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여행을 다녀와서...................2004.5.3

[김석환]

오늘은 ‘여행사랑’ 번개가 있는 날.
가입한 지가 두어 달은 지났지만 아직도 회원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는 어찌 시간이 닿아서 처음으로 나가는 모임인지라 설레는 마음이 잔잔히 이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두세 시 경에 분당에서 ‘번개’를 친 주인공을 만나 강원도로 향하기로 했기 때문에 오전에 시간도 나고 또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바쁜 일이 생겨서 강원도는 같이 못가도 인사동 도자기 전시라도 보고 오자는 말에 인사동에 들려, 지리산 자락에서 오로지 수십 년을 예전 ‘이도 다완’의 재현에 힘을 쏟았다는 어느 할머니 도공의 작품들과 바로 그 아래층에서 열린 골동품 특별전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같이 보고 걸음을 재촉하여 다시 약속장소인 분당으로 돌아 와서 친구와 나는 헤어지고 번개를 친 그녀와 단둘이서 그야말로 ‘졸지데이트’ 겸해서 그녀가 구해온 소래의 해물들을 나의 애물단지 트럭에 실고서 강원도를 향해 달렸다.

평일 한 낮이라서 길은 거의 막힘이 없었다.
이야기하다 깜박 교통표지판을 놓쳐서 잠깐 망설이다 수백 미터를 돌아 온 것 빼고는 너무도 쉽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강원도는 언제 봐도 강원도다. 언제나 반가운 고향친구처럼 늘 다정하고 한결같은 기쁨으로 또 그러면서도 그때마다 다른 깊이로 우리들에게 감동을 준다. 오늘의 강원도 산들은 저번 주에 봤던 남도의 산들과는 또 다르다.
남도의 산들이 19세 처녀의 풋풋함이라면 지금 여기 막 신록이 피어나고 있는 강원도 산들은 15살 먹은 ‘볼따구’가 빨간 여중생의 생동감 그것이다.
먹기도 전에 이가 시리고 침이 나오는 퍼런 사과 바로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 물에 풀어지기 전의 막 튜브에서 짜내진 수채화 물감 같다고 할까 아직 완성에는 멀었지만 기대감과 풋풋함의 기운이 차고 넘치는 그런 모습이다.

어릴 적 까까머리가 그 머리통의 본 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듯이 막 돋아난 새싹들은 그 나뭇가지들의 본모습을 전혀 감춤이 없이 알로 드러내고 있었다.
또 그들은 소나무들처럼 녹색을 미련하리 만큼 우직하게 이고 있는 나무들과 무더기로 뚜렷한 대조를 이룸으로 해서 더욱 그 연한 신록의 신선함이 더욱 강조 되었고. 연하다 못해 노란 기운을 품고 있고 아직도 사이사이로 겨울의 색을 품고 있는 나무들의 간간함에 의해 마치 초가을 단풍이 시작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그런 모습의 산들이었다.
기후 차에 의해 이미 초록이 많이 진행된 남도와 지금 막 초록이 시작되는 강원도는 그렇게 같은 손등이면서도 다른 느낌으로 내 눈에 와 박혔다.

쉬어 가며 시원한 냇물에 손도 적셔보고 신록에 입맞춤이라도 하면서 가면 좋겠지만 신록의 신선함이 만나는 님들의 신선함과 견줄 수가 있겠는가?
누구는 이미 아는 사람도 장아찌처럼 푹 담겨지고 관리 되지 않는데 어떻게 또 새롭게 사람을 사기냐고 그저 아는 사람이나 ‘관리하며’ 살기에도 남은 인생이 벅차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이렇게 새로운 사람에의 갈증이 심하고 그 새론 만남의 기대감으로 설레니 내가 성격이 별난지 아니면 먼저 안 이들과의 정 나눔이 부족한 것인지 새로운 만남만을 선호하는 무슨 병명이 없는 정신병 같은 것이라도 있는 것인지 통 이유를 알 수 없다.
오늘도 그런 낯 설움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된 만남이 기다리고 있으니 달리면서 보이는 산야의 기쁨은 그저 양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곳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아침가리다.
아침가리가 도대체 어디서 온 말인지 모르겠다.
‘아침꺼리’란 말에서 온 것인지 아침에 뭘 가린다는 말인지 암튼 계곡이란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라서 토관을 묻어서 콘크리트로 꽁꽁 만든 다리라서 절대로 무너지거나 떠내려 갈 염려가 없는 다리를 지나니 바로 거기가 ‘아침가리’민박집이다.

주인은 별 표정이 없이 우리를 맞는 둥 마는 둥하고 이미 온 사람들과 ‘쭈욱’ 인사를 나누었다.
다 나처럼 적당한 세월의 자국들을 여기저기에 이고 있는 그런 모습들이다.
이미 오랜 세월동안 갈고 닦은 ‘인사격식’에 대한 요령이 습득된 탓인지 다들 특별하게 유별난 반김도 무시도 없이 그저 적당한 시선과 관심만을 던지면서 각자의 움직임에 열심들이이다.

이러고 저러구 하면서 우리는 저녁을 준비했다.
이미 먼저 팀에서 준비해온 야채들과 반찬과 돼지고기에 더해서 우리가 가지고 온 해물의 ‘바베큐’ 저녁 겸 파티가 차려졌다.
어디를 가나 시골에서는 이 바베큐가 제일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푸짐도 하고 간단하기도 하고 장작불과 하는 것이라 정취도 나고 참으로 표 나는 일이다 보니 시골에 오면 늘 접하게 되는 ‘신종음식문화’다.
나는 열심히 쭈꾸미 머리통을 주워 먹었다.
굽는 사람에게는 좀 염치없게 보였을 법도 하지만 난 워낙이 먹는 것에는 염치가 없는 놈이라서 열심히 주워 생키다 보니 작은 내 배가 금방 찼다.

산간이라서 날씨는 차가웠지만 불이 있어서 따뜻했고 이미 배를 채웠으니 나의 할 일이 없어졌고 또 심심도 하면서 서서히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늦게 오신 여자 분과 함께 여자가 여섯에 남자가 셋이다.
도대체가 숫자가 안 맞는다.
나는 딱히 무슨 거사를 치르려는 놈도 아닌데 꼭 이 짝 맞추기에 민감하다.
일단 짝이 맞으면 편하고 안 맞으면 불편하다.
그게 왜 그런지 모르겠다.
원래가 인간이 처음부터 짝으로 지낸 것도 아닌 모양인데 이런 본능적인 시각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다.

요 며칠 사이로 내 가죽 슬리퍼의 한 짝이 아무도 모르게 없어져서 심난하기만 한데 그런 연장선은 아닌 것 같은데 사람 만나기를 꼭 짝으로 만나려고 한다.
하긴 우리 학교 다닐 때 어쩌다 미팅이라도 할라치면 짝이 안 맞으면 난감해서 쩔쩔매던 기억이 있는데 그런 심정의 연장선인가?
암튼 짝이 안 맞는다.
그것도 너무나 크게 ‘따블’로 안 맞으니, 바람에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서 눈 매움과 불똥을 피해 도망 다니게 만드는 바쁜 바비큐 불길처럼 심난한 마음을 배가한다.

그렇다고 갑자기 무슨 조약돌 줍듯이 짝을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 짬에 눈동자를 굴려 보는데 제일 먼저 집게를 들고 열심히 고기를 엎거나 굴리거나 자리바꿈하거나 은박지를 돌려대며 고기 굽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여행사랑’이란 분에 눈길이 간다.
대뜸 보기에도 그가 무리의 대장같이 보인다.

그것도 본능일까?
동물의 왕국을 보면 떠돌이 수사자가 새로운 무리에 오면 제일 먼저 거기 대장 수사자하고 ‘다구리’를 붙는다. 아마는 그런 동물적인 본능이 인간과 나한테도 있는지 그 고기 집게 든 분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덩치로 보나, 인물을 보나, 일 폼이나, ‘무리’를 바라보는 느긋함이나, ‘무리’가 바라보는 시선이나 웃음 품은 여유로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언뜻 불빛에 날카롭게 보이는 눈매를 보나 내가 근접할 상대가 안 된다는 생각이 첫 순간에 ‘팍’ 왔다.
동물의 왕국 같으면 그저 헛기침 한마디에 그냥 줄행랑을 칠 상황이지만 그래도 나도 어언 반세기 풍상을 겪은 몸이고 어차피 인간의 꼬리는 뼈다귀 속에 감추어 진 것이니 뭐 겁날 것이 있으랴!
배부르면서도 한발 냉큼 다가서 그 양반의 집게에 제일 가까운 쭈꾸미 머리통을 콱 짚어서 입에 날름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커다란 집으로 말하면 이 분이야말로 여러 대문 중에 첫 대문 수문장 같다.
여기서 물러서면 집은 구경도 못하고 돌아가야 할 판이다.

이리공 저리공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한 수도 없고 또 틈도 없어 보이는 지라 일단 작전상 후퇴를 하기로 하고는 주꾸미 머리통을 입속에서 굴리며 그 옆에 계신 ‘바바리’(보통은 그렇게 불러야 되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버버리’로 불러서 난 처음 무슨 ‘버벅댄다’란 말에서 온 아이디인 줄 착각했다.)란 분을 보니 이 분이 나처럼 빨간 잠바를 입었는데 내거야 면 잠바로 ‘쭈굴탕’하지만 이 분은 ‘사파리’다.
사파리가 언제 입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암튼 그 기지자체가 일반 "허접 떼기‘ 잠바와는 그 본질이 다르니 일견 위축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이 분은 ‘머리’가 아주 나하고는 무지하게 딴 판이었다.
나야 완전히 그 옛날 ‘와룡기’라 불리던 벼 타작기에 볏단을 때려치면서 돌리면 벼이삭은 다 떨어지고 짚만 이리저리 어지럽기만 하던 짚단처럼 헝클어지고 윤기 없는 머리지만 이 분의 깔끔하고 짧게 잘라 올린 머리카락은 윤기가 부티 났다.

거기다가 난 수염을 길러봐야 가짓수를 셀 정도라서 간신 배역에나 어우리는 콧수염 턱 수염이 전부지만 이 양반은 한 보름만 면도 안하면 그냥 그대로 털보선장이 아닌가?
수염이 남자의 상징이라면 그야말로 이 분은 ‘범털’이요 난 ‘개털’이다.
이쪽을 보나 저쪽을 보나 도데체가 적수가 없는 듯하고 이래저래 추운 날씨와 함께 ‘쪼그라’ 들기만 할 뿐이지만 그래도 나도 권총 찬 인간이 아닌가?

그래서 여자분 들을 봤다.
오늘의 음식을 준비해왔다는 ‘다현’이란 분을 봤다.
눈에 보이는 것은 뭐든지 다 길었다. 손가락은 물론이요 심지어 화장한 손톱도 길었다. 그렇다고 농구선수처럼 길다면 시각적으로 불안함을 유발하겠지만 그저 알맞은 길이라 시원해 보였다. 글쎄 성격도 그렇지 않을까?
그저 그 분이 끌고 온 차만이 내 차처럼 ‘짜리 몽땅’했다.
아마 다 미적으로 구색을 맞춘 것이 아닐까.
그런 분이 봉고를 끌고 다닌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참으로 다 절묘한 안목이다 싶었다.

그리고 내가 도착하고 나서 나중에 차 속에서 나타나신 ‘무지개’란 분.
늦게 여유 있게 나타난 것을 보면 믿는 것이 많은 모양이다. 글쎄 뭘까?
젊음이겠지. 인물이라고 하면 다른 분들한테 혼날 것이고......
이 분은 온통 무지갯빛이다. 모자고 그렇고 티도 그렇고 바지만이 좀 달랐는데 내가 전에 어릴 때 입던 바지가 생각나는 그런 쫄쫄이 바지였는데 그것도 무지개 분위기의 연장선이었다. 아마는 속마음도 무지개인 것 같다.
무지개를 쫓아가서 파면 보물이 나온다는데.....그런 것을 믿기라도 하는지 전 세계를 누빈다니 그 보물이 찾아 질런지 모르겠다.
아마 그 여유롭게 두툼한 눈두덩이 속에 있지는 않을까?

이어서 아주 늦게 혼자서 멀고 먼 밤길을 겁 없이 오로지 컴퓨터에서 만난 얇다면 얇고 두껍다면 두꺼운 ‘정덩어리’를 확인하려고 무릎 덮은 치마의 근무복 차림으로 달려온 ‘달빛’이란 분. 아마 달빛을 몰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지 이렇게 늦은 밤을 달려오다니 참으로 대단한 조직의 힘이다 싶었다.
다른 분들의 질투어린 투정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정성을 배가해서 쭈꾸미며 고기를 구어서 대접하는 여행사랑 님의 정성을 보면 아마 이 분도 예사로운 분은 아닌 듯싶다.
어두워서인지 내가 마신 두어 잔의 소주 때문인지 가물가물하기만 할 뿐 감이 잘 안 왔다.

그리고 두 분이 더 있다.
한 분은 여기서 최연장자인 ‘선녀’란 분하고 또 나이를 감 잡기 힘든 ‘꽃등’이란 분.
이 분들은 이상하게도 꼭 날 피하는 것 같이 이 작은 무더기의 중심에서 멀리만 있다.
한 분은 어쩌다 방에 들어가면 ‘벌러덩’으로 계시고 한 분은 아예 눈에 안 띈다.
나야 초면의 장이니 그 중심을 벗어날 수가 없는 노릇이지만 이 두 분들은 이상하리만큼 겉돌고 얼굴을 안 봬 주신다.
설마 날 경계?

나의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은 여자들이 날 보기만 하면 경계심을 푼다는 것이다.
도데체가 내 눈빛을 보면 그 음흉한 기가 안 보이고 흐리멍덩한 ‘내시성’ 기질만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 것이 일반적인 여자들이 날 보고 느끼는 감이려니 하면서 이날까지 별 탈 없이 잘 살아 왔는데 이 분들이 나의 깊은 내면의 음흉성을 첫 눈에 감지했단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한 도전이다.
그렇다고 초면에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나는 적당히 불러 오는 배만 만지작거리며 남들이야 어쩌건 말건 모닥불에 열심이 되었다.
그럴 즈음 우리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등장인물 주인아저씨가 나타난다.
사람이 다 누구나 ‘미스테릭’한 부분이 한두 군데는 있는 법이고 또 아무리 ‘학삐리’출신이고 ‘범생이표’이고 하더라도 다 괴상 쩍은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주인양반은 오히려 그런 것들의 전부다.

강원도 산간이고 아직은 봄기운이 덜 느껴지는 곳이고 또 밤이다 보니 날은 추워서 이가 흔들릴 판인데 이 양반이 맨발에 반바지에 반팔이다. 언뜻 보니 팔뚝이며 다리통이 예사롭지는 않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어찌 보면 만용 같게만 보이는데 그도 사십대 중반쯤인데 그런 만용을 부리겠는가?
그저 이런 적막이 좋고 바람소리 물소리가 좋아서 이렇게 허허로이 지낸다니 모습이야 우리와 비슷하지만 현대판 도인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법하다.
신부와 중이 되려다 이제는 인간을 떠나 이렇게 골짜기에 들어와 있고 앞으로는 더 깊은 산골로 가고 싶다니 참으로 우리네 삶과는 다르게만 가려고 하는 아주 특별한 분이었다.

그런 중에도 그 주인 양반이 선곡한 곡들의 유수 같은 흐름과 옆의 강에서 흐르는 물소리에 더해져서 모닥불은 속절없이 타들어가기만 하는데 나도 특별한 이유 없이 우수가 밀려 왔다,
불이 주는 것인지 밤이 주는 것인지 낯 설은 사람 중에 낀 ‘혼자스럼’이 날 그리 몰아가는지 그 흔하게 듣던 유익종이나 심수봉의 노래도 그저 애절하게만 살을 파고들었다,
이 먼 곳 구석까지 흘러들어온 것이 기이하기도 하고 한편 슬프기도 하니 참으로 이상한 노릇이었기에 술이라도 한 두어 잔 더 들이키고 싶었지만 참고 불만 째려보는데 밤 산책을 가잔다.

마침 어제 차에서 빼 놓은 크고 두꺼운 잠바가 너무 그리울 정도로 한기가 몸을 스며드는데 다행이도 ‘버버리’님이 가지고 온 ‘무지개’님의 담요를 건네준다. 포근한 담요가 밤하늘과 주변을 포근하게 만들어 준다.
귀신 놀래기 장난들을 하며 마을과 산길을 걷는데 주인장 이야기가 여기서 20분 거리에 폐가가 있는데 새 며느리가 시집살이에 지쳐서 자살하고 또 다시 새 며느리가 죽고 이어서 식구들이 차례로 연달아 이유도 모르게 죽어서 지금은 폐가가 되었고 얼마 전에는 텔레비전에도 나와서 무당이 할머니와 식구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고 했다하고 자기도 낮에 가보니 산발한 여인이 있어서 카메라로 찍어서 ‘아침가리’홈피에 올려놨다니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고 그 분의 몇 시간의 인품으로 보아서 우리한테 ‘구라’를 풀 분도 아닌지라 아리송함만 더 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밤길을 돌아와 집에 들어왔고 나는 얼굴과 발, 이를 닦고 귀마개를 하고는 잠을 청했다.

새벽에 옆방서 놀다가 온 ‘버버리’님이 이른 아침에 부스럭대면서 일어나는 통에 나도 덩달아 일어났다. 이 분은 잠도 없나보다. 아마는 수염이 많은 분이 정력도 ‘쎄다’는 속설이 맞는지 잠도 짧은 것을 보면 어릴 때 녹용 꽤나 드신 부잣집 ‘아들래미’였나 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비실비실’이어서 그저 “잠이 보약이다”하고 사는 통에 그런 잠이 적은 분을 보면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가 없고 또 그런 분들은 남들보다 덜 잔만큼 더 사는 폭이니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다른 분들은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고 옆의 여행사랑 님도 버버리님이 깨워도 안 일어나는 것을 보니 몸은 나하고 천행지판인데도 잠만은 ‘같은 과’인가 보다.
나야 어차피 신참이라 군기가 들은 지라 잠을 털지 않을 수가 없어서 나와서 사방을 보니 맑은 공기가 나를 유혹하였다. 나는 차를 끌고 어제의 그 마을길고 고갯길을 천천히 달리며 주변을 둘러 봤다.

이른 아침의 산천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물살은 햇볕을 사면으로 받아서 그 빛남이 더했고 산의 나무들의 그 응달과 햇볕의 교차됨이 너무도 선명해서 산의 모습과 신록의 모습을 더욱 분명하게 내 보이고 있었다. 그런 산과 나무들의 모습이 부처머리의 라발처럼 곱슬곱슬하게 보이기도 하고 배추속잎 같은 신선함과 맛깔스럼으로 ‘눈맛’ 입맛을 다 충족시키는 그런 모습이었다.
나는 고갯마루에 차를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다 적당한 곳에서 볼일을 보니 정말의 자연과 내 몸의 자연의 합일을 일순 이룬 듯 하며 즐거운 마음이 시원한 느낌 이상이었다.

다시 돌아 내려오다 산책 나온 버버리님을 만나 어제 주인장이 이야기한 폐가를 찾을 겸 시멘트 샛길을 ‘느린작거리며’ 올라가니 시냇물은 이어지고 주변의 신록은 더 가까운데 군데군데 민가나 가끔씩 민박집이며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이윽고 시멘트 길도 끝나고 비포장 길이 나온다.
요즈음 일 년을 달려도 비포장 만나기가 어렵다.
트럭을 몰고 다니다 보니 가끔은 비포장 달리기가 소원이지만 우리나라도 살기 좋은 나라이다 보니 그 비포장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자연은 내버려 두었을 때 그 값어치가 배가 된다고 믿는 것이 나이지만 사람들은 편리한 것을 우선으로 치니 이제 비포장은 ‘열목어’ 만큼이나 귀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 이렇게 뜻하지 않게 비포장을 만났으니 나의 기쁨은 아침공기의 신선함을 또 뛰어넘을 만했다.

옆의 분의 분안해 하는 느낌은 아예 무시하고 곧 길이 막힐 것 같고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산길을 비비적거리며 올라만 갔다.
그럴 즈음 어제의 그 폐가인 듯한 집이 보였는데 그 집이 그 집인가 하면서 또 기어 올라가니 길은 더욱 험해지고 도저히 나의 들뜬 기분만을 즐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숙소로 돌아 왔다,

숙소에 오니 다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핸드폰만 믿고서 여유를 부렸지만 불통이려니 하고 나만 오기를 기다렸는지 분위기가 사뭇 싸늘했다.
말하자면 아침 일정을 내가 구겨 버린 것이니 참으로 난감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잘 나가면 늘 조심을 해야 하거늘 내가 너무 기분에만 취해 있었던 모양이다.
할 수 없이 분위기를 이렇게 저렇게 추스르고 늦은 밥을 구겨 넣고 우리는 드디어 그 ‘아침가리’계곡을 갔다,

거기는 우리들 인생처럼 길이 없었다. 오순도순 이야기 하며 걷기는 고사하고 이건 완전히 "박박기는라" 정신이 없었다,
가도 가도 돌 아니면 나무뿌리고 아니면 낙엽이고 두덩이이고 이끼였다,
반대편은 나은 듯해도 건너갈 수도 없는지라 그저 바위를 보듬으면서 하염없이 계곡을 훑어가게 되어 있는 그런 오지의 계곡이었다,
물이야 너무 맑고 좋았지만 그 놈의 돌들과 씨름하느라고 물이고 산이고 다 이발소 그림만도 못했고 새소리 물소리는 다 불심 없는 사람이 듣는 염불 같았다,

나도 여러 번 미끄러지고 엉덩방아찧고 빠질 뻔 했지만 여자 회원 중에는 결국 물에 빠지기도 하고 긁히기도 하는 등 말하자면 사고가 속출했다.
결국 한 시간 정도를 올라가다 우리는 발을 돌려야만 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가 아니고 고지는 까마득한데 시작도 안 하고 돌린 격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어찌하다 달빛님을 ‘건수’하게 되었다,
세상에 나 같은 부실한 놈의 도움도 필요한 사람이 있다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고 또 흐뭇한 마음도 이는 그런 시간이었다,
내려와서 식당에 앉아서 우리는 비빔밥과 ‘’부칭게‘와 ’좁쌀주‘를 시켰다.

빈속에 들어가는 막걸리가 속을 ‘쩌르르’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안주로 나온 버섯이 특이했다. ‘석머시기’와 ‘목머시기’ 버섯이라는데 맛이 난생처음 먹어보는 버섯으로 맛도 묘했다,
암튼 그렇게 해서 원래의 아침가리 번개를 마치고 거기서 우리는 일이 있으시다는 여행사랑님과 달빛님을 배웅하니 내 생각으로는 그것이 영락없는 ‘끈 떨어진 연’ 신세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는 그 확고부동한 여행님의 눈매를 아직은 놓치면 안 될 그럴 때였던 것이다.

우왕좌왕하면서 우리 오합지졸들은 결국 동해바다로 가기로 했다.
원래가 명장은 주도면밀하고 오합지졸은 거창한 법.
앞이 깜깜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불가사의하고 거미줄 보다 수십 만 배 더 끈끈한 인터넷이란 줄로 꽁꽁 묶인 정들의 사이가 아닌가?
그거 하나 하고 다현님의 시원시원함만 믿고 동해로 동해로 달렸다.
그 중간에 경찰 아저씨가 잠시 막은 거 빼고는 우릴 막을 자가 없었다.

중간에 이승만 별장을 들렸는데 사람들이 그런대로 북적이는 와중에 갑자기 거기서 일보는 아가씨가 나와 무지개님을 보고 부부가 아니냐고 한다. 부인이 너무 미인이란다.
그리고 둘이서 꼭 닮았단다. 글세 얼굴이 좀 길쭉한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도데체가 뭐가 닮았다는 것인지 도통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여보! 어서 갑시다.”하고 나와 버렸다. 일 와중에 그녀의 느닷없는 공격이 참으로 의아하고 괴이했다,
하루 종일 정신없고 피곤했을 텐데 갑자기 그런 말을 걸어온달 말인가?
그 안내양의 지루함을 풀기에는 우리 둘의 생김이 안성맞춤이었나?

다음에 그 밑의 이기붕 별장이란 곳을 들렸다,
거기도 이승만 별장처럼 보잘 것이 없어서 꼭 무슨 기사 대기실 정도였는데 걸려있는 사진을 보니 이기붕은 둘 째 아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사진 속의 그 모습은 아직은 고등학생정도로 어리기만 한데 부모의 잘못으로 그저 아까운 삶을 형의 손에 의해 마감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했다.
사람은 모두 남달리 살고자 노력을 하지만 그 노력이 지나치면 결국은 평범함보다도 훨씬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같이 간 곳은 어디일까?

다음으로 우리의 창졸간에 결정된 목적지로서 도착한 곳은 이름도 ‘요상꾸리한’ ‘아야진’.
거기서 짐을 풀고 회집에서 회를 ‘얌통머리’없는 주인과 싸움 반, 시비 반, 윽박지름 반으로 뒤범벅이 되어서 먹고는 민박집에 들어 왔다,
2대 5!
두렵고 겁나는 경쟁률이었기에 나는 일부러 미리 소주를 댓 잔은 퍼 넣었다.
나는 얼굴의 색깔이 볼 상 사나웠고 머리는 한없이 무거웠지만 그저 신출내기 군기 하나로 버틸 때까지 버텼다.

나의 게슴츠레하고 이완된 모습에 다들 경계심이 완전히 풀린 지라 그 와중에도 열심히 나의 머리통은 여자 분들의 그림으로 꽉 찼다.
자세히 보니 선녀님은 그들 여자 회원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녀가 ‘어슴프레한’ 분위기로 있다가 간간히 던지는 한 두 마디의 ‘말씀’은 생명 같고 주옥같고 필살 같은 ‘교주’의 촌철살인의 말씀 그 자체였다.
그 한 마디는 그냥 그 녀의 삶 자체였다,
그것은 생각하거나 공부하거나 남으로부터 듣거나 해서 조성된 언어가 아니고 그냥 그녀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그런 성경 같은 말씀 그 자체였다,
그것은 밥을 먹고 자연스럽게 뱉는 트림처럼 그렇게 간단없고 느닷없이 딱 그 순간에 그 분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그 분의 한 마디에 그 어떤 반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완전한 믿음 그 자체였다,
그 원천이 분명 있을 것이지만 내가 그것까지 감지하기엔 이박 삼일은 너무 짧았다,

다현님은 늘 생각을 이고 사는 분인 것 같다.
뭔지 보이는 시원스럼과는 달리 걱정이 많은 분인가 보다.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안 보이는 중간 톤의 그림 같은 분이다. 감정으로 말하면 유쾌함과 찡그림을 생략하고 덤덤한 깊이로만 주변을 압도하는 그런 분인가 보다,
나야 그걸 찾기에는 역시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정을 가진 분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그녀가 가지고 온 반찬들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고 다른 이들이 그녀에게 주는 따뜻한 눈길에서 그것을 어느 정도 느낄 수가 있었다,

아! 무지개!
너무나 천연스럽게 내 뱉는 말들로 전혀 길들지 않은 나를 삼일 내내 번번히 놀래키기만 한 그녀. 앞으로 몇 번을 더 모임서 봐야 놀래지 않고 나도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적응이 될까?
다른 모든 사람 중에 제일 많은 것을 보여 주었지만 제일 많은 것을 알 수 없는 그런 내면의 소유자다.
하지만 나야 그 녀가 보여주는 것만 보면 되지 안 보여 주는 부분까지 억지로 보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무지개빛이 그녀의 그늘일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통해 즐거움과 희망을 갖는 다면 그것으로 그녀의 노력에 답하는 것이고 또 모임에 활기로움을 더하는 것이니 그녀나 우리나 다 좋은 일일 것이다.

꽃등님은 적당한 때에 적당히 맞장구를 친다.
꼭 판소리에서 고수 같은 분이다.
그렇다 상대의 내면에 들어가는 길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일이 가장 빠른 길일 지도 모른다.
그런 방법을 그녀는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것 같다.
그녀가 끄덕이는 고갯짓이나 부언해주는 말 한마디에 따뜻함을 못 느낀다면 그런 사람은 그녀와 한자리에 같이 할 수가 애초부터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녀가 던지는 한마디는 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와 동감에서 나오는 그런 몸짓이었다,

버버리님은 절대로 그 머리카락을 보고서 선입견으로 판단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재확인하게 만들었다.
머리카락은 단순히 그분의 성품과는 다른 외부적인 요인에서 온 오랜 습관에 지나지 않을 뿐 그분을 판단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 분은 말을 꼭 어릴 적에 시골 어머니들이 밥을 꼭꼭 눌러서 푸 듯이 그렇게 말을 한다,
말의 꼬리에 꼭 정을 한 주걱 더 퍼서 눌러 주신다,
그것이 처음에는 상대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나오는 것인 줄 알았지만 차츰 그것이 그분이 가지고 있는 정의 표현방법이란 것을 알았다.
그것은 우리가 어릴 적 친구 어머니가 그렇게 퍼준 밥을 배가 불러도 남길 수가 없었듯이 그분이 건네주는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실린 아름다움을 거절 할 수가 없다.
그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에서 묻어나온 넉넉함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고 나눔일 것이다.

그런 저런 생각이 깊어 갈수록 내 머리는 더욱 무거워지고 자꾸만 방바닥에 가까워질 즈음 두어 명은 밖으로 나가고 나는 결국 베개에 머리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한참을 자다 다시 일어나 머리를 빨고 다시 잠을 청해서 아침에 이르러 창이 어슴푸레하기에 시계를 보니 5시가 좀 넘었다,
나는 창을 통해 해돋이를 볼 양으로 창에 붙어 해를 기다리는데 자세히 보니 구름의 띠가 엄청 두껍고 해는 그 속에 숨어 있는 듯 사이로 빨간색을 좀 비추다가 한참을 더 기다려 구름위로 해가 얼굴을 비추는데 이 그 붉은 기는 많이 삭아 들어서 밝기만 요란하였지만 그래도 나의 염원을 빌어 볼 만큼은 되었다.

어제처럼 아직은 다들 일어나기가 이른 듯하다 나는 또 주섬주섬 바닷가로 나갔다.
느릿느릿 걷는 걸음으로 아침공기를 들이 마시다 아예 차를 몰고 나서서 ‘청간정’이란 정자에 올랐다.
이승만이나 최 모 씨의 글씨가 걸려 있기도 한 그 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도시의 모습과 바다의 모습이 아스란 하고 갈매기들의 날갯짓들이 여유롭기만 하다.
기둥에 머리통을 기대 걸치고 조용히 ‘떠나가는 배’를 흥얼거리니 괜실히 뜻 모를 슬픔이 밀려온다.
떠나온 시간이 멀고 그 간에 가졌던 생각들의 파편이 많아서인가?
혼자 ‘쭈글탕하게’ 서 있음이 제멋대로 측은지심이 일어서 일가?
아마 그냥 마음에 폼을 잡고 싶어서 그랬나보다.

그러고는 내려와 어제 먹다 남은 조개를 끓여서 아침을 맛있게 먹고 나는 여자들의 화장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다들 나름의 기법으로 얼굴들을 그리는데 그것이 일이년의 ‘노하우’가 아니다보니 다 일가가 있었다,
언뜻 눈을 떠서 봤던 잠자던 모습들이 어제 본 모습과 너무 달래서 놀랬는데 이렇게 다시 그 모습으로 돌아가는 장면들을 보니 그 기술에 새삼 놀랬다,
예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싶다,
예술이란 결국 아름다움에 그 커다란 기준이 있는 것이란 것을 생각할 때 이렇게 졸지에 만들어지는 모습은 하나의 경이로운 재창조의 아름다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그려진 아름다움에 마음들을 같이 화장하다보면 늙음이나 시름도 비켜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분들의 그런 바람의 발라짐에 열심히 박수를 보내며 그 열심인 마음으로 내 작업에 임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우리는 속초로 내려와 다현님과 이별을 고하고 ‘오색약수’에 들렸다,
아침가리와는 달리 잘 만들어진 비포장 길의 모래들을 밟으며 약수터에 도착하여 씁스름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니 그 넉넉함이 너나나나 할 것 없이 시원하다.
내려오며 언뜻 선녀님의 사랑이야기를 훔쳐듣는 맛이 달콤하였지만 길이 좀 짧아서 후렴부분까지다 못 들어 아쉬웠다,
천상 다음 만남까지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주문진까지 같이 가자는 제안을 뿌리치려니 끝까지 같이 못하는 이번 여행이 아쉬웠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우리 둘은 분당으로 되돌아 왔다.
새로운 여행지를 새로운 사람들과 한다는 것이 기대도 되고 또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쌓아온 인생역정의 여유로움이 있기에 작은 어려움은 극복이 되고 즐거움들만 쌓였다가 어느 날인가 지금의 새 잎들처럼 기억 속에서 파릇파릇하게 웃음으로 되 살아 날 때가 있을 것이다.
여행을 끝내는 지금도 즐겁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즐거움이 더 커지는 기분이다.































오늘은 ‘여행사랑’ 번개가 있는 날.
가입한 지가 두어 달은 지났지만 아직도 회원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는 어찌 시간이 닿아서 처음으로 나가는 모임인지라 설레는 마음이 잔잔히 이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두세 시 경에 분당에서 ‘번개’를 친 주인공을 만나 강원도로 향하기로 했기 때문에 오전에 시간도 나고 또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바쁜 일이 생겨서 강원도는 같이 못가도 인사동 도자기 전시라도 보고 오자는 말에 인사동에 들려, 지리산 자락에서 오로지 수십 년을 예전 ‘이도 다완’의 재현에 힘을 쏟았다는 어느 할머니 도공의 작품들과 바로 그 아래층에서 열린 골동품 특별전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같이 보고 걸음을 재촉하여 다시 약속장소인 분당으로 돌아 와서 친구와 나는 헤어지고 번개를 친 그녀와 단둘이서 그야말로 ‘졸지데이트’ 겸해서 그녀가 구해온 소래의 해물들을 나의 애물단지 트럭에 실고서 강원도를 향해 달렸다.

평일 한 낮이라서 길은 거의 막힘이 없었다.
이야기하다 깜박 교통표지판을 놓쳐서 잠깐 망설이다 수백 미터를 돌아 온 것 빼고는 너무도 쉽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강원도는 언제 봐도 강원도다. 언제나 반가운 고향친구처럼 늘 다정하고 한결같은 기쁨으로 또 그러면서도 그때마다 다른 깊이로 우리들에게 감동을 준다. 오늘의 강원도 산들은 저번 주에 봤던 남도의 산들과는 또 다르다.
남도의 산들이 19세 처녀의 풋풋함이라면 지금 여기 막 신록이 피어나고 있는 강원도 산들은 15살 먹은 ‘볼따구’가 빨간 여중생의 생동감 그것이다.
먹기도 전에 이가 시리고 침이 나오는 퍼런 사과 바로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 물에 풀어지기 전의 막 튜브에서 짜내진 수채화 물감 같다고 할까 아직 완성에는 멀었지만 기대감과 풋풋함의 기운이 차고 넘치는 그런 모습이다.

어릴 적 까까머리가 그 머리통의 본 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듯이 막 돋아난 새싹들은 그 나뭇가지들의 본모습을 전혀 감춤이 없이 알로 드러내고 있었다.
또 그들은 소나무들처럼 녹색을 미련하리 만큼 우직하게 이고 있는 나무들과 무더기로 뚜렷한 대조를 이룸으로 해서 더욱 그 연한 신록의 신선함이 더욱 강조 되었고. 연하다 못해 노란 기운을 품고 있고 아직도 사이사이로 겨울의 색을 품고 있는 나무들의 간간함에 의해 마치 초가을 단풍이 시작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그런 모습의 산들이었다.
기후 차에 의해 이미 초록이 많이 진행된 남도와 지금 막 초록이 시작되는 강원도는 그렇게 같은 손등이면서도 다른 느낌으로 내 눈에 와 박혔다.

쉬어 가며 시원한 냇물에 손도 적셔보고 신록에 입맞춤이라도 하면서 가면 좋겠지만 신록의 신선함이 만나는 님들의 신선함과 견줄 수가 있겠는가?
누구는 이미 아는 사람도 장아찌처럼 푹 담겨지고 관리 되지 않는데 어떻게 또 새롭게 사람을 사기냐고 그저 아는 사람이나 ‘관리하며’ 살기에도 남은 인생이 벅차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이렇게 새로운 사람에의 갈증이 심하고 그 새론 만남의 기대감으로 설레니 내가 성격이 별난지 아니면 먼저 안 이들과의 정 나눔이 부족한 것인지 새로운 만남만을 선호하는 무슨 병명이 없는 정신병 같은 것이라도 있는 것인지 통 이유를 알 수 없다.
오늘도 그런 낯 설움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된 만남이 기다리고 있으니 달리면서 보이는 산야의 기쁨은 그저 양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곳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아침가리다.
아침가리가 도대체 어디서 온 말인지 모르겠다.
‘아침꺼리’란 말에서 온 것인지 아침에 뭘 가린다는 말인지 암튼 계곡이란다.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라서 토관을 묻어서 콘크리트로 꽁꽁 만든 다리라서 절대로 무너지거나 떠내려 갈 염려가 없는 다리를 지나니 바로 거기가 ‘아침가리’민박집이다.

주인은 별 표정이 없이 우리를 맞는 둥 마는 둥하고 이미 온 사람들과 ‘쭈욱’ 인사를 나누었다.
다 나처럼 적당한 세월의 자국들을 여기저기에 이고 있는 그런 모습들이다.
이미 오랜 세월동안 갈고 닦은 ‘인사격식’에 대한 요령이 습득된 탓인지 다들 특별하게 유별난 반김도 무시도 없이 그저 적당한 시선과 관심만을 던지면서 각자의 움직임에 열심들이이다.

이러고 저러구 하면서 우리는 저녁을 준비했다.
이미 먼저 팀에서 준비해온 야채들과 반찬과 돼지고기에 더해서 우리가 가지고 온 해물의 ‘바베큐’ 저녁 겸 파티가 차려졌다.
어디를 가나 시골에서는 이 바베큐가 제일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푸짐도 하고 간단하기도 하고 장작불과 하는 것이라 정취도 나고 참으로 표 나는 일이다 보니 시골에 오면 늘 접하게 되는 ‘신종음식문화’다.
나는 열심히 쭈꾸미 머리통을 주워 먹었다.
굽는 사람에게는 좀 염치없게 보였을 법도 하지만 난 워낙이 먹는 것에는 염치가 없는 놈이라서 열심히 주워 생키다 보니 작은 내 배가 금방 찼다.

산간이라서 날씨는 차가웠지만 불이 있어서 따뜻했고 이미 배를 채웠으니 나의 할 일이 없어졌고 또 심심도 하면서 서서히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늦게 오신 여자 분과 함께 여자가 여섯에 남자가 셋이다.
도대체가 숫자가 안 맞는다.
나는 딱히 무슨 거사를 치르려는 놈도 아닌데 꼭 이 짝 맞추기에 민감하다.
일단 짝이 맞으면 편하고 안 맞으면 불편하다.
그게 왜 그런지 모르겠다.
원래가 인간이 처음부터 짝으로 지낸 것도 아닌 모양인데 이런 본능적인 시각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다.

요 며칠 사이로 내 가죽 슬리퍼의 한 짝이 아무도 모르게 없어져서 심난하기만 한데 그런 연장선은 아닌 것 같은데 사람 만나기를 꼭 짝으로 만나려고 한다.
하긴 우리 학교 다닐 때 어쩌다 미팅이라도 할라치면 짝이 안 맞으면 난감해서 쩔쩔매던 기억이 있는데 그런 심정의 연장선인가?
암튼 짝이 안 맞는다.
그것도 너무나 크게 ‘따블’로 안 맞으니, 바람에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서 눈 매움과 불똥을 피해 도망 다니게 만드는 바쁜 바비큐 불길처럼 심난한 마음을 배가한다.

그렇다고 갑자기 무슨 조약돌 줍듯이 짝을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 짬에 눈동자를 굴려 보는데 제일 먼저 집게를 들고 열심히 고기를 엎거나 굴리거나 자리바꿈하거나 은박지를 돌려대며 고기 굽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여행사랑’이란 분에 눈길이 간다.
대뜸 보기에도 그가 무리의 대장같이 보인다.

그것도 본능일까?
동물의 왕국을 보면 떠돌이 수사자가 새로운 무리에 오면 제일 먼저 거기 대장 수사자하고 ‘다구리’를 붙는다. 아마는 그런 동물적인 본능이 인간과 나한테도 있는지 그 고기 집게 든 분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덩치로 보나, 인물을 보나, 일 폼이나, ‘무리’를 바라보는 느긋함이나, ‘무리’가 바라보는 시선이나 웃음 품은 여유로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언뜻 불빛에 날카롭게 보이는 눈매를 보나 내가 근접할 상대가 안 된다는 생각이 첫 순간에 ‘팍’ 왔다.
동물의 왕국 같으면 그저 헛기침 한마디에 그냥 줄행랑을 칠 상황이지만 그래도 나도 어언 반세기 풍상을 겪은 몸이고 어차피 인간의 꼬리는 뼈다귀 속에 감추어 진 것이니 뭐 겁날 것이 있으랴!
배부르면서도 한발 냉큼 다가서 그 양반의 집게에 제일 가까운 쭈꾸미 머리통을 콱 짚어서 입에 날름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커다란 집으로 말하면 이 분이야말로 여러 대문 중에 첫 대문 수문장 같다.
여기서 물러서면 집은 구경도 못하고 돌아가야 할 판이다.

이리공 저리공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한 수도 없고 또 틈도 없어 보이는 지라 일단 작전상 후퇴를 하기로 하고는 주꾸미 머리통을 입속에서 굴리며 그 옆에 계신 ‘바바리’(보통은 그렇게 불러야 되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버버리’로 불러서 난 처음 무슨 ‘버벅댄다’란 말에서 온 아이디인 줄 착각했다.)란 분을 보니 이 분이 나처럼 빨간 잠바를 입었는데 내거야 면 잠바로 ‘쭈굴탕’하지만 이 분은 ‘사파리’다.
사파리가 언제 입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암튼 그 기지자체가 일반 "허접 떼기‘ 잠바와는 그 본질이 다르니 일견 위축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이 분은 ‘머리’가 아주 나하고는 무지하게 딴 판이었다.
나야 완전히 그 옛날 ‘와룡기’라 불리던 벼 타작기에 볏단을 때려치면서 돌리면 벼이삭은 다 떨어지고 짚만 이리저리 어지럽기만 하던 짚단처럼 헝클어지고 윤기 없는 머리지만 이 분의 깔끔하고 짧게 잘라 올린 머리카락은 윤기가 부티 났다.

거기다가 난 수염을 길러봐야 가짓수를 셀 정도라서 간신 배역에나 어우리는 콧수염 턱 수염이 전부지만 이 양반은 한 보름만 면도 안하면 그냥 그대로 털보선장이 아닌가?
수염이 남자의 상징이라면 그야말로 이 분은 ‘범털’이요 난 ‘개털’이다.
이쪽을 보나 저쪽을 보나 도데체가 적수가 없는 듯하고 이래저래 추운 날씨와 함께 ‘쪼그라’ 들기만 할 뿐이지만 그래도 나도 권총 찬 인간이 아닌가?

그래서 여자분 들을 봤다.
오늘의 음식을 준비해왔다는 ‘다현’이란 분을 봤다.
눈에 보이는 것은 뭐든지 다 길었다. 손가락은 물론이요 심지어 화장한 손톱도 길었다. 그렇다고 농구선수처럼 길다면 시각적으로 불안함을 유발하겠지만 그저 알맞은 길이라 시원해 보였다. 글쎄 성격도 그렇지 않을까?
그저 그 분이 끌고 온 차만이 내 차처럼 ‘짜리 몽땅’했다.
아마 다 미적으로 구색을 맞춘 것이 아닐까.
그런 분이 봉고를 끌고 다닌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참으로 다 절묘한 안목이다 싶었다.

그리고 내가 도착하고 나서 나중에 차 속에서 나타나신 ‘무지개’란 분.
늦게 여유 있게 나타난 것을 보면 믿는 것이 많은 모양이다. 글쎄 뭘까?
젊음이겠지. 인물이라고 하면 다른 분들한테 혼날 것이고......
이 분은 온통 무지갯빛이다. 모자고 그렇고 티도 그렇고 바지만이 좀 달랐는데 내가 전에 어릴 때 입던 바지가 생각나는 그런 쫄쫄이 바지였는데 그것도 무지개 분위기의 연장선이었다. 아마는 속마음도 무지개인 것 같다.
무지개를 쫓아가서 파면 보물이 나온다는데.....그런 것을 믿기라도 하는지 전 세계를 누빈다니 그 보물이 찾아 질런지 모르겠다.
아마 그 여유롭게 두툼한 눈두덩이 속에 있지는 않을까?

이어서 아주 늦게 혼자서 멀고 먼 밤길을 겁 없이 오로지 컴퓨터에서 만난 얇다면 얇고 두껍다면 두꺼운 ‘정덩어리’를 확인하려고 무릎 덮은 치마의 근무복 차림으로 달려온 ‘달빛’이란 분. 아마 달빛을 몰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지 이렇게 늦은 밤을 달려오다니 참으로 대단한 조직의 힘이다 싶었다.
다른 분들의 질투어린 투정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정성을 배가해서 쭈꾸미며 고기를 구어서 대접하는 여행사랑 님의 정성을 보면 아마 이 분도 예사로운 분은 아닌 듯싶다.
어두워서인지 내가 마신 두어 잔의 소주 때문인지 가물가물하기만 할 뿐 감이 잘 안 왔다.

그리고 두 분이 더 있다.
한 분은 여기서 최연장자인 ‘선녀’란 분하고 또 나이를 감 잡기 힘든 ‘꽃등’이란 분.
이 분들은 이상하게도 꼭 날 피하는 것 같이 이 작은 무더기의 중심에서 멀리만 있다.
한 분은 어쩌다 방에 들어가면 ‘벌러덩’으로 계시고 한 분은 아예 눈에 안 띈다.
나야 초면의 장이니 그 중심을 벗어날 수가 없는 노릇이지만 이 두 분들은 이상하리만큼 겉돌고 얼굴을 안 봬 주신다.
설마 날 경계?

나의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은 여자들이 날 보기만 하면 경계심을 푼다는 것이다.
도데체가 내 눈빛을 보면 그 음흉한 기가 안 보이고 흐리멍덩한 ‘내시성’ 기질만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 것이 일반적인 여자들이 날 보고 느끼는 감이려니 하면서 이날까지 별 탈 없이 잘 살아 왔는데 이 분들이 나의 깊은 내면의 음흉성을 첫 눈에 감지했단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한 도전이다.
그렇다고 초면에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나는 적당히 불러 오는 배만 만지작거리며 남들이야 어쩌건 말건 모닥불에 열심이 되었다.
그럴 즈음 우리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등장인물 주인아저씨가 나타난다.
사람이 다 누구나 ‘미스테릭’한 부분이 한두 군데는 있는 법이고 또 아무리 ‘학삐리’출신이고 ‘범생이표’이고 하더라도 다 괴상 쩍은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주인양반은 오히려 그런 것들의 전부다.

강원도 산간이고 아직은 봄기운이 덜 느껴지는 곳이고 또 밤이다 보니 날은 추워서 이가 흔들릴 판인데 이 양반이 맨발에 반바지에 반팔이다. 언뜻 보니 팔뚝이며 다리통이 예사롭지는 않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어찌 보면 만용 같게만 보이는데 그도 사십대 중반쯤인데 그런 만용을 부리겠는가?
그저 이런 적막이 좋고 바람소리 물소리가 좋아서 이렇게 허허로이 지낸다니 모습이야 우리와 비슷하지만 현대판 도인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법하다.
신부와 중이 되려다 이제는 인간을 떠나 이렇게 골짜기에 들어와 있고 앞으로는 더 깊은 산골로 가고 싶다니 참으로 우리네 삶과는 다르게만 가려고 하는 아주 특별한 분이었다.

그런 중에도 그 주인 양반이 선곡한 곡들의 유수 같은 흐름과 옆의 강에서 흐르는 물소리에 더해져서 모닥불은 속절없이 타들어가기만 하는데 나도 특별한 이유 없이 우수가 밀려 왔다,
불이 주는 것인지 밤이 주는 것인지 낯 설은 사람 중에 낀 ‘혼자스럼’이 날 그리 몰아가는지 그 흔하게 듣던 유익종이나 심수봉의 노래도 그저 애절하게만 살을 파고들었다,
이 먼 곳 구석까지 흘러들어온 것이 기이하기도 하고 한편 슬프기도 하니 참으로 이상한 노릇이었기에 술이라도 한 두어 잔 더 들이키고 싶었지만 참고 불만 째려보는데 밤 산책을 가잔다.

마침 어제 차에서 빼 놓은 크고 두꺼운 잠바가 너무 그리울 정도로 한기가 몸을 스며드는데 다행이도 ‘버버리’님이 가지고 온 ‘무지개’님의 담요를 건네준다. 포근한 담요가 밤하늘과 주변을 포근하게 만들어 준다.
귀신 놀래기 장난들을 하며 마을과 산길을 걷는데 주인장 이야기가 여기서 20분 거리에 폐가가 있는데 새 며느리가 시집살이에 지쳐서 자살하고 또 다시 새 며느리가 죽고 이어서 식구들이 차례로 연달아 이유도 모르게 죽어서 지금은 폐가가 되었고 얼마 전에는 텔레비전에도 나와서 무당이 할머니와 식구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고 했다하고 자기도 낮에 가보니 산발한 여인이 있어서 카메라로 찍어서 ‘아침가리’홈피에 올려놨다니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고 그 분의 몇 시간의 인품으로 보아서 우리한테 ‘구라’를 풀 분도 아닌지라 아리송함만 더 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밤길을 돌아와 집에 들어왔고 나는 얼굴과 발, 이를 닦고 귀마개를 하고는 잠을 청했다.

새벽에 옆방서 놀다가 온 ‘버버리’님이 이른 아침에 부스럭대면서 일어나는 통에 나도 덩달아 일어났다. 이 분은 잠도 없나보다. 아마는 수염이 많은 분이 정력도 ‘쎄다’는 속설이 맞는지 잠도 짧은 것을 보면 어릴 때 녹용 꽤나 드신 부잣집 ‘아들래미’였나 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비실비실’이어서 그저 “잠이 보약이다”하고 사는 통에 그런 잠이 적은 분을 보면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가 없고 또 그런 분들은 남들보다 덜 잔만큼 더 사는 폭이니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다른 분들은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고 옆의 여행사랑 님도 버버리님이 깨워도 안 일어나는 것을 보니 몸은 나하고 천행지판인데도 잠만은 ‘같은 과’인가 보다.
나야 어차피 신참이라 군기가 들은 지라 잠을 털지 않을 수가 없어서 나와서 사방을 보니 맑은 공기가 나를 유혹하였다. 나는 차를 끌고 어제의 그 마을길고 고갯길을 천천히 달리며 주변을 둘러 봤다.

이른 아침의 산천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물살은 햇볕을 사면으로 받아서 그 빛남이 더했고 산의 나무들의 그 응달과 햇볕의 교차됨이 너무도 선명해서 산의 모습과 신록의 모습을 더욱 분명하게 내 보이고 있었다. 그런 산과 나무들의 모습이 부처머리의 라발처럼 곱슬곱슬하게 보이기도 하고 배추속잎 같은 신선함과 맛깔스럼으로 ‘눈맛’ 입맛을 다 충족시키는 그런 모습이었다.
나는 고갯마루에 차를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다 적당한 곳에서 볼일을 보니 정말의 자연과 내 몸의 자연의 합일을 일순 이룬 듯 하며 즐거운 마음이 시원한 느낌 이상이었다.

다시 돌아 내려오다 산책 나온 버버리님을 만나 어제 주인장이 이야기한 폐가를 찾을 겸 시멘트 샛길을 ‘느린작거리며’ 올라가니 시냇물은 이어지고 주변의 신록은 더 가까운데 군데군데 민가나 가끔씩 민박집이며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이윽고 시멘트 길도 끝나고 비포장 길이 나온다.
요즈음 일 년을 달려도 비포장 만나기가 어렵다.
트럭을 몰고 다니다 보니 가끔은 비포장 달리기가 소원이지만 우리나라도 살기 좋은 나라이다 보니 그 비포장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자연은 내버려 두었을 때 그 값어치가 배가 된다고 믿는 것이 나이지만 사람들은 편리한 것을 우선으로 치니 이제 비포장은 ‘열목어’ 만큼이나 귀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 이렇게 뜻하지 않게 비포장을 만났으니 나의 기쁨은 아침공기의 신선함을 또 뛰어넘을 만했다.

옆의 분의 분안해 하는 느낌은 아예 무시하고 곧 길이 막힐 것 같고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산길을 비비적거리며 올라만 갔다.
그럴 즈음 어제의 그 폐가인 듯한 집이 보였는데 그 집이 그 집인가 하면서 또 기어 올라가니 길은 더욱 험해지고 도저히 나의 들뜬 기분만을 즐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숙소로 돌아 왔다,

숙소에 오니 다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핸드폰만 믿고서 여유를 부렸지만 불통이려니 하고 나만 오기를 기다렸는지 분위기가 사뭇 싸늘했다.
말하자면 아침 일정을 내가 구겨 버린 것이니 참으로 난감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잘 나가면 늘 조심을 해야 하거늘 내가 너무 기분에만 취해 있었던 모양이다.
할 수 없이 분위기를 이렇게 저렇게 추스르고 늦은 밥을 구겨 넣고 우리는 드디어 그 ‘아침가리’계곡을 갔다,

거기는 우리들 인생처럼 길이 없었다. 오순도순 이야기 하며 걷기는 고사하고 이건 완전히 "박박기는라" 정신이 없었다,
가도 가도 돌 아니면 나무뿌리고 아니면 낙엽이고 두덩이이고 이끼였다,
반대편은 나은 듯해도 건너갈 수도 없는지라 그저 바위를 보듬으면서 하염없이 계곡을 훑어가게 되어 있는 그런 오지의 계곡이었다,
물이야 너무 맑고 좋았지만 그 놈의 돌들과 씨름하느라고 물이고 산이고 다 이발소 그림만도 못했고 새소리 물소리는 다 불심 없는 사람이 듣는 염불 같았다,

나도 여러 번 미끄러지고 엉덩방아찧고 빠질 뻔 했지만 여자 회원 중에는 결국 물에 빠지기도 하고 긁히기도 하는 등 말하자면 사고가 속출했다.
결국 한 시간 정도를 올라가다 우리는 발을 돌려야만 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가 아니고 고지는 까마득한데 시작도 안 하고 돌린 격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어찌하다 달빛님을 ‘건수’하게 되었다,
세상에 나 같은 부실한 놈의 도움도 필요한 사람이 있다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고 또 흐뭇한 마음도 이는 그런 시간이었다,
내려와서 식당에 앉아서 우리는 비빔밥과 ‘’부칭게‘와 ’좁쌀주‘를 시켰다.

빈속에 들어가는 막걸리가 속을 ‘쩌르르’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안주로 나온 버섯이 특이했다. ‘석머시기’와 ‘목머시기’ 버섯이라는데 맛이 난생처음 먹어보는 버섯으로 맛도 묘했다,
암튼 그렇게 해서 원래의 아침가리 번개를 마치고 거기서 우리는 일이 있으시다는 여행사랑님과 달빛님을 배웅하니 내 생각으로는 그것이 영락없는 ‘끈 떨어진 연’ 신세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는 그 확고부동한 여행님의 눈매를 아직은 놓치면 안 될 그럴 때였던 것이다.

우왕좌왕하면서 우리 오합지졸들은 결국 동해바다로 가기로 했다.
원래가 명장은 주도면밀하고 오합지졸은 거창한 법.
앞이 깜깜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불가사의하고 거미줄 보다 수십 만 배 더 끈끈한 인터넷이란 줄로 꽁꽁 묶인 정들의 사이가 아닌가?
그거 하나 하고 다현님의 시원시원함만 믿고 동해로 동해로 달렸다.
그 중간에 경찰 아저씨가 잠시 막은 거 빼고는 우릴 막을 자가 없었다.

중간에 이승만 별장을 들렸는데 사람들이 그런대로 북적이는 와중에 갑자기 거기서 일보는 아가씨가 나와 무지개님을 보고 부부가 아니냐고 한다. 부인이 너무 미인이란다.
그리고 둘이서 꼭 닮았단다. 글세 얼굴이 좀 길쭉한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도데체가 뭐가 닮았다는 것인지 도통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여보! 어서 갑시다.”하고 나와 버렸다. 일 와중에 그녀의 느닷없는 공격이 참으로 의아하고 괴이했다,
하루 종일 정신없고 피곤했을 텐데 갑자기 그런 말을 걸어온달 말인가?
그 안내양의 지루함을 풀기에는 우리 둘의 생김이 안성맞춤이었나?

다음에 그 밑의 이기붕 별장이란 곳을 들렸다,
거기도 이승만 별장처럼 보잘 것이 없어서 꼭 무슨 기사 대기실 정도였는데 걸려있는 사진을 보니 이기붕은 둘 째 아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사진 속의 그 모습은 아직은 고등학생정도로 어리기만 한데 부모의 잘못으로 그저 아까운 삶을 형의 손에 의해 마감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했다.
사람은 모두 남달리 살고자 노력을 하지만 그 노력이 지나치면 결국은 평범함보다도 훨씬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같이 간 곳은 어디일까?

다음으로 우리의 창졸간에 결정된 목적지로서 도착한 곳은 이름도 ‘요상꾸리한’ ‘아야진’.
거기서 짐을 풀고 회집에서 회를 ‘얌통머리’없는 주인과 싸움 반, 시비 반, 윽박지름 반으로 뒤범벅이 되어서 먹고는 민박집에 들어 왔다,
2대 5!
두렵고 겁나는 경쟁률이었기에 나는 일부러 미리 소주를 댓 잔은 퍼 넣었다.
나는 얼굴의 색깔이 볼 상 사나웠고 머리는 한없이 무거웠지만 그저 신출내기 군기 하나로 버틸 때까지 버텼다.

나의 게슴츠레하고 이완된 모습에 다들 경계심이 완전히 풀린 지라 그 와중에도 열심히 나의 머리통은 여자 분들의 그림으로 꽉 찼다.
자세히 보니 선녀님은 그들 여자 회원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녀가 ‘어슴프레한’ 분위기로 있다가 간간히 던지는 한 두 마디의 ‘말씀’은 생명 같고 주옥같고 필살 같은 ‘교주’의 촌철살인의 말씀 그 자체였다.
그 한 마디는 그냥 그 녀의 삶 자체였다,
그것은 생각하거나 공부하거나 남으로부터 듣거나 해서 조성된 언어가 아니고 그냥 그녀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그런 성경 같은 말씀 그 자체였다,
그것은 밥을 먹고 자연스럽게 뱉는 트림처럼 그렇게 간단없고 느닷없이 딱 그 순간에 그 분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그 분의 한 마디에 그 어떤 반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완전한 믿음 그 자체였다,
그 원천이 분명 있을 것이지만 내가 그것까지 감지하기엔 이박 삼일은 너무 짧았다,

다현님은 늘 생각을 이고 사는 분인 것 같다.
뭔지 보이는 시원스럼과는 달리 걱정이 많은 분인가 보다.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안 보이는 중간 톤의 그림 같은 분이다. 감정으로 말하면 유쾌함과 찡그림을 생략하고 덤덤한 깊이로만 주변을 압도하는 그런 분인가 보다,
나야 그걸 찾기에는 역시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정을 가진 분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그녀가 가지고 온 반찬들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고 다른 이들이 그녀에게 주는 따뜻한 눈길에서 그것을 어느 정도 느낄 수가 있었다,

아! 무지개!
너무나 천연스럽게 내 뱉는 말들로 전혀 길들지 않은 나를 삼일 내내 번번히 놀래키기만 한 그녀. 앞으로 몇 번을 더 모임서 봐야 놀래지 않고 나도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적응이 될까?
다른 모든 사람 중에 제일 많은 것을 보여 주었지만 제일 많은 것을 알 수 없는 그런 내면의 소유자다.
하지만 나야 그 녀가 보여주는 것만 보면 되지 안 보여 주는 부분까지 억지로 보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무지개빛이 그녀의 그늘일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통해 즐거움과 희망을 갖는 다면 그것으로 그녀의 노력에 답하는 것이고 또 모임에 활기로움을 더하는 것이니 그녀나 우리나 다 좋은 일일 것이다.

꽃등님은 적당한 때에 적당히 맞장구를 친다.
꼭 판소리에서 고수 같은 분이다.
그렇다 상대의 내면에 들어가는 길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일이 가장 빠른 길일 지도 모른다.
그런 방법을 그녀는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것 같다.
그녀가 끄덕이는 고갯짓이나 부언해주는 말 한마디에 따뜻함을 못 느낀다면 그런 사람은 그녀와 한자리에 같이 할 수가 애초부터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녀가 던지는 한마디는 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와 동감에서 나오는 그런 몸짓이었다,

버버리님은 절대로 그 머리카락을 보고서 선입견으로 판단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재확인하게 만들었다.
머리카락은 단순히 그분의 성품과는 다른 외부적인 요인에서 온 오랜 습관에 지나지 않을 뿐 그분을 판단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 분은 말을 꼭 어릴 적에 시골 어머니들이 밥을 꼭꼭 눌러서 푸 듯이 그렇게 말을 한다,
말의 꼬리에 꼭 정을 한 주걱 더 퍼서 눌러 주신다,
그것이 처음에는 상대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나오는 것인 줄 알았지만 차츰 그것이 그분이 가지고 있는 정의 표현방법이란 것을 알았다.
그것은 우리가 어릴 적 친구 어머니가 그렇게 퍼준 밥을 배가 불러도 남길 수가 없었듯이 그분이 건네주는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실린 아름다움을 거절 할 수가 없다.
그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에서 묻어나온 넉넉함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고 나눔일 것이다.

그런 저런 생각이 깊어 갈수록 내 머리는 더욱 무거워지고 자꾸만 방바닥에 가까워질 즈음 두어 명은 밖으로 나가고 나는 결국 베개에 머리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한참을 자다 다시 일어나 머리를 빨고 다시 잠을 청해서 아침에 이르러 창이 어슴푸레하기에 시계를 보니 5시가 좀 넘었다,
나는 창을 통해 해돋이를 볼 양으로 창에 붙어 해를 기다리는데 자세히 보니 구름의 띠가 엄청 두껍고 해는 그 속에 숨어 있는 듯 사이로 빨간색을 좀 비추다가 한참을 더 기다려 구름위로 해가 얼굴을 비추는데 이 그 붉은 기는 많이 삭아 들어서 밝기만 요란하였지만 그래도 나의 염원을 빌어 볼 만큼은 되었다.

어제처럼 아직은 다들 일어나기가 이른 듯하다 나는 또 주섬주섬 바닷가로 나갔다.
느릿느릿 걷는 걸음으로 아침공기를 들이 마시다 아예 차를 몰고 나서서 ‘청간정’이란 정자에 올랐다.
이승만이나 최 모 씨의 글씨가 걸려 있기도 한 그 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도시의 모습과 바다의 모습이 아스란 하고 갈매기들의 날갯짓들이 여유롭기만 하다.
기둥에 머리통을 기대 걸치고 조용히 ‘떠나가는 배’를 흥얼거리니 괜실히 뜻 모를 슬픔이 밀려온다.
떠나온 시간이 멀고 그 간에 가졌던 생각들의 파편이 많아서인가?
혼자 ‘쭈글탕하게’ 서 있음이 제멋대로 측은지심이 일어서 일가?
아마 그냥 마음에 폼을 잡고 싶어서 그랬나보다.

그러고는 내려와 어제 먹다 남은 조개를 끓여서 아침을 맛있게 먹고 나는 여자들의 화장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다들 나름의 기법으로 얼굴들을 그리는데 그것이 일이년의 ‘노하우’가 아니다보니 다 일가가 있었다,
언뜻 눈을 떠서 봤던 잠자던 모습들이 어제 본 모습과 너무 달래서 놀랬는데 이렇게 다시 그 모습으로 돌아가는 장면들을 보니 그 기술에 새삼 놀랬다,
예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싶다,
예술이란 결국 아름다움에 그 커다란 기준이 있는 것이란 것을 생각할 때 이렇게 졸지에 만들어지는 모습은 하나의 경이로운 재창조의 아름다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그려진 아름다움에 마음들을 같이 화장하다보면 늙음이나 시름도 비켜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분들의 그런 바람의 발라짐에 열심히 박수를 보내며 그 열심인 마음으로 내 작업에 임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우리는 속초로 내려와 다현님과 이별을 고하고 ‘오색약수’에 들렸다,
아침가리와는 달리 잘 만들어진 비포장 길의 모래들을 밟으며 약수터에 도착하여 씁스름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니 그 넉넉함이 너나나나 할 것 없이 시원하다.
내려오며 언뜻 선녀님의 사랑이야기를 훔쳐듣는 맛이 달콤하였지만 길이 좀 짧아서 후렴부분까지다 못 들어 아쉬웠다,
천상 다음 만남까지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주문진까지 같이 가자는 제안을 뿌리치려니 끝까지 같이 못하는 이번 여행이 아쉬웠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우리 둘은 분당으로 되돌아 왔다.
새로운 여행지를 새로운 사람들과 한다는 것이 기대도 되고 또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쌓아온 인생역정의 여유로움이 있기에 작은 어려움은 극복이 되고 즐거움들만 쌓였다가 어느 날인가 지금의 새 잎들처럼 기억 속에서 파릇파릇하게 웃음으로 되 살아 날 때가 있을 것이다.
여행을 끝내는 지금도 즐겁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즐거움이 더 커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