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모▶
고 정광훈집사(해남읍교회)
그는 기장교인으로, 우리 기장의 정신으로 평생의 삶을 사신 자랑스러운 기장인이십니다.
특히 정집사님은 농민과 함께하면서 우리 기장농목이 요청하면 땅끝 해남에서 어디든 마다하지 않으시고 달려오셔서 연대하며 큰 힘을 주시던 분이십니다.
또한 총회 행사 및 기도회도 참석하셔서 연대사 및 강의를 기쁘게 해 주셨던 명강사 교우시기도 했습니다.
고인을 추모하며, 그리스도의 위로와 희망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고인의 뜻 기려 영결식은 17일 금남로,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치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故 정광훈 의장의 장례가 '민중의 벗 故 정광훈 의장 민주사회장'으로 치뤄진다.
민주노동당은 14일 브리핑을 통해 "장례는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5일장으로 진행되며, 발인은 17일(화) 오전 9시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이뤄진다"고 밝혔다.
고인의 영결식은 17일(화) 오전 10시 금남로에서 고인의 뜻을 기리는 애도의 마음을 모아 치러질 예정이다. 영결식 후, 금남로 행진을 거쳐 전농전남도연맹 사무실(서구 농성동)을 경유한 뒤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치된다.
호상은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맡았으며, 장례위원장은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고문,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위원장,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임낙평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대표, 김정길 6.15공동위광주전남 대표, 황정아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표, 정용화 광주민주동지회 공동대표, 한창진 전남시민사회연대회의 대표 등이다.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민점기 광주전남진보연대 대표가 맡았다.
고인은 해남 출신으로 광주전남지역에서 20여 년간 농민운동을 주도했으며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민주노동당 고문을 맡는 등 평생 농민, 노동자의 벗으로 민중운동에 헌신해 왔다.
5.18 당시 시위 주도, 농민대회 주도, 한미FTA저지 투쟁 등으로 3차례 투옥됐으며, 지난 4월 26일 화순 보궐선거 지원유세 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조선대학교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난 13일 20시 51분 향년 72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故 정광훈 의장 약력
1939년 9월 13일 해남군 옥천면 송운리 출생
1952년 옥천초등학교 졸업
1955년 해남중학교 졸업
1958년 목포공업고등학교 졸업
1966년 12월 최해옥 여사와 결혼
1970년 해남 YMCA 신협 설립 발기인/해남읍 교회 신협 설립 발기인/해남읍교회 중고등부 교사
1972년 해남 YMCA 농어촌 위원장
1977년 故 김남주, 황석영등과 농민운동 조직화에 나섬
1978년 전남기독교 농민회 총무
1980년 5.18당시 전남기독교농민회 총무로 무안, 해남, 영암, 강진 시위주도
1981년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교육부장
1982년 해남 기독교 농민회 면 협의회 건설 주도
1984년 민중교육연구소 교육부장, 미국농산물 수입 저지 미국대사관 점거 투쟁
1989년 전국농민운동연합 부의장/전국수세대책위 교육 선전활동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초대의장
1991년 민주주의 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상임의장
1992년 농민대회 주도 수배 중 구속, 4년간 수감생활(1996년 만기 출소)
1998년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의장
1999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2001년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의장
2002년 전국농민대회 관련 투옥
2003년 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WTO 칸쿤회의 반대 한국투쟁단 대표
2005년 APEC반대 국민행동 대표/WTO 반대 홍콩민중투쟁단 대표/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 사망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2006년 한미FTA저지 미국원정투쟁단 단장/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2007년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2007년 한미FTA저지 투쟁관련 3차 투옥
2009년 한국진보연대 고문
2010년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2011년 민주노동당 고문/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전농 20년사 편찬위원회 위원장
2011년 4월 26일 4.27 화순군수 보궐선거 지원유세 후 해남으로 이동 중 교통사고
2011년 5월 13일 오후 8시 51분 조선대학교 병원에서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