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단오풍정〉 종이에 채색 28.2×35cm 조선시대 | 김홍도의 〈씨름〉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일탈은 한 소년에 있다. 소년은 씨름판의 숨가쁜 긴장은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허공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다. 소년은 엿을 파는 것에는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씨름은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에 다소 흥미가 반감된 표정이다.
유월은 눈부시다. 늘 그랬다. 초록은 이미 짙은 쪽빛이다. 빛은 역동적이고 색은 힘이 세다. 바람은 초록을 날리며 후각을 자극한다. 습기는 빛에 의해 건조해지고 이윽고 탈색되어 대기 속으로 사라진다. 아스라하게.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 버린다. 유월은 그런 점에서 축복이다.
음력 오월 오일은 단오(端午)다. ‘단(端)’은 처음, 첫번째를, ‘오(午)’는 다섯 오(五), 즉 다섯을 의미한다. 결국 ‘단오’는 ‘초닷새’라는 뜻이다. 단오는 더운 여름을 맞이하기 직전, 모내기를 막 끝내며 풍년을 기원하는 바로 그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라 하겠다.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가 이때 풍성하게 행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단오는 중국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초나라 회왕의, 신하 굴원이 자기 지조를 증명하기 위해서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진했는데, 그것을 기려 해마다 제사를 지냈고 그 풍습이 우리 나라에 전해져 단오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글쎄 신빙성이 있을까. 설득력이 있기는 고대 마한의 생활풍속을 적은 《위지한전》의 기록일지 모른다. 마한에는 씨 뿌리기가 끝난 음력 오월에 군중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신나게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미루어 보아 풍작을 기원하던 제사인 것 같고 이 풍습이 단오의 기원이 아닌가 추측하게 된다.
또 단오는 ‘중오절(重五節)’이라는 명칭에서 보듯 가장 양기가 충일한 날이다. 특히 오시(午時)는 양기가 왕성하게 분출하는 시각이 아닌가. 이때가 되면 농가에서는 익모초와 쑥을 먹어 식욕을 왕성하게 하고 몸을 보호하였다고 한다. 음식에 관계된 여러 풍습 이외에도 창포로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며, 씨름을 하는 것 등이 놀이문화로 계승되고 있다. 특히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부녀자들은 이날만은 밖에서 마음껏 그네 뛰는 것이 허락되었다.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풍요를 기원하는 단오제는 마을 구성원이 함께하는 축제의 장으로 전승되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축제의 한 장면은 김홍도의 〈씨름〉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라는 평가답게 그의 그림은 살아 꿈틀거리는 현장감이 단연 압권이다. 물론 그는 산수화·인물화·화조화 등의 정점이었으니, 그림에 관한 한 단원을 통해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한 정조이고 보면 그의 위상에 이미 압도당한 듯하다. 특히 풍속화는 단원에 이르러 비로소 예술적인 품격을 갖추고 중요한 회화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되지 않았는가. 풍속화의 거장 단원. 단원에 의해 풍속화는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일탈의 미를 보여주는 김홍도의 <씨름>
〈씨름〉의 전체적인 구도는 짜임새있고 안정감있는 원형이다. 원형구도는 중앙의 씨름꾼들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구심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시선을 중앙에 집중하자마자, 인물들은 날생선처럼 요동치며 원형구도가 갖는 심리적 안정감을 흔든다. 이제 원형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며 화면을 출렁 살아나게 한다. 이미 화면의 핵심에 씨름하는 두 사람의 힘 겨루기가 그런 심리적인 움직임을 담고 있지 않은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김준근 〈줄광대〉 종이에 채색 18×25.5cm 조선시대 | 왼쪽 장사가 잔뜩 힘을 주고 ‘이얏’ 하며 기습적으로 상대방을 들어 공격한다. 순간 당황한 상대가 주춤, 위기를 모면하기에 급급하다. 왼쪽 장사는 이를 악물고 단숨에 끝내기 위해 마지막 용트림을 한다. 당황한 상대 장사는 애타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이제 판세는 기운 듯한데 상대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방어에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이런 일촉즉발의 긴장은 씨름의 주체보다 씨름을 관전하는 사람들의 표정에 극적으로 담겨 있다. 단원의 그림에서 어느 대상도 배제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은 여기서도 확인된다고 해야할까. 주변부가 이제 이야기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관중 중에도 화면 오른쪽 하단부의 두 사람이 가장 극적이다. 두 사람은 ‘어어’ 하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그들은 곧 승부가 나지 않을까 한시라도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들린 장사가 자신들 쪽으로 곧 곤두박질할 것을 염려하는 기색마저 역력하다. 일촉즉발의 순간이다. 그러면서 곧 도래할 결과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단호하다. 이들의 긴장된 모습은, 왼쪽 하단부에서 부채로 더위를 쫓으며 관전하는 관중들의 정태적인 모습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첨예한 긴장보다는 씨름 자체가 흥미롭다는 표정이다. 이들의 태도는 갓 쓰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왼쪽 상단의 사람들과 유사하다.
특히 갓을 쓰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사대부는 품위를 유지하려고 무척 고심하고 있는데. 그는 의관을 정제했지만 저린 발은 어쩔 수 없는지 슬쩍 펴서 뻗고 있다. 그런 모습은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그 옆사람은 체면도 무시하고 이미 갓을 풀고 신발도 벗은 채 본격적으로 관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것도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이미 그 옆 사람은 갓을 풀어 앞에 놓고 그것도 모자라 손을 내저으며 힘차게 응원하며 관전에 열중해 있지 않은가. 약간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이들의 매서운 눈매가 진지한 관람태도를 보여준다. 뒤의 무리 역시 마찬가지다.
오른쪽 상단부의 무리는 열광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신명이 난 표정이다. 그중 누운 자세로, 턱을 팔에 괴고 씨름의 판세를 파악하는 사람은 퍽이나 느긋하다. 씨름의 역동적인 동작에 비해서 참으로 한가롭기까지 한데, 처음부터 그는 편안한 자세로 관전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 옆에서 관전하는 사람은 이미 판세를 간파했다는 듯 입을 벌린 채 몰두해 있다. 그들 뒤로 나이 어린 소년들이 포진해 있는데, 이들은 씨름의 자세와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해 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누구도 승부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팽팽한 긴장이 느껴진다. 이처럼 단원은 씨름판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역동적으로 포착하는데 뛰어났다. 그의 그림은 그들의 다양한 표정만큼이나 다채로운 심리를 엿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일탈은 한 소년에 있다. 소년은 씨름판의 숨가쁜 긴장은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허공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다. 소년은 엿을 파는 것에는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씨름은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에 다소 흥미가 반감된 표정이다. 오히려 그는 씨름판 주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런 시선 처리는 전체적인 구도를 활기있고 탄력있게 만든다. 정태적인 원형의 구도를 깨는 동세가 놀랍다. 단원은 소년의 시선을 통해 화면의 프레임을 외부로 연장하면서 공간의 깊이와 개방성을 탁월한 감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창조적이고 신선한 조형감각이다.
김홍도 〈씨름〉 종이에 담채 27.0×22.7cm 조선시대 | 더구나 그 소년의 반대편에 씨름꾼의 것으로 보이는 가지런히 놓인 짚신과 발막신 한 짝의 사물성에 주목한다면 단원의 놀라운 관찰력이 얼마나 치밀하고 놀라운지 경탄하게 된다. 신발이 씨름판이 아닌 외부로 향한 것은 소년의 시선과 대립구도를 형성하며 자칫 허전할 수 있는 구도에 힘과 풋풋한 생기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점경처럼 빛이 나고 있으니. 그의 탁월한 조형성은 그것을 강하게 노출하지 않아도 천변만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의 통찰력에 의해 은연중 빛이 난다. 소년의 상향 시선을 미루어 보면, 소년은 씨름판의 열기보다는 외줄타기 묘기에 탄복해 있는 듯하다. 비상하며 추락할 듯, 추락할 듯 비상하는 신선 같은 외줄타기에 황홀한 듯 넋을 빼앗긴 형상이다. 소년은 그 아슬아슬함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웬만한 자극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한다는 미소마저 띠고.
민속촌 나들이 노곤한 봄마당 / 긴가민가 외줄 타는 너는 종다래끼 허리에 차고 씨뿌리던 / 날렵한 솜씨구나
한 손에 바람부채 펴들어 / 흔들리는 버선발 가누고 동아밧줄 출렁출렁 / 외줄 타는 너는
아쟁 모가지 길게 뽑는 진양조 / 설장고 중중모리 모듬발 자진모리 깨금발 / 외줄 타는 너는 ― <외줄타기> 김윤배
날렵한 솜씨로 진양조·중중모리·자진모리 장단에 맞추어 하늘로 새처럼 치솟으며 지상으로 급강하하는, 그러다가 다시 솟구치는 아슬아슬한 외줄 묘기가 탄성을 자아낸다. 소년은 그 광경에 넋을 놓은 것은 아닐까. 엿판을 잡은 소년의 손에 땀이 배어나는 듯하다. 외줄타기 광대는 하늘로 솟구치다가도 진양조의 슬픈 가락에 한을 풀고 다시 신명을 내야 하는 슬픈 운명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러나 소년은 광대의 비상과 하강에서 떠돌이들의 애환을 느끼기보다는 묘기에 흥이 나 있다.
인격수양, 탁족의 풍류
바로 그 유월, 초여름의 입구다. 더위는 이미 몸을 감싸고 신발 속을 헤집는다. 땀이 배어난다. 질척하게 흐를 듯 심기마저 불편해지는데. 고약한 발냄새를 머리가 먼저 알고 짜증을 내는 것 아닌가. 약간의 냉기가 감도는 물에 탁족(濯足)을 하고 싶은 초여름이다. 탁족하는 고사(高士)가 누리는 탈속의 경지는 쫓지 못할 것이나 시속에서 내치고 싶어지는 그런 계절이다. 은일자족하며 청빈한 삶을 누리지 못하지만 혼탁한 세사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
〈고사탁족도〉 비단에 담채 27.8×19.1cm 16세기 말 | 이경윤의 〈고사탁족도〉는 바라보기만 해도 청량감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치렁한 선비의 옷차림 탓에 시냇물은 더더욱 차가운 기운을 담은 듯하다. 고사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앉자마자 서늘한 시냇물에 발을 담갔다. 그러나 순간 아차하고 소스라친다. 아직 물은 생각한 것보다 싸늘했던 것이다. 이경윤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 위해 찡그리며 오른쪽 발을 재빠르게 물 속에서 빼내어 왼쪽 발의 온기로 참아내는 모습을 즉물적으로 포착했다. 그런 까닭에 시냇물의 냉기가 이곳까지 감지되는 것 같다. 선비는 시냇물을 외면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그러나 오른쪽 발바닥을 위로 젖힌 이와 같은 자세는 정형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나라 때부터 등장한 탁족도의 화본이 정형화해 답습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후대에 계속 답습된다고 해서 획일적 사고의 한 예로 지적하거나 단순한 모방의 차원이라고 비판만 할 것은 아니다. 당시는 가장 정제되고 정형화한 모습 속에 선비의 덕목이 함축되어 있다고 확신했고 그것을 개성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형화는, 속화가 유행하면서 탁족의 본질 역시 세속화하였다, ‘탁족’이 상징하는 풍류적 수양은 사라지고 대신 물놀이의 흥취로 변질된 것이다.
본래 ‘탁족(濯足)’이란 용어는 지엄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군자는 벼슬의 진퇴를 신중하게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는 처신을 경고하거나, 은일하여 탈속의 자유를 누리는 경지를 내포하는 것이다. 즉, 선비의 처신방법은 물론이고 인격수양을 나타내는 상징적 용어인 것이다. 예컨대 선비들의 문장에 ‘탁족만리류(濯足萬里流)’란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속세에 초연함을 상징하는 말이 아닌가. 즉 탁족은 인격수양, 은둔과 고답의 정신을 나타내는 용어로 환영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과거 선비들의 탁족 풍습에서 시냇물의 냉기를 정신의 서늘한 총기로 전환하려는 정신을 읽는다. 행동거지 하나에도 삶의 철학적 의미를 담으려는 선인들의 기품을 느낀 것이다. 세상살이가 혼탁할수록 탁족의 의미를 새삼스레 다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조용훈은 1959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강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 《근대시인연구》 《시와 그림의 황홀경》 《그림의 숲에서 동·서양을 읽다》 등이 있다. 현재 청주교육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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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자료 잘 보았으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