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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고선
제99회 산행일지 : 청양고추와 수덕사의 여승
(충남 청양군 칠갑산, 예산군 덕숭산)
일시 : 2010년 12월 18(토)
날씨 : 맑음, 따뜻한 날씨
시간이 허락하는 주말이면 이제 혼자라도, 가까운 곳이라도 산에 다녀와야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다.
등고선 정기산행이 늦어진 틈을 타 마산의 무학산이나 대덕산 등 가까운 주변산을 다녀왔지만 아무래도 좋은 사람들과 동행하는 등고선의 산행과 비교할 바는 전혀 아니다.
조용한 등고선 게시판에 ‘정기산행 안가나’라는 글제로 ‘다들 산행에 대한 열정이 식었나요? 말들이 없네요. 11월을 건너 뛰었고 이번 주가 아니면 12월도 어려울 듯 하네요. 무슨 사정들인지는 몰라도 산에는 가야겠지요.’라고 글을 올렸는데 교매가 곧바로 전화가 왔다.
물론 게시판을 보고서 전화한 것은 아니었다. 한 두 시간만 기다렸어도 내 조급한 마음과 회원들을 닦달하듯 하는 모습도 감추어질 수도 있었는데...
교매는 오늘, 여태 별 필요 없다던 모자를 새로 장만해 쓰고선 운전석에서 우리를 맞았다.
칠갑산
‘콩밭메는 아낙네야’로 시작되는 노랫말로 더욱 잘 알려진 칠갑산은 등산로가 많지만 원점회귀형으로 산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대부분 등산객은 한치고개(해발 320m)에서 시작하여 장곡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2시간 남짓 소요되는 코스를 이용한다.
청양 IC를 나와서 한치고개 방향과 천장호 코스로 가려면 우회전해야 하고 장곡사 방향은 좌측 방향이다.
장곡사 방향으로 길을 잡았는데 국도에서부터 도림저수지, 온천삼거리를 지나는 길엔 눈이 그대로 쌓였다.
장곡사를 가려면 마재고개를 지나야 하는데 아무래도 겨울 준비가 안 된 차량으로 눈 쌓인 고개와 나선형 도로를 통과하기엔 무리가 있을듯하여 우측의 도림사터를 경유하는 코스로 길을 잡았다.
찻길에는 사람 흔적이 전혀 없다. 10시 45분 도림계곡 도착, 주차장도 텅 비었고, 화장실은 중국식처럼 문짝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으며 관리소로 보이는 허술한 곳도 문짝도 없이 며칠 전 북의 포격을 맞은 연평도처럼 휑하다.
하얀 눈길 위에 우리의 발자국을 찍으며 산행시작, 오늘은 도림사터를 지나 정상에 이른 후 되돌아오는 약 5km의 두 시간 왕복형 산행이다.
정상 2.2km 이정표에서부터 계단과 함께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곧 앞쪽에서 어린 고라니 두 마리가 오르막을 빠르게 뛰어 오른다.
식량을 위해 많이 내려왔나 보다. 100여 미터를 더 가니 눈과 낙엽 위에 아직도 따뜻할 것 같은 느낌의 선혈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산짐승이 조금 전 다친 상태로 여길 지났나 보다. 왠지 마음이 짠하다.
도림사터는 그리 넓지는 않지만 낮은 능선이 주위를 감싸고 햇살이 쏳아져 들어오는 편안한 자리이다.
뒤에는 푸른 대나무 밭이고 감나무 등 키 큰 나무들 여럿과 삼층석탑만이 절터를 지키고 있다.
몇몇 절터 흔적들이 남아 있는지 출입을 금하는 줄이 메어져 있다.
도림사지를 지나 다시 산으로 드는 곳에 정상 1.9km라는 붉은 고추모양의 이정표가 있다.
차안에서 청양고추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매운 맛의 청양고추가 이곳에서 생산되므로 청양고추라고 한다는 얘기와 고추산지로 유명한 청송과 영양의 한 글자씩 집자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총무 교매는 청양의 주산물이 구기자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청양’에 대한 유래 역시 매송이나 청죽과 같이 후자에 표를 던졌다가 고추 모양의 이정표를 보고는 믿음이 살짝 후퇴한 듯 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청양(靑陽)은 청송과 영양의 집자가 맞다. 식품을 전공한다는 나만 틀리게 되어 무척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청양이 고추의 산지로 유명하지 않지는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으며 실제로 청양군민들도 그러한 오해가 得이 되기도(청양에 대한 홍보) 하고 失이 되기도(모두가 맵다는 측면에서의 소비 감소) 하는 모양이다.
실제 매운 고추인 靑陽고추도 한자로는 청양군의 이름과 동일하다.
그러나 실제로 중앙종묘 재직 시 청양고추를 육종한 유일웅(65세, 홍초원 소장)씨는 '청양고추 품종은 제주산과 태국산 고추를 교배하여 만든 것으로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양군 일대에서 임상재배에 성공하였으며, 청송의 청(靑), 영양의 양(陽)자를 따서 청양고추로 명명하여 품종등록 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청양고추의 최대 생산지는 청양이 아닌 밀양(전국 생산량의 70% 정도)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 국민의 식재료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들라면 무엇일까?
쌀, 마늘, 고추? 아니면 다른 무엇?
쌀이 우리의 주식임을 부인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소비량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년간 70kg을 상회하고 있다.
마늘 역시 우리의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료이고 1인당 소비량도 연간 10kg을 넘어 고추의 4kg(건고추)을 크게 앞서고 있다.
실제 고추는 경종작물 중 쌀 다음으로 생산금액이 큰 중요한 농업생산물이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하다보면 이삼일이 지나면 식사가 힘들어지게 되는데 이때 라면, 짬뽕, 육개장 등 매운 음식을 한 끼 먹고 나면 또 며칠을 견딜 힘이 생기는 것은 우리국민 모두의 경험일 것이다.
멕시코가 원산인 고추가 유럽, 일본을 거쳐 임진란 이후인 17세기 초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지만 우리 식단을 변혁시키기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하루에 소비하는 약 10g은 일본 사람의 1년분 소비량과 비슷하다고 하니 우리의 고추사랑을 더 이상 설명하면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
30여분 정도 걸어 땀이 날 듯 하면 편안한 능선을 만난다.
정상(561m)도착 11시 45분, 한시간이 소요되었다. 한치고개 방향과 장곡사 방향에서 오른 사람들이 너른 정상을 가득 차지하고 있다.
둘러 앉아 식사를 하거나 제단에 제를 준비하는 그룹 등 소란하고, 정상석엔 사진줄이 이어진다.
정상석 옆에서 급히 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되돌려 내려선다.
청죽이 13,500원을 들여 산 새 아이젠을 품평하며 아이젠을 착용했다.
12시 50분 하산완료, 대형버스가 주차해 있고 취사장에는 중늙은이들이 왁자하게 술을 따르며 차지하고 있어 100여 미터 위의 고색티가 물씬한 빈 민박집 마루에 들었다.
햇살 가득 받으며 여유있게 라면을 끓이는데 버스를 타고 온 어른들이 하나둘씩 집안을 어른거린다.
식사 후 신발을 신고 나서는데 마치 우리집에서 나서는 듯 하다. 13시 30분 국도를 경유 덕숭산을 향하다.
덕숭산
오전에 위협하던 마재고개의 눈은 그대로였으나 볕이 드는 나선형 도로의 내리막은 완전히 녹아 있었다.
청양과 홍성읍내에서 네비게이션이 지름길로 보이는 희안한 골목길을 안내하지만 이미 노예가 된 후라 따르는 수밖에 없다.
거의 한 시간 30분이 걸려 덕숭산 주차장이다.
산길 백리라던 덕숭산 수덕사 입구는 40번 국도변에 바싹 붙어 있다.
주차료 2,000원을 주며 “식당에 가도 주차료를 내야 합니까?” 했더니 “어느 식당 가십니까?” 하기에 갑작스레 대답을 못하고 어물거리는데 “식당 이름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며 가버렸다.
이 산행기를 보시고 다음에 오시는 분은 ‘영남, 갈산, 청연, 버들, 수덕골, 한일’ 등 식당 이름들 중에 한 곳을 정확히 대면 주차료를 면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주차료는 이미 지불하였지만 2,000원씩이나 하는 문화재 관람료를 내기에는 다소 억울한 마음이 있어 좌측 아래로 내려서서 왼쪽 산으로 오르면 곧 등산로와 만난다.
그리 번듯하지 않은 동네 야산같은 등산로를 따르다 보니 곤 철조망이 길을 막아서는데 다행이도 통나무들로 눌러 놓아 사람이 지나기엔 어려움이 없도록 해두었다.
필시 우리처럼 우회하여 입장하는 자들을 막으려던 철조망이었으나 그 위에 나는 놈들도 있다는 것이 세상이다.
거대한 알을 토해내는 두꺼비 입같은 바위와 전망 좋은 여러 바위들이 있어 호서의 금강이라는 말에 얼추 다가서는 듯 하지만 무엇보다 눈이 녹아 꼽꼽하고 솔잎들이 부서져 쌓인 산책로 같은 등산로가 편안하고 부드럽다.
수덕사를 우측에 내려다보며 크게 능선을 돌아 오르는 길의 정상입구에 또다시 철조망이 막아서는데 사이가 벌어진 커다란 구멍으로 배려(?)해 두었다.
정상에는 4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진하게 포옹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서자 아쉬운 듯 풀더니 서둘러 하산한다.
파란 하늘엔 반달보다 살찐 흰 달이 정상을 내려보고 있다.
10여분이나 늦게 도착한 일행들에게 사유를 물으니 길을 막아섰던 철조망 일부를 뽑아버리고 오는 길이란다.
성질들 하고는...451.2m라고 새긴 까맣고 작은 정상석에서 인증샷 하고는 곧바로 돌아선다.
수덕사에서 오르는 길은 넓지만 경사가 급하다.
문이 굳게 닫힌 정혜사의 석문 앞에서 잠시 포즈를 취하고 1,200여개나 된다는 계단을 내려선다.
절벽 앞에 선 돌부처 아래에선 중년의 아주머니가 쉴새없이 절을 하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 옆 돌벽에는 동전들이 이미 가득 붙어 있고 서너 명이 동전붙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젊은 남자가 엄마에게 “십원짜리는 잘 안붙는다”기에 지나치며 “오백원 정도는 되어야 정성이 받아들여지지 않겠어요” 대꾸하자 크게 웃는다.
백제시대의 절인 수덕사의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당시인 1308년에 건립된 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봉정사 극락전, 무량수전에 이은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단청없는 담백미, 날씬한 맛배지붕과 밖으로 드러난 가구재들이 은은하고 멋있었지만 새로 놓은 듯한 양측면의 돌계단은 부조화스럽다.
대웅전에서 내려다보면 삼층석탑과 너른 마당 끝에 걸린 크고 작은 소나무와 느티나무 그리고 그 절지붕과 능선의 선들도 예쁘다.
1966년에 발표된 대중가요 ‘수덕사의 여승’ 첫머리에 ‘인적없는 수덕사’라고 노래하지만 오늘의 수덕사는 꽤나 분주복잡하다.
수덕사가 운문사, 동학사와 함께 3대 비구니 사찰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실제로 비구니들이 수도하는 곳은 견성암 뿐이다.
이미 세속의 연을 끊고 귀의한 비구승이 속세에 두고 온 님, 사랑을 잊을 길 없어 울고 쇠북도 덩달아 함께 운다는 ‘수덕사의 여승’ 노랫말이 지나치게 통속적이다.
기둥의 무게감이 대단한 일주문과 입구의 화려한 상가들을 지나며 현대적, 통속적인 수덕사를 뒤로 했다.
온천마을인 덕산에 들러 덕산관광호텔에서 5,500원하는 온천욕을 즐기고 동태찌개로 저녁을 들다.
참으로 먼 길이지만 고속도로의 힘을 빌러 세 시간이 지나지 않아 대구에 닿았다.
수척한 겨울 숲의 힘겨운 숨결과, 추위 속에 오히려 우뚝한 나무를 제대로 안아보지는 못했지만 고향길을 산책하는 편안한 기분으로 백대명산 두 곳의 풍경을 담았다.
登?苦?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