운전을 배우겠단다. 2022년 딸은 단감수확을 도우려 왔다가 비장한 결심을 했다. 1톤 트럭 운전면허증을 따겠다며 농부에게 연수를 부탁했다. 딸은 시골 내려와 농사를 배우겠단다. 가방 끈 긴 딸이다. 직장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인이다. 우리 가족은 아무리 봐도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다. 사람들과 휩쓸려 살지 못하는 외골수 기질이 강하다.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뚝 떨어진 외딴집에서 책을 친구로 살았기 때문일까. 자발적 가난살이도 괜찮다는 딸이다. 딸과 함께 살아야 할까.
나잇살 느는 것을 느낄 때마다 인생은 긴 것 같아도 살아보니 짧더라는 말을 되새김 한다. 사네 못사네 하다보면 파파 할멈이 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동네 노인들을 보면 세월의 흔적은 한 해가 다르다. 곧 돌아가실 것 같았던 노인이 멀쩡하게 나들이를 하고, 천 년 만 년 살 것 같이 건강하던 어른이 어느 날 이승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시어른도 그런 노인 중 한 사람이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자 엄마아빠가 완전 노인이야.”
딸의 눈빛이 처연하다. 안쓰러워하는 눈빛,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눈빛, 어미로서 미안해진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에는 치매를 앓게 된 어머니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카사노바 호텔>이란 작품에서 치매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만도 힘든 작가의 모습이 있다. 한 순간만이라도 어머니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던 작가는 유부남과 호텔 방을 전전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 소설에는 치매환자가 되어가는 엄마를 바라보기 힘든 딸의 마음이 담겨 있다. 고통으로부터 탈출, 돌파구로 택한 욕망이라고 해야 할까. 덕분에 어머니에 대한 고통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2022년 봄부터 나 역시 두 노인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말을 잃고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 기저귀를 가는 농부, 끝없는 분노를 토하던 시아버님, 주중에 다녀가는 간병인조차 내 영혼을 좀 먹었다. ‘나 좀 살게 해 줘’ 소리칠 때도 있었다. 노인들 보는 것만도 힘들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도 머잖아 걸어갈 길이기에 더 고통스러웠다. 나중에는 ‘차라리 요양원으로 모시자. 어머님은 요양원이 편할 것 같아. 나 좀 편하게 해 주면 안 돼?’ 소리치기도 했다.
그러나 겨우 삼사 개월 만에 팽팽하던 끈이 툭 끊어져버렸다. 시어머님은 요양원으로 모시고 요양병원으로 모셨던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시어른께서 돌아가신지 두 달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전화벨이 울리면 깜짝 놀라고, 길거리에서 시아버님과 비슷한 노인을 보면 긴장한다. 묘지에 누워 백골로 변해가는 시어른께서 벌떡 일어나 ‘나, 살고 싶다.’소리칠 것 같다. ‘그동안 고생했다.’ 그 한 마디 건네고 가셨다면 어떨까. 나와 농부의 마지막 길은 어떨까.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여서 남매를 힘들게 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엄마는 잘 살아왔어. 걱정 마. 내가 돌봐줄게.’ 아직 청춘인 딸의 말이지만 고맙고 안쓰럽다.
2023년 새해에는 이태원 참사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코로나가 사라졌으면 좋겠고, 부화뇌동하는 정치계 사람들이 정체성을 찾았으면 좋겠고, 요양원이지만 시어머님이 오래 살아주셨으면 좋겠고, 우리가족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고, 우리 부부 역시 가능하면 병원 다닐 일 없으면 좋겠고, 남매가 제 몫의 삶에서 보람을 얻었으면 좋겠고, 주변 사람들 모두 평화로운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희망은 삶을 이어주는 끈이다. 그 끈을 잡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해 본다. 모두 복 받으시고 복 지으십시오.
<2023년 1~2월 그린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