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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증산도 대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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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의 5대 의무중에도 성금을 내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건 기독교의 십일조도 마찬가지고요. 불교에도 보시라고 해서 절을 유지하기 위한 성금을 냅니다. 힌두교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거리의 성자들을 위해서 봉양을 하는 걸로 압니다. 증산도는 모든 개체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다만 연령에 따라서 성금의 차등을 둡니다. 당연히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일반인을 동일 취급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입문에서의 비용은 책으로 되돌려 주며, 입도에서의 비용은 다시 여러가지 형태로 자신에게 되돌아 옵니다. 도장을 수행장소로 쓸때 불도 켜고 물도 쓰고 음료수도 사고 식사도 하고, 에어컨과 선풍기도 돌리고 난방도 키고,인터넷도 해야 하고 행정 업무도 봐야 하고, 도장을 빌리는 집세도 내고, 신단의 초가 떨어지거나 향이 떨어지거나 할때 이를 채워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외 기타 행사가 있을때 증산도는 다른 종교단체들 처럼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100%신도들의 돈으로 집행합니다. 그리고 집행의 과정은 신도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은 진리를 신앙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증산도 신도는 기본 교리에서처럼 새로운 문명을 여는 작업을 하는 것이고, 이것을 위해서 공부할 환경을 조성하고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되 자기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하므로, 교육을 받고 사회화되고 문명적으로 좀더 성숙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흐름이 점점더 개벽의 현상에 근접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 개벽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증산도의 목적이므로 대개벽의 실상을 세상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현재 그 과정선상에 있다는 것을 깨치는 작업을 위해서 쓰입니다. 곧 도장 살림과 홍보의 목적으로 쓰이며, 궁극적으로는 대개벽의 상황을 극복하는데 쓰일뿐입니다. 입도성금이 많다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과연 많은 것인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원래 입도성금이라고 해서 딱 얼마를 내라 그런 것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내고 싶은 만큼 내되 최소한 공동생활에서 이정도는 내어주어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마지노선은 있습니다. 사회에서 공짜를 좋아하며 주는 것 없이 받기만을 좋아하는 얌체인 사람은 이러한 비용의 지불을 아까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분은 다른 곳으로 가셔도 좋습니다. 증산도는 대학교 체제로 운영되며, 입도라는 것은 증산도 대학교라는 현 시점에서 대학들이 본래 인간 성숙이라는 과제를 내팽개 쳤기 때문에 대안으로서 나타난 대학의 입학금입니다. 그러나 세속의 대학 입학금이 200만원에서 300만원 많게는 400만원에 비할때 적은 것이 아닙니까? 자동차 학원을 다닐때 60만원 100만원을 씁니다. 그에 비할때 적은 것이 아닙니까? 인생에서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자기 자신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 투자는 자기 자신의 성숙에 있는 것이고, 예를 들어 다이어트에 투자를 한다든지, 증권에 투자를 한다든지 하는 것과 동일한 선상에 있습니다. 다만 자기 자신의 영적 성숙에 투자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증산도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증산도 대학교가 매월초 태전에서 열리는데, 이는 일반 세상에서는 블럭세미나라고 불리는 교수형태입니다. 유럽에서는 가장 선진적인 교수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증산도의 시설을 이용해 보면 알겠지만, 철저히 자기자신이 지불한 비용만큼 값을 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증산도 대학교의 목적은 인간 성숙과 완성에 있으며, 궁극적으로 대개벽의 상황을 효과적이고 능동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하며,인류의 삶의 차원을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도야를 위해서 증산도를 공부했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자기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 싫다면 입문하지 않고 입도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다만 증산도 도조이신 강증산 상제님께서 3번은 권해 보라고 하셨기 때문에 예의상 3번을 권해 드리는 것입니다. 과거에 구도라는 것은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받쳐서 자신이 원하고자 했던 갈구하고자 했던 모든 것의 의문을 푸는 행위였습니다. 그것이 여러가지 차원에서 교라는 중간 다리를 거쳐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만, 道는 山의 정상에 있는 것이라면 교(敎)는 산으로 가는 다양한 길입니다. 산의 꼭대기로 가든지 산으로 가는 중간 단계에서 머물든지 아니면 아예 산을 오르지 않던지 그것은 취향에 따른 삶의 여러 방식일테지만, 다만 지금은 대 개벽의 대세가 넘어가는 상황이라서 특히 道가 일반 세속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며, 만약 대 개벽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전해주기 아까운 道입니다. 선택은 알아서 하십시오. 道紀 135년 1월 14일 금요일 오전 3시 6분 피리 부는 사람, psuk0304@hanmail.net | ||||||||||||||
▣ 글정리 : 피리 부는 사람(박신욱) [psuk0304@hanmail.net] ▣ 자료출처 : 대한민국 의통구호대(http://cafe.daum.net/corcaf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