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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색, 정찰 - 임상의 핵심, 진단
환자 몸을 수색, 정찰하여 병사病邪, 병인病因을 찾는 것이 바로 진단이다.
따라서 가상의 적을 대상으로 하는 이론적 틀인 ‘작전’과 달리
진단은 실제 전투, 즉 임상 그 자체이다.
전쟁에서 적의 규모와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야 전략, 전술을 올바로 펼칠 수 있듯이
한의학의 觀 또한 진단을 통해야 임상으로서의 가치를 얻으니
임상에서 응용할 수 없는 觀은 망상에 불과하다.
이처럼 진단은 이론과 임상을 연결하는 핵심인 바
음양오행을 단지 과거 유물로 생각하여
대증치료對症治療에만 매달리는 것은 진단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
환자가 머리 아프다면 두통약 지어 주고, 허리 아프다면 허리에 침 놔주는 과정에선
환자의 호소에만 귀 기울일 뿐 환자의 몸을 탐색하는 진단의 의미는 사라진다.
사상의학 같은 선현의 觀을 이용함에 있어서 진단의 정확도가 결여됨은
전장에서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지도만 쳐다보고
실제 적의 동태는 살피지 못함과 같으니 결국 모든 것은 진단의 문제이다.
본인이 사상의학에 대해 감히 왈가왈부하는 것은
사상의학이라 하는 이제마 선생님의 觀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따르는 사람들의 진단상 한계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손쉽고, 간편한 것만 찾으려는
객관식 세대인 우리들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수색과 정찰.
직접 발로 뛰어다녀야만 가능하듯이
진단 또한 부단한 노력과 체계적인 경험축적이 필요하다.
한 번 안경을 쓰게 되면 평생 안경잡이가 되어야 하듯이
처음부터 쉬운 길을 선택하면 여기서 벗어나기 어렵다.
망진望診과 절진切診으로 대표되는 전통 진단법은
오랜 노력과 경험이 필요하기에 어렵다하여 덮어 버리고
처음부터 기계에만 의존하면 평생 전기줄에 끌려 다녀야 한다.
눈과 귀 그리고 손.
이 이상 정확하고 정밀한 진단기계는 없다.
처음 임상을 접할 때 가장 막연한 것이 진단이다.
이는 대학시절 진단보단 침과 처방에만 열을 올렸기 때문이기도 한데
더 큰 문제는 졸업 후 이를 반성하기보단 손쉬운 방법부터 선택한다는 것이다.
홍채, 파동... 심지언 양의洋醫에서 쓰는 초음파, 혈액, 뇨분석기까지
물론 각각의 진단기엔 나름대로의 유효성이 있으나
그것들이 한열허실寒熱虛實의 팔강八綱을 분별하지 않는 한 한방 진단기일수 없다.
홍채진단으로 간肝이 나쁨이 나타나고, 초음파로 간肝의 지방화가 보이며
GOT, GPT 수치가 높다 해서 생간건비탕生肝建脾湯을 투여하고, 동씨침의 삼황三黃을 자침한다면
이것이 과연 순수 한방인가?
이와 같은 양진한치洋診韓治는 한의학을 철저히 파괴한다.
이러한 현실에선 치료과정에 있어서도
환자가 호전되고 있는지, 아니면 악화되고 있는지
환자의 자각증세가 없다면 알 길이 없기에 의사가 환자의 말에만 끌려 다니게 된다.
이처럼 환자의 자각증상에 귀 기울이는 것도
문진問診이라는 진단의 한 부분이기는 하나 전적으로 여기에만 매달리면
대증치료對症治療에 빠지니 이는 망진望診 등을 통한 본증치료本證治療와 비교했을 때
자동차와 비행기의 경주와 같은 바
아무리 우수한 자동차라 할지라도 행글라이더조차 이길 수 없다.
즉 한방진단의 개념이 결여된 진단기계의 사용과
환자의 호소에만 의존하는 형식의 진단방식은
아무리 노련하다 할지라도 한의학의 觀이 형성되고,
진단의 줄거리를 잡은 이의 눈, 귀, 손을 결코 당해 낼 수 없다.
결국에 한약과 침을 쓸 것이라면 진단기를 통해 어디어디가 나쁘다는
양방 해부학적 진단을 하고 나서 처방집을 뒤지는 식의
진단(洋診)따로, 치료(韓治)따로의 기형적 진단을 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 방제가 本草의 氣味와 歸經에 따라 구성되고,
침법은 氣穴의 經絡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니
이에 진단도 철저히 팔강八綱과 장부변증臟腑辨證에 따라야 한다.
진단기계를 통해 “글세 어디어디가 아프겠네요”하고
환자의 병을 집어낸 다음 처방은 양방병명에 따라 내리는 방식보단
삼인三因을 가리고, 팔강八綱과 장부변증臟腑辨證을 하여 본초의 한열보사寒熱補瀉에 따라 방제를 구성하는,
방약합편 등의 처방집에 등장하는 ‘처방명處方名’ 중심이 아닌
개성있는 본초 각각의 ‘조합’으로 방제가 구성되는 방식이
우리 한의학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배수진背水陣의 병법兵法.
처음 임상함에 있어서 물리치료기를 버리는 배수진背水陣을 쳐야 침이 늘고,
진단기계를 버리는 배수진背水陣을 쳐야 진단이 는다.
이것은 실제 본인이 경험하고 있으니
갖가지 물리치료기와 진단기가 갖추어진 한의원에서
편하게 부원장을 하던 과거시절보단
지금의 썰렁한(?) 광화문 생활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알차다.
이 모두가 스승님의 덕인데 손쉽고 편한 생활을 포기하니
오히려 더 큰 걸 얻게된 셈이다.
그런데 주위엔 한의사도 아니면서 본인처럼 배수진背水陣을 친 사람들이 있다.
약사들...
진단의 권한이 없음에도 그들은 한약을 팔기 위해 환자, 아니 손님의 몸을 살핀다.
법적 제약으로 진단기는 사용할 수 없기에
망진望診, 절진切診 등의 불문진단不問診斷 공부에 전력하는 그들을 보면 전율이 온다.
한의사들은 양방화되어 가는 가운데
오히려 약사들이 전통 한의학에 매달리고 있으니...
전쟁에서 군인은 가만히 있고,
민간인도 아닌 그렇다고 군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공익(?)이 나서는 꼴이다.
세상이 변해도 꿩잡는 건 매다.
약사들의 밥그릇 불리기 대상인 한의학은 우리에겐 존재 그자체인 바
우리가 우리 것을 지키지 못함은 자아상실을 의미한다.
자아상실.
지금 본인은 그 자아를 세우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다.
스승님 덕에 가장 기본적인 진단의 틀은 갖추었으나
나머지 섬세한 부분은 결국 나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부 지침보다 내 발로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아야
적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듯이 나의 진단법은 내가 완성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나는 침과 약보단 ‘진단하는 힘’을 키우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 그 비법秘法을 공개하고자 한다.
진단하는 힘.
의자醫者 자신이 정확한 진단기계가 되기 위해선 진단하는 힘부터 키워야 하는 바
진단하는 힘이란 환자를 관찰하는 ‘통찰력’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통찰력을 얻으려면 다음 ‘3신’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양신養身 → 득신得神 → 신명神明
양신養身 ...... ......
먼지 낀 안경으론 세상이 온통 뿌옇게 보이 듯
의자醫者의 몸이 탁하면 환자患者를 바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양신養身에 의한 의자醫者의 건강 유지가 우선되는데
이러한 양신養身은 감각기관을 더욱 섬세히 만들어 진단을 유리하게 한다.
본인이 육식을 금하고 철저히 채식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니
가깝게는 건강을 위해서이고, 멀게는 섬세한 진단을 위해서이다.
채식주의. 운동이나 기공, 호흡수련보다 우선되는 양신養身의 핵심이다.
이전에 본인은 [취상론取象論]과 [유식론唯識論]을 통해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었으니
모든 병은 마음에서 비롯되기에
수행을 통해 마음으로써 병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인데
마음의 본질에 대한 문제는 충분히 고민되었으나
마음을 다스리는 실천적인 방법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였다.
마음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없음을,
탁한 마음으로 마음 그 자체를 정화시킬 수 없음을 언급하지 못하였던 바
이는 그 당시 ‘몸’에 대한 통찰이 모자랐던 탓이기도 하다.
마음을 담는 그릇, 즉 몸부터 깨끗이 닦아야 마음이 정화된다는 점.
육류와 인스턴트로 오염된 몸을 가지고 수행하려 덤비면 마장魔障만 일어날 뿐이다.
스님들의 육식을 금하는 생활은 그 자체로도
마음을 정화시키는, 업장소멸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우리 주위엔 불가佛家나 청해무상사淸海無上師처럼
육식을 금하여 몸을 맑게 함을 강조하는 法이 드물다.
오히려 자발공自發功이라 하여 마음내키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하니
이는 탁한 몸에서 나오는 탁한 마음을 순수 마음을 착각하는 것이다.
[유식론唯識論]에서도 언급했듯이 자발공自發功은 아뢰야식이나 말나식에서 나와야지
육식六識(의식意識)에서 발휘되면 마장魔障이 일어나는데
더욱 한심한 것은 그 마장魔障을 초능력으로 여겨 숭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수련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정충精充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장氣壯, 신명神明시키려니 주화走火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진단의 통찰력은 주화走火에서 야기되는 마장魔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수 정충精充에서 발휘되는 신명神明에서 비롯된다.
순수 정충精充. 마음내키는 대로 먹어서 모아지는 탁한 정精이 아닌
천기天氣를 받는 채식을 통해 쌓이는 순수 정精만이 마음을 맑게 한다.
동물의 가로지기之氣(-)보단 식물의 세로지기之氣(l)가 정精을 쌓이게 하는 것이다.
득신得神 ...... ......
양신養身을 통해 정충精充이 되면 신神이 발휘되니
이 신神이야말로 진단의 요점, 즉 통찰력의 바탕인 바
득신得神의 유무有無에서 명의名醫와 범의凡醫가 나뉜다.
수색대의 체력이 양신養身으로 갖추어 진다면
적의 동태를 순간순간 파악하는 집중력은 득신得神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양신養身에 아무리 공들여도 득신得神하지 못하면 눈감고 정찰하는 것과 같으니
먹구름이 걷혀 세상이 밝아져도(양신養身)
오목거울로 빛을 모으지(득신得神) 않으면 불을 피울 수 없다.
즉 진단의 통찰력은 득신得神, 즉 집중력에 열쇠가 있다.
오로지 하나만 생각하여 이에 미치면 그 하나의 득신得神, 도道를 이룬다.
다도茶道, 검도劍道, 서도書道... 처럼 진단만 생각하여 진단에 미치면
진단의 도道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의학입문醫學入聞 맥편脈編만 3년 보면 맥脈에 통달한다는 맹화섭 선생님의 말씀이나
진단학 책 한 권을 백 번 이상 보면 진단이 완성된다는 스승님의 말씀,
모두 득신得神의 경지를 논하심이다.
그러나 먹구름이 낀 상태에서 돋보기를 비춘다고 빛이 모아지는가.
득신得神은 철저한 양신養身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바
양신養身(정충精充)을 멀리 한 체 득신得神하고자 집중하면 주화走火(상기上氣)된다.
즉 몸이 맑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에 미치려 들면
득신得神은 커녕 진짜 미쳐버리는 것이다. (일종의 편집증...)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한의학의 득신得神을 위해선
탁한 가로지기之氣를 금하고 맑은 세로지기之氣를 섭취하는 양신養身을 통해
반드시 정충精充부터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반복된 고민과 관찰로 일목一目의 집중된 연구를 해야 한다.
한의대 6년,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보내긴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일단 입학하면 철저한 양신養身을 통해 지난 20년간 탁해진 몸을 정화시켜
졸업 후의 득신得神을 위한 정충精充의 토대를 닦아야 한다.
그 동안 우리는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진리의 열쇠를 놓친 셈인데
본인 또한 지난 10년의 세월이 아쉬울 따름이다.
자 이제부턴 정충精充, 그리고 득신得神이다.
신명神明 ...... ......
부분부분 적의 동태를 관찰하는 것이 득신得神이라면
이러한 정보들을 종합하여 적의 전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신명神明이다.
모아진 빛(得神)으로 불이 지펴져야(神明) 불의 쓰임이 완성되듯이
진단은 득신得神의 집중력을 거쳐 양신神明의 통찰력을 갖추어야 완성된다.
한의학의 觀 또한 이러한 신명神明 단계에서 완전해지니
이는 적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야만 작전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신명神明이 이루어지지 않고선 자신의 한의학 觀을 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선현의 觀 또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결국 한의학 觀과 진단 모두 신명神明에서 완성되는 바
한의韓醫의 학學과 술術에 있어서 궁극 목표는 ‘신神의 밝힘’에 있다.
신명神明, 신神의 밝힘. 그 깨달음의 경지, 꿈처럼 멀게만 느껴지나
한의학 하나에 미쳐 침과 약을 신명나게 사용하면서 환자를 치료하는
자유자자ㅐ自由自在의 신의神醫를 희망한다면 신명神明의 목표,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한 손엔 작전지도(觀)를 들고,
튼튼한 몸(養身)과 번뜩이는 감각(得神)으로 적을 동태를 관찰하여
명석한 분석(神明)을 통해 현 상황을 파악해야만 한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한다면 이는 곧 패배.
따라서 승리로 향한 神醫의 길은 멀고 험하다.
성급하게 서두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갈 길은 제시되었으니 이제 한 발자국씩 천천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양신養身, 득신得神 그리고 신명神明...
첫댓글 손쉽고 간편한 것을 찾으려는 모습은 요근래의 종교 수련영역을 포함해서 모든 부분에 있어서 보이는 경향이라 생각하는데요 지나친 고행주의에 빠져서 자신을 낭비하는 것이나 지나친 편리주의에 빠져 모든 것을 날로 먹으려는 것이나 치우친 모습인 것은 마찬가지라서 정말 자신에게 무엇이 좋을지를 잘 고민하여 그 중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제 개인적으로도 편한 것이 좋긴한데 너무 편하기만 하면 얻는 것이 적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제 성장과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성향사이에서 저의 길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중입니다.)
저기에 한의사와 약사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이제는 직업과 직책을 떠나서 모두가 자신의 몸과 남의 몸의 건강을 지켜야 하는 시대이니 저런 비유로 대변되는 모습은 앞으로는 없어져야 하겠지요.
김홍경님도 한의대 교육에 반드시 명상 교육을 많은 시간을 할 수 있도록 학제개편을 해야 된다고 했는데 손영기님의 양신-> 득신-> 신명의 개념을 보니 동학의 시천주-> 양천주-> 인내천 개념이 생각납니다.(물론 그 방향성의 차이(한의학자가 되려는 것과 한울님과의 합일을 하려는 것)는 분명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