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 치렀던 잔치는 끝났다. 모두는 밤을 밝히려는 도시의 불빛만큼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놓은 채 돌아갔다. 그들이 남긴 이야기들은 허공에 흩어져 공허하기만 했고 자정을 향해 바삐 움직이는 초침 소리가 그 자리를 채우려 한다. 다만 거실 한가운데에 덩그마니 놓인 상위에는 접시가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난 기력이 소진된 채 망연히 거울 앞에 앉았다. 화장을 짙게 하고 머리를 멋들어지게 틀어 올린 여자가 거울 속에서 나를 보며 묻는다. 이제 모두 돌아갔으니 너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겠냐고.
이 거짓 얼굴을 빨리 거울 속에서 사라지게 해야한다. 크린싱 크림을 듬뿍 덜어내어 양 볼과 이마 그리고 턱에 네 덩어리를 찍은 다음 이마에서부터 크림을 고루 펴서 피부가 벌겋게 되도록 문질렀다. 얼굴을 덮었던 볼연지와 화운데이션을 거즈로 빡빡 닦아냈다. 아이 쉐도우와 아이 라인도 모두 지웠다. 난 화장을 하는 것이 즐겁지가 않다. 화장을 안 할 수 있다면 지울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는 거다. 나는 왜 밤마다 벗기는 껍질을 아침에 또 씌우는가.
화장은 사람의 모습을 꾸미기는 해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탄력이 있는 피부를 가진 싱싱한 젊음이 있는데 왜 먼지를 얼굴에 덮어야 하느냐. 화장은 늙어 갈 때 하는 거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 빈곳을 메우기 위해 화장을 하는 거라며 모든 일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화장을 하지 않고 생활했다. 주변에서 그렇게 외모에 자신이 있냐, 애인이 빨리 생겨야 화장을 한다며 놀렸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아집으로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투명화장을 한다며 맨 얼굴로 다녔다.
화장을 하기 시작한 것은 선미를 낳은 후부터이다. 나는 괴로움을 잊지 못해 불행할지라도 얼굴에 드러나는 것은 감추고 싶었다. 마음이 울적할수록 점점 짙게 화장을 했다. 화운데이션만이라고 시작한 화장은 해가 갈수록 볼연지와 아이쉐도우, 이젠 아이라인까지 모두 한다. 하루 중 낮에는 주로 화장을 한 얼굴로 나머지 반인 밤에는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로 선미 나이만큼의 세월을 살았다. 화장을 하지 않고는 눈부신 햇빛 아래의 타인들 속에서 나를 숨기며 살아갈 수가 없다. 이런 내 모습을 난 증오한다.
내 본래의 모습이 유난히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를 보기 위해 화장을 모두 지우고 세수를 해도, 이젠 나의 본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다. 진한 화장을 한 거울 속 내 허상을 보고 있으면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낯선 타인이 어색한 얼굴을 내민다. 내 거짓 모습이 참 모습을 밀어낸 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 끝까지 얼굴에서 나이게 하는 것은 눈이다. 눈은 타인이 되기를 거부해왔다. 어떤 화장품으로도 눈을 덮을 수 없다. 아무리 얼굴에 베이직을 바르고 또 한 겹 더 화운데이션을 발라도 덮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화장을 완벽하게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점점 진하게 화장을 한다.
슬픈 빛의 눈동자는 더욱더 어찌할 수가 없다. 다행인 것은 남편이외에는 아무도 짙게 그린 아이라인 속에 감추고 있는 슬픈 빛을 알아보지 못했다. 남편은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며 한숨과 함께 연기를 밤하늘에 내뿜고 있었을 것이다. 잠시 후 현관문을 들어서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나도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에 들어가 물과 눈물로 세수를 했다. 나는 매일 밤 눈물과 물의 혼합물로 세수를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눈물의 비중이 줄어들긴 했지만 오늘은 오래 전처럼 굵은 눈물이 나왔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밖으로 나왔다.
아들 방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 아들 방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아들은 문을 열어 주지 기는커녕 아무 반응도 없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아들에게서 뿜어져 나온 드라이 아이스와 같은 냉기가 날 엄습했다. 난 섬뜩하여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비껴가며 방으로 들어갔다. 어떤 사람들 앞에서도 뻔뻔스런 나지만 아들에게 방금 전의 일을 어떻게 이해시켜야할지 막막했다. 아니 도저히 내 혀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선미는 오빠의 침대 위에 잠들어있다. 입을 목젖이 보일 만큼 벌리고 코를 골고 있다. 입가에 흘러내린 침이 반은 말라서 우유 자국 같은 선을 그리고 반은 젖은 채 있다. 난 선미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가다듬어주었다.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유난히 윤이 흐른다. 까만 머릿결이 닿아있는 목은 햇빛 아래의 흰눈처럼 눈이 부시도록 빛나서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입가의 침을 소매 끝으로 닦아냈다. 내 얼굴을 선미의 볼에 맞대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하다. 평소에 축져져 보이던 팔과 다리는 오늘따라 데친 시금치처럼 더 힘없이 늘어져 있다.
두 쌍둥이 아들이 명문대에 합격한 턱을 내라는 남편 동료들의 성화를 막을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선미를 낳은 후 이사를 했을 때도 집들이를 하지 않는다고 재촉이 심했었다. 남편은 산후 직후 아이를 잃어 집사람의 충격 운운하며 겨우 미루었다. 그후 남편이 승진했을 때는 밖에서 자리를 마련하는 것으로 겨우 모면했다. 요번에는 부인의 음식 맛을 꼭 보아야겠다며 초대를 안 하면 쳐들어오겠다고 모두들 막무가내였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별 도리 없이 저녁 모임을 마련하기로 했다.
일주일 전부터 집안 대청소를 했다. 그간 아이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미루어 왔던 청소를 하며 켜켜이 쌓였던 먼지를 모두 떨어냈다. 첫째 날은 남편 동료들, 둘째 날은 남편 친구들의 모임을 무난히 잘 치렀다. 집안 행사 때마다 일손을 도와주던 아주머니가 선미를 데려가 돌보아주었다. 이번에도 아주머니는 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어렵지만 3일간 선미를 돌보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 저녁 집안의 급한 일로 선미를 볼 수 없게 되었다며 선미를 데려왔다. 곧 내 친구들이 오기 시작할 터인데 어떻게 할지 난감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2박 3일간의 신입생 예비 교육에 큰아이는 참여하기 위해 출발했고 작은아들이 선미가 방에서 나오지 않도록 잘 돌봐 주기로 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음식을 내올 때나 합석을 하고 있으나 온통 신경은 이층에 숨기고 있는 선미에게 가 있었다. 이층에서 파리가 날아가기만 해도 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내 귀를 이층에 집중시키고 있다. 다행이 내 불안과는 달리 잔치는 끝을 향해 시간과 함께 물 흐르듯 흐르고 잔치가 끝나갈 무렵에는 흥이 매우 고조되어 있었다. 노래방 기계의 반주에 맞추어 각자 평소에 즐기던 노래도 불렀고 더러는 노래에 맞추어 춤도 추었다.
한결같이 나에게 부러움 가득 찬 말들을 했다. 나도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면서 잠시 모든 것을 잊은 채 난 늘 행복했던 사람처럼 그들의 말속에서 즐겁게 웃고 있다.
"부부가 다 수재였으니 두 아들이 수재인 건 당연하지!"
"넌 갖출 건 다 갖추었으니 세월 가는 것만 아쉽겠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은 오랜만에 명창인 내 노래를 들어야겠다며 아우성쳤다. 별 도리 없이 마이크를 넘겨받기는 했지만 떠오르는 노래가 없었다. 선미를 낳은 이후 화장이 짙어질수록 내 안의 노래는 메말라갔다. 목이 꺽꺽 막혀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노래의 첫 음을 찾을 수만 있다면 부를 수 있을 텐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선미가 다리를 질질 끌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발음도 분간하기 힘든 말로 황소 울음처럼 큰소리로 "으으마…" 하고 나를 부르면서 말이다.
떠들썩한 거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어머나, 이 아인 누구니?" 그때 누군가의 한마디가 정처럼 내 정수리에 내리꽂혔다. 난 하마터면 외마디 소리를 지를 뻔했다.
"늦둥이 낳고 며칠 후 잃었다고 했었잖아?"
"으응, 한동안 방황하다가 입양해 왔어. 내가 말을 안 했던가? 왜 내가 봉사하고 있는 명신원 있잖아. 그 곳에서."
난 내 특유의 냉정함과 침착함으로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 선미를 껴안았다. 선미는 내가 잡고있던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며 노래를 했다. 선미가 내게서 물려받은 유일한 유전인자는 노래를 즐겨 부르려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던 늘 흥얼거리길 좋아한다. 물론 아무도 노래로 듣지를 않지만 선미는 늘 제 노래를 부른다. 난 선미가 노래를 하는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설명을 했다.
"얘, 너 복 받겠다. 정상아 입양도 어려운데 지체아를 입양하다니. 정말 존경스럽다. 두 아들이 명문대 간 이유는 따로 있었네."
일부는 합창을 하듯이 말했고 한 두 명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선미를 바라보았다. 선미는 우리들의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천사의 얼굴로 나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나는 그런 선미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처럼 최고로 고상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미소를 그들에게 띄워보냈다.
작은아이가 화장실에서 나와 선미를 데려가려고 계단을 내려오다 서너 칸쯤 위에서 이 장면을 목격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남편은 내게서 선미를 받아 안고 이층계단을 오르고 있다. 아들은 남편이 가까이 가자 등을 돌려 올라갔고 남편은 뒤를 이어 올라갔다. 웃으면서도 내 신경은 계단에 있었다. 한참 후에 남편은 어두운 빛으로 내려와 합석했다.
8년 전이었다. 두 쌍둥이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아이들은 대부분의 낮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고 저녁이 되서야 집에 들어왔다. 학교의 국보급 쌍둥이라며 매우 뛰어난 학업성적으로 담임선생님의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평소에 둘이 친구처럼 늘 다정하게 저들만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매우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당시 사십대 임신이 매우 유행했는데 이웃의 내 또래 몇 명은 늦둥이를 낳은 후 젊음을 되찾고 활기 있어 보였다. 남편과 상의하여 귀엽게 생긴 딸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 아이를 가졌다.
난 예쁘고 지혜로운 딸을 얻기 위해 클래식 음악도 열심히 듣고 독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미인 배우의 사진을 자주 보고 모난 곳에 앉지도 않았으며 예쁘게 생긴 과일만 따로 챙기어 먹었다. 남편과 아들들도 이런 나에게 적극 협조해 주었다. 새로 태어날 귀여운 딸을 그리며 무엇을 하고있건 노래가 내 입가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늦게 가진 아이로 힘에 부치긴 했어도 열 달을 기꺼이 잘 견디었다.
출산 일이 다가왔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뜨거운 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난 두려움에 병원에 전화를 했다. 양수가 터진 것 같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는 아직 산기는 없지만 양수가 모두 나왔기 때문에 서둘러 아이를 분만해야 하겠다며 촉진제를 놓았다. 매우 불안해하자 의사는 종종 있는 일이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잠시 후 산통이 시작되어 난 분만실로 옮겨졌다.
두 아들을 낳을 때엔 하루 반 진통 끝에 낳았다. 의사는 자연분만이 좋다며 촉진제 주사를 하나도 놓지 않았었다. 아이들을 낳자마자 난 아이들의 얼굴과 손과 발을 보며 손가락 발가락이 다섯 개인지 먼저 세어보았다. 이리저리 살피며 혹 기형아가 아닐까 초조했었다. 이번에는 두 시간 여만에 출산 직전의 강한 진통이 왔다. 의사는 아이가 밀려 할 때 박자에 맞추어 힘을 주라고 했다. 난 십여 년 전을 떠올리며 힘을 주려했다.
아이의 미는 힘이 약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어 힘을 못쓰는지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나에게 힘을 주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면서 무슨 기계를 사용하는 듯했다. 뭉클하게 아이가 빠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가늘었다. 난 얼른 고개를 돌려 아이를 살폈다. 내가 바라던 딸이었다. 눈, 코 입. 손가락과 발가락 모든 게 정상인 것 같았다.
생후 수개월이 지나도 선미는 잠자는 시간이 길고 주위를 잘 보지 않고 웃지도 않으며 딸랑이를 흔들어도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두 아들은 천장에 매달아 준 나비 모빌이 가볍게 흔들리며 돌 때 눈동자가 따라가곤 했는데 선미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일어나 앉지도 몸을 뒤척이거나 기지도 못했다. 아이 키워본지가 오래되긴 했어도 두 아들 키울 때와는 자못 달랐다.
발음을 전혀 하지 못하고 어르는데도 관심이 없었다. 이따금 제 손을 멍하게 응시하기만 할 뿐 몸을 잘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서점에 가서 육아 발달 과정이라는 책을 사서 정상적인 아동의 발달 과정과 선미의 성장 모습을 비교해 보았다. 목을 꼿꼿이 세우는 것에서부터 하나도 정상인 것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선미의 상태를 이야기하면서 단지 성장이 느린 것만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병원에 가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계속 미룰 일이 아니었기에 소아 전문병원을 찾아갔다. 몸집은 큰데 몸을 가누는 것은 신생아와 다를 게 없었다. 병원 대기실에 있는 동안 많은 젊은 엄마들은 선미와 나를 번갈아 보고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동정 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빨리 병원을 벗어나고 싶었다. 병원 대기실에서의 시간이 지루하기는 해도 공기가 없는 공간에서 내 목을 조여오듯이 답답한 적은 없었다.
간호사가 선미 이름을 불렀다. 의사는 생후부터 지금까지의 아이의 동태에 대해 소상히 물었다.
"아이의 성장이 얼마나 느린가요?"
"단순히 느린 것이 아닙니다. 정신 박약 증세 같습니다. 좀더 세밀한 검사를 해봐야 확실하지만 요."
나는 안고있는 선미를 떨어뜨릴 번했다. 앉아있는 의자가 푹 꺼지는 것 같아 비슬거리자 간호사가 날 부축했다.
"원인이 무엇인가요? 우리 집안에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요."
"아직 확실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치료하면 호전될 가능성은 있나요?"
"뚜렷한 치료법은 없고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할 수 있도록 반복 활동시키는 방법 밖에는…."
의사의 권유로 선미의 신체적 반응을 보는 갖가지 검사를 해보았으나 의사의 진단을 더욱 확고히 해줄 뿐이었다. 내 딸이 정신박약아라고. 시집과 친정 쪽 모두 수재 집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조카들도 모두 건강하고 영리한데. 왜 하필이면 수많은 사람들 중 나에게 이런 지식이 태어난단 말인가. 다리가 후둘후둘 떨려서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다 병원 대기실에 잠시 스쳐 지나기도 싫었지만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내 앞에 황량한 사막이 펼쳐져 있고 그곳을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내 머리 속은 공황 상태였다. 고무풍선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리기고 부풀어져 있어 아무 생각도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한 팔에는 선미를 한 손엔 기저귀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미도 가방도 힘 빠진 팔이 감당하기에 무거웠다. 차의 뒷좌석에 있는 유아용 의자에 선미를 태우고 방향도 없이 달렸다. 거리의 건물들,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도로가 연결되는 대로 달렸다. 선미는 배가 고픈 듯이 칭얼대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인간 구실도 못할 것이!'
선미가 정상아와 가장 닮아있는 점은 배꼽시계가 정확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선미도 굶기고 나도 굶었다. 아무도 모르는 산 속 깊숙이 들어가서 사라지고 싶었다.
해는 어느덧 져서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고 나도 지쳐서 차를 세우고 선미를 보았다.
'이 인간을 나더러 어쩌란 말이오!'
머리가 빡빡하고 아파서 두 손으로 양쪽 머리를 짓누르며 핸들에 얼굴을 묻었다. 이 상황을 조금도 받아드릴 수가 없다. 눈물이라도 펑펑 쏟아지면 시원하겠는데 마른 신음소리만 나왔다. 차에서 내려 큰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난 한번도 큰소리로 말 해본 적도 없다. 몸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한 소리는 가슴속에 갇힌 채 마음이 뒤엉키도록 소용돌이만 쳤다.
난 선미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내가 엄마이기나 한 것인가. 최소한의 모성애는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나라는 인간을 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지, 두 아들 때도 그랬다. 출산 후 내 옆에 누어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지금처럼 중얼거렸다. 아이가 자라면서 내 젖을 온힘으로 빨 때, 내게 눈을 맞추고 내 품에 날 의지하고 안길 때마다 모성애도 함께 자랐다. 생긋생긋 웃고 재롱을 떨며 무럭무럭 자랄 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두 아들을 보며 '너흰 나중에 나에게 효도 같은 것은 인해도 돼. 이미 나에게 많은 기쁨을 주고있지 않느냐.' 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런데 선미는 내게 눈 한번 맞춘 적이 없지 않은가. 내게 고통만 안겨주고 있지 않느냐. 딱 한번 눈감고 실행에 옮기면 되는 거다. 모성애는 아직 싹도 틔우지 않았으니까.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세상사람들의 눈요기로 살아가게 할 순 없어. 선미를 위해서라도."
난 주변을 살폈다. 느티나무 아래에 통나무 그루터기가 여러 개 보였다. 난 선미의 몸을 포대기로 더 바싹 여며 싼 다음 그루터기 위에 놓고 그 마을을 벗어나려 했다. 차에 올라 타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었다. 핸들을 되돌리려는데 앞 유리엔 선미의 얼굴이 꽉 차있어 길을 가로막고 있다. 정신없이 윈도우 브러시를 돌려도 선미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고 주변은 온통 새까맣다. 헤드라이트가 꺼졌나 확인했으나 불은 분명히 켜져 있다. 앞만 캄캄한 것이 아니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엑셀을 밟을 수가 없다.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선미를 위해서라고? 선미가 무엇을 생각할 수 있다고? 선미가 네 딸이란 것이 못 견디게 창피하고 너를 쳐다보는 눈들이 두려운 거지. 모두 네 허울 때문이란 말이다. 선미를 버린다고 네 마음속에서도 선미가 깨끗이 지워질 줄 아느냐. 어미라는 것은 뗀다고 떼어낼 수 있는 스티커 같은 것이 아니다.' 차에서 내려 느티나무 아래로 가서 선미를 무릎에 올려놓으며 그루터기에 앉았다. 나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 긴 숨을 내뿜었다. 도심에서 벗어난 때문일까 밤하늘엔 웬 별이 그렇게도 많이 반짝이는지. 자기가 버려졌다는 것도 모르고 선미는 잠들어있다.
'선미가 너에게 눈을 맞춘 적이 없다고? 그런 넌 선미를 따뜻하게 안아 준 적이 있느냐?'
난 선미를 품에 꼭 껴안았다. 내 가슴에 전해진 가는 체온 때문에 난 떨었고 선미의 심장 박동 소리는 벼락이 내리치는 것처럼 고막을 진동시켰다. 눈물이 끝없이 흐르고 목이 타 들어가는 것처럼 헉헉 숨이 끊기었다 짧게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선미를 도로 차에 태웠다. 조금 전에 보이지 않던 밤길은 내 앞에 나타나 집까지 함께 했다. 두 쌍둥이는 잠들어있고 남편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남편을 보자마자 난 어찔했던 것은 기억이 있는데 눈을 떠보니 거실 소파에 누어있다.
"무슨 일이 있었어?"
"우리 어쩌면 좋지요? 선미가 정박아래요."
"뭐라고!"
짐짓 남편도 충격을 받은 듯 했다. 한동안 말없이 있던 남편은 늘 그랬던 것처럼 괴로움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눌러놓고는 나를 위로했다.
"당신 너무 지친 것 같아, 우선 잠부터 자구려. 자, 아침이 되면 선미를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최선의 길을 모색해 봅시다."
남편은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날 남편이 잡아주는 손이 없었더라면 난 오래 전에 쓰러졌을 것이다.
나는 선미를 안고 아들 방에서 나와 선미 방에 뉘였다. 그리고 힘없이 계단을 내려와 소파에 폭 몸을 맡기는데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들이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며 내 앞에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으흐흠…"
나는 이젠 제법 힘줄이 솟은 아들의 주먹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중 앞에 알몸으로 서있어도 이보다 더 나를 숨기도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이 무엇이라고 고함이라도 치면 오히려 조금은 개운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모든 모멸 찬 말들을 목구멍에 삼키느라 신음하고 있다. 난 숨막히는 것 같아 날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너 엄마께 무슨 버릇이냐!"
"아버지도 똑같아요!"
아들은 거실 장식장을 화려하게 꾸미고 있는 명신원 원장의 감사패를 싹 밀어 떨어뜨리고는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난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한 내 모습이 보인다.
병원에 갔던 날 밤, 나를 위로하다 밤을 새울지라도 내가 잠들기 전엔 자지 않을 것 같던 남편은 잠이 들었고 난 잠이 오질 않아 선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선 이 집에서 이사는 해야겠다. 아무도 우릴 알아보지 못하는 낯선 동네로. 이사할 무렵에 선미를 정박아 보육 시설에 잠시 맡기는 거다. 이사를 하고 한 달쯤 지난 뒤에 이웃들이 알 수 있을 만큼 떠들썩하게 선미를 데려오는 거다. 마치 입양해 오는 것처럼. 그러려면 먼저 보육원을 알아보고 당분간 드나드는 거야.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그러면 선미를 버리지 않고도 보살필 수 있는 것인데. 선미에겐 여전히 내가 엄마이고 나에겐 딸이야. 겉으로 드러난 선미가 내 양녀라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선미는 이런저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가. 정성을 다해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거다. 다만 약간의 거짓으로 내 자존심을 살리는 것뿐이라고.
선미가 두 끼를 굶었다는 것이 이제야 생각났다. 선미를 흔들어 깨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선미는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잠도 덜 깬 채로 젖을 힘껏 빨았다. 젖이 강하게 선미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빠는 힘 때문이 아니라 원망하는 기색이 없는 선미의 얼굴이 젖을 아리게 했다. 이 죄를 어찌할 것인가. 하지만 정박아 어미라는 손가락질을 난 참아낼 수가 없다. 죽기보다 싫은 걸.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겐 오늘 저지른 죄를 짊어지고 사는 편이 정박아 어미라는 굴레보다는 가벼운 걸. 가식이라면 가식이고 자존심이라면 자존심이 나 인데. 이미 어려서부터 뒤틀려져 있던 것을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자신감 등등 운운하며 화장을 하지 않은 것은 문제아가 말썽을 피워 관심을 끌 듯이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한 방법이었어. 화장을 안한 풋풋하고 싱싱한 모습에 푹 빠져들 왕자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지 화장을 하려고 하면 얼굴에 붉은 선 흰 선을 그은 인디언의 얼굴이 떠올라 못한 거였어. 난 진실 되게 살아 온 것인가 허울을 빛내기 위해 살아온 것인가. 이 혼란스러움은 어떻게 하나. 넌 공연히 모든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단순하게 생각해. 누구 나가 진실과 허위를 잘 버무려서 화장한 얼굴로 살아가니까.
선미가 내 딸이라고 하면 손가락질할 사람들은 진실로 날 염려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은 공평하다며 흐뭇해 할 것이다. 속으로 내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다. 온전히 진실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어차피 우리는 인생이란 무대에서 연기하는 어릿광대가 아니냐고. 난 생의 대부분을 위선으로 살아가게 운명지어졌다고.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난 앞으로의 생활계획을 짰다. 아들과 남편이 나가자 난 지난밤 짜놓은 계획대로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선미를 당분간 돌보아 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가사 도우미 센터에 전화를 했다. 마침 경험자가 있어서 고용하기로 했다. 그녀가 오는 동안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화장을 하진 않아도 일년에 한 두 번 해야하는 화장 때문에 화장품은 늘 화장대 앞에 그 쓰임새에 맞게 모두 갖추고 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어 유통기간이 지나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버린 화장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화장품을 또 구입하여 그 자리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화장을 다하고 외출준비가 끝나자 초인종이 울렸다. 사십대 중반의 아주머니였다. 나는 선미에 관한 여러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혹시 가까운데 정박아를 위한 아동보호 시설이 있나요?"
"무슨 일로 그러시는데요?"
"네, 선미를 낳고 보니 선미를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 같고 봉사도 하고싶어서요?"
그녀는 내게 명신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난 가증스럽게도 내 껍질이 살아갈 극본을 쓰기 시작했다. 얼굴을 덮고 있는 화운데이션은 또 하나의 껍질을 만들어 그 껍질 밑에서 난 얼굴이 붉어진 채 거짓을 말하였다. 화장은 아무도 속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였고 날카로운 시선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든든한 방패였다.
학창시절엔 공부를 못하는 아이하고는 어울리기도 싫어했다. 하교 길에 우연히 지체아가 눈에 띄면 길을 돌아가면서까지 피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학부모 회의에 갔을 때 지진아의 어머니를 보면 '어떻게 아이를 키웠으면 저렇게 되도록 나두었지?' 하면서 경멸했다. 막상 명신원을 향해 길을 나섰지만 내가 길을 돌릴 만큼 싫어한 아이들 사이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난 원장실 앞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들어갔다. 머리카락이 반백인 원장은 피부와 눈 모두 맑아 보였다. 원장에게 선미를 낳은 후의 여러 정황과 나의 심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상하게도 그녀 앞에선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고 일정시간 선미와 같은 아이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원장은 나를 위로한 뒤 무척이나 고마워하였다.
"오늘부터 봉사를 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오늘은 선미를 임시로 맡기고 와서요."
나는 하루라도 덜 봉사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으로 얼마나 잘 버틸 수 있을까. 월, 수, 금요일 일주일에 3일간씩 봉사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원장실을 나왔다.
봉사 첫날, 원장은 처음 해보는 봉사니까 손이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보다는 큰 아이가 수월할 것이라며 열 살이 넘은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날 안내했다. 방에 들어서니 기괴한 표정들을 한 아이들이 갖가지 형태로 몸 동작을 하고 잘 움직여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놀이를 하고 있다. 플라스틱 기둥에 고리를 끼우거나 빼내려 하지만 그들의 손놀림이 끼우려하는지 빼려고 하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원형 틀에 원 모양의 나무도막을 넣으려고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손으로 기를 쓰며 넣으려 하지만 좀처럼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단순한 동작들을 반복하고 있다.
떼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간신히 그들 곁으로 갔다. 한 아이는 내가 가까이 가자 갑자기 내 손을 꽉 잡았다. 순간적으로 난 그 아이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얼마나 내 손을 꼭 잡았는지 뿌리쳐지지 않았다. 난 무슨 뭉클한 외계 동물을 만진 것처럼 징그럽게 느껴졌다. 나의 이런 흉측한 마음도 모른 채 그 아인 내 몸에 얼굴을 비빈다.
"으어마."
"무슨 말이에요?"
"여기 아이들은 우리를 모두 저렇게 불러요. 엄마라고요."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저 아이, 선미도 저 모습으로 자랄게 아닌가. 싫어도 난 적응해야해.' 애써 난 다른 봉사하는 아주머니에게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팔로 감쌌다. 몸이 섬뜩했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식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밥을 먹는데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흘리는 음식이 더 많았다. 난 옆에서 목에 두른 턱받이로 연신 아이의 턱과 입 주위를 닦아야 했다.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뻗으려고 하는 팔과 다리를 쭉쭉 펴주기도 했다. 걸음마를 막 시작하려는 아이의 손을 이끌며 걸음걸이를 가르치듯이 그 아이들이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젖은 솜이불을 빨랫줄에 널 때처럼 힘에 부쳤다. 아이들의 다리는 어떨 때는 뼈가 없는 낙지처럼 흐느적거리다가 또 어떨 때는 쇳덩이처럼 무거워서 걸음을 옮기는 것이 무척 버거웠다. 하루의 일정이 끝날 무렵 아이들을 목욕시켰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른 채 벌거벗은 몸을 내게 맡겼다.
첫날은 아이들 시중드느라 운동시키랴 몸은 녹초가 되었다. 봉사 활동하는 횟수가 늘자,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휴지를 찾다가 벌레를 놓친 여자가 나중엔 맨손으로 벌레를 잡듯이 난 아이들 속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체력이 단련된 것인지 활동의 요령을 터득한 것인지 잘 적응이 되어 몸도 힘들지 않았다. 이런 활동을 나의 죄에 대한 보석이라 생각하며 했다. 한가지 보람이 있다면 선미의 행동이 정상아에 가깝도록 발달시키는 운동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난 선미에게 봉사하며 익힌 보이타 체조를 열심히 반복해서 연습시켰다.
드디어 집을 팔고 이사할 날이 다가왔다.
"원장님,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드려야지요."
"한 20일 해외 여행을 하게되었어요. 그 동안 선미를 돌보아주실 수 있는지요?"
"어머니 그 동안 노고가 크셨는데, 염려 말고 다녀오세요."
내 계획대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사한 후 20일 되는 날 난 선미를 데려왔다. 새로 이사한 집으로. 물론 가까운 슈퍼에 선미를 안고 들어가 주스를 사먹었다. 주스를 먹고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입양을 널리 알리는데는 동네 슈퍼가 가장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마침 동네 아주머니들이 여럿이 있어서 내 각본은 멋지게 연출되었고 그들은 나를 지금까지 존경하는 낯으로 대하고 있다.
남편이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여보, 피곤할 텐데 이제 들어가 쉬어. 저 녀석도 머지않아 나처럼 당신을 이해하게 될 거야."
"먼저 들어가세요. 설거지 마치고 들어갈게요."
"설거지는 내일 합시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설거지라도 하면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아요. 어차피 잠이 쉽게 올 것 같지도 않고."
난 억지로 남편을 안방으로 밀어 넣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온수를 틀지 않고 냉수로 했다. 시간이 꽤 흐르자 손끝에서 시작한 아림은 손에서 온몸으로 전해졌다. 손이 찢어지듯이 아프고 한기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천형의 벌을 받는 사람처럼 있는 기를 다하며 버텼다. 수도에서 흘러내리는 냉수가 칼날처럼 손가락을 저몄다. 선미의 증세는 생명이 다하도록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설거지는 시작이 있었고 불같이 치미는 화를 식히지 못했지만 끝났다. 잠은 이미 오늘밤 내게서 떠났다. 잠이 다시 올 리 없다. 거실의 불을 끈 채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나는 밀려오는 인파들 속을 걷고 있다. 이상한 것은 내가 지날 때 사람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내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그 속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였다. 난 반가움에 달려갔다. 그런데 부모님은 가까이 오지 말라며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저예요. 어머니!'
큰소리로 말하려 해도 소리는 목구멍 속에 잠기었다. 부모님은 날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있다. 끊임없이 아는 얼굴들이 내 앞에 다가오다가는 놀라며 양옆으로 물러났다. 그 때 아들과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여보, 저예요.'
"난 모르는 사람이요. 가까이 오지 말아요."
난 반가워서 달려갔는데 남편과 아들도 손을 내저으며 황망히 도망갔다. 이리저리 아는 길을 찾으려했다. 온몸에 진땀이 나도록 낯선 길만 내 앞에 나타났었는데 신기하게도 집 앞에 서 있다. 집에 들어서자 평소의 습관대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지우려고 거울 앞에 앉았다. 크린싱 크림을 듬뿍 덜어 얼굴에 찍으려고 거울을 보았다.
'으악!'
거울 속의 내 얼굴에는 화운데이션만 흰 페인트처럼 번들번들 칠해져 있고 눈, 코, 입이 없다. 나도 이 몸뚱이가 나인지 알 수가 없다.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워서 다시 거울을 볼 수 없다. 두 손을 얼굴에 갖다대었다. 아무 것도 만져지는 것이 없다. 어디선가 선미가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입이 없는 난 그 말인지 노래인지 분간도 알 수 없는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노래는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으어마"
선미가 나를 부르며 안기려 했다. 이번엔 내가 선미를 뿌리치려했다. 그러나 선미는 어디에서 나오는 힘인지 내 손을 밀치고 끈질기게 계속 엄마라고 부르면서 나에게 안겨왔다. 나는 얼굴 없는 모습을 선미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린 채 두 팔을 휘저으며 물리치려 했다.
"여보, 악몽을 꾼 것 같구려. 들어가서 자요."
나는 남편을 밀치고 거울 앞으로 갔다. 본래의 내 얼굴이 비쳤다.
'얼굴 없는 나를 알아본 건 선미밖에 없었어.'
거울이 내게 말한다. 선미도 제 노래를 부르지 않느냐. 이젠 모든 것에서 벗어나 너의 노래를 부르라고. 나도 그러고는 싶어.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난 노래를 부르지 않았거든. 내 곡조를 기억해 낼 수 있을까. 내일 아침이 되어 봐야만 알겠어. 어떨 지는.
첫댓글 구름님 고맙습니다.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간단한 작가의 이력도 아울러 적어주셨으면... 무리일까요? ㅎㅎㅎ
이건 아마추어 작가 지망생의 작품입니다~ 님도 한 번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