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팔공산 백흥암
백흥암(百興庵)은 국사 혜철(慧徹)이 경문왕 1년(861년) 착공하여 873년 완공하였으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처음에는 송지사(松旨寺)라 하였으며 명종 1년(1546년) 백흥암으로 개칭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영산전, 명부전, 문루, 산신각, 선실, 원주실 등이 있는데 극락전은 보물 제 79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면 3칵, 측면 3칸의 다포계 구조이다. 특히 극락전 내부 어간 뒤에 있는 수미단은 특출한 모습으로 조성되어 보물 제 486호로 지정되어 있다.
*백흥암 극락전과 수미단
백흥암은 팔공산의 사찰 중 유일한 비구니 스님들이 수도하는 도량이며 규모로 따지면 여느 산중 암자보다 규모가 크고 넉넉한 어머니 모습니다. 보화루만 해도 백 명의 불자들이 법문을 들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고 아미타 삼존불을 나란히 모신 극락전도 몸체가 듬직하다. 선방인 심검당(尋劍堂)이 암자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낮에는 승속을 불문하고 누구라도 가까이 할 수가 없다.
*극락전 앞마당
심검당, 자비를 말하는 불가에서 이처럼 살벌한 단어가 왜 있을까? ‘칼을 찾는 집’이란 말이니 무슨 뜻일까. 그러나 여기서의 칼은 모든 번뇌와 무명(無明-어리석음)을 자르고 마음에 낀 업까지도 잘라 버리는 깨달음의 방편이다. 그런 칼을 하나 얻고서야 가부좌를 풀겠다는 심검당에서 수행하고 있는 비구니 스님이 30 분이 넘는다고 한다. 선방의 스님들이 포행(布行-휴식)하는 스님들의 걸음걸이가 안행(雁行)이라 하여 소리없이 나는 기러기의 행렬을 연상케 한다. 선한 눈망울에는 보석 같은 침묵이 가득하며, 이런 공기 속에서 스스럼없는 식구가 잘생긴 견공 두 마리이다. 스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 1986년도에 탱화를 도둑맞고 난 후 스님들이 밤마다 보초를 서다가 그것도 모자라 개를 기르기 시작했지요, 이름이 ‘청용’, ‘홍동’이라 합니다. 도둑에게는 염라대왕이지만 우리들에게는 천진불입니다”. 견공들이 선방에 까지 겁 없이 들락거린다. 눈총을 주면 물러가 있다가 부르면 다시 꼬리를 흔든단다.
비바람에 탈색되어 단청이 이끼처럼 은은한 극락전과 법당 안의 아미타삼존불을 받들고 있는 수미단을 보호하느라 길짐승까지 수고하는 현실이고 보면 ‘보물 속에서 살기 힘들다’는 스님의 고백이 이해가 간다. 수미단의 층마다 음각, 양각, 투각으로 새겨진 봉황, 공작, 꿩, 용, 잉어, 개구리, 동자, 코끼리, 사자, 사슴, 모란 등에게 염치없는 인간을 대신하여 사죄하고 싶다. 보물속에서 살기 힘들다 할 지라도 백흥암의 비구니 스님들이 선방에서 참선 정진을 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영원한 미소 속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첫댓글 감사합ㄴ니다()()()
잘 배우로 갑니다. 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나모지장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