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우는 소리-
오래 전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한 분이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란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에서 닭 목은 민주인사들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투쟁과 저항을, 그리고 새벽은 독재정권의 몰락 후의 민주국가를 의미하는 것이라 해석해 본다. 그래서 당시 ‘꼬끼오 꼬꼬....’하고 수탉우는 소리는 희망, 미래, 새로움, 밝은 세상 등을 상징했다. 시계가 귀했던 옛날, 촌집에 수탉의 울음도 새벽을 알리는 신호로서 기상나팔 역할을 했고 새로움, 새벽, 하루 시작, 고향의 소리로 이해되었다. 시골 수탉들의 기품을 보여 주는 긴 꼬리에다 화려한 깃털을 한 당당한 모습과 암컷들을 보살피는 자상함 등은 또 어떠했었고 ... 사람이 살면서 가지는 추억, 기억, 경험 등은 잘 보존되어 생명수처럼 활력소 역할을 하면 좋지만 그런 기억과 경험을 가졌던 상황과 전혀 다른 환경에 처하게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나의 짧은 필리핀 생활에서 수탉우는 소리에 대한 정서만큼은 그대로 못이어졌다. 나의 인내심 부족과 지역주민들의 생활습관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수탉우는 소리가 향수의 소리가 아니라 소음으로 들려 더 이상 정겨움을 불러오는 소리가 못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수탉이 울어댔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필리핀 한 대학 교환교수로 가게 된 기회에 한국에서는 하기 어려운 전원생활을 해 볼 생각으로 현지 지인에게 적당한 집을 알아 봐 주도록 부탁했지만 단기체류자는 그런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연락이 와 대학내 외국인 교수숙소를 결정하고 떠났다. 숙소는 캠퍼스내 잔디와 많은 수목들 사이에 있었고 숙소 뒤 학교 경계선 밖에는 20여 가구의 민가가 있었다. 이 집들 주민은 필리핀 각지에서 돈을 벌기위해 마닐라로 마닐라로 몰려 왔지만 집을 마련 못해 단속이 없는 대학부지에다 임시로 지어놓고 사는 것이라 했다. 대학은 더 이상 그들의 진입을 막으려고 숙소 뒤에다 철망을 쳐 놓았는데 이 집들이 문제의 근원이었다. 나라마다 애완동물은 달라 이곳 사람들은 애완동물로 수닭을 한 집에 두서너마리는 보통이고 네 다섯마리 이상 키우기도 해 입주 첫날부터 이 녀석들이 밤낮없이 울어대었다. 수탉들은 날이 저물자 간간이 소리를 내드니 저녁부터 새벽까지 끝임없이 울고 또 울어대어 소음수준이었다. 수탉들이 그렇게 긴 시간 울어야 할 무슨 사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누우면 곧 잠들고 일어나면 아침인 나는, 잠을 설친 얼굴로 동네로 가 보았다. 수탉들은 마당에서 암닭들과 먹이를 쪼아 먹고있는 모습이 아니라, 한 쪽다리가 줄에 묶인채 우산처럼 생긴 철망 속에 갇혀 뜨거운 햇살을 받고 있었다. 긴 목에 화려한 털색깔의 날렵한 몸을 가진 수탉들은 애완동물로 취급받으면서도 투계(鬪鷄)선수로 뛰어야한다고 했다. 줄을 발에 메단 이유는, 닭싸움에서 발을 많이 사용하므로 다리 힘을 붙이기 위해서이고, 또 닭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싸움터에 가야 열심히 싸우기 때문이란다. 수탉은 울고 싶어 우는 것이 아니라 울지 않을 수없는 닭의 처지를 보았다. 한국 땅에서 태어 났더라면 이 고생을 안해도 될 터인데 이 불쌍한 것들이라니..
그런데 여기는 내 혼자 사는 것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며 살까? 나만 별난 존재인가? 수탉우는 소리를 지금부터 다시 사랑하자고 생각을 고쳐먹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한계가 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 숙소를 옮길 목적으로 숙소 관리자에게 주위환경문제를 말하자, 그는 “숙소도 오래되었고 창문방음장치가 안 되어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 그렇지만 필리핀에서 생활하려면 수탉우는 소리에 익숙해야 한다”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렇다.'이 숙소는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생활에서 겪게 되는 대강의 고통의 줄거리는 옆 동네의 수탉우는 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선택해서 난 것이다. 내 자신에게 필요한 배움을 얻어 더욱 이 수탉우는 소리를 사랑해야 한다. 내가 나에게 한없이 멀어지면 내가 살고있는 이 삶이 내 삶이 아닌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순수한 환희같은 것이 내안으로 들어 왔다. 이처럼 삶의 중요한 것들은 직접 경험해야만 자신의 것이 되는가 보다. 그날 밤, 나는 창문을 열고 밤하늘에 뜬 초생 달을 보고 잠이 들었다. 귀에는 소음차단용 귀막이를 한 채로. 이번 여행에서는 아름다움으로 내게 찾아 온 것들과 순수한 기쁨들, 그런 것들만을 기억하자고 다짐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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