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드 워>
애정영화를 봤다. 사랑하는 연인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내용이다. 이별이 없는, 고통이 없는 사랑은 무엇인지 공허한 느낌을 준다. 이익을 공유하며 편안함을 주고받은 만남과 삶은 텔레비전 예능프로의 경박함과 닮아있다. 때론 경박하다는 사실이 평범하고 소중한 것이라 생각하더라도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랑은 진부하다.
폴란드 예술극단의 음악감독은 새로 입단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사회주의 국가의 억압된 환경과 국가의 정치적 요구에 실망한 남자는 서구세계로 탈출을 기획하고 여인과의 동반탈출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고 혼자만 떠나게 된다. 몇 년 후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한다. 여인은 폴란드를 합법적으로 떠나기 위해 이탈리아인과의 위장결혼을 통하여 남자가 살고 있는 파리로 온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평탄할 수 없었다. 여인은 직업적으로 바쁜 남자의 어쩔 수 없는 무관심에 실망했고 서구세계 적응에 실패한 후, 다시 폴란드로 돌아간다. 그때서야 여인을 찾아 폴란드로 돌아간 남자는 고국에 대한 배신행위로 수용소에 감금되었고 여인은 그를 풀어주기 위하여 그녀에게 추근거리던 고관과 결혼한다. 영화 마지막, 연인은 시골의 낡은 성당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거행한다. 그러나 그들의 앞날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사랑은 정치적 이념의 풍랑 속에서 정상적인 길을 갈 수 없었다.
사랑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격렬하고 뜨거운 감정이다. 그것은 때론 형언할 수 없는 쾌락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엄청난 고통을 경험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사랑이 외부의 힘에 의해서 상처입고 거부되며 파괴된다면 고통의 깊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자유로운 사랑이 관습, 이념, 제도, 타자에 의해 정지되었을 때, 사랑의 포기는 단순한 감정의 정리가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의 소멸과 동일하다. 약한 자는 그러한 도전에 굴복하지만 강한 자는 더욱더 억압과 도전에 저항한다. 그때 사랑은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두 연인은 서로를 위하여 노력하고 상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 여인이 남자보다 항상 강하다. 남자는 파리 망명 시절, 여인을 그리워하면서도 다른 여인과 동거를 하였지만 폴란드의 여인은 사랑을 위하여 위장결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수용소에 갇힌 남자를 구출하기 위하여 지독히도 싫은 남자와의 결혼을 감행한다. 여인은 사랑에 있어 훨씬 주도적이고 용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항상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은 희생을 한다고 하는데, 여인의 무모할 정도로 자신을 던지는 모습은 사랑에 인생을 던진 연인의 모습을 확인하게 해준다. 남자 또한 최선을 다하지만 그 최선은 상식적인 최선이다. 여인은 상식까지 넘어선다.
로마시대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에서 사랑의 정념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사랑에 빠지면 겪게 될 정념의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아픔을 진하게 느껴본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랑은 일종의 충격이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감정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다. 단순한 욕망의 나눔이 아닌 자신의 모든 것을 계산하지 않고 오로지 감정의 흐름에 자신을 던지는 순간이다. 사랑의 감정은 결코 나이에 의해서 제한받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제한받는다면 그것은 그 자신이 관습적 한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념적 대립과 정치적 위험 속에서도 용감했던 여인의 사랑을 위한 투쟁을 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순수하게 던질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삶을 생각한다. 비록 그 끝이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될지 알 수 없어도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것을 찾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들은 더욱 인간의 최고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첫댓글 - 사랑이라는 말로 행해지는 수많은 허위와 가식이 먼저 떠오른다.
- 누구나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어떤 상황이 일어난다 해도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할 수 있는 힘, 존재할 수 있는 힘은 사랑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 충동적인 사랑 앞에서 여자는 도발적이고, 감성적이고, 개방적이고, 이상적이다. 이에 비해 남자는 관찰적이고,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며, 현실적이다. 나의 착각일지도... 그동안의 사회적 환경의 영향으로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다가설 수 있는 욕망은 남자에게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것과 현실이 꿈이 되기를 바라는 차이점은 무엇일까?
- 사랑은 순간의 욕망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순간은 영원을 꿈꾸게 하기에....... '순간만이라도~'를 바라는 사랑과 '영원을 위하여~' 생각하는 사랑의 선택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는 사랑은 행복이 아닌 고통이 되고야 만다. 물론 그 고통을 극복하는 사랑은 아릅답다라는 말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