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새재사랑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산아
* [백두대간 생태복원 지역] — 바람재로 내려가는 산길
☆… 여정봉(旅程峰)은 우두령에서 바람재 사이에서 가장 높은 산봉이다. 그래서 백두대간의 장대한 산줄기를 조망하는 아주 좋은 뷰포인트이다. 그리고 남쪽으로 김천시 대항면 일대의 아름다운 산곡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눈앞에 바로 쏟아지는 골짜기 아래에 있는 마을이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이다. 이정표를 배경으로 삼아 대원들이 하나씩 포즈를 취한다. 모두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어서, 우리 산악회 전속사진사인 필자는 즐겁게 셔터를 눌렀다.
☆… 여정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아주 가팔랐다. 그러나 거의 토산(土山)의 흙길이어서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았다. 길은 깊은 안부(鞍部)로 내려섰다가 다시 가파른 산길을 치고 오른다. 바람재까지 가는 도중의 또 하나의 산봉(山峰)이다. 해발 1,000고지의 산봉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기슭의 옆길을 따라 산행을 했다. 산봉에는 지난 가을에 장관을 이루었던 억새가 마른 대궁만으로 남아 조밀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곳은 백두대간 생태복원지역으로 지정되어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다.
* [바람재로 내려가는 산길에서의 조망] — 맑은 하늘, 장대한 황악산의 웅자
☆… 바람재로 내려가는 길, 잠시 시야(視野)가 확연이 열렸다. 눈 아래 안부를 지나 ,마주 보이는 건너편의 거대한 산줄기가 뻗어가고 있었다. 형제봉~황악산 정상~영동의 곤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장대하고 우람한 산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곤천산을 황악산 정상에서 영동의 상촌면으로 뻗어가는 지맥 중의 산봉이다. 하늘이 맑고 햇살이 밝다. 초록의 옷을 입은 백두대간의 장엄한 산줄기를 바라보며 새삼 조국의 아름다운 산하(山河)가 가슴 저리게 다가왔다. 자연은 순수하고 꾸밈이 없다. ‘자연(自然)’은 글자 그대로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산(山)은 정직하고 순수하다. 우리가 힘들게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도 그 정직한 자연의 품에서 정직한 땀을 흘리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잠시 대간의 산줄기를 보며 이마에 땀을 훔친다. 아아, 싱그러운 오월의 산이여!!
☆… 다시 숲속의 산길로 접어들고 나니 길은 아주 가파르게 아래로 쏟아지고 있었다. 해발 810고지의 바람재로 내려가는 길이다. 바람재까지 약 0,5km의 거리를 고도 200m를 낮추어야 하니 산길은 급격한 내리막길이 될 수밖에 없다. 길은 짤막한 통나무로 계단으로 만들어져서 있는데, 계단은 수다스럽게 가파르고 길었다.
* [바람재의 풍경] — 마음과 정을 나누는 숲속의 점심식사
☆… 오후 1시 20분, 우리 일행은 ‘바람재’에 도착했다. 해발 810m의 바람재는, 김천시 대항면과 영동군 궁촌리를 있는 고갯마루로, 백두대간 여정봉과 형제봉 사이의 안부이다. 바람재는 예전부터 바람이 아주 세차게 불어 ‘풍령(風嶺)’이라고 일컬어진다. 이곳 바람재 지역은 그 동안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단절하고 있던 군사시설물을 철거하고 지형 및 식생을 복원한 지역으로 백두대간 생태복원에 힘을 기울이는 지역이다. 너른 안부의 가장자리, 작은 자연석에 비뚤어진 글씨체로 쓴 '바람재' 표지석이 있고 그 옆에 자상한 바람재 해설판과 벤치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바람재는 우두령이나 괘방령처럼 고개를 넘어가는 도로가 개설되지 않은 곳이다. 김천 쪽으로 군사시설용으로 만든 임도가 남아있을 뿐이다.
백두대간, 오월의 파안대소
☆… 우리 대원들은 ‘바람재’ 가장자리 숲 그늘에 자리를 잡아서 점심식사를 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를 했다. 베토벤 부대장이 권하는 차가운 막걸리 한 잔이 더운 가슴을 짜릿하게 씻어 내린다. 신순식 님의 ‘닭볶음탕’은 푸짐하고 맛깔스러웠다. 부인의 정성과 조리솜씨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잘하는 조인규 대원이 스스로 극찬하면서 내놓은 ‘불광동 할머니 손두부’는 고소하고 진한 맛을 풍겼다. 양념장에 찍어먹는 맛이 그만이었다. 산중에서 맛보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호산아의 ‘영양알밥’과 ‘계란말이’도 식단에 올랐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이 식사를 나누면서 우정이 솟고 사랑이 피어나는 것이다. 산행 중에 함께 식사를 나누는 의미가 남다른 것은, 자연 속에서 모두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바람재 표지석을 벗 삼아 인증샷 한 방씩을 눌렀다.
* [형제봉 가는 길] — 싱그러운 녹음과 순결하고 소담한 야생화
☆… 오후 2시, 점심식사 후, 오후의 산행에 돌입했다. 안부에서 산봉으로 치고 올라가는 가파른 산길이다. 식사를 하고 났으니 몸이 무겁다. 완만한 듯하다가 다시 가파른 통나무 계단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오월의 녹음이 싱그러운 산길은 내내 청정한 기운이 흐르고, 화사한 햇살에 비친 나뭇잎이 순결한 녹색의 실핏줄을 드러낸다. 오르막 산길의 길목마다 소담하고 정결한 풀꽃들이 맑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렇게 약 20여 분을 어기차게 치고 올랐다. 이정표와 벤치가 설치되어 있는 해발 1,000고지의 산봉에 올랐다. ‘신선봉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김천방향으로 뻗어나간 산줄기에 신선봉(944m)과 망월봉(597m)이 있다. 신선봉~망월봉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면 고찰 직지사(直指寺)에 이르게 된다.
백두대간의 산중신사
☆… 갈림길 벤치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산행을 계속해 나갔다. 완만한 토산(土山)의 능선 길이다. 대원들의 발걸음이 쾌적하고 시원스럽다. 산길에는 싱그러운 녹음이 넘실거리고 제 철을 만난 나뭇잎들이 생명력을 뽐내고 있었다. 풍상에 뒤틀리고 휘어진 참나무 나뭇가지도 녹색의 옷으로 갈아입으니 우아한 자태로 보인다. 그리고 길목마다 순백의 야생화가 소담하게 피어서 카메라의 앵글을 사로잡는다. 백두대간의 완만한 능선에서 우리 대원들이 유쾌하게 산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늘 산길에는 우리 이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으므로 호젓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 [형제봉 이야기] — 두 개의 산봉이 형제처럼 솟아있는…
☆… 오후 2시 35분, 해발 1,040m의 ‘형제봉(兄弟峰)’에 올랐다. 형제봉은 정상 황악산 다음으로 높은 산봉으로 정상까지 0.8km 앞둔 지점이다. 형제봉은 약 300m 거리를 두고 남북으로 우뚝 솟은 두 개의 봉우리가 마치 우애 깊은 형제의 모습처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북쪽의 산봉은 1,022m로 행정구역상 영동군에 속하며 남쪽의 봉우리는 행정구역상 김천시에 속한다. 이곳의 남쪽 골짜기는 문바위골인데 직지사(直指寺)로 내려가는 길이다. 아주 가파르고 험악하다. 10여 년 전 비가 내리는 날, 그 가파른 비탈길로 내려가다가 큰 고생을 한 기억이 생생하다. 형제봉 일대는 해발 1,000고지 이상의 고봉이므로 마을이나 도로가 바로 이어지지 않아 자연 생태의 지형이나 생태환경이 잘 보존된 지역이다. 형제봉 이정표를 배경으로 ‘문 꽁지’ 대원이 포즈를 잡았다. 요즘을 머리 뒤의 꽁지를 잘라서 민머리가 되었지만 언제 쾌활하고 재미있는 대원이다.
* [백두대간 황악산의 철쭉꽃] — 연분홍 꽃물이 가슴에 젖어드는…
☆… 형제봉(兄弟峰)에서 안부로 내리다가 다시 산을 치고 오른다. 길목의 주변에 물 고운 철쭉이 만개하여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울의 철쭉은 4월초에 지천을 이루었는데 고산의 철쭉은 지금이 제철이다. 맑은 공기와 청정한 햇살을 받은 연분홍 꽃잎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연분홍은 오늘의 산행에서 가슴을 적시는 꽃물이다. ‘소백산 도솔봉’에 지천으로 피었던 철쭉 꽃무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 [백두대간 황악산 정상에서] — 일명 ‘비로봉’으로 불리는 산정의 조망
오☆… 후 3시, 우리 산악회 모든 대원이 황악산(黃嶽山, 1,111m) 정상에 올랐다. 백두대간 제6구간인 우두령과 추풍령 사이의 최고봉이며 영남의 관문 김천의 진산(鎭山)이다. 1,000m가 넘는 높은 산이지만 토산(土山)이어서 흙의 의미를 담은 ‘황(黃)’자를 써서 황악산(黃嶽山)이라 했다.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와 상촌면 궁촌리,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형제봉, 동북쪽으로 백운봉, 운수봉 등 대간의 고봉을 거느리고 있으며 천룡대로부터 펼쳐지는 능여계곡은 황악산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황악산 품안에는 신라 눌지왕 2년(418년)에 창건한 천 년 고찰 ‘황악산 직지사(直旨寺)’(조계종 제8교구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 정상에는 거대한 자연석 위에, 세로로 내려 쓴 고딕체의 ‘황악산’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 대원들은 단체 사진을 찍고 개별적으로도 등정의 인증샷을 눌렀다. 대기가 청명하고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산정에서 등정의 성취감을 누린다. 고개를 들어 사위를 둘러본다. 어디를 보아도 신록으로 옷으로 갈아입은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머리 서북쪽으로 지난 1월에 우리가 산행을 했던 각호산~민주지산의 능선이 아련히 펼쳐져 있고, 가까이는 영동군 매곡면 강진저수지를 비롯한 상촌면 일대가 눈에 들어왔다. 산의 동남쪽은 직지사를 비롯하여 넓은 김천벌이 펼쳐져 있다.
*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 — ‘직지사의 갈림길’까지의 능선 길
☆… 오후 3시 10분, 정상에서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정상부근에는 헬기장이 있고 비교적 너른 평원이어서 높은 산에서 느끼는, 확 트인 기분이 좋았다. 오후의 밝은 햇살이 부드럽고, 싱그러운 오월의 숲이 고즈넉한 산길을 열어주었다. 부드러운 바람결이 이마를 스친다. 다른 산행객들이 거의 없는 산길은 참으로 호젓했다. 그러나 우두령에서 시작하여 8km가 넘은 대간의 능선을 오르내렸으므로 몸은 무겁고 다리는 경직되어 간다. 우두령에서 정상까지의 산줄기는 정북(正北)으로 이어졌는데 정상에서 시작하는 산길은 동북쪽 괘방령-추풍령으로 방향을 잡고 이어져 나간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가면 매곡면 곤천산이다. 정상에서 오늘의 하산지점인 괘방령까지는 5.1km를 남겨두고 있으니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하다. 그런데 정상에서 백운봉을 거쳐 운수봉 못 미쳐 있는 안부, ‘직지사 갈림길’까지는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토산(土山)의 산길은 그리 경사가 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쉼 없이 2km를 내리 쏟았다.
☆… 오후 4시, 남쪽의 직지사(直指寺)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여러 개의 벤치가 있어서, 뒤떨어진 대원들을 기다리며 잠시 뜨거운 숨을 돌렸다. 김준섭 부회장을 비롯한 선두 그룹은 이미 통과했다. 후미의 대원을 기다려 다시 산길을 잡았다. 가파른 오르막길, 다리가 무겁고 종아리가 뭉치기도 했다. 보폭과 완급을 조절하여 발걸음을 옮겨갔다. 산을 오르기 전에 준비한 이온음료와 생수도 모두 바닥이 났다. 바람결이 신선하고 오후의 햇살이 부드러웠다.
* [운수봉과 여시골산을 지나며] — 불국토의 성지 황악산 ; ‘운수행각’과 ‘여시굴’
☆… 오후 4시 22분, 괘방령으로 가는 길목의 운수봉(雲水峰, 680m)에 올랐다. 영동군 매곡면과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와 경계를 이루는 산봉으로, 국토지리원에는 ‘천덕산(天德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운수봉의 동북쪽의 산록에 직지사 운수암(雲水庵)이 자리잡고 있으며 산 아래 마을이 능여계곡이 있는 운수리이다. 언제나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에는 물이 흘러넘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보면, 직지사(直指寺)를 중심으로 황악산 일대는 불국토의 성역이다. 황악산 정상을 ‘비로봉(毘盧峰)’이라 한 것은 산의 정상을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로 모시는 불심이고, 황악산 아래 ‘백련암(白蓮庵)’은 백만 송이의 연꽃으로 이름을 삼았다. 부처님이 앉은 자리를 연화대좌(蓮花臺座)라고 한다. 인간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아 구도하는 길을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 하는 것이다.
☆… 운수봉(雲水峰)에서 아래로 내려가서 다시 산봉을 오르고 다시 또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다. 안부(鞍部)의 한 곳에는 나무기둥을 세우고 하얀 동아줄로 영역을 표시해 놓았다. 그 동아줄에 백두대간 종주의 리본이 성황당의 금줄처럼 현란하다. 그곳이 ‘여시굴’이었다. ‘여시’는 ‘여우’의 사투리이다. 옛날에 이곳에는 여우들이 많이 출몰했는데 그 여우들이 서식했다는 굴이다. 깊이가 약 2m 정도는 될 법한 큰 구덩이다. ‘여시굴’ 앞에서 여시처럼 포즈를 잡는 대원이 있어 앵글을 맞추었다. ‘여시골산’을 여시굴에서 올라간 산봉이었다. 해발 620m, 작은 자연석으로 된 ‘여시골산’이라고 쓴 표지석과 여러 개의 벤치가 있었다. 여성대원들이 꽃이 활짝 핀 포즈를 취하고, 노을비 조희우 대원과 아들 우현 군이 부자유친의 포즈를 취하였다. 여시골산 수림 사이로 바라보니 우리가 지나온 황악산의 거대한 산체가 눈에 들어왔다. 참으로 장중하고 엄청난 무게로 다가오는 거대한 산줄기였다.
* [괘방령으로 내려가는 길] — 급전직하로 쏟아지는 산길
☆… 오후 4시 15분, 괘방령(掛傍嶺)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산길을 가팔랐다. 괘방령이 고도(高度)가 아주 낮으므로 그만큼 아래로 내려가는 산길이다 급전직하(急轉直下)로 쏟아지는 산길은 그냥 몸을 가누기 힘들 지경이었다. 무거운 몸과 경직된 다리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었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뭉치고 잠시 경련이 일기도 했다. 컨디션을 조절하며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여성대원들이 더욱 고전(苦戰)을 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그대로 아래 쏟아져버릴 것 같은 길이었다. 이런 곳에는 ‘안전 자일’이나 지그재그식의 ‘계단’을 설치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을 거듭하며 산을 내려왔다.
* [산행의 마무리] — 백두대간의 안부 906번 도로가 지나는 괘방령에서
☆… 오후 5시 40분, 백두대간의 안부인 괘방령(掛傍嶺)에 도착했다. 오늘의 산행 마무리지점이다. 괘방령 부근은 산이 아니라 완만한 평지의 들판이었다.
☆… ‘괘방령(掛傍嶺)’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과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을 잇는 고개로, 고산자 김정호(金正浩)의『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괘방령(掛傍嶺)’, 신경준(申景濬)의『산경표(山經表)』에는 계방산(桂芳山)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부 지도에는 ‘궤방령’이라고 쓰고 있는데 근거가 없는 표기이다. 조선시대 때 여기서 동북쪽에 있는 추풍령이 관로(官路)라고 한다면 괘방령은 서민과 상인들이 왕래하던 고개이다. 한양에 올라가 과거(科擧)에 급제하면 이곳 고갯마루에 ‘급제자 이름을 걸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과거(科擧)를 보는 선비들은 ‘추풍낙엽’이 연상되는 추풍령(秋風嶺)을 피하여, 이곳 괘방령을 이용하거나, 멀리 ‘문경(聞慶) 새재’를 이용하기도 했다. 문경새재는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을 수 있는 영남의 요로이다.
☆… 바람재에서 추풍령 구간은 백두대간 종주 6구간이다. 이 구간에는 백두대간 생태복원지인 바람재, 한반도 남쪽의 중심이라 일컬어지는 황악산, 여우가 자주 출몰했다는 여시골산, 과거에 급제를 바라는 이들의 통행로인 괘방령, 우리나라 교통의 요로인 추풍령으로 연결되는 구간이다. 저 북쪽의 백두산에서 남으로 내려오던 대간의 산줄기가 속리산을 지나 점차 완만해지고 추풍령에 이르기까지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지역을 이루다가, 이곳 괘방령을 지나면서 ‘황악산~삼도봉~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산세가 펼쳐져 나간다. 지금의 괘방령은 잘 포장된 2차선 906번 도로가 개설되어 경북 김천의 직지사 마을과 충북 영동의 상촌, 황간을 잇는 차들이 쉬임없이 다닌다.
☆… 안부(鞍部) 괘방령,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 도로 옆에 괘방산장이 있고 그 잔디밭에서 수박파티가 벌어졌다. 금강고속의 냉장고에 넣어온 수박을 갈라서 하산한 대원들이 수박잔치를 벌였다. 피곤하고 목이 마른 대원들이 수박의 꿀맛에 빠져들었다. 또 시원한 막걸리가 더운 몸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수박은 남정균 회장과 민창우 대장이 더운 날씨를 감안하여 서울에서 준비해 온 것이다. 막걸리는 장병국 고문이 사왔다고 한다. 고난의 산행을 한 대원을 생각하는 정성들이 여간 고맙지 않다!
* [에필로그] — 장중한 산(山)의 무게가 내 몸에 실려 …
☆… 오늘, <제176차 산행>은 백두대간 ‘황악산 구간’을 종주(縱走)했다. 토산(土山)으로 이루어진 산세는 부드러우면서도 무게가 있었다. 신록(新綠)으로 넘실거리는 숲길은 청정하고 쾌적했다. 그러나 장장 13km의 백두대간 능선(稜線)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장대한 산맥을 이루는 수많은 산봉(山峰)들은, 쉬지 않는 오르내림으로 엄청난 체력을 요구했다. 올라가는 길에서는 산(山)이 가슴에 와 닿고 내려가는 길에서는 산의 무게가 등에 실리곤 했다. 산(山)과 내가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산에서 내려올 때는 장중한 산(山)이 그대로 내 몸에 실려 있었다. 거산(巨山) 황악(黃嶽)을 안고 올라가, 중산(重山) 황악(黃嶽)을 지고서 내려왔다. 우두령에서 시작한 산행은, 내가 산(山)이 되기 위해서 어기차게 땀을 흘렸고, 하산점인 괘방령에 내려올 때는 결국 나는 산이 되어 있었다. 괘방령에서 올려다 본 백두대간의 산체, 그 중에서 엄청난 무게로 솟아있는 황악산과 거기에서 북으로 뻗은 곤천산의 신록이 나의 몸 안에서 출렁거렸다. 아, 인생(人生)이란 첩첩산중을 가는 도정(道程)이 아닌가.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인생의 산(山)을 넘었다. 산이 된 마음이 사유한다. '은연히 하늘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공기로 숨을 쉬고 사는 우리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특히 오늘 힘든 산길을 유쾌하게 주파한 대원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 오늘 산길의 주제는 야생화(野生花)였다. 이름 모르는 풀꽃들이 처처에서 눈길을 끌었고 그것들이 내 가슴에 잔잔한 기쁨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들꽃과 산나물, 심지어 약초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민창우 대장이 가리키는 대로 꽃들과 눈을 맞추었다. 그 작고 맑은 꽃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의 목숨과 같은, 모두 하늘이 부여한 귀한 생명들이다. 길고 힘든 산길에서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 연분홍 철쭉의 맑은 기운과 작고 소담한 숲속의 풀꽃들은 분명 아름다운 생명의 기쁨이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 황악산은 분명 품위가 있는 명산이었다! 오늘 선두에서 길을 열어간 김준섭 부회장과 민창우, 유형상 대장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하루가 금싸라기 같은 오늘이었다. …♣