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정원에서 선생님 이름 봤어요. 혹시 측백나무 기증하셨어요?”
그림책 모임에서 만난 분이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뜻밖의 말에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지난해 어머니를 모시고 화개정원에 다녀왔지만, 정작 우리 가족은 기증자 이름을 보지 못했다. 길가에 가지런히 늘어선 측백나무를 바라보며, 그중 어딘가에 우리가 기증한 나무도 있으려니 생각했을 뿐이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땅 가장자리에 측백나무를 심고 가꾸셨다. 씨앗이 떨어져 싹을 틔우고 제법 큰 나무가 되기까지 정성을 쏟으셨다. 그 나무들은 내가 대학에 다닐 때도 그 자리에 있었고, 가정을 이룬 뒤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에 집을 지을 때도 변함없이 서 있었다.
일렬로 빼곡히 늘어선 측백나무는 땅의 경계를 표시하는 든든한 울타리였다. 작은 새들에게는 몸을 숨기고 쉬어 가는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해마다 잔가지를 잘라 내며 나무 모양을 가지런히 다듬으셨다. 측백나무에는 오랜 세월 이어진 아버지의 손길이 배어 있었다.
그 터에 집을 짓고 산 지 십 년쯤 되었을 때다. 어느새 무럭무럭 자란 측백나무 꼭대기는 이층집을 넘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들은 칠십 그루가 넘는 나무를 계속 관리할 자신이 없었다. 한때 든든한 울타리였던 나무들이 어느 순간 우리에게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군청에서 교동도에 정원을 조성하며 수목을 기증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곧바로 연락했다. 사전 답사를 마친 뒤 작은 굴착기와 인부들이 찾아왔다.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땅속 깊이 뿌리내린 측백나무들이 한 그루씩 뽑혀 나왔다.
인부들은 뿌리에 붙은 흙이 떨어지지 않도록 덮개로 단단히 싸고 정성스럽게 묶었다. 나무는 차곡차곡 트럭에 실렸다. 아버지의 나무가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그래도 베어 버리지 않고 새로운 땅으로 옮겨 심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곳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자랄 나무를 떠올리면 아버지께 조금은 덜 미안했다. 당신께서 정성껏 키우신 나무를 더 많은 사람이 바라보고 쉴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칠십 그루가 넘는 측백나무는 우리에게 십오 평 남짓한 마당을 선물하고 떠났다.
나무가 사라진 자리는 운동장처럼 넓어 보였다. 삼사 미터 높이의 나무들이 땅속 깊이 박혀 있다가 뽑혀 나가니, 빈자리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그곳에 작은 밭을 만들고 고구마와 단호박, 들깨를 심었다. 아버지가 보셨다면 우리의 엉터리 농사법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을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가을이면 수확의 기쁨도 맛보았다.
몇 년 뒤 교동도에 화개정원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측백나무들이 새로운 땅에서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했다. 꽃이 피기 시작한 어느 봄날, 어머니를 모시고 아들과 함께 화개정원을 찾았다.
입구로 이어지는 도롯가에는 늘씬한 측백나무들이 가지런히 서 있었다.
‘혹시?’
가까이 다가가 잎을 만지며 줄기와 가지를 살펴보았다. 나무 모양이 너무 반듯하고 잎도 싱싱했다. 아무리 보아도 우리 집에서 자라던 나무 같지는 않았다.
정원 안으로 들어서자 알록달록한 꽃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우리는 모노레일을 타고 꽃바다 위를 지나듯 전망대까지 다녀왔다. 우리가 기증한 측백나무는 찾지 못했지만, 숲 내음과 꽃향기를 마음껏 마시며 돌아왔다.
그림책 모임에서 만난 분을 통해 기증자들의 이름이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에 적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간 길을 건너뛰고 모노레일로 편안하게 정상까지 다녀온 우리는 그 이름들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군청에서 기증자 이름표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나는 아버지의 이름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기증 신청은 내 이름으로 했지만, 그 측백나무들은 오랜 세월 아버지의 손길을 받으며 자란 아버지의 나무였기 때문이다. 결국 내 부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이 오면 어머니를 모시고 화개정원에 다시 가야겠다. 이번에는 모노레일을 타지 않고 전망대까지 천천히 걸어 올라갈 생각이다.
측백나무도 만나 보고 싶고, 아버지도 그리워해 보고 싶다.
2026. 7. 12.
2021년 기증한 측백나무 이야기를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