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34) 화로

[이병헌]

	

고향(34) 화로

겨울이 완전히
하루를 덮을 때
아궁이에서
만들어진 섬
뜨거움을 안고
화로에 파고들고 있었다

문풍지 사이 
겨울이 흘러 들어와
등잔불 춤추게 하고 
어둠을 녹일 때 
화로 옆 
둘러앉아 
옛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
할머니 시렁에서 밤을 꺼내
칼집을 내어 
화로 속에 파묻는다

어둠 속에서
할머니의 구수한 목소리가 
우리들의 가슴속을 파고들수록
코끝에 다가오는 냄새
겨울밤을 가두고 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끝을 맺을 때
마분지 펼쳐놓고
섬 속에서 익어가던 
밤을 모아놓는다

우리들의 눈빛이
어둠을 이기는 시간
할머니의 손끝으로
껍질을 벗겨내고
우리들의 손에 몇 알 넘겨준다

할머니가 우리들의 손을 지나면
어둠은 웃음이 되어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