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남한의 운동권에는 김일성주의자들이 많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어리석음에 혀를 내두른다.
"김일성의 말을 믿다니... 어떻게 그렇게 바보같을 수가 있을까?"
나도 김일성주의자가 김일성을 지도자로 생각한다는 면에서 아주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바보인 것은 아니다. 남한에서 김일성주의가 크게 유행했고 여전히 어느 정도는 유행하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유신 시대의 운동권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미국에 기대를 걸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악행을 한 미국이, 특히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남한을 포함하여)를 파괴하는 데 톡톡한 공헌을 한 미국이 남한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당시의 운동권은 읽을 수 있는 책도 없었고 뭔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선배도 없었다. 그들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학교에서 교육받았고, 미국이 남한보다 훨씬 민주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미국이 남한에 민주주의를 하라고 압력을 넣는 제스쳐를 취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그것을 토대로 미국이 남한의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심지어 광주 항쟁 때 미국이 항공모함을 서해안에 배치했을 때 일부 운동권은 미국이 전두환을 무찌를 것이라는 환상을 품을 정도였다. 실제로는 전두환이 광주 항쟁을 진압하지 못했을 때 자신들이 직접 진압하기 위해서였는데도 말이다. 이런 환상은 광주 항쟁에서 미국이 한 역할이 점점 밝혀지면서 몇 년에 걸쳐서 완전히 깨졌다. 적어도 운동권 또는 진보 진영은 미국이 전두환만큼 사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즉 1980년대 초중반부터 운동권은 좌익 사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 때 남한에 수입된 이론이 정통파 스딸린주의와 이단파 스딸린주의라고 할 수 있는 김일성주의였다. 남한 운동권은 북조선에서 나온 김일성 선집을 읽는 부분(NL)과 소련이나 동독에서 나온 책을 읽는 부분(PD, ND)으로 갈려졌다(나도 동독과 소련 아카데미에서 나온 책들을 읽었다). 당시에 마르크스, 엥겔스, 카우츠키,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루카치, 그람시, 트로츠키 등이 거의 읽히지 않고 주로 스딸린주의자들(정통파이든 이단파이든)의 책이 읽혀졌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혁명가들의 책이 본격적으로 출판되기 시작한 것이 1987년 이후라는 사실, 그리고 2004년이 현재에도 여전히 그들의 책 중 일부만이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이 고려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암흑 속에서 헤맬 수 밖에 없었다.
1980년대 1990년대에 대체로 김일성주의자들(NL)이 스딸린주의자들(PD)보다 더 많았다. 그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실증적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한국 전쟁으로 거의 좌익이 박멸되었지만 남아있었던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커다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예컨대 박정희 시절에 있었던 인민 혁명당 사건과 통일 혁명당 사건은 단순한 조작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들은 실제로 당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북조선에서 파견한 간첩(김일성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선배 공산주의자)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1980년 대에 운동권이 한국의 감추어졌던 역사를 배우게 되면서, 특히 남한 정권의 탄생과정을 알게 되면서 당시에는 남한보다 훨씬 사정이 나았던 북조선에 호감을 품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승만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지배 계급이 너무나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하고 정보를 거의 모두 차단했기 때문에 정권에서 북조선에 대해 진실을 말해도 운동권이 믿지 않았다.
한국 전쟁에서 북조선과 중국이 미국과 싸워서 비겼다는 점도 김일성주의자들에게는 커다란 자랑거리이다. 초강대국 미국과 싸워서 비기거나 이긴 경우는 역사상 두 번 밖에 없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 민중이 미국과 싸워서 이겼고, 한국 전쟁에서 북조선과 중국이 미국과 싸워서 이겼다. 현재는 북조선 정권이 미국에 대해 상당히 비굴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입으로는 반제국주의를 외친다. 적어도 그들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처럼 보이게 행동하고 있다.
서구 운동권이 스딸린주의의 미망에서 깨어나는 데에는 후루시초프의 스딸린 격하 운동, 1956년의 헝가리 혁명, 소련의 실상이 서방에 알려지는 것 등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남한 좌파는 거의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암흑 속에서 헤맨다면 극히 어리석을 일을 벌인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PD에게는 1989년부터 1991년까지는 엄청난 충격의 시간이었다. 그들이 믿었던 현존 사회주의가 하나씩 무너졌다. 특히 종주국 소련이 무너졌다. 그 충격 속에서 PD는 서서히 미망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PD는 산산히 깨어져서 여러 경향으로 갈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환멸 속에서 운동을 포기했다. 어떤 사람들은 알뛰쎄르, 푸꼬, 네그리 등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점점 운동에서 멀어져서 아카데미즘에 빠져들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경화해서 사회민주주의자가 되었다. 이것도 스딸린주의에 대한 미망이 깨지면서 나타난 결과 중 하나다. 혁명에 대한 희망도 같이 깨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트로츠키주의를 받아들였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과거의 스딸린주의와 단절하면서도 혁명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NL은 PD 만큼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소련 등은 무너졌지만 아직 북조선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NL도 역시 타격을 받았다. 북조선 정권은 UN 동시 가입이 분단 고착화라고 선전했다. 그것을 남한의 김일성주의자들이 그대로 믿고 있었는데 북조선 정권이 유엔에 가입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북조선의 경제력이 점점 남한에 뒤쳐지다가 급기야 1990년대 중반에는 (아마도) 수백만명이 굶어죽기에 이르렀다. 김일성주의가 남한에 유행한 데에는 1970년대까지 북조선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했다는 사실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이것은 1930년 경부터 약 3,40년간 소련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한 것이 서구의 좌파를 스딸린주의의 미망에 묶어놓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NL도 서서히 김일성주의의 미망에서 깨어나는 것 같다. 십 여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적으로 엄청나게 통일되어 있던 NL이 분열했다. 1980년대의 NL이 김일성주의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지금의 NL은 점점 김일성주의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다. 이것은 1970년대의 유로코뮤니즘을 떠올리게 한다. 유로코뮤니즘의 핵심 중 하나는 소련으로부터 거리두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