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러시아 황제의 결혼

[경제 05 김유리]

러시아 혼례의식은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성전에서 식을 올리는 기독교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이교도적인 관습까지도 흡수하고 있다. 중세에는 황제와 농민의 혼례의식에 있어서 별 차이가 없었다. 러시아에서 황제들은 보통 연애 결혼을 했다. 러시아에서 결혼할 때에 중요시 여긴 것으로는 주로 신부의 아름다움과 건강이었다.
이반 뇌제의 세 번째 아내는 상인의 딸이었고,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주:표트르 대제의 아버지)는 마리야 밀로슬라프스까야와 결혼했다. 마리야는 결혼으로 귀족 계급에 속하게 되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버섯을 팔던 여자였다고 한다.

1. 2000명 중의 1명
황제는 결혼을 결심하게 되면 총대주교와 대귀족들과 상의를 했다. 이들의 공식적인 동의를 받고서 황제는 신부감을 고르기 시작했는데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는 황제의 특별칙령, 즉 신부감 심사를 개최하라는 칙령을 전국 각지로 내려보냈다. 그러면 귀족들은 지체 없이 자신들의 어린 딸들을 가장 가까운 도시로 데리고 가야만 했다. 지방정부 대표들과 수도에서 온 대표들이 신부감 심사를 했다. 때로는 모스크바로부터 구두로나 서신으로 군주가 바라는 신부감의 자격이 기술되어 있는 명령서가 내려오기도 했다.

엄격한 황제위원회의 심사대상에서 딸을 숨기는 일은 금지되었다.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해질 정도의 엄한 벌이 주어졌다. 가장 예쁜 아가씨들은 모스크바로 보내졌다. 이반 뇌제가 첫 번째 결혼을 하기 전에 수도로 보내진 신부감은 1500명이었고 세 번째 결혼식 전에는 9000명이 넘는 신부감들이 보내졌다고 한다. 후보자들은 많은 방이 딸려 있는 특별한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각 방마다 12개씩 침대가 있었고 처녀들마다 따로 침대가 주어졌다.

심사일에 이반 뇌제는 가장 연로한 대귀족의 보필을 받으며 신부감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 따로 마련된 방에 앉았다. 아가씨들은 가장 화려한 의상과 머리치장을 하고 차례로 황제의 방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공손하게 하례를 하고 물러나면, 황제는 처녀들 모두에게 금과 은, 진주로 수놓은 손수건을 선사했다. 2000명의 후보자들 중에서 24명이 선별되면, 다시 황제의 눈에 띄는 12명이 선택되었다. 의사와 노파들이 아가씨들에게 질병과 결함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검사했다. 아가씨들의 미와 지혜, 인상을 비교해본 결과 이반 뇌제는 노브고로뜨 상인의 딸인 마르파 소바끼나와 결혼했다.

2. 외척 세력
선택한 처녀를 궁전으로 모셔와 황제의 반려자로 명명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신부의 머리 위에 처녀의 관을 얹고 황후의 칭호를 내리고 새로운 황실 이름을 지어 주었다. 황제는 새로 선택된 신부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라는 명령을 전국의 모든 교회에 보냈고 궁신들에게는 황후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게 했다. 이 순간부터 황후로 간택된 자의 지위는 결코 바뀌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조차도 감히 자신의 딸을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그 당시에 황후의 친척은 궁정에서 큰 세력이 있었으며 국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일이 흔했다.
만일 황제가 두 번 결혼하게 되면 궁정에는 서로서로 적대시하는 두 개의 세력이 생겨났다. 밀로슬라프스까야와 첫 번째 결혼을 하고 나르이쉬끼나와 두 번째 결혼을 한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시대에 이러한 외척간의 싸움이 일어났다. 두 가문은 서로 화합되지 못했고 황제가 죽고 나자 서로가 서로를 거의 몰락시키다시피 했다.
궁정은 비사와 정치적 음모의 중심지였다. 궁정에서는 새로운 유력자들의 출현을 두려워해서 황제 신부감에 대한 반대세력이 항상 있었다. 그래서 온갖 경계에도 황제의 신부감과 부인들은 종종 독살을 당하곤 했다.

로마노프 첫 황제 미하일 표도로비치의 신부감으로 명해졌고, 이미 이름도 황실 이름인 아니스따시야로 바뀐 마리야 홀로뽀바는 끝내 결혼식을 올릴 수가 없었다. 신부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는데 독극물 중독과 아주 흡사한 증세를 보였다. 병에 걸린 신부는 황제에게 필요 없었고 이 불행한 처녀는 친척들과 함께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
홀로뽀바를 버린 미하일 표도로비치는 공작의 딸인 마리야 돌고루까야와 결혼을 했으나 이 젊은 황후는 결혼한 그 해에 죽고 말았다. 연대기 편찬자는 이번에도 '독살'이 황후의 죽음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0명의 지원자 중에서 선택되었으며 의사들과 산파들의 꼼꼼한 검사 후에 완전히 건강하다고 인정받은 마르파 소바끼나도 결혼식 2주만에 죽었다. 황제의 기존 아내들의 친척인 로마노프가와 체르까스끼가에게 독살의 혐의가 돌아갔으며 범인들은 발각돼서 고문을 당하고 사형에 처해졌다.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이 동원됐다. 첫 번째 결혼을 생각한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는 모스크바로 모여든 200명의 처녀들 중에서 아름다운 예브도끼야 프세볼로스카야를 선택했고 약혼의 표시로 그녀에게 손수건과 반지를 주었다. 그러나 황제의 반려자로 명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동안, 관이 이 아가씨의 머리를 너무 세게 조이는 바람에 그녀는 기절하고 말았다. 바로 그때 반대파들이 황제의 신부감에게 간질병이 있다고 말했고 혼인은 깨졌다.
황제는 늘 맞선을 통해서만 신부감을 골랐던 것은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는 교회로 순례 여행을 하는 동안 장차 자신의 아내가 될 마리야 밀로슬라프스까야를 처음 만났다.

3. 깃털 이불 밑의 곡물 27단
황제의 결혼식에 앞서서 해야 되는 일은 직접적인 결혼식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황제는 누구를 결혼식에 초대하고 누구에게 어떤 일을 맡길 것인가를 미리 정해놓았다. 명예를 두고 경쟁하는 귀족들이 신경전이나 주먹질까지 벌이는 경우가 있어 이를 미리 막아보고자 하는 의도였다. 결혼식 연회가 준비되면 궁전은 화려하게 꾸며졌다. 식탁과 긴 의자가 배치되고 융단과 비싼 천이 깔렸다. 신랑신부의 식탁은 위쪽에 따로 차려졌다. 이 식탁에는 식탁보 세 개가 씌어졌고 치즈와 우유로 반죽해 구운 결혼식 빵이 놓여졌다.
결혼식에는 특별한 결혼용품들이 필요했다. 사랑의 상징인 호프가 놓여 있는 두 개의 금은 접시, 2~3피트 가량 되는 신랑과 신부의 거대한 초 2개(이 초는 신랑신부를 악으로부터 보호했다.) 긴 베일, 축하객들에게 줄 손수건과 수건, 그리고 기혼부인의 나들이용 머리 수건 등이 그것이다.
신랑신부를 위해 크고 둥근 빵을 굽기도 했다. 그것은 붉은 빌로드와 비단천, 금화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또 죽을 끓이고 통닭구이를 준비했다.

황제의 결혼 첫날밤을 위해서 궁전 안 인적 드문 곳에 신방이 마련되었다. 방안의 모든 것들은 이교도적인 의식과 기독교적 상징물로 가득 차 있었다. 중앙에 침대를 놓고 그 위에 다산을 상징하는 곡물단 27개를 쌓았다. 그 위에 다시 양탄자를 깔고 깃털 이불을 씌웠다. 러시아인은 푹신하게 자는 것을 좋아해서 미하일 표도로비치가 신방의 잠자리에 깃털 이불 7겹이나 깔았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침대 옆에는 풍요의 상징인 곡물이 든 통을 놓아두었다.
신방 구석마다 화살 4개를 세워 그 위에 각각 40마리의 검은 담비를 걸고 흰 빵을 놓아두었다. 사방의 벽에는 성상화와 십자가를 걸어 놓았다.

4. 군주의 기쁨
러시아에서 황제의 결혼을 '군주의 기쁨'이라고 불렀다. 결혼시은 몇 단계를 거쳐서 행해졌다. 우선 궁전에 모였고 결혼 행렬을 가진 다음에 성전에 들어가 결혼식을 하고 연회를 베풀었다.
결혼식 날 아침이 되면 초대받은 사람들은 모두 궁전에 모였다. 황제의 대저택에서 신부를 치장했고 그녀의 머리에 처녀를 상징하는 화관을 씌웠다. 그러는 동안 황제는 자신의 방에서 의전 예복을 갖춰 입었다.
궁전으로 들어가는 군주의 성대한 식전 행차는 궁전 관리들과 결혼식 관리자들이 수행했다. 제일 앞에 황제의 참회 사제가 갔고 바로 뒤를 이어 혼례행렬의 참석자들이 갔으며 그 뒤에 결혼식 주관자의 보좌를 받으며 황제가 갔고 계속해서 대귀족, 궁정고관, 그 밖의 귀족들이 걸어갔다. 성직자들은 이들이 걸어가는 길에 성수를 뿌렸다.

결혼 행렬을 이룬 사람들은 황금 궁전에 들어가서 제각기 자리에 앉았다. 곧 황제의 신부는 황금 궁전 옆에 있는 다면체 궁전으로 건장한 수행원들을 대도하고 들어와서, 신랑 신부를 위해 붉은 벨벳과 검은 담비로 특별하게 꾸민 의자에 앉았다. 황제는 다면체 궁전에 와서 시종의 보고를 들은 다음, 시종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서 황제는 자신의 약혼자 옆에 가 앉았다.

결혼식 주관자의 아내는 꿀에 적신 참빗으로 신부의 머리카락을 빗질해서 올려붙인 다음에 긴 베일이 있는 두건을 씌웠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신랑신부에게 호프를 뿌렸다. 검은 담비로 덮여 있고 테두리가 있는 결혼식 초에 불이 붙여졌다. 신랑의 들러리는 치즈와 결혼식 빵을 잘라 모든 참석자들을 대접하고 손님들에게 수놓은 수건을 기념으로 나누어주었다. 이 후에 신랑의 들러리는 식탁에서 첫 번째 식탁보를 벗겨서 여기에다 남은 치즈와 빵을 쌌다.
결혼행렬을 위해 황제가 밖으로 나올 때 모스크바의 모든 교회들로부터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는 말을 타고 성전으로 갔고 신부는 여름에도 썰매를 타고 갔다. 썰매 안쪽에는 공단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좌석에는 빌로드 방석을 깔아 놓았고 등받이에는 값비싼 양탄자가 늘어져 있었다. 신랑신부의 행렬은 성대하고 화려했다. 행렬의 선두에 십자가를 든 성직자가 갔고 그와 나란히 양초와 크고 둥근 빵을 든 사람들이 걸어갔다.

궁전에서부터 성전에 이르는 길에 값비싼 천을 깔았고 신랑의 들러리는 행렬의 길을 누구도 지나가지 못하도록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왜냐면 다른 사람이 그 길을 지나가는 것은 불길한 징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혼식이 진행될 우스뺀스끼 성당서 황제와 신부는 내리고 들러리와 결혼식 주관자의 수행을 받으며 성전으로 들어갔다. 신랑 신부는 성전 제단의 중앙문 맞은 편에 섰다. 그들의 발 밑에 40마리의 검은 담비로 만들어진 쿠션을 깔았다. 들러리들이 신랑과 신부를 도왔다. 그들 옆에는 대귀족이 포도주 잔을 들고 서 있었다. 식을 진행하는 중에 신랑 신부는 그 포도주를 마셨고 그런 다음 황제는 잔을 땅에 던져 발로 짓밟았다. 왜냐하면 술잔은 가족의 행복을 해치는 적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식이 끝난 뒤에 신랑 신부는 성전 기둥 옆에 미리 준비하여 둔 양탄자와 검은 담비로 덮인 의자에 앉았다. 끄레믈의 블라고베센스끼 성당 사제장은 이 신혼부부에게 짧은 주례를 통하여 평화롭고 다정하게 살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두 사람이 계속 경건한 생활을 하며 규칙적으로 교회에 나올 것을 당부했다. 사제장은 축복을 한 후에 황후의 손을 잡고 그녀를 남편에게 인도해 서로 키스하게 했다.

결혼 의식은 궁전에서의 연회로 끝이 났다. 전통에 따라 신랑 신부는 비록 음식이 그들 앞에 있을지라도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음식에 세 번째 바뀌면서 신랑 신부 앞에는 튀긴 닭꼬치가 나왔다. 신랑 들러리가 식탁에서 두 번째 식탁보를 벗겨 닭고기를 싸서 신방으로 가지고 나가면 신랑 신부가 뒤따라 나갔다.

하루종일 먹지 않았던 황제와 황후는 신방에서 닭고기를 먹었다. 어머니 역을 맡은 여인이나 결혼식 주관자의 아내는 모피 외투를 입고 호프를 신혼부부에게 뿌리면서 모피의 가는 털만큼 아이를 낳으라고 기원했다. 이 후에 모두 떠나고 신랑 신부 단 둘이 남았다. 남자 손님들은 계속해서 축연을 벌였고 여자 손님들은 황후의 내실에서 따로 모였다.
아침이 되면 신랑 신부는 전통에 따라 목욕을 하러 갔고 돌아와서는 죽을 먹었다. 이 날 죽을 먹는 일은 황제까지도 지켜야 하는 전통이었다. 오후가 되면 황제는 모스크바의 성전과 수도원으로 순례를 나갔다. 하지만 이것으로 결혼식 연회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결혼식 후 둘째 날에는 다면체 궁전에서 황제의 이름으로 결혼식 만찬이 거행되었고 셋째 날에는 황후의 이름으로 만찬이 베풀어졌다. 총대주교와 성직자를 위한 만찬은 넷째 날에, 다른 귀족 계층을 위해서도 식탁이 차려졌다.
결혼식 때는 보통 호화로운 하례품을 선사하고 거지를 환대하였으며 감옥 등을 방문하였다. 중죄를 짓지 않은 죄수는 이날 석방되었다.

정교회 관습에 따르면 세 번째 결혼은 교회에서 승인될 수 없었다. '법전'의 규정들은, '첫 번째 결혼은 적법이오, 두 번째는 용서, 세 번째는 율법 위반이다.'
교회법과 풍습을 자주 어겼던 이반 뇌제는 7번 결혼했다. 진정한 사랑과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렸던 때는 아나스타샤 로마노바와의 첫 번째 결혼뿐이었다. 율법을 위반하면서 그가 네 번째 결혼을 생각했을 때 정교회는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에게 굴복했다. 3년이 지난 뒤에 이반 뇌제는 네 번째 부인을 수도원으로 보내고 다섯 번째 결혼을 했다. 그 후에 여섯 번째, 일곱 번째 결혼이 이어졌다. 사실, 뒤의 두 결혼 때는 식을 올리지도 않았다.

5. 궁전의 수녀
황후의 중요한 임무는 군주와 국가를 위해 왕위 계승자를 낳아주는 것이었다. 만일 황후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그녀는 결코 호사를 기대할 수 없었다.
이반 뇌제의 아버지인 바실리 3세는 살라모니야 사두로바와의 12년 결혼생활 후에도 아이가 없자 그녀를 수도원으로 보내야만 했고, 엘레나 글린스까야와 재혼했다. 새 아내는 몇 명의 아들을 낳아주었는데 그 중에는 장래의 황제가 될 이반 뇌제도 있었다. 소피야 팔레올로그는 이반 3세와의 결혼 초기에 세 명의 딸을 낳았지만 아들은 없었다. 이것을 이겨내기 힘들었던 그녀는 걸어서 삼위일체 세르기 수도원으로 순례를 하기까지 했다. 구전에 따르면 성자 세르기가 아들을 약속하며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몇 명의 사내아이를 낳았다.

통치자에게 있어 후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다음의 역사적인 사실이 증명해 주고 있다. 이반 뇌제가 죽은 후 그의 아들 표도르가 황제가 되었으나 그는 이리나 가두노바와의 결혼 생활에서 아이를 갖지 못한 채 1598년 죽음으로써 류릭 왕조는 그 대가 끊기게 되었다.
그럼 이제 궁전에서의 황후 생활에 대해 살펴보자. 유명한 러시아 사학자인 자벨린은 황후의 상태를 '수녀'라는 한 단어로 정의했다. 러시아의 황후는 자신의 내실에서만 살았고 자유를 제외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황후나 대귀족의 부인은 남편의 허락이 없으면 사람들 앞에 나타나거나 교회라 할지라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많은 궁전 신하들 가운데 한 번이라도 황후나 황제의 누이, 딸들 중 누구를 봤다고 자신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의사라 할지라도 황후를 잘 볼 수 없었다.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아내인 마리야 밀로슬라프스까야가 앓고 있을 때 행해진 진찰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진찰이 진행될 방은 창문이 단단히 걸려 있었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의사가 황후의 맥박을 재려고 할 때, 그녀의 손은 얇은 천으로 감싸인 상태였다. 그러니까 외딴 남자는 결코 그녀에게 손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궁전 밖에서도 황후를 볼 수가 없었다. 필요할 때만 황후는 마차나 썰매를 타고 외출을 했는데 그때도 마차의 창문이 단단히 잠겨 있었다.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두 번째 부인인 나탈리야 나리이쉬끼나는 마차의 창문을 아주 조금 열어 봄으로써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황후가 마차에서 내리면 우선 허술한 칸막이로 둘러싸서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그녀를 감쌌다.
가끔은 황후에게도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 허락되기도 했는데 다만 이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였다. 다면체 궁전에는 궁전의 출입구 위로 작은 비밀 창문이 있었다. 그건 비밀 익랑으로 통했고 이곳을 통하여 황후는 외국사절들의 내방과 연회 등, 여자들은 참석할 수 없는 궁전의 여러 행사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곤 했다.
수녀 같은 황후의 생활은 매우 단조로웠다. 그녀는 날마다 궁전의 성전에서 기도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교회의 수도원으로 나들이를 하고 궁정 내부의 살림을 맡아보고 딸들을 시집보내고, 세례식에 참석하는 등의 일을 했다. 가끔씩 황후는 외국 손님이나 타지방의 총대주교, 귀빈들을 접대하기도 했다.

황후는 남편이 죽은 후에도 수녀로 남아 있었다. 모스크바 공국 시대에는 공후의 미망인이 자발적으로 세상을 저버리거나 수도원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반 깔리따의 아내 울리야나가 그랬고 바실리 바실리예비치 2세의 아내 마리야가 그랬다. 황제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죽은 후에 그의 아내인 이리나 고두노바도 모스크바의 노보제비치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건강한 황제들도 황후를 강제로 수도원으로 내쫓기도 했다. 이반 뇌제의 아내 중에서 안나 꼴또프스까야를 수도원으로 보냈고 표트르 대제도 예브도키야 로뿌히나를 그렇게 했다. 황후였던 여자에게는 가정에서나 수도원에서나 있을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17세기 말경에 러시아인의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위치도 변하기 시작하였다. 묵묵한 수녀의 이미지를 최초로 깨뜨린 황녀는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딸이자 표트르 대제의 누나인 소피야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19세였던 그녀는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성장했다.
선천적으로 소피야는 호감을 주는 매력적인 외모를 타고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비범한 머리와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다. 권력욕이 강했던 공주는 전 러시아의 통치자가 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자신보다도 더 영리하고 의지력이 강했던 표트르와 충돌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소피야의 전례는 헛되지 않았다.

[경제 05 김유리]

글은 6월 2일날 작성한 거에요;; 오타가 있어서 방금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